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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현대, 아들은 기아 ‘역할 분담’ 

위기의 현대차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기아차 정의선 사장에 맡겨 후계구도 가시화
10년 만에 기아차 등기이사 물러난 정몽구 회장 


지난해 9월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에서 열린 기아 쏘울의 신차발표회에서 정몽구 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지난 19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기아차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한 지 10년 만이다.

그동안 정 회장은 기아차 등기이사직을 계속 유지했으며 현대차와 기아차의 통합을 이끌어 왔다. 현대·기아차는 “현대차가 기아차 인수 후 10년간 시너지 효과를 활용해 이른 시일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정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맡아 이끌어 왔다”며 “그러나 기아차의 향후 남은 과제는 독창성 확립을 위한 브랜드 경영이고, 이를 위해 전반적인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직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현대·기아차는 정 회장의 사퇴로 “기아차가 전문경영인 체제에 의해 운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아차는 2006년 여름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불리는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을 영입한 후 디자인 경영에 초점을 맞춰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연이어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가진 신차를 출시하면서 불황에도 국내외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덕분에 기아차는 현대차 인수 10년 만에 자기 색깔을 내기 시작했고, 이번에 정 회장이 물러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재까지 선전하고 있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자동차 산업의 현 상황을 감안하면 정 회장이 현대차에 좀 더 집중해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의 ‘빅3’는 물론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도 줄줄이 적자를 내는 마당에 세계 곳곳에 투자하고 있는 현대차를 손수 챙기기 위해 기아차 이사를 사퇴한 것이란 얘기다. 동시에 아들인 정의선 사장의 행동 반경을 넓혀주기 위한 배려로도 보인다. 정의선 사장은 2003년부터 기획실장(부사장)으로 직접 몸을 담아왔다.

이후 대표이사 사장도 거쳤고 지난해부터는 해외담당 사장으로 일선에서 지휘하고 있다. 정 회장이 사퇴하고 나면 기아차 등기이사는 정 사장을 포함해 정성은 부회장, 서영종 사장, 이재록 전무 4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기아차 전반을 총괄하는 정 부회장과 생산과 국내판매를 담당하는 서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차는 전통적으로 노조와 협상을 담당하는 생산부문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아왔다. 정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든 말든 경영의 무게 추는 정 사장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3월 6일 개최될 주총에서 만약 정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는다면 본격적으로 경영전면에 등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 회장은 일단 현대차 경영에 집중하면서 기아차의 변화를 관찰할 듯하다. 항상 그렇듯 기아차가 본인의 생각만큼 잘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다. 정 회장은 인사에 어떤 경영자보다 직접적이고 직설적으로 개입해 왔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에서 오래 근무한 한 기업인은 “회장은 인사에 대해 주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어떤 체제도 정 회장에겐 임시적일 뿐이다.

976호 (200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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