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의 직원 교육은 금융계에 정평이 날 정도로 정교하고 구체적이다. 특히 이 은행의 세부 경영전략은 금융감독원이 벤치마킹을 할 만큼 세련됐다는 평이 자자하다. 어떻게 이런 평가가 나온 것일까? 김정태 행장은 서면으로 이뤄진 인터뷰에서 가감 없이 자신의 경영관을 털어놨다.
>> ‘반토막 펀드’가 펀드의 공식명칭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이 과연 펀드투자를 해야 하나?
“많은 투자자가 펀드에서의 손실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고객의 자산을 크게 늘려 드려야 할 의무를 맡고 있는 은행장으로서 죄송할 뿐이다. UBS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과거 약세장(Bear Market)은 주기적인 현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S&P 지수의 경우 큰 약세장은 11차례, 평균 15개월 지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평균 29% 하락했다. 이 중 최근 있었던 네 차례 리세션의 경기회복 기간은 5~6개월 이전에 회복됐다. 과거 사례로 볼 때 현재의 하락은 언젠가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약세장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투자자는 감정에 지배되기 십상이다. 약세장일수록 투자자는 감정이 지배하는 투자결정을 해선 안 된다.”
하나은행 ‘최우수 펀드판매사’로 선정
>> 구체적으로 조언한다면.
“지속적인 전략의 추구가 필요하다. 성공한 장기 투자자들은 ▶전 세계 지역에 분산 투자하는 펀드에 투자하고 ▶장기투자 원칙을 지켜나가야 하며 ▶포트폴리오의 정기적 리뷰 및 투자를 재조정해야 한다. 개인투자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자산관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 증권사 출신 CEO가 이끄는 하나은행의 차별화된 전략은 무엇인가?
“은행장으로 부임하면서 직원들에게 ‘펀드를 잘 파는 은행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펀드를 많이 판다는 뜻이 아니다. 제대로 팔자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 펀드판매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은행은 펀드판매인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른 어떤 교육보다도 펀드판매인 교육에 힘써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나은행은 차별화된 판매채널 전략을 일관되게 지켜오고 있다. 위험성이 크거나 복잡한 구조의 상품은 전문화된 PB만이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펀드판매 자격증이 있더라도 은행 내부적으로 정한 요건에 미달하면 펀드를 판매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PB가 없는 영업점에는 ‘펀드리더’를 두었고 하나금융그룹 차원의 웰스케어센터를 구성해 시장분석, 전략포트폴리오 제공, 대체 펀드 권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펀드클리닉 시스템에 접목했다.”
>> 그런 전략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로 이어졌나?
“올해 초에 ‘한국투자자 교육재단’에서 실시하는 전체 펀드판매회사 펀드판매 실태조사에서 하나은행이 ‘최우수 펀드판매사’로 선정된 바 있다. 펀드 완전판매에 대한 상대적인 우수성이 입증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많은 고객이 펀드 손실로 고통 받는 현실에서 웃을 수는 없는 일이다. 최선을 다해 고객이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자본시장법이 단지 펀드 잘 팔고 잘 사기만 담은 것은 아니다. 이 법 시행으로 향후 1년, 5년, 10년 후 변화될 국내 금융계의 모습은 무엇이라고 보나?
“금융산업 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은 확실하다. 다양한 상품이 출현할 법적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에 상품개발 경쟁, 자산관리 서비스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다. 최근 글로벌 IB(투자은행)들의 부실화로 빛이 바래긴 했지만 IB업무 확대 등에서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다. 또한 투자상품 판매절차의 엄격화, 적합성의 원칙 도입 등 투자자 보호제도의 대폭 강화로 투자상품 판매는 당분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2007년 우리의 자본시장법에 해당하는 금상법이 시행된 후 은행 등 펀드판매사들의 펀드판매는 많이 감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투자자들의 인식변화 및 판매회사들의 완전판매 노력 등으로 펀드시장은 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금융회사들은 대형화와 전문화, 상품 및 서비스의 경쟁력 제고, 구조조정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 투자은행을 준비해 왔던 한국 은행들이 월가의 파탄을 보면서 생각을 바꿀 것이라고 보나? 과연 한국의 투자은행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나?
“사실 투자은행 업무는 매우 다양하다. 위험도가 높은 복잡한 구조화채권이나 자기매매 업무는 상당 기간 글로벌 시장이 위축될 테니 국내 은행들도 당분간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어렵다. 하지만 주식·채권 인수나 인수·합병 관련 자문서비스 등 전통적인 투자은행업 분야는 우리도 점차 발전해 나갈 것이다.”
신용경색은 경제위기 진폭 키워
>> 체감경기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안 좋다는 요즘, 하나은행 일선 지점의 운영전략은 무엇인가?
“고객 기반 확대다. 이를 통해 성장 기반을 확보하고 수익성 향상을 추구할 방침이다. 고객 증대와 고객 기반 확대로 적정한 자산의 수익률 확보를 경영전략의 한 축으로 삼았다. 또한 원화유동성 부문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자산의 성장을 억제하고 수신 구조를 최적화할 방침이다. 수신만기 장기화 및 과목별 균형성장을 통해 조달비용을 줄이고 특히 수시입출식예금(MMDA)을 활용해 저원가성 예금을 증대할 계획이다. 덧붙여 PB전용상품을 늘리고 전문인력을 확대하는 등으로 PB부문을 강화하고자 한다.”
>> 최근 S&P와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책임자들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국가등급이 상당히 양호하다고 평가했지만 한국 은행들의 신용등급은 내렸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최근 국내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낮춘 것은 국가신용등급 수준에 맞추기 위한 조치였다. 오히려 국내 은행들이 국가신용도보다 높은 신용등급을 가지고 있었던 게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국내 은행의 건전성이 특별하게 문제가 된다고 발표한 적은 없다.”
>> 한국 은행들이 총체적인 금융·실물 위기를 어떻게 벗어나야 한다고 보나?
“위기 때 흔히 발생하는 신용경색은 경제위기의 진폭을 더욱 증폭시키고 지속 기간도 더욱 길어지게 한다. 따라서 은행들의 적극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통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최대한 빨리 해소하면서 대출 확대 등을 통해 금융중개 기능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일각에서 일었던 한국경제의 ‘3월 위기설’을 어떻게 보나?
“3월 위기설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외국인 채권 회수라느니 외자 대량 이탈, 엔화 자금 회수 등은 이러한 불안감을 활용하기 위한 재료에 불과하다. 정작 우리나라의 외화 수급 여건은 이런 식의 우려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다만 과거 IMF 외환위기를 방불케 할 정도로 경제나 시장 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IMF 위기의 학습효과로 인해 불안감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우리의 현재 여건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시장과 능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이런 노력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불신감을 더욱 키운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