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당 박영은 무과로 급제해 선전관까지 올랐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학문에 몰두해 대유학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그런데 박영이 선전관을 그만두게 된 이유가 의미심장하다. 성종에게는 유달리 애지중지하던 사슴 한 마리가 있었다. 성종이 ‘녹동아’ 하고 사슴을 부르면 알아듣고 달려왔다니 사슴치고는 무척 영특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세자 시절 연산군이 성종을 뵈러 오는데 사슴이 난간에 앉아 있었다. 연산군은 그 사슴을 발로 걷어차 섬돌 아래로 떨어뜨렸고, 그 광경을 본 성종은 대로해 연산군을 꾸짖었다. 연산군은 이 사건을 잊지 않고 있다가 왕위에 오르자 녹동을 삶아먹어 버렸다. 박영이 선전관을 그만둔 건 이 사건을 보고나서였다. 박영은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왕께서 아끼시던 것을 이처럼 죽이니, 신하를 대하는 것이야 오죽하겠는가?”
연산군이 특별히 박영을 미워한 건 아니었다. 여러모로 뛰어난 재주를 지닌 박영이었기에 처신에 따라서는 높은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영은 연산군의 작은 잘못을 보고 연산군의 됨됨이를 직감했다. 그래서 더 큰 화를 당하기 전에 스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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