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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대디의 애환과 환희] 자식에 헌신하는 이인삼각의 동료 

캐디·운전사·매니저·트레이너 등 1인 다역 ... 어머니·장인이 캐디백 메기도 

남화영 골프칼럼니스트

▎LPGA투어 출전 157번 만에 우승한 최운정과 그의 아버지 최지연씨.
최운정은 LPGA투어 출전 157번 만에 우승한 마라톤클래식에서 연장전을 끝내는 순간 눈물을 쏟아냈다. 기쁨과 더불어 숱한 좌절의 기억도 떠올랐을 것이다. 동료 선수들이 물병을 들고 그린으로 뛰어들어 축하 물세례를 퍼부었다. 그런데 선수들은 우승한 최운정뿐만 아니라 캐디로 그를 도운 ‘골프대디’ 최지연씨에게도 물을 뿌리면서 축하했다. 그간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동료들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차렷 자세로 물세례를 받는 그의 선글라스 낀 얼굴엔 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흘렀다.

미국에서 투어생활을 하는 한국 여자 선수의 아버지가 로드 매니저 역할을 하는 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미국 진출 1세대인 김미현과 부친 김정길씨가 중고 밴을 몰고 밤길을 달려 미국 전역의 대회장을 다녔던 일화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20대 초·중반인 여자 선수가 이역만리 타지에서 투어 생활을 한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가장 믿을 만한 아버지가 숙소와 대회장을 오가며 운전을 하거나 숙박이나 항공편을 알아보고, 식사와 건강을 살핀다.

이역만리 타지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은 아버지

미국에서는 카트를 끌지 않고 20㎏이 넘는 골프백을 어깨에 메고 다니기 때문에 여자대회라도 캐디는 주로 건장한 남자 전문 캐디의 몫이다. 최운정은 달랐다. 최운정은 세화여고 2학년이던 2007년에 미국 유학을 떠났다. 유학 자금은 최지연씨가 22년 동안 경찰관 생활 후 받은 퇴직금이었다. 기업의 스폰서 없이 떠난 터라 그는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미국으로 함께 건너갔고, 자연스럽게 캐디 생활이 시작됐다. LPGA 2부 투어에서 성적을 내면서 2009년에 1부 투어에 들어갔을 때는 드디어 결실을 맺나 싶었다. 그러나 우승은 쉽지 않았다. 2012년 매뉴라이프파이낸셜클래식, 2013년 미즈노클래식, 2014년 호주여자오픈에서도 2위에 그쳤다. 그때마다 뭔가가 조금씩 부족했다고 느꼈다. 아버지는 그게 ‘자신이 캐디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전문 캐디가 아니라서 우승을 못하는 것이라는 자책감도 들었다. 그래서 잠시 골프백을 내려놓기도 했다. 지난해 말 일본에서 열린 미즈노클래식을 앞두고 전문 캐디를 고용했다.

최운정은 아버지의 과한 자책이 마음에 걸렸다. 우승 인터뷰에서도 “아버지가 캐디를 하기 때문에 우승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최운정은 미즈노클래식이 끝나고 아버지에게 다시 백을 메달라고 요청했다. 둘은 ‘1승을 할 때까지만 하자’고 약속했다. 그걸 달성했으니 앞으로 무거운 캐디백을 아버지가 더 이상 메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한국의 골프대디가 그러하듯, 딸이 플레이하는 대회 현장 주변에서 그를 호위하는 매니저이자 스폰서이자 기사 역할은 계속될 것이다.

국내 여자투어에서는 아버지가 캐디를 맡는 경우가 더욱 흔하다. 국내 대회에서는 풀 카트를 사용할 수 있어서 캐디를 하는 게 미국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캐디대디’가 김보경의 아버지 김정원씨다. 프로 11년째인 딸의 백을 메는 캐디 아버지는 놀랍게도 골프를 해본 적이 없다. 올해 59세인 김씨는 부산에서 장사를 했으나 딸이 프로에 데뷔한 2005년부터 꾸준히 캐디를 맡아 통산 4승 중에 3승을 함께 일궜다. 처음에 캐디를 시작한 건 넉넉하지 못한 투어 생활에서 캐디 비용이라도 아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캐디의 역할은 백만 메는 게 아니었다. 골프를 해본 적이 없어서 한동안 그린에서 브레이크를 읽는 것도 서툴렀다. 경기 중에 선수와 뜻이 안 맞아 마음 상한 일도 부지기수였다. 카트를 이용한다지만 무거운 백을 메거나 싣고 업다운 심한 홀을 오르내리느라 관절염을 앓기도 했다. 하지만 우승 한 번에 모든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2008년 두산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김보경이 첫 승을 하자 아버지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울었다. 김보경은 올 초 제주도에서 열린 롯데마트여자오픈에서 통산 4승을 거뒀고, 아버지가 그의 옆에 듬직하게 있었다. 첫 우승 때는 부녀 사이에 어색하게 악수로 축하하는 게 전부였지만 악천후 속에서 우승한 올해는 포옹도 했다. 무뚝뚝한 부산 부녀 사이로서는 대단한 발전이었다.

최근 영종도 스카이72에서 끝난 BMW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조윤지의 아버지 조창수씨도 한때 백을 멨다.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감독 대행을 지냈고 경복고 야구부감독을 맡았으나, 2007년 두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감독직을 사임했다. 두 딸이 모두 1부 투어를 뛴 2010년에는 큰 딸 조윤희의 캐디를 했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에 따르면 현재 김보경 외에도 김소이·김초희·김현수·김혜윤·박신영·배인지·오지현·이명환·지한솔·최은별 등 11명 정도의 아버지가 캐디백을 메고 딸의 투어를 동행하고 있다. 이정화2, 장수연의 아버지는 가끔씩 백을 메고, 김지수·이은빈은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캐디백을 메고 모녀가 함께 투어를 다닌다.

여자 선수들과는 달리 남자는 아버지가 선수를 따라다니거나 캐디를 맡는 경우는 거의 없다. 친구나 형제 혹은 선후배가 캐디를 맡는다. 하지만 운동 선수 출신의 아버지라면 현장에서 코치 역할도 하고 트레이너도 되는 전천후 캐디를 맡기도 한다. 지난 5월 유러피언투어의 메이저 대회인 BMW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안병훈의 아버지 안재형씨는 8년간 아들의 캐디이자 매니저이자 트레이너로 미국과 유럽의 각 대회 현장을 함께 돌았다. 중학교 2학년인 2005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 아들 병훈이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자 아버지는 지휘봉을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대한항공 탁구 감독직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미국으로 떠났다.

오랜 국가대표 생활로 선수 경험이 다양한 아버지가 챙기면서 안병훈의 기량은 쑥쑥 자랐다. 2009년 미국 아마추어의 최대 메이저 대회인 US아마추어골프선수권에서 최연소(17세11개월)로 우승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2011년 말에 프로에 데뷔했다. 이후 유러피언투어 2부인 챌린지 투어를 3년간 부자(父子)는 함께 생활하면서 유럽 각 지역 대회를 돌아다녔다. 아버지는 운전사이자 매니저, 캐디의 1인3역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1부 리그에 들어가게 된 지난해 말 2부투어 파이널 경기까지 골프백을 멨다. 안재형씨는 옛 무대로 복귀했다. 3월부터는 국가대표 탁구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운동 선수 출신 아버지는 코치 역할도

지난 6월 말 한국프로골프(KGT) 군산CC오픈에서 생애 첫 승을 올린 이수민은 스키 선수 출신의 아버지 이정열씨가 캐디백을 멨다. 아들은 2년 전 이 대회에서 국가대표 아마추어로 출전해 우승할 정도로 유망주였으나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방황하던 이수민을 잡아준 것은 아버지였다. 골프백을 메고 따라다니며 대회 현장에서의 멘탈을 키웠다. 남자 선수 중에는 이밖에 배상문의 어머니 시옥희씨가 국내 대회에 뛸 때 캐디를 하면서 뒷바라지를 했고, 최호성은 장인이 캐디백을 메고 있다.

캐디 아버지는 단지 백만 메는 건 아니다. 선수의 건강과 컨디션을 살피는 의사이기도, 플레이를 봐주는 트레이너이기도 하고, 선수의 일상을 돕는 매니저이자 운전수이기도 하다. 프로 캐디가 할 수 없는 범주의 영역이 있다. 자녀가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일상을 챙기는 캐디 대디는 선수와 이인삼각(二人三脚)을 미뤄 투어를 뛰는 절반의 선수이기도 하다.

- 남화영 골프칼럼니스트

1296호 (201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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