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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사직상소에 비친 조선 선비의 경세관’⑥] 생각의 깊이 다지고 솔선수범 하라 

퇴계 이황, 선조의 벼슬 제수 마다하며 진언 ... 리더의 바른 태도 역설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신(臣) 이황은 삼가 재계하고 두 손 모아 머리를 조아리며 전하께 아룁니다. 신은 초야에 묻혀 사는 보잘것없는 몸으로 재주가 쓸모없고 나라를 제대로 섬기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전하께서는 갈수록 융숭한 은혜를 베풀어주셨고 금년 봄에 이르러서는 품계를 뛰어넘어 벼슬을 내리시니, 감히 감당할 수 없어 사퇴하였나이다. 신은 이제 늙고 병들어 벼슬살이를 해나갈 힘도 없는데다 외람되게 분수가 아닌 자리에 오래 앉아 조정의 수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옵니다. 다만 이번에 소신이 전하께 입은 은총이 너무나 특별하니, 신이 비록 계책에 어두우나 정성을 다해 어리석은 생각을 바치고자 합니다.’(이하 인용은 모두 [퇴계집] ‘무진육조소’)

연로하고 건강 여의치 않아 관직 사양

1568년(선조1), 선조는 예조판서, 우찬성의 벼슬을 차례로 제수하며 안동에 은거하고 있던 퇴계 이황을 조정으로 불렀다. 품계를 훌쩍 뛰어 넘어 재상의 반열에 올린 파격적인 대우였다. 온 나라에 드높은 퇴계의 명망을 활용해 정국을 안정시키고 새로운 정치의 동력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퇴계는 거듭해서 사직 상소를 올린다. 하지만 이전과는 반응이 달랐는데, 외척의 전횡이 극심했던 명종 대에는 왕이 여러 차례 불렀어도 향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선조가 즉위한 후에는 한양에 상경해 왕을 직접 알현하고 사직 의사를 밝히곤 했다. 잠깐 동안이나마 취임해 업무를 맡아본 적도 있었다. 선조의 즉위와 함께 시작된 ‘사림정치’에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이미 연로하고 건강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관직을 사양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에 퇴계는 정치에 대해 평소 가져왔던 생각을 왕에게 진언하는데, 이것이 유명한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다.

그는 상소에서 모두 6가지 조항을 거론했다. 우선 첫째 ‘인효(仁孝)를 온전히 하라’와 둘째 ‘참소(讒訴)와 이간(離間)을 막아라’는 선조의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다. 선조는 중종의 서손인데다 선왕 명종의 명시적인 후계자 지명이 없이 보위에 올랐다. 퇴계는 이로 인해 선조가 흔들릴까 우려했는데, 어진 정치를 펼치며 선왕의 뜻을 충실히 계승하는 것이야말로 ‘인효’를 온전히 하는 것으로 이런 임금에게 진정한 정통이 있다고 설명하며 선조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다. 그는 “마음이란 쟁반의 물을 엎지르지 않는 것보다 어렵고, 선함은 바람 앞에 촛불을 보전하는 것보다 어렵다”며 인과 효를 실천하기 위해 항상 노력할 것을 강조한다. 참소와 이간을 막아야 한다는 것은, 선조와 대비전(명종비 인순왕후) 사이를 가리킨 말이다. 당시 권력은 선조뿐 아니라 선조를 왕위 계승자로 지명한 대비에게도 나뉘어져 있었다. 따라서 왕과 대비 사이에 분란이 생기게 되면 정국은 혼돈에 빠질 수 있으므로, 간사한 자들이 그 사이를 농간하고, 없는 말을 함부로 지어내어 이익을 탐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조항은 ‘학문을 돈독히 하여 정치의 근본을 확립하라’이다. 일찍이 중국의 전설적인 성군 요(堯)임금은 순(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주며, 정무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임금의 학문과 마음가짐에 대해서만 당부한 바 있다. 퇴계는 이 일을 인용하며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냐고 묻는다. 그는 “임금이란 배우기를 넓게 하지 않을 수 없고 묻기를 세심하게 하지 않을 수 없고 생각하기를 신중하게 하지 않을 수 없고 분변하기를 명백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반드시 학문을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나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하고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임금은 생각을 신중하게 하는 것이 더욱 소중하다. 퇴계에 따르면 생각이란 자신의 마음속으로부터 구하여 증험하고 도출하는 것으로, 증험의 과정에 이해타산이나 욕망, 악이 물들지 않기 위해서는 학문을 통해 생각의 질을 보다 완전하게 하고, 보다 깊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이어서 네 번째 조항은 ‘기준을 확립해 인심을 바로 잡아라’이다. 퇴계는 임금이 도덕과 윤리의 표준을 세우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공동체가 임금의 자의적인 가치기준을 따라오게 만들라는 뜻은 아니다. 보편의 윤리와 시대정신을 임금이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터득한 다음 그것을 기반으로 백성이 일상생활에서 지켜나가야 할 떳떳한 윤리를 제시하며 모범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법과 제도만으로 사회를 개혁하고 규정을 고쳐서 구성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려고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퇴계는 “법제를 추종하여 현행의 것을 바꾸는 것은 말단”이라며 임금이 전범이 되고 임금이 직접 보여주며 이끄는 것이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리더와 지도층이 먼저 달라지고 변해야 일반 구성원들도 뒤따른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다섯 번째 조항 ‘배와 가슴(腹心)에게 맡기고 귀와 눈(耳目)을 통하게 하라’는 정치에 있어서 건전한 견제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임금이 머리라면, 임금을 도와 나라를 다스리는 신하는 배와 가슴에 해당된다. 이들은 반드시 임금에게 생각하는 바를 남김없이 진언하고 나라를 위한 계책을 세우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또한 임금이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들을 수 있도록 ‘이목’ 역할을 해주는 대간은 임금에게 바른 소리를 하고 쟁론하며 부족하고 빠뜨린 것을 보완하는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삼아야 한다. 퇴계는 이렇게 세 세력이 투명하게 정신을 모아 통하여 한 몸이 된다면 자연 선정이 펼쳐지고 세상이 태평해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끝으로 강조한 것은 임금의 수양과 반성이다. 임금은 하늘을 대신해 백성을 맡아 길러야 하는 무거운 책무를 가지고 있다. 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잠시라도 태만하거나 소홀해서는 안 된다. 평상시에도 몸가짐을 바로 하며 스스로를 반성하고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는 것이다.

지도자의 근본 과제 늘 가슴에 담아야

퇴계는 다음과 같이 상소를 마무리한다. ‘전하께서 묻기를 좋아하시고 미거한 말이라도 잘 살피시며, 남에게서 장점을 취하고 선을 행하길 즐겨하시며, 꾸준히 덕을 밝히는 공부를 쌓아 가신다면 누가 감히 정성껏 한마음으로 전하를 도와 바른 정치를 이룩하지 않겠습니까. 그리 되면 신은 비록 향리에서 병들어 있다 해도 날마다 전하를 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어두운 곳에서 시들어 죽는다 하더라도 모든 생령과 함께 전하의 성스러운 은택에 젖어들 것입니다.’ 선조가 자신의 진언을 받아들여 정치를 위해 애써준다면, 더 이상 여한이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퇴계의 강조점은 ‘임금의 마음가짐’에 있다. 퇴계는 임금이 현실 정치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거나, 어떤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생각의 깊이를 다지고, 바르게 판단하며, 솔선수범하고 반성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이것이야말로 바른 정치의 시작이며, 지도자의 근본 과제라고 생각한 것이다. 정책의 잘잘못보다는 리더의 태도와 생각이 자주 문제시되고 오늘날,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하겠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323호 (2016.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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