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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계 맏형 장금상선] 해운업 불황에도 공격적 투자로 성장 

 

정태순 회장, 선박 투자도 활발… ‘아들 회사’ 키워 승계 발판 이미 구축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한 회사 중에 아시아 인트라 해운사인 ‘장금상선’그룹이 새로 포함됐다. 장금상선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랜 전통을 가지고 아시아 역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회사다. 해운업계의 맏형격인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은 1948년생으로, 국내 해운사단체인 한국선주협회의 30대 회장을 맡고 있다.

장금상선그룹이 올해 자산 5조원을 넘겨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포함된 것은 지난해 있었던 ‘흥아해운’과의 빅딜이 큰 영향을 끼쳤다. 선복량 기준 국내 4위 선사인 장금상선은 5위인 흥아해운이 분리한 컨테이너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이와 함께 계열사들의 자산 규모도 늘었다. 장금상선그룹은 모든 계열사가 비상장 기업인 탓에 그동안 지배구조 등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에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재계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 회장이 고령(72세)이기 때문에 승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가 관심이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보면 이름이 드러나는 인물은 정 회장의 아들 정가현 장금마리타임 사내 이사다. 정 이사가 100% 지분을 가진 관계사들이 지난 10여 년간 고속성장해 승계의 디딤돌은 거의 마련된 것으로 파악된다. 재계 관계자는 “장금상선은 비상장사인데다가 해운업계의 특수성을 이용해 비교적 쉽게 승계의 발판을 마련해 놓았다”며 “정 이사 소유 회사들이 이미 그룹의 중추로 올라섰기 때문에 이번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이 승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중 합작기업’으로 출발해 정태순 회장 개인회사로


장금상선그룹의 모태는 한·중이 수교를 맺기 전인 1989년 홍콩에 설립한 한·중합작회사 ‘장금유한공사’다. 한국 동남아해운과 중국 시노트란스가 50대 50의 지분을 투자해 설립한 회사다. 한국해양대를 졸업해 동남아해운에서 근무하던 정 회장은 장금유한공사의 초대 대표로 취임했다. 이후 1998년 중국과 한국 자본이 철수하자 이 지분을 사들여 대주주가 됐고, 1999년 국적선사인 장금상선을 설립해 현재 공정가치 5조원이 넘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장금상선의 성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뚜렷해졌다. 현대상선, 지금은 사라진 한진해운 등 원양선사들이 글로벌 치킨게임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가운데, 고려해운과 장금상선 등 아시아 지역을 위주로 영업하는 근해선사들은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왔다. 아시아, 특히 중국 지역에서 장금상선의 영업력이 이 회사를 키워낸 가장 큰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역내 해운사들도 최근 들어 위기감이 커졌다. 역내 선사가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것. 정 회장은 이 같은 상황에 가장 민첩하게 대응했다. 2017년 설립된 한국해운연합(KSP)의 초대 회장을 맡으며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KSP는 인트라 아시아 항로를 운영하는 국적 컨테이너 선사 간 자발적 협력 체제로, 국내 업체간 과잉경쟁을 막고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기구다.

KSP의 진짜 역할은 ‘구조조정’이었다. 여기서도 장금상선이 나섰다. 장금상선은 2019년 11월 흥아해운의 컨테이너 사업부문(흥아라인)을 360억원에 인수했다. 장금상선의 자산 규모가 늘어난 것도 이 영향이 크다. 지난해 말 기준 흥아라인의 자산규모는 4110억원이다. 장금상선은 이 법인을 올해 말까지 장금상선 컨테이너 사업부문과 합칠 계획이다.

장금상선그룹 소속 회사들의 자산 규모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국내 법인은 17곳인데 이 중 자산규모 1000억원 이상인 곳은 장금상선(1조7241억원), 시노코페트로케미컬(2조5340억원), 장금마리타임(9578억원), 시노코탱커(3100억원), 한성라인(2681억원) 등 5곳이다. 이 법인들의 자산은 2018년 말 대비 1년 새 1조원 넘게 늘었는데, 대부분이 선박 매입으로 인한 부채 증가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곳곳에 보이는 ‘아들회사 일감 몰아주기’ 흔적

공정위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지정되면 관심이 쏠리는 부분이 ‘승계’다.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등 공시의무가 강화되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규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승계 작업에 각종 제약을 받게 된다.

다만 장금상선그룹의 승계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 중 상장사가 전무한데다, 정 회장의 지배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국내법인 중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장금상선의 지분 16.85%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지분 83.15% 중 82.07%는 홍콩법인인 장금유한공사가 가지고 있는데, 이 회사의 지분도 정 회장이 모두 가지고 있다. 자산가치가 높은 계열사 지분도 대부분 장금상선과 정 회장이 모두 가지고 있는 구조다. 2016년 말까지만 해도 계열사인 국양해 운과 국양로지텍이 장금상선의 지분을 각각 8%, 1%씩 보유하고 있어 순환출자 구조가 있었지만 이 역시 정리했다.

승계를 위한 작업도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정 회장의 아들인 정 이사의 개인회사를 우량 계열사로 키워놓았다. 정 이사는 그룹 내 가장 자산규모가 큰 시노코페트로케미컬을 비롯해 장금마리타임, 시노코 탱커 등의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자산 규모로 따져보면 지난해 말 기준 정 이사 소유의 3개 회사 자산은 3조8018억원으로, 장금상선그룹 공정자산(6조3880억원)의 60%에 달한다.

정 이사는 2008년 자본금 5억원으로 ‘장금마리타임’을 설립했는데, 이 회사는 지난해 말 기준 자산총액 9578억원의 회사로 성장했다. 2008년(180억원) 대비 약 50배 이상 커졌다. 장금마리타임은 설립 초기 장금상선, 조강해운과 내부거래를 통해 성장했다. 2009년 매출 중 내부거래 비율이 50.5%에 달했고, 2010년에도 31.4%가 내부거래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후 내부거래 비중은 점차 낮아졌고 현재는 내부거래에 의존하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해 기준 매출대비 내부거래 비중은 5% 수준에 불과하다. 정 이사가 2011년 자본금 10억원을 들여 만든 시노코페트로케미컬도 지난해 자산총액(2조5340억)이 2012년(202억원) 대비 125배로 커졌다.

정 이사의 회사가 인수·합병 등을 통해 지배구조의 정점으로 올라서면 승계는 마무리된다. 그 경우가 아니더라도 장금유한공사 혹은 장금상선의 지분을 정씨가 사들이는 방법도 있다. 장금마리타임에는 1631억원, 시노코페트로케미컬에는 1387억원의 이익잉여금이 쌓여있다.

하지만 장금상선그룹의 이런 승계 작업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장금상선은 사실상 하나의 법인이어도 될 회사들을 찢어놓고 마음대로 일감을 주는 구조”라면서 “이 때문에 오너일가의 개인회사는 장금상선의 영업력과 신뢰도를 이용해 땅 짚고 헤엄치듯 성장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증여세 한 푼 안내고 아들에게 재산을 넘긴 격”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거래는 계열사가 아닌 화주와 이뤄지기 때문에 특수관계자와 거래에 포함이 되지 않아 일감몰아주기 규제와는 관련이 없단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다만 공정위가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행위 심사 지침을 올해 2월부터 제정해 실시하는 만큼 이같은 방식에 제동을 걸 가능성도 있다. 공정위는 ‘사업 기회의 제공 행위’를 부당한 이익 제공 행위로 보고 회사가 수행 중이거나 수행할 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제재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 관계자는 “사업기회 제공 행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실제 이 회사가 충분히 사업을 수행할 수 있었는지, 정당한 대가가 지급됐는지 여부 등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며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오른 만큼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회사의 등기사항을 보더라도 이 같은 의심이 가능하다. 정 이사가 지분을 모두 보유한 장금마리타임, 시노코페트로케미컬 등은 모두 김남덕 장금상선 부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김 부사장은 2009년부터 현재까지 장금상선의 사내이사를 맡고 있는 회사의 핵심 인물로, 조강해운의 대표이사도 겸임하고 있다.

그런데 김 대표가 이 회사들을 경영하는 동안 장금마리타임이나 시노코페트로케미컬은 크게 성장한 반면, 같은 해운업 계열사인 조강해운은 사세가 완전히 줄었다. 2008년만 해도 2642억원에 달했던 조강해운의 매출은 2017년엔 57억원에 그쳤고, 지난해 매출은 7억원에도 못 미쳤다. 조강해운과 장금마리타임의 사업영역이 중복되는 만큼 사실상 조강해운의 일감을 넘긴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장금상선 관계자는 “장금상선과 장금마리타임, 시노코페트로케미컬 등은 독립된 영업을 전개하고 있다”고 답했다.

상장설 돌지만 상호출자제한 부담에 가능성 적어

재계에선 상장계열사가 하나도 없는 장금상선의 기업공개(IPO)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포함된 회사 중 상장 계열사가 한 곳도 없는 곳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장금상선이 IPO를 추진할 것이라는 풍문은 여러차례 나왔다. 해운업황이 악화하는 가운데 IPO를 통해 자본을 확충하면 회사 운영에 다양한 이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움직임이 감지된 적은 없다. 장금상선 관계자는 IPO 가능성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승계 작업을 진행하며 장금상선 혹은 정 이사 소유 회사의 상장이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회계기준 변경에 따라 공정자산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어 장금상선 입장에선 우려사항이다. 자산이 10조원을 넘어 상호출자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더 많은 규제를 받게 된다. 공정위는 장금상선그룹의 공정자산을 6조3880억원으로 집계했지만 만약 이 회사가 상장해 K-IFRS 기준을 적용해야 할 경우 운용리스 선박이 부채로 잡혀 부채와 자산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자산 집계에 K-IFRS 적용 여부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37호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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