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브스아시아는 ‘대나무 천장(여성을 차별하는
유리천장을 동양적으로 비유한 표현)’을 부수는
50인 여성 기업인을 선정해 매년 발표한다. 후보는
아시아 14개국 매출 1억 달러 이상 기업에 종사하는
여성 중 직접 창업했거나, 가족 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거나, 고위 임원으로 활동 중인
인물이다. 한국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퍼스트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포브스아시아가 선정한 ‘아시아 파워 비즈니스 우먼 50인’에 선정됐다. 지난해는 포브스 선정 ‘2015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의 여성’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포브스아시아는 이부진 사장을 “개인적으로 힘든 한 해를 보냈고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의 주요직위에서도 물러났지만 여전히 호텔신라를 거느린 삼성의 키플레이어(key player)”라고 평가했다.이부진 사장은 키 플레이어로 어떤 성과를 거뒀을까? 우선 국내 유통업계의 화두인 면세점 사업의 확장이다. 호텔신라는 지난해 매출 3조 2516억원의 90%인 2조 9311억원을 면세점 사업에서 벌어들였다. 신라면세점 국내 시장 점유율은 약 28% 정도다. 여전히 국내 면세점 시장은 롯데가 51%로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지만 최근 오픈한 신라아이파크면세점에서 매출 상승을 기대하고 있다.
신라아이파크면세점 매출 상승 기대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의기투합해 탄생한 서울 용산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은 지난해 12월 말 부분 영업을 시작한지 3개월여 만인 지난 3월 25일 ‘그랜드 오픈’ 기념식을 열고 완전 개장했다. 면세점은 용산 아이파크 내 3~7층 2만 7200㎡ 규모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처음 저희가 계획하고 말씀 드렸던 600여 개 브랜드에서 현재까지 580여 개의 브랜드 유치에 성공했다”면서 “현대산업개발과의 합작 관계는 계속될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고 말했다.이 사장은 “온라인면세점이 본격적으로 운영되고 럭셔리 브랜드를 추가 유치하면 2년차 이후 당초 기대했던 매출을 달성하고, 서울 시내 3위권 면세점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해외 시내 면세점 사업도 활발하다. 이부진 사장의 첫 해외 면세점인 창이공항 면세점에 이어 태국 시내면세점 오픈도 서두르고 있다. 지난 2014년 현지 면세기업과 협력해 ‘GMS듀티프리’를 세운 신라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인허가 문제를 연내 해결하고 오픈까지 한다는 방침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겨냥해 일본 유통기업 다카시마야와 전일공상사와 함께 법인을 설립, 일본 시내 면세점 사업도 강화한다.이부진 사장이 직면한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우선 호텔신라. 지난해 매출은 11.8% 증가한 반면 영업이익은 44.5% 급감했다. 해외 시내 면제점 영향이 크다. 창이공항 내 신라면세점의 지난해 매출액은 4275억 원으로 전년(900억원)대비 375%(4.8배) 증가했다. 그러나 영업적자는 확대돼 지난해 601억원의 손실을 봤다. 전년(392억원)보다 손실액이 53.3% 늘었다. 신라아이파크면세점도 마냥 낙관만 할 수 없다. 우선 빅3(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의 부재다. 면세점 간판으로 내세울 만한 브랜드가 없다는 점은 장기적으로 꼭 풀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면세점 업계의 경쟁도 피할 수 없다. 당장 5월엔 김포국제공항 출국장면세점 특허권을 두고 롯데면세점과 입찰 경쟁을 벌인다. 이번 입찰은 최고가 입찰 방식이다. 면세점 업계에선 이부진 사장의 면세점 사업을 두고 대부분 합격점을 주는 분위기다. 메르스 사태에 대한 대처와 국내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보였던 결단력과 실행력이 배경이다.지난해 6월 18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이른 아침 제주행 첫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공항에 내려 곧장 호텔신라로 향한 그는 호텔에 도착해 영업중단을 지시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 의심 판정을 받은 환자가 제주신라호텔에 묵었단 이야기에 내린 조치였다. 기존 투숙객들에겐 숙박료를 전액 환불했고 항공료까지 보상했다. 하루 매출 3억원을 포기했고 자칫 5성급 호텔이 입을 이미지 타격도 각오했다. 이 사장은 26일까지 제주에 머무르며 현장을 챙겼다. 이후 이 사장은 중국으로 갔다. 중국 관광객이 급감하는 현장을 본 이후다. 중국 현지 여행사들을 찾아다녔다. 특히 중국 최대 여행사인 CTS를 찾아 쉐샤오상 총재를 만나선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고 있음을 설명하며 “중국 여행객들이 한국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메르스 사태 때 결단력과 실행력 인상적
▎이부진 사장은 메르스로 침체된 한국관광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직접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 씨트립과 MOU를 체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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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시작되는 7~8월은 1년 중 유커 특수가 가장 극대화하는 때이다. 지난해 7~8월 한국을 방문한 유커는 145만명으로 연간 방문객의 24%를 차지했다. 하지만 최근 메르스 사태로 중국인 관광객들은 빠르게 일본으로 유입되고 있다.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전년대비 40% 이상 늘어났을 정도다. 29일 늦은 밤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내린 이 사장은 30일 아침부터 중국 현지 여행사들을 찾아다녔다. 이 사장이 이날 찾은 CTS와 CYTS는 중국 최대 여행사로 한국으로 송출하는 관광객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다.이 사장은 CTS 쉐샤오강 총재를 만나 “이미 한국에서는 메르스 신규 확진 환자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며 “7~8월에 중국 여행객들이 한국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 있도록 최대한 도움을 달라”고 호소했다. 쉐샤오강 총재는 이 사장에게 “쇼핑과 문화, 관광을 동시에 포함하는 맞춤형 관광상품을 개발해 중국인들의 한국 방문을 돕겠다”고 화답했다. 이 사장은 연이어 CYTS 까오즈췐 부총재도 찾아가 중국인들의 한국 관광 지원과 협조를 부탁했다.이 사장의 행보는 오후에도 계속됐다. 중국 국가여유국과 외교부를 돌며 한국 여행 책임자들을 만나 한국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가 사흘째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국내 면세점들의 유커 매출이 70~80%를 차지하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 사장이 직접 중국까지 찾아가 한국 관광을 부탁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며 “메르스 사태로 위축된 관광 산업의 실태를 제주도에서 직접 경험한 뒤 중국 방문을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의 결단력과 실행력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호텔신라는 신속한 조치로 대내외적으로 이미지 상승 효과를 맛봤다.이 사장이 면세점에만 몰두한 건 아니다. 이 사장은 다섯 번 도전 끝에 호텔신라 유휴부지에 서울에선 최초로 전통 한옥호텔을 건립한다. 2022년 완공을 목표로 했다. 이부진 사장은 “제대로 된 한국의 전통호텔을 지어서 한옥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포브스아시아가 밝혔듯 이부진 사장은 지난해 이혼 소송으로 개인적으론 힘든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커진 영향력과 바쁜 행보 때문인지 이 사장의 행보에서 개인적인 아픔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부진 사장은 최적의 타이밍으로 현장을 가장 의미 있는 비즈니스 장소로 만든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현장 중시가 이부진 사장 경영철학의 바탕일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 이부진 사장이 어떤 타이밍으로 업계에 영향을 끼칠지 지켜볼 일이다.- 유부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