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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뉴스페이스 시대의 주역] 최명진 한컴인스페이스 대표 

美 나사도 손 내민 항공우주 SW 기업 

한글과컴퓨터가 드론 무인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한 인스페이스를 인수했다. 드론 활용 서비스 시장과 항공우주 분야로 사업을 넓히기 위해서다. 한컴인스페이스로 간판을 바꿔 단 이곳은 사실 한국 항공우주 영상분석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중견 업체다.

▎한컴인스페이스는 무인 드론 자동화 시스템인 ‘드론셋(DroneSAT)’을 개발했다. 최명진 대표는 “항공·우주 분야의 영상 수신·처리·배포·활용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영상 데이터 활용에 방점을 둔 드론 플랫폼도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글과컴퓨터가 우주·드론기업 인스페이스를 인수했다. 소프트웨어 기업이 웬 드론 사업?

한컴그룹은 스마트시티 사업에 인스페이스의 ‘드론셋(DroneSAT)’을 얹고자 했다. 드론셋은 드론 자동 이착륙, 무선충전, 다중운영, 통신 데이터 수집·관제·분석 등 기술을 통합한 무인 자동화 시스템이다. 자회사 한컴라이프케어가 개발 중인 소방 안전 플랫폼과도 연계할 예정이다.

실제 지난해부터 인스페이스는 국토교통부 스마트시티 챌린지 사업을 통해 무인 드론 기술을 선보였다. 대전 동구 가양동과 원동 119안전센터 2곳에 드론스테이션을 설치하고 2분 내 현장 도착률 97%, 영상 송출 성공률 96%를 달성했다. 대전시는 지역 내 26개 소방서에 이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한컴그룹이 단순한 드론 기업을 인수한 것은 아니다.

“우리를 드론 제작사로 오해하는 분이 많아요. 정확히 말하면 항공우주 영상분석 전문 소프트웨어 회사입니다. 그간 주력 사업은 위성영상신호처리 시스템이었고, 지금도 항공·우주분야의 영상 수신·처리·배포·활용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자부합니다. 단지 위성에서 드론으로 영역을 확장했을 뿐이죠. 드론 플랫폼도 영상 데이터 활용에 방점을 둡니다. 한컴그룹도 이런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한컴인스페이스로 명패를 바꿔 단 최명진(45) 대표가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10월 15일 대전 유성구 본사에서 만난 그는 “드론셋의 중심은 드론이 아니라 영상분석기 소프트웨어”라며 “촬영 영상 기하보정(Geometric Correction), 광범위한 지역 드론 영상의 고속영상합성처리,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객체탐지 분석 모듈 기술에 그간 위성영상분석 기술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고 덧붙였다.

카이스트에서 응용수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 대표는 이 분야에서 꽤 유명하다. 아리랑위성 2호의 위성영상 융합기술을 개발한 주인공이다. 빠르게 날아가는 위성영상은 왜곡이 생기기 마련인데 수학 함수를 이용해 손실된 데이터를 복원하는 식이다. 2007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일하던 그는 이 기술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마르퀴즈사가 발행하는 『세계공학인명사전』 10주년 기념판에도 등재됐다.

NASA와 달 궤도선 탑재체 공동연구


▎한컴인스페이스는 국내 최초의 시험용 달 궤도선(KPLO) 지상국 소프트웨어와 세계 첫 정지궤도 환경위성인 정지궤도복합위성 (GK-2B, GEMS) 통합 자료처리 등 위성체 지상국 시스템을 개발했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과도 달 궤도선 섀도캠 탑재체 활용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 대표의 저력 덕인지 인스페이스는 정부 우주개발 사업 과제를 직접 수주해 주관하는 몇 안 되는 중소기업 중 하나다.

보통 한국 우주개발 사업의 경우 정부, 정부출연연구소 주도로 진행하거나 민간에서는 대기업이 주관하고 중소기업은 용역 형태로 참여한다. 하지만 인스페이스는 국내 최초의 시험용 달궤도선(KPLO) 지상국 소프트웨어를 4년째 단독으로 개발하고 있다. 세계 첫 정지궤도 환경위성인 정지궤도복합위성(GK-2B, GEMS) 통합 자료처리 등 위성체 지상국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심지어 나사(미국 항공우주국)와도 달 궤도선 섀도캠 탑재체 활용 연구를 함께 수행할 정도다. 수학 박사가 한국 대표 항공우주 영상분석 기업을 차려 한컴그룹과 합병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사업 발표 차 서울로 떠나려던 그를 붙잡고 물었다.

한컴그룹과 합병했다.

위성 관련 사업만 하다 보니 B2G(정부 상대 사업)에 안주하는 것 같았다.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B2B(기업 간 거래)로 갈 기회를 찾다가 한컴그룹을 만났다. 당시 우리도 대전 스마트시티 사업에서 무인 드론 안전망 구축 사업을 진행 중이었다. 위성영상분석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노하우로 드론 영상처리 역량도 충분히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좋은 한컴그룹이라면 드론을 활용하는 ‘서브시장’ 공략에 파트너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드론 영상 분야는 어땠나.

한결 쉬웠다. 고난도 위성영상을 다뤘기에 진출하기 수월했다는 얘기다. 한국에만 3000여 개가 넘는 드론 제작업체가 있다고 들었다. 우리는 드론을 제조하진 않지만, 제조 분야만 본다면 암울하다. 중국 DJI 같은 회사를 따라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차라리 드론을 활용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하는 게 맞다. 최근 들어 항공기보다 드론을 띄워 영상을 찍는 게 보급되면서 활용 시장도 엄청나게 커졌다. 위성영상으로 차량 운행량을 파악하고 농산물 재배면적에 따른 수확량을 예측하거나 불법 건축물과 건설 중인 도로망 상태까지 살펴볼 수 있다. 드론 영상은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특히 산림 분야에서 활엽수와 침엽수의 분포를 살피거나 소나무재선충병 같은 병충해를 감시할 수도 있다.

방산 분야에도 관심이 많겠다.

당연하다. 영국 방산업체 BAE 시스템즈의 경우 수년 전부터 위성·항공 이미지를 사용하는 사진 측량 소프트웨어 ‘소켓 GXP(Socet GXP)’를 드론과 GPU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해왔다. 군사적으로 값비싼 위성보다 드론으로 정교한 영상 데이터를 얻으려는 수요가 상당하다는 뜻이다. 해외에서 소켓 GXP를 활용한 업체 중 방산기술은 뛰어나지만, 우리보다 규모가 작은 곳도 여럿 봤다. 한국은 하드웨어 제조에 뛰어들어야 기업다운 기업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글로벌 시장은 딴판이다. 뛰어난 인재가 많은 한국도 이 분야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유럽에선 위성 사진으로 원유 유출 잡는 일 흔해”

내년에 드론 플랫폼을 출시한다고 들었다.

영상분석과는 좀 다른 영역이다. 무인 드론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개발하는 한편 드론 소비자와 공급자를 연결하고 싶었다.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긴급하게 장기를 옮겨야 하거나 농번기에 드론으로 비료나 농약을 살포하고 싶어도 마땅한 드론을 찾기 어렵다. 필요할 때마다 값비싼 드론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플랫폼이 정착되면 드론 영상 데이터 시장도 커질 수 있다. 한컴그룹이 보유한 다양한 분야 기술, 사업 경험, 네트워크가 큰 힘이 될 것 같다. 일단 내가 영업보다 기술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

항공우주 분야 기술 노하우가 상당하다.

항공우주 시장이 B2C가 아니다 보니 인스페이스를 잘 모를 수 있다. 최근 무인 드론 시스템을 내놓은 후 일반인의 관심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12년 회사를 차릴 때만 해도 한국에서 위성영상분석 분야에서는 글로벌 기업 말고는 경쟁자가 없었다. 창업하자마자 통합위성수신처리, 위성정보 시계열분석, 고속위성영상 컬러정합기반 객체 검출 같은 시스템을 개발해 내놨더니 다들 놀랐다.

수학으로 영상을 처리한다는 게 신기하다.

인공위성이 약 680㎞ 고도에서 초속 7㎞로 날아간다. 시속으로 따지면 2만5200㎞로 우리 위를 지나가는 거다. 이렇게 빠르게 날아가는 위성이 사진을 찍으면 왜곡이 생긴다. 데이터를 압축해서 전송할 때도 일부 손실이 생긴다. 그래서 다양한 신호가 섞여 있는 그래프에서 원하는 것만 골라내는 수학적 기법인 웨이블릿 함수를 가지고 손실된 데이터를 복구했다. 영상 데이터를 이진 수로 배열하고 웨이블릿 함수로 왜곡을 제거해 깨끗한 영상을 만드는 식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영상분석 기술이 한 단계 이상 진화했다.

수학을 전공했는데 왜 항공우주 기업을 차렸나.

우연이었다. 공학 분야에서 수학을 잘 써먹고 싶어 택한 응용수학이 항공우주 기술로 이어질지 누가 알았겠나. 석사과정을 마칠 때쯤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에서 수학 전공자를 찾는다기에 덜컥 지원했다. 수학으로 영상 처리기술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건 이때부터다. 이걸 해낸 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에서 제안을 받았고, 위성영상 처리 연구를 좀 더 전문적으로 하게 됐다. 그러다 노르웨이 트롬쇠에서 석유시추선 주변 바다에 기름 유출 여부를 위성 사진으로 분석해 석유회사에 파는 것을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다들 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만 집중했지 위성영상이 돈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창업하자마자 주목받았다고 들었다.

회사는 2012년 2월에 문을 열었지만, 2011년부터 준비했다. 만으로 36세 때였다. 역시나 사업은 녹록지 않았다. 그때는 완전한(?) 연구원이었다. 자본금 1억원을 쥐고, 항우연에서 제공한 창업 공간에 둥지를 틀었다. 동료 연구원과 같이 나와 개발한 시스템을 당당히 내놨는데, 3개월은 수주조차 못 했다. 누구나 그렇듯 회사를 나오기 전엔 다들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웃음)

흔히들 데스밸리를 겪는다고 한다. 위기가 있었나.

당연하다. 보통 창업 3, 6, 9년 차에 한 번씩 위기를 겪는 것 같다. 창업 3년 차 때는 사람 때문에 힘들었다. 창업 초기라 자금력이 부족해 좋은 인력을 붙잡을 수 없었다. 위성영상분석이란 분야 특성상 전공자가 와도 적어도 1년은 해당 분야 특성을 익혀야 하므로 곧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없다. 당시 1년 후 인력들이 다 서울 기업으로 가버렸다. 6년 차엔 진짜 자금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국책과제가 상당수 끊어지면서 직원 월급도 걱정해봤다. 물론 그때도 단 한 번도 티를 낸 적 없었고, 은행이나 지인을 찾아가 돈을 구해서라도 월급을 줬다. 이걸 석 달 동안 반복하니 머리가 빠지더라. 그 고비를 이겨내니 굵직굵직한 사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 진행 중인 큰 사업이 있나.

방산 분야 사업이 있다. 국방과학연구소 주관 사업인데 국내 모 대기업과 컨소시엄을 꾸려 사업을 따냈다. 상용·군사 위성, 유무인 정찰기 등 주요 감시정찰 자산의 센서로 확보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수집해 통합·분석·공유하는 시스템 개발을 맡았다. 계약상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으나 수백억원대 규모 사업으로 우리만의 위성영상분석 기술 노하우가 투입될 예정이다. 그 덕분에 올해 코로나19 사태에도 상당한 매출을 올렸다. 내년 한컴그룹과 드론 사업까지 본격화하면 매출 규모는 두 배 이상 늘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드론 사업으로 인터뷰하게 됐지만, 한컴인스페이스가 향한 곳은 항공우주산업이다. 거창할 것 없다. 한국도 이제 국가우주개발계획에 따라 발사한 인공위성도 있고, 직접 발사체를 만들 수 있다. 해당 분야에서 민간기업도 다수 나와 한국 우주개발 기술을 글로벌에 알리고 있다. 초소형 위성으로 ‘뉴스페이스’ 시대도 열렸다. 실력 있는 한국 공대생이 우주개발 분야에 뛰어들 기회가 열린 셈이다. 분명한 건 이 분야는 실력보다 성실한 사람이 살아남는 곳이라는 점이다. 성실한 공대인에게 실망해본 적이 없고, 최고의 대우를 해주려고 난 오늘도 발로 뛴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성태 기자

202011호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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