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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가 만난 TREND LEADING COMPANIES(4) 이창혁 섬세이 대표 

‘돼지코팩’으로 엑시트, 그의 다음 목표는 

신윤애 기자
홀가분할까 아쉬울까? 무작정 쉬고 싶을까? 다음 사업을 구상 중일까? 스타트업을 이끄는 대표라면 한 번쯤 ‘꿈의 목표’ 엑시트(자금 회수)에 성공한 후의 모습을 그려봤을 것이다. 박진호 대표의 네 번째 인터뷰이는 ‘돼지코팩’으로 뷰티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4년 만에 엑시트를 이뤄낸 이창혁 대표다. 모두가 꿈꾸는 해피엔딩을 맞이한 그를 만나 후일담을 들었다.

“목표는 30억원이었어요. 30억원을 벌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즐기면서 살려고 했죠.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목표에 도달한 거예요. 규모도 더 컸고요. 실수 한 번으로 모든 걸 잃게 되진 않을까 겁도 났습니다. 평생 한 번뿐인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제주도에 내려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살자’라는 생각도 해봤죠.(웃음)”

이창혁 대표의 회사 미팩토리는 2018년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에 324억원에 매각됐다. 2014년 말 회사를 차렸으니 창업한 지 만으로 4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동종업계 종사자였던 박진호 대표는 미팩토리의 등장과 성장, 성과들을 눈여겨봤다고 했다. 그는 미팩토리를 “뷰티 카테고리에서 SNS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일깨워준 회사였다”고 소개했다.

박진호 대표의 평가대로, 마케팅의 귀재 미팩토리는 ‘코팩’이라는 단일 제품만으로 단숨에 성공 가도에 올라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코의 피지를 뽑아내는 쾌감을 오르가슴에 빗대어 표현한 ‘피르가즘’이란 신조어와 적나라한 전후 사진·영상으로 SNS에 집중 마케팅하며 출시 2년 만에 12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눈부신 성공을 바탕으로 2016년에는 더마 코스메틱 브랜드 ‘어니시’와 보디용품 브랜드 ‘바디홀릭’, 색조 전문 브랜드 ‘머지’를 연이어 선보였다.

센세이셔널한 뷰티 회사의 등장에 미팩토리에서 일해보겠다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2016년 중반, 13명 뽑는 공채에 1500명이 지원한 전설적인 일화는 뷰티업계에서 이미 유명하다. 당시 미팩토리의 성장을 인상 깊게 본 에이블씨엔씨는 미팩토리의 브랜드를 글로벌 규모로 키워내 미샤와의 시너지를 내겠다는 계획으로 전격 인수를 결정했다. 그렇게 이 대표는 엑시트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3년. 뷰티업계 유명 인사였던 이 대표의 소식은 점점 뜸해졌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박진호 대표도 그를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이 대표로부터 새로운 사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박 대표는 “‘역시 이창혁이다!’라고 감탄했다”며 “사업가 DNA가 어디 가겠어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3월 2일, 이 대표의 새로운 도전이 펼쳐지고 있는 현장에서 만났다. ‘힙’하기로 유명한 성수동에 있는 ‘섬세이 테라리움’이다. 섬세이 테라리움은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 여러 가게 사이, 단독주택처럼 보이는 4층짜리 건물에 있었다. ‘전시관 입구’라고 써 있는 푯말을 따라 들어가자 동굴에 들어온 것처럼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맨발로 입장하라는 안내를 받고 신발을 벗은 채 한 걸음씩 움직였다. 몇 걸음 걸으니 분위기가 바뀌었다. ‘휘-’ 하는 바람이 느껴지고 공간마다 발밑에는 고운 모래, 자갈, 흙, 물이 밟힌다. 흔들리는 갈대 소리와 풀 내음 가득한 향이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새로운 감각을 자극한다. 오감에 집중한 채 4층에 다다르니 어두웠던 주변이 환해지며 유럽의 와이너리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의 공간이 펼쳐졌다.

“안녕하세요. 이창혁입니다. 체험은 즐거우셨나요?” 맨발의 이 대표가 등장했다. 발보다 그의 스타일에 시선이 갔다.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묶은 중단발의 곱슬머리, 기장이 매우 짧은 재킷에 폭이 넓은 슬랙스를 매치한 모습이 마치 예술가 같다. “머리가 많이 길었네요. 대표님 덕분에 힐링하고 왔습니다.” 박 대표가 화답했다.

‘섬세이 테라리움’은 이 대표가 기획하고 만든 체험 공간이다. 단순히 자연이 좋아 ‘도심 속 숲’을 함께 체험하자고 만든 건 아니라고 했다. “이곳은 보디 드라이어 제품을 체험하는 공간입니다.” 이 대표가 설명했다. 박 대표와 함께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보디 드라이어를 본 기억이 없어 의아했다.


▎이창혁 대표(오른쪽)의 새로운 도전장인 섬세이 테라리움에서 맨발로 만난 박 대표와 이 대표.
솔직히 보디 드라이어를 발견하지 못했다. 어디에 있는 건가.

화장실과 출입구 쪽에 비치돼 있다. 전시관에 물을 밟으며 체험하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발이 젖을 수밖에 없다. 신발을 신기 전 발을 말릴 수 있도록 출입구에 놓아뒀다. 보디 드라이어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다.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는데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싫었다.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제품을 체험할 수 있게 기획했다. 어쩌면 보디 드라이어를 발견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이 대표가 보디 드라이어 사진을 보여줬다.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체중계처럼 밟고 올라가거나 앉으면 바람이 몸을 말려주는 방식이다.) 뷰티 브랜드에서 갑자기 보디 드라이어라니. 새로운 카테고리에 도전하게 된 계기라도 있었나.

엑시트 이후 에이블씨엔씨에 1년 정도 남아 조력자 역할을 할 생각이었는데, 새로운 기획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내가 잘하고 인정받은 분야지만 화장품은 다시 하기 싫었다. 지쳤던 것 같다. 트렌드가 자주 바뀌고 다이내믹한 일이 많이 생긴다는 점에서 즐겁지만 성공 방정식을 만들기엔 너무 어렵다는 걸 잘 아니까. 평소 관심이 있었던 소형 가전 분야를 해보고 싶었다. 생각해보라. 삼성전자, 엘지전자 덕분에 대형 가전에선 잘나가는 우리나라지만 막상 소형 가전 분야에선 생각나는 브랜드가 없다. 다이슨, 발뮤다 같은 글로벌 브랜드 말이다. 브랜딩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한국의 발뮤다’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꿈틀댔다.

동의한다. 그런데 에이블씨엔씨에서 기대한 건 소형 가전이 아니었을 것 같다. 반대는 없었나.

당연히 처음에는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카테고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잘되는 걸 해야 한다. 브랜드 잘 키워서 윈윈의 결과를 내주겠다’고 설득했다. 예산으로 10억원을 빌려줬다. 미팩토리에 라이프 제품을 내놓는 생활도감이란 자회사가 있었는데 그 회사의 브랜드로 소형 가전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은 ‘섬세이’지만 처음엔 ‘오트루베’라는 이름이었다. 2019년 보디 드라이어를 출시했다.

성과는 어땠나.

첫해부터 잘됐다. 특히 장마철이 있는 여름에 잘 팔리더라. 문제는 30만원대 제품인데 원가가 좀 비싸서 물량을 많이 못 만들었다. 코로나19가 터진 시점이라 인테리어, 가전 시장이 성장하던 시기와 잘 맞물려 금세 물건이 동이 났다. 제품을 더 만들려면 자본이 필요했는데, 에이블씨엔씨가 확장을 반대했다. 화장품이 아닌 카테고리에 투자를 늘리는 건 무리라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원들한테 ‘우리 이제 적당히 하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내 돈을 들여서라도 끝을 보고 싶었다. 엑시트로 번 돈으로 유상증자를 하고 지분을 받는 것으로 협상했다. 결국 20억원으로 유상증자를 했다.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 결정을 하다니 대단하다. 그런데 예전만큼 마케팅을 많이 하지는 않았나 보다. SNS에서 보지 못한 것 같다.

제품 론칭 초기에 배우 소유진씨를 모델로 기용했다. 자녀가 많은 ‘엄마’ 이미지 덕분인지 결과가 좋았다. 하지만 유상증자 후 연예인 마케팅을 강화할지 축소할지 결정해야 했다. 예전의 경험을 돌이켜봤다. 돈을 많이 들여 마케팅을 열심히 하면 효과가 좋은 건 당연하다. 그런데 잠시라도 마케팅 활동을 멈추면 사람들의 관심도 곧바로 식어버렸다. 그간 해왔던 마케팅 방식이 너무 휘발적이었다는 결론을 내렸고, 소모적인 마케팅보다는 유산이 될 ‘브랜딩’에 중점을 두기로 마음먹었다. 명품 브랜드는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름 하나만으로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브랜딩에 대한 욕심은 누구나 있다. 그런데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전략이 뭐였나.

‘바람으로 몸을 빠르게 말리기 때문에 편리하고 위생에 좋다’는 메시지를 내지 않는 거다. 남다른 스토리가 필요했다. 당시 서울숲 근처에 살았는데, 아이디어를 생각하느라 서울숲에서 자주 산책을 했다. 자연이 좋아 맨발로 걸어 다니곤 했다. 자연이 더 잘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자연이 주는 힘, 힐링의 힘을 고스란히 느꼈다. 나뿐 아니라 코로나19로 야외 활동에 제약이 생긴 사람들은 1평짜리 집이어도 ‘자유롭게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발코니를 원했다. 집에 비치하는 소형 가전에서 자연을 느끼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자연’이라는 콘셉트를 잡게 됐다. 제품 디자인도 돌 표면처럼 만들어 계곡 근처의 바위에 앉아 물기를 말리는 기분이 들도록 했다. 그 연장선상에 섬세이 테라리움도 있다.

섬세이 테라리움은 건물 전체를 쓴다. 마케팅을 줄이려고 했는데 이 또한 마케팅이지 않나. 비용도 만만찮아 보인다.

예산의 절반가량이 들어갔다. 공간을 알아보러 다닐 때, 대다수 임차인이 제품 라인업이 어떻게 되는지 묻더라. 보디 드라이어 한 개라고 답하면 다들 고개를 저었다. 고작 제품 한 가지로 스토어까지 짓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해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은근히 즐거웠다. 남들이 잘 안 하는,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만이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다세대주택이었던 지금의 건물 전층을 임대해 인테리어까지 했다. 흔쾌히 제안을 들어준 건물주에게 약속했다. 계약기간 5년 안에 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로 만들어드리겠다고 했더니 월세를 좀 깎아주셨다.(웃음) 섬세이 테라리움이 입장료가 있는데 지금 그 수익만으로도 흑자를 보고 있다.

사실 제품을 체험하는 공간에 돈을 내고 입장해야 하면 거부감이 들 것 같다. 그런데 전시관을 꾸며놓고 제품 체험은 아주 작은 일부의 콘텐트로 녹였다니 역시 비상하다.

감동을 주려면 고정관념을 깨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널찍한 카페에 들어갔는데 테이블이 달랑 두 개 있는 거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경험한 순간 감동과 울림이 있다고 생각한다. 섬세이 테라리움도 그런 공간이다. 제품 체험 공간이지만 제품은 온데간데없는 특별한 공간. 실제로 인플루언서에게 따로 마케팅을 하지 않는데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고 있다. 인플루언서가 새로운 콘텐트를 만들기 위해 ‘내돈내산’ 한 그런 공간이 됐다. 뿌듯한 부분이다.

소형 가전이라는 카테고리가 요즘의 시대와 잘 맞는 것 같다. 1인가구가 많아지고, 주거 공간은 줄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대표님 말씀처럼, 요즘 20대부터 30대까지 1인가구가 많이 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0평 이내의 집에서 지내는 이가 많다. 대형 가전을 선호하던 예전과 달리 가전을 고르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다. 부모님 세대는 무조건 기능이 많아야 좋은 제품이었는데, 이제는 가격이 합리적이고 디자인이 예쁜 것을 찾는다. 또 하나 우리에게 호재인 것은 생산자 입장에서는 소형 가전이 참 애매한 시장이라는 점이다. 대형 가전에 주력하는 삼성전자나 엘지전자 갑자기 몇십만원짜리 가전을 팔기 위해 이 시장에 뛰어들지는 않을 테고, 화장품이나 건강기능식품처럼 트렌디한 카테고리를 다루던 분들이 갑자기 가전이라는 생소한 세계에 뛰어들기엔 문턱이 높을 거다.

이제 제품군을 넓힐 차례인 것 같은데 보디 드라이어 외에 준비 중인 다른 품목이 있나.

캔들 워머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 시장에 나와 있는 캔들 워머는 다 비슷한 모양이다. 우린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한다. 요즘 바이레도, 이솝 등 뷰티 브랜드에서도 캔들을 내놓는 추세다. 이런 캔들을 담아 인테리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디자인을 했다. 가성비도 좋다. 올해 8월 출시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품목들로 확장해갈 생각이다. 그리고 전시관에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섬세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담요가 있다. 우리 브랜드의 IP를 강화해서 IP 사업도 해보려고 한다. 또 독채 펜션을 기획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과 섬세이를 느낄 수 있는 공간 프로젝트들을 이어갈 계획도 있다.

엑시트 이후 이렇게 열심히 살고 계신지 몰랐다.

엑시트를 하고 난 이후로는 리스크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현실에 안주하고 경제적 자유 안에서 편안히 지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렇게 지내본 시간 안에서는 더는 진화가 불가능했다. 진화하지 못하니 삶이 즐겁지 않고 무기력했다. 오히려 리스크가 있지만 모험을 하는 지금이 나를 진화하게 만들고, 그래서 다시 이렇게 열심히 산다.

큰돈이 생기면 ‘투자를 해달라’는 등 유혹이 많을 것 같다.

거짓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돈 욕심이 별로 없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성격이다. 투자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내 가치관에 잘 맞는지, 내가 그리는 미래에 부합하는지를 따져본다. 직원을 채용할 때도 그랬다. 보통 사업 욕심을 내는 사람은 잘 채용하지 않는데 나는 사업하고 싶다는 사람만 채용했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일처럼 열심히 한다. 다만 나갈 땐 당당히 나가도록 했다. ‘저 이제 준비됐습니다. 나가겠습니다’ 하면 쿨하게 보내줬다. 그 직원들이 나가서 차린 뷰티 브랜드가 지금 업계를 휩쓸고 있다. 뿌듯하다. 얼마 전에 국내 F&B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한 지인이 파격적인 조건으로 프랜차이즈 투자 제안을 해주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거절했다. F&B는 내가 그리고 싶은 내 삶의 스토리에 연결성이 없는 사업이기에 감사하지만 거절했다. 내가 만들고 있는 브랜드와 같이 내 삶의 스토리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 출연해 ‘축구 구단주’가 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걸 봤다. 대표님의 최종 목표는 축구팀 구단주인가.

단순히 리그에서 우승을 하는 구단을 운영해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팬들이 감동할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진 구단을 이끌어보고 싶다. K리그에도 아직까지는 세련된 브랜딩을 갖춰서 해외 팬들도 사랑하는 구단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내가 꿈꾸는 구단이 사람들에게 하나의 ‘놀이’가 되었으면 한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주말을 즐길 수 있는 하나의 테마파크처럼.

항상 느끼는 거지만 대표님의 아이디어와 계획은 일반적인 범주에서 한참 벗어난다. 남다르고 창의적이란 칭찬이다.

다른 사업가들과 다른 면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보통 스타트업 대표들은 김범수 의장님처럼 되길 꿈꾸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사업가들의 이름을 들어도 설레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느낀 감동과 재미를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느꼈으면 하는 생각에 설렌다. 사업가 보다는 문화예술에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이 있다. 연예인보다 대중과 가까운 위치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이끄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어렸을 적, 주5일제로 바뀌었을 당시 당황해하던 아버지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일주일에 6일을 꼬박 일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주어진 휴일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시간을 보내셨다. 이젠 배달의민족에서 주4.5일제를 시행하고 있고, 다른 기업들도 점점 일하는 날을 줄여가는 추세다. 게다가 예전엔 서른 무렵에 결혼을 하고 애기를 낳아 가정을 꾸렸는데, 요즘은 35살에도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 갑자기 늘어난 시간, 가족을 돌봐도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뭘 해야 즐거운 지’ 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직접 전시회를 열 수도 있고, 정기적인 캠프를 만들어 함께 놀러 다닐 수도 있는 거다. 호모루덴스(유희하는 인간)의 시대가 오고 있는 시점에, 사람들이 건강하게 놀이할 수 있는 것들을 미리 준비하여 함께 유희하며 살고 싶다. 하지만 현재의 일에도 누구보다 충실히 임해 ‘한국의 발뮤다’를 만들어 소형가전업계에서 또 한 번의 역사를 쓰겠다.

‘초보 시절’ 동종업계 종 사자로 연을 맺었던 두 사람은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대화를 이어갔다. 1000억원대 엑시트를 이룬 지인의 이야기부터 각자의 사업체 미팩토리와 뷰스컴퍼니의 탄생과 성장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부족한 시간 탓에 ‘나중’을 기약한 뒤에야 두 사람은 대화를 마쳤다. 물론 서로의 미래에 응원과 격려도 잊지 않았다.

※ 박진호는… 뷰티전문마케팅회사 뷰스컴퍼니를 2014년에 창업해 아모레퍼시픽, 닥터자르트, 파파레서피 등 1500건이 넘는 브랜드 캠페인을 진행했다. 발 빠르게 트렌드를 수집해 효과적인 브랜딩, 마케팅 전략을 제안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는 K뷰티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 정리=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정준희 기자

202204호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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