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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덕 아퓨어스 대표 

유엔이 인정한 국내 유일의 미니돼지 

김영문 기자
미니돼지는 인간과 생리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아 약물의 효과와 독성을 평가하는 데 널리 쓰인다. 하지만 특정 ‘종’의 실험용 무균미니돼지를 써야 한다. 전 세계 ‘종’ IP를 쥔 곳도 얼마 없는 데다 연구용으로만 쓸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도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독자 ‘종’을 등록한 바이오기업이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다.

▎아퓨어스는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상업용으로는 세 번째)로 독자 종축 미니돼지를 개발했다. 최선덕 대표가 십수 년간 주주로서, 대표로서 연구개발(R&D)을 주도해 이룬 쾌거였다. 독자 종축 확보에 성공한 아퓨어스는 프라이머리 셀 시장을 다음 타깃으로 삼고 있다.
올해 세계 최초로 미국 메릴랜드대 의료센터에서 돼지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성공했다. 먼 미래 얘기인 줄 알았던 바이오 이종장기가 사람 몸에 이식된 순간이다. 그로부터 61일 후인 지난 3월 9일 이식된 돼지 심장이 멈추긴 했지만, 시한부 환자를 비롯해 수많은 장기이식 대기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임은 분명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인구 고령화가 빨라지고 각종 질병이 늘면서 2019년 말 기준으로 신장·간장·췌장·심장 등 장기이식 대기자는 4만3000여 명으로 늘었다. 이 중 성공하는 사람은 10% 수준에 불과하니 이종장기에 거는 기대가 클 법도 하다.

하지만 이종장기 이식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이종장기 이식이 어려운 이유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면역력’이라는 장벽 때문이다. 인공장기로 범위를 넓히면 인간 줄기세포를 배양한 오가노이드(미니 장기),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인공 조직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동물 장기를 이식하는 것보다 기술 난도가 높아 현실성이 떨어진다. 미국과 유럽, 일본도 동물 장기 생산방식에 막대한 연구개발(R&D) 역량을 투자하는 이유다. 게다가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미니돼지뿐만 아니라 장기이식용으로 형질을 전환할 원료동물(설치류, 개, 영장류) 자산 확보 시장에서는 이미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국내에도 한국생명과학연구원과 국립축산과학원 등 이종장기 이식을 위한 뛰어난 형질전환 기술을 가진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원료동물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는 겁니다. 올해 국내 연구기관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죠. 미국과 중국이 원료동물 자원 독립에 나서려는 한국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막고 있습니다. 미니돼지를 생산한다는 몇 군데도 사실 미국 싱클레어사 종이죠. 미국이나 유럽에서 원료동물을 들여온다 해도 연구용 정도이지, 상업용으로 활용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어 사실상 수출 금지입니다. 한국은 동물 종자 자산시장에서 속국이나 다름없어요.”

지난달 경기도 평택 아퓨어스 본사에서 만난 최선덕(55) 대표가 말했다. 그는 “면역 거부반응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돼지를 형질전환하려면 무균돼지가 필요하다”며 “중국, 일본 등에서도 일부 업체들이 미니돼지를 독자 종으로 등록하지 못하고, 미국이나 유럽 종을 가져다 쓰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 최초로 자체 개발, 양육한 미니돼지를 종으로 등록하는 데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지난 2015년 아퓨어스는 자체 개발한 미니돼지를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DAD-IS)에 ‘마이크로 피그’ T타입, M타입이라는 이름으로 등재하는 데 성공했다. 전 세계에서 독자 미니돼지는 5종이 전부이고, 그나마 상업화한 곳은 미국 싱클레어사와 덴마크 엘레가드사뿐이다. 국내에서 옵티팜이 실험용 미니돼지를 공급하고 있지만, 이것도 미국 싱클레어사 종이다. 다만, 크로넥스의 경우 자채 종인 제주돼지를 쓰긴 한다. 의료약품 임상에는 병이 있는 일반돼지는 쓸 수 없고, 유전적으로 안정돼 있는 표준화 종이 필수적이므로 미국 회사 종을 가져와 연구했다는 뜻이다.

그나마 한국에서 아퓨어스가 십수 년간 종축(種畜) 사업에 매달린 덕에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5년 당시 업계 반응은 싸늘했다. 기존 학계는 설치류, 개, 영장류 등 인간과 유전적 거리가 먼 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해왔고, 미니돼지 종축에 성공했다는 걸 믿으려 하지 않았다. 최 대표는 “세상에 없는 독자적인 종을 개발해 유전체가 똑같은 종자를 양육하려면 최소 15년 동안 8세대 이상을 거치며 돼지를 길러내야 한다”며 “미니돼지 종축에 성공하고 이를 대량으로 길러내 세포를 추출하고 인간 치료에 쓰는 기술을 개발할 인프라를 구축한 기업은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현재 경기도 평택에 있는 아퓨어스의 미니피그 센터에서는 1년에 1000마리가 넘는 무균미니돼지를 양육할 수 있다.

이제는 국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2017년 유전자 편집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미국 브로드연구소와 기술사용계약을 체결했고, 국내에서는 삼성의료원, 경희대병원, 서울아산병원, 고려대병원 등 대학병원과 연구소 등에 납품하고 있다. 이종장기, 형질전환 모델 등을 주로 연구하는 한국생명공학원구원, 국립축산과학원, 제넨바이오 등도 아퓨어스의 주요 고객이다. 종축에 성공한 최 대표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최근 돼지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했지만, 60여 일을 넘기지 못했다.

그렇다. 하지만 그간 난제로 꼽혔던 이식 직후 초급성 거부반응을 극복해냈다. 장기이식용 형질전환 돼지가 실제 인간 유전체와 가장 유사한 동물이라는 게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다. 한편으론 이종장기 이식으로 손상된 장기를 대체하려면 아직도 해결할 연구과제가 많다는 뜻이다.

앞서 ‘종’ 확보 전쟁이 벌어졌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기는 했다. 하지만 최근 조짐이 심상치 않다. 한국 바이오업계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종축 자원 확보에 관심이 높아졌고, 이를 알아챈 유럽과 중국에서 영장류 동물을 수입할 길이 거의 막혔다. 그나마 유럽 수입이 막힌 중국의 실험용 개만 가끔 수급되고 있다. 미니돼지는 대부분 미국과 유럽에서 들여오는데 연구용으로만 활용할 수 있다. 이것조차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점차 아퓨어스를 찾는 곳이 늘고 있다.

아퓨어스에는 좋은 일 아닌가.

단기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무균돼지를 생산하려고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종축 자원을 독자적으로 확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 중소기업이 잘못 매달렸다가는 망할 수도 있다. 그만큼 시간과 자금, 기술 노하우가 들어가는 일이다. 위협을 느낀 종 보유 국가들이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이 기회에 국가적으로 종축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한국 바이오업계가 동물실험을 주로 하는 인비보(in-vivo, 체내실험)보다 인비트로(in-vitro, 체외실험)로 바꿔서 신약 개발이나 약물 연구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우리도 세포 기반 시험에 사용되는 프라이머리 셀(Primary Cell, 일차세포)이 미래산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프라이머리 셀은 살아 있는 생체 조직으로부터 직접 분리·추출하여 얻은 세포를 의미한다.

프라이머리 셀은 어떤 장점이 있나.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의미 있는 실험 데이터 도출에 유리하다. 생체 시스템에서 장기간 적응한 프라이머리 셀은 세포 본연의 특성을 온전히 유지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동물실험의 윤리적 문제가 대두하면서 동물대체시험법이 논의되고 있다는 점도 바이오업계에는 부담이다. 게다가 2018년 8월 발효된 나고야의정서에 따르면 해외 생물자원으로 성과를 얻을 경우 로열티를 제공하고 기술이전 등을 해야 한다. 이는 국내 바이오·제약업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암 연구를 비롯한 각종 생명공학 연구에서 동물대체시험 트렌드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동물실험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나.

그건 아니다. 미국 FDA(식품의약국), EMA(유럽의약품청), 한국 식약처 등 규제 기관은 약물의 독성과 유효성 검증에 동물실험 자료를 받고 있다. 동물실험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희생되는 실험동물 수를 줄일 수는 있다. 연간 희생되는 실험동물은 미국에서만 최대 2400만 마리, 유럽은 1080만 마리다. 한국도 2020년 기준으로 실험동물 302만 마리가 사용됐다. 90% 이상이 설치류, 바로 실험용 쥐다. 하지만 인간과 쥐의 유전체가 다르다 보니 쥐에서 효능이 있어도 인간에게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고, 효능이 있다고 해도 수많은 보조실험이 뒤따른다.

미니돼지를 활용하면 다른가.

미니돼지 1마리를 동물실험에 활용하면 실험용 쥐 2000마리를 대체하는 효과가 생긴다. 돼지 자체가 인간 유전체와 흡사해 임상시험에서의 실패 확률도 크게 줄어든다. 물론 국내에서 의료기기를 실험하는 경우 축산용 돼지를 쓰기는 한다. 하지만 약물 실험에서 감염된 돼지를 쓰면 효과를 측정할 수 없다. 프라이머리 셀뿐만 아니라 이종장기 이식도 미니돼지가 훨씬 유리하다. 현재도 세계보건기구(WHO)는 돼지 세포만 유일하게 인간에게 이식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미니돼지 한 마리에서 심장, 신장, 간, 대장, 신경세포, 각막, 피부 등 무려 130여 가지 종류의 세포를 추출해 인간에게 이식할 수 있다. 우선 간과 췌도, 피부, 뇌 등 4가지 세포부터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앞으로 총 37개 장기와 조직에서 분리되는 세포 라인업을 100여 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동물 CRO(임상시험수탁기관) 사업도 하나.

동물 CRO 시장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동물 CRO는 설치류와 영장류로 나뉘고, 안정성 평가(독성시험)와 유효성 평가로 구분된다. 쥐나 햄스터, 원숭이를 활용한 시장이 굳어져 있다 보니 갑자기 미니돼지로 시장 수요가 확 바뀌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국내에서 미니돼지 또는 미니돼지 프라이머리 셀 공급이 크게 늘면 자연스럽게 열릴 시장이라고 본다.

‘완전한 국산화’가 의미하는 바는.

먼저 의료용 미니돼지로서 자격을 갖춰야 한다. 미니돼지가 의학 실험동물로 쓰이려면 유전형질, 번식을 비롯한 개체별 데이터값이 일정해야 한다. 우리는 동물실험에 M타입(24개월 평균 체중 50㎏ 이하)과 T타입(24개월 평균 체중 30~40㎏)으로 개량에 성공했다. 즉, 개체 간 유전형질이 일정한 무균돼지를 사용해야 형질변경 돼지를 만들든, 약물실험을 하든 의미 있는 데이터값을 만들 수 있다.

품질이나 양산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생산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보통 의료용이나 신약 비임상 실험용으로 미니돼지를 사용하려면 SPF(Special Pathogen Free, 특성균 부재) 돼지여야 한다. 보통 업계에서는 각종 독소와 중대한 질병이 없다고 인정되는 어미돼지로부터 나온 돼지를 ‘SPF돈’이라고 한다. 이걸 확보할 특허를 등록했다. 양산도 문제없다. 2017년 국내 최초로 식약처로부터 우수실험동물생산시설 인증을 받았고, 국제실험동물관리평가인증협회로부터 AAALAC 인증도 받았다. IXA(세계이종이식학회), WHO 등은 DPF(Designated Pathogen Free, 원균제어시설)급 사육시설을 요구한다. 이곳은 70여 종에 달하는 바이러스·세균·기생충·원충 등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무균실인데 DPF급 미니돼지 양산에도 문제없다.

미니돼지를 찾는 곳이 많아졌겠다.

그렇다. 예전에는 대학이나 각종 의료기관에 무상으로 미니돼지를 공급하기도 했으나 점차 미니돼지를 찾는 곳이 늘어 유료화하고 있다. 단순히 미니돼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신약과 의료기기 개발에 필요한 프라이머리 셀 상품을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니돼지 피부조직을 가공한 ‘FCM’은 사람 피부조직과 유사해 피부 흡수성, 독성, 피부 전달성 시험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2021년에는 미니돼지에서 간세포, 뇌세포 등을 분리 추출해 상품으로 출시했고, 올해 프라이머리 셀 제품 36종을 만들어 시장에 의료용 원료물질 공급에 직접 나설 예정이다. 더불어 전 세계 원료동물 공급지로 급부상 중인 중국을 공략할 전략도 세웠다. 지난해 말 더류컨설팅그룹과 중국 내 기술 사업화 추진을 위한 MOU(업무협약)를 체결하고, 사업 무대를 중국으로 넓힐 참이다. 최 대표와의 인터뷰는 3시간 넘게 이어졌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무역 사업을 하던 그는 바이오회사 메디키네틱스에 투자했다. 메디키네틱스가 위기를 맞자 2017년 직접 대표에 올라 구원투수로 나섰고, 2019년 사명도 아퓨어스로 바꿔 본격적으로 미니돼지를 활용한 프라이머리 셀 분야 사업화에 뛰어들었다. 그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시밭길이었다. 바이오업계는 비전공자인 그를 돼지나 키우는 양돈업자 정도로 치부하며 냉대했고, FAO에 독자 ‘종’인 미니돼지를 등록했다고 해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주, 경영진으로 십수 년간 아퓨어스 곁에서 뛰었고, 주주 한 명 한 명을 직접 찾아다니며 자금 수백억원을 유치해 지금까지 버텼다. 그의 끈기 덕에 이제 아퓨어스는 세계적인 독자 미니돼지 ‘종축’ 기업이 됐다. 인터뷰를 마치며 최선덕 아퓨어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올해도 주주들이 물었습니다. 올해 목표는 무엇이냐고요. 획기적인 변화와 성장을 약속하기보다는 지금 우리 사업을 더 고도화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바이오 분야가 그렇습니다. 단기적으로만 보면 ‘희망 고문’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꼭 연구·개발해야 하는 분야거든요. 우리 돼지가 FAO에 독자 ‘종’으로 등록됐을 때가 2015년인데 국내 연구기관에 보급되기까지 몇 년 더 걸렸습니다. 그만큼 변화가 늦은 곳이지만, 한번 변화가 시작되면 그 어떤 분야보다 빠른 곳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시간은 더 걸릴 수 있지만, 우리 미니돼지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바이오·제약업계에 소중한 연구 자원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

202205호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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