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우리나라 할머니들은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을 보고 ‘짐승같이 생긴 놈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서구화를 거치며 이제는 서양인을 미남, 미녀로 칭한다. 부를 축적하고, 세계화를 거치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미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느낀 그 변천사를 소개한다.
▎신윤복의 미인도와 구한말 평양 기생 사진. / 사진:위키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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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대부분이 벼농사를 하며 먹고살던 시절, 여성의 역할은 가사와 자녀 양육이었다. 이때는 둥근 얼굴, 넓은 이마, 길쭉한 눈, 눈꼬리가 올라간 외꺼풀, 초승달 눈썹, 선이 짧고 둥근 코가 한국 여성의 미를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골격이 튼튼해 집안일과 농사일을 잘하는 여성들이 더 좋은 대접을 받았다. 요즘 대한민국 남성들은 신윤복의 ‘미인도’와 구한말 기생들의 사진을 보면 크게 실망한다. 당나라 시대의 미인도를 보면 더 놀랄 것이다.남한에서 산업화가 진행된 수십 년 사이에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필자와 또래 한국 남성들의 판타지가 되었다. 필자가 중고생이었을 때는 브룩 실즈,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 같은 서양 미녀가 인기를 끌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엔 메릴린 먼로처럼 풍만한 여성이 미녀로 통했지만, 그 후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자 오히려 날씬한 몸매가 부의 상징이 됐다. 얼마 전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패션쇼에서 깡마른 모델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요즘 인기 있는 한국 연예인들도 외모가 많이 서구화된 모습이다. 깡마른 체형에 팔다리가 길고 작은 얼굴에 눈이 크고 코가 오똑하다. K팝이 인기를 얻으면서 BTS나 블랙핑크 같은 서구화된 한국미가 역수출되기도 한다.여신 아프로디테를 묘사한 대리석상인 비너스상은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전 200년에 만들어진 ‘밀로의 비너스상’도 있지만, 2만여 년 전 구석기시대의 비너스상도 유라시아 서편에 널리 퍼져 있었다. 구석기시대의 비너스상은 프랑스에서 바이칼호 연안까지 북방 유라시아 광활한 영역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2만~2만5000년 전인 후기 구석기 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다. 주로 유럽에서 많이 발견되며 이들의 공통점은 얼굴 형태는 거의 보이지 않고 팔다리가 짧다는 점이다. 또 늘어진 유방, 두꺼운 복부와 엉덩이, 과장된 음부가 눈에 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 시대에는 ‘아이스에이지’라고 불릴 만큼 기온이 떨어져 먹을거리가 부족했고, 영양실조가 심각했다. 그러니 비너스상처럼 몸집이 크고 힘센 여자들이 생존에 유리했고 출산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비너스상들에 얼굴이 없는 것으로 봐서 얼굴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몸집에만 관심이 있었던 듯하다. 빙하가 가까운 곳에서 발견된 비너스상일수록 더 뚱뚱하다는 데서 유추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진 미의 기준
▎부하라에서 열린 라비하우스 패션쇼의 아름다운 현지 모델. 우즈베크족이라기보다는 페르시아계인 타지크계 또는 코카서스계 여성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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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안에 있는 섬서역사박물관의 당나라 미인도 속의 여자들은 상당히 뚱뚱하다. 지금 봐서는 결코 미인이라고 인정하기 힘들다. 원래 수나라와 당나라를 세운 사람들은 탁발선비 계통의 유목민들이었다. 유목민들은 양과 소들에게 먹일 풀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고,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었다. 유목민들은 엉덩이가 뚱뚱한 말을 좋아하고 풍만하고 강한 여성을 아름답게 여겼다. 초원에서 거친 유목활동을 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는 어머니 같은 푸근한 인상의 여성을 선호했다. 게다가 뚱뚱한 체형은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기호이기도 했을 것이다.실크로드 여행을 다니며 각지에서 수많은 여성을 만났다. 신장 위구르부터 서쪽으로는 페르시아계 혼혈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동양적인 아름다움과 서양적인 아름다움이 뒤섞인 묘한 분위기의 미인들이 여행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우즈베키스탄에는 역시 미녀가 많았다. 우즈베키스탄은 전체 인구의 60%가량이 30세 이하인 젊은 나라인데, 가는 곳마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해맑은 얼굴로 활짝 웃어주었다. 필자가 한국에서는 별로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매력적인 얼굴인가 보다 생각하고, 고려인 가이드에게 물어봤더니 원래 이 나라 여성들은 눈이 마주치면 누구에게나 웃어준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130개가 넘는 민족이 살고 있는데 약 80%가 우즈베크인이다. 구소련 시절에 건너 온 러시아인이 3%, 그 외에 카자흐인, 키르기스인, 타지크인, 투르크멘인 등이 있으며 스탈린 시절에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끌려온 고려인도 있다. 우즈베크인의 비중이 80%로 월등히 높기 때문에 구소련 시절 강제이주가 많았던 카자흐스탄에 비하면 인종이 그리 다채롭지는 않다.
타슈켄트 역사박물관의 아마조네스상
▎시안 화청지에 있는 양귀비의 석고상. 그리스나 로마의 여신상과 비슷한 풍만한 서구 미인형으로, 국적 불명의 양귀비 석고상을 만들었다. 현대 중국인들의 서구 문명에 대한 추종이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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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마존은 헤로도토스의 저서 『히스토리아』에도 기록된, 기원전 10세기경 실존했던 여성 부족이다.『히스토리아』에는 “정오가 되면 스키타이 남자들과 일정 거리를 두고 아마존 여성들이 소변을 보고, 이를 본 스키타이 남자가 이를 따라 하면 둘은 마음이 맞은 것으로 여기고 여자는 남자를 따른다”는 기록이 있다. 일설에 따르면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멀리 보내거나 죽이고,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뜨겁게 달군 인두로 가슴을 지져 가슴이 자라지 못하게 한다. 어른이 되었을 때 화살을 쏘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마조네스는 아마존의 복수형이라고도 하고, ‘가슴이 없는’을 뜻한다고도 한다. 이 시기에는 유럽계 인종들이 중앙아시아를 주름잡았다. 아마존 여자들이 남자 없이 생활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남자들이 귀찮아서일까? 남자들끼리는 절대 아마존 같은 종족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양귀비의 할머니가 서역 여인이었다고 하니, 양귀비는 이란계 페르시아 혈통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정사에선 그녀를 ‘자질풍염(資質豊艷)’이라고 기록했다. 체구가 둥글고 풍만한 느낌의 미인이란 소리다. 양귀비 이전에 현종이 총애했던, 양귀비의 라이벌 후궁 매비는 양귀비를 일컬어 ‘비비(肥婢, 살찐 종년)’라고 욕했다는 일화도 있다. 양귀비는 키가 162cm였다고 하는데, 몸무게는 60kg부터 80kg까지 다양한 설이 있다. 수많은 미녀를 거느렸던 현종이 양귀비를 간택한 이유는 단지 그녀의 풍만함(자질풍염) 때문만이 아니라 그녀의 총명함과 예술적 재능 때문이었을 것이다. 8세기 당 현종 시기에 홍궁에는 무려 3만 명에 이르는 악사와 무용수가 있었다. 그중에서 발탁된 양귀비는 원래 악단장 출신이어서 기예가 뛰어난 소녀였다. 현종이 양귀비에게 반한 결정적인 계기였던 첫 만남에서 양귀비는 현종이 연주하는 가락에 맞춰 아름다운 춤을 선보였고, 현종은 이 춤을 보고 그녀에게 홀딱 빠져버렸다. 게다가 그녀는 뛰어난 악사이기도 했다.양귀비의 별명인 ‘해어화(解語花)’는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뜻이며, 얼굴만 예쁜 꽃 같은 후궁이 아니라 감성이 풍부하고 수준 높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지적인 여성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34살 연상인 황제와 며느리였던 악단장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로 백거이(白居易)가 ‘장한가(長恨歌)’를 지었고, 그 후 무수한 사람에게 애창되면서 그녀는 중국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었다. 유명한 장이머우 감독이 장한가를 대형 역사 가무극으로 만들어 화려한 무대장치 속에서 무려 배우 300명이 공연을 펼치는데, 지금도 매일 저녁 시안의 화청지에서 열린다. 비싼 입장료에도 객석은 늘 만원이다.
※ 김정웅 -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