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포브스코리아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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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A가 아니면 B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그리 단순할 리가 없는데도 극단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많다. C분야에선 아주 합리적인데, D분야에서 갑자기 독선적으로 바뀌는 경우도 흔하다. 어떤 사안을 두고 E라고 강하게 주장하다가 어느 순간 F라고 돌변하는 사람도 가끔 눈에 띈다. 왜 이럴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애초에 올바른 생각과 판단을 일관되게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고의 편향 이론이 심리학에 있는 이유다. 인지편향(경험에 의한 비논리적 추론으로 잘못된 판단에 이르는 현상), 확증편향(가설의 진위를 가릴 때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취하고 상반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무의식적 사고 성향)은 우리가 흔히 접한 이론이다. 이 외에도 선택 후 지지편향(어떤 선택을 내린 후 선택 당시 고려하지 않았던 여러 근거를 들어서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는 경향), 자기고양편향(자신을 실제보다 더 호의적으로 지각하는 경향), 더닝-크루거 효과(능력이 부족해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 등 많은 편향 이론이 우리가 올바르게 사고하지 못하는 이유를 규명하고 있다. 물론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심리적 편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있는 데다 기술 기반의 환경 변화도 그 속도가 예전에 비해 훨씬 빨라졌다. 더구나 대다수 정보에는 영리를 추구하는 기관과 기업의 비즈니스 노림수가 숨겨져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목적이 없는 말과 정보는 없다고 보는 게 현명하다. 따라서 내 생각을 다시 곱씹어보는 반복 훈련을 통해 생각의 힘을 키워야 한다. 여러 방법 중 하나로 ‘생각 이력제’ 도입을 고려해볼 만하다. 생각 이력제는 농산물 이력제나 중고차 이력제와 같은 이치다.생각 이력제를 구현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나는 세 가지 정도 점검하는 이력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내 삶의 역사가 지금의 생각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내 지적 활동의 범위가 넓고 균형이 잘 잡혀 있는가, 사안마다 생각을 기록하고 진화시키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가이다. 첫째, 지금의 의식구조는 내가 살아온 모든 날의 반영이다. 알게 모르게 그 영향력은 지대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경북 산골에서 태어났는데, 시골 중의 시골이며 아주 보수적인 동네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은 1980년대에 다녔다. 당시 대학 분위기는 엄혹했다. 직장은 언론사에서 시작했다. 거의 30년이 다 되어간다. 보수적인 지역에서의 어린 시절, 1980년대 대학생활, 오랜 언론사 생활 등 지금의 의식구조를 만든 핵심 환경이 나의 생각 구조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을 점검해야 한다. 둘째, 지적 활동의 범위와 수준을 알아본다. 지적 활동이란 생각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모든 행위를 뜻한다. 대개 책이나 영상, 사람과의 만남에서 정보를 구하고 지식을 쌓는다. 편식으론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 힘들 듯이 균형 잡힌 생각을 하려면 지적 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적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서 균형을 취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올바른 생각과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서너 가지의 관점이 담긴 정보나 지식을 함께 봐야 편향되지 않은 사고를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아주 구체적이고 면밀하게 진행해야 한다. 셋째, 글쓰기는 흩어져 있는 생각을 모으는 것이며, 추상적인 사안을 구체화하는 행위다. 글로 정리하지 않은 생각은 쉽게 망각할 수 있고, 끊임없이 사고편향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 사안을 기승전결에 맞춰 글로 정리해본다면 올바른 생각과 판단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권오준 포브스코리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