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People

Home>포브스>CEO&People

최영찬이 만난 혁신 리더(16) 강병삼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대한민국 미래 산업 전략의 메카 

장진원 기자
대덕연구개발특구가 들어선 지 50년을 맞았다. 대덕특구는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린 원천이다.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은 연구소기업, 첨단기술기업 등 제도 지원을 통해 공공기술을 실제 사업화로 이끄는 국가 거점 역할을 맡고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일대에 조성된 대덕연구개발특구(이하 대덕특구)는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개발 메카이자 계획도시다. 흔히 대덕연구단지라고 불리는 이곳이 개발에 착수한 지 올해로 50년을 맞았다. 1973년 ‘과학입국’ 가치 아래 개발된 대덕특구는 한국의 경제 발전과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받는다.

개발 후 50년이 지난 현재 대덕특구에는 정부출연연구기관 26개, 교육기관 7개 등 46개 연구기관이 모여 국가 과학기술과 지식이 집약된 혁신 거점 역할을 맡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대덕특구는 국민이 체감하는 연구 성과를 창출해왔다. 초고집적 반도체인 16메가 디램(DRAM), 종합정보통신망의 초석이 된 TDX-10 전전자교환기, 원격 컬러사진 전송 시스템 등이 이곳에서 개발됐다. 카이스트(KAIST) 인공위성센터에선 우리나라 최초 위성인 ‘우리별 1호’ 개발에 성공해 세계에서 25번째 인공위성 보유국으로 부상했다.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이하 특구재단)은 연구개발특구 육성을 통한 R&D 촉진, 상호협력 활성화와 R&D 성과 사업화 및 창업 지원 등을 돕기 위해 설립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가 강병삼 특구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2021년 부임한 강 이사장은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미래인재정책국장을 지낸 정통 과학 관료 출신이다. 서울대 항공공학 학사, 영국 버밍엄대 공공정책학 석사, 고려대 기술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난 2001년 첫 보직인 우주협력팀장을 맡은 이래 줄곧 과학기술 관료의 길을 걸어왔다. 강 이사장은 ‘연구조합 활성화’와 ‘영향력이 큰 기술을 바탕으로 한 기술 사업화’를 특구재단의 미래 과제로 꼽았다.

특구재단이 일반에겐 생소하다. 소개 부탁한다.

우리 재단은 특구 내 기관들의 기술 사업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연구소기업, 첨단기술기업 등 공공기술의 사업화 모델을 정립해 기술과 산업, 지역 경제가 선순환하는 혁신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최전선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는가.

특구 육성사업이 가장 중요하다. 공공기술을 이전해 사업화하고 기술창업을 돕는디. 또 특구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고 특구펀드도 조성해 지원한다. 두 번째로는 연구소기업과 첨단기술기업을 발굴해 설립·지정하고 이들을 다양하게 지원해 육성한다. 다음으론 특구의 개발과 관리로 쾌적한 연구·정주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쓴다. 마지막으로 특구별 기술 사업화 전문 인프라를 마련해 창업기업의 보육과 기술 사업화 생태계 조성에 노력하고 있다.

항공공학 전공한 후, 줄곧 기술관료로 근무하셨다고 들었다. 관료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기계공학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입학 때쯤 미국에서 챌린저호 사고가 터졌다. 인류의 숭고한 도전이 커다란 비극으로 끝나는 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서울대 항공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막상 공대생이 되고 보니 수학이나 공학 같은 치밀함과 내 성격이 잘 맞지 않았다. 많은 동기가 대학원이나 기업으로 향한 데 비해 공적인 영역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결국 기술고시에 응시했고, 이후 줄곧 산업부와 과기부에서 일했다.

민관(民官) 협업이 한국적 산업·경제 발전의 특징 아닌가.

그렇다. 공공의 일에 관심이 많은 개인적 성향도 관료를 선택한 계기 같다. 첫 직장이 산업부였는데, IMF 외환위기 직후 산업 구조조정 업무에 투입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나는 철도차량사업의 구조조정을 담당했다.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같은 기업들이 탄생한 배경이 당시의 산업구조 재편이었다. 이후로 과학기술협력담당관, 국제협력총괄담당관, 미래인재정책국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지원단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지식재산전략기획단장 등으로 일했다.

여러 보직 업무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성과가 있다면.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과학기술부 중고참 사무관 시절에 나노기술 종합계획을 세우는 데 참여했다. 나노기술은 반도체 제조 등 국내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정부가 먼저 나서 국가적 이니셔티브를 만들어낸 사례다. 당시 ‘나노기술 종합계획’을 최초로 수립했다. 기술개발 계획, 관련 연구소와 공공 생산시설 건립, 대학 관련 학과 설립, 법령 개정 등 국가 차원에서 나노산업을 진작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다.

정부와 산하 출연연의 활약이 한국 산업 발전에 초석이 된 것 같다.

국가적 시책과 비전에 기업들도 관심을 보이며 함께 뛴 결과다. 나노산업 프로젝트만 해도 최소 1000억원 이상이 투자돼야 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게 당연하다. 제일 먼저 관련 법률을 제정했고 수원에 한국나노기술원을 건립했다. 카이스트에는 나노종합기술원을 세웠다. 최근 공공 생산시설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는데, 민간기업이 설계 후 시험생산까지 도맡기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나노 프로젝트를 통해 반도체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산업이나 센서 산업이 큰 수혜를 받았다고 평가된다.

대덕에 국한됐던 특구지역이 전국으로 확장되고, 최근에는 강소특구로 지역 거점을 늘리고 있다.


▎강병삼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이 최영찬 대표에게 특구재단의 사업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1992년 준공 당시 27.6㎢ 규모였던 대덕연구단지가 이후 대덕연구개발특구로 성장하면서 공공기술 사업화의 핵심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연구개발특구가 광역권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배경이다. 광역연구개발특구는 2011년 광주와 대구를 시작으로 2012년 부산, 2015년 전북 등 총 5개가 지정·육성되고 있다. 이후 역동성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 주도 성장 모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2019년 소규모·고밀도 사업화 모델인 강소특구 제도를 도입·지정한 배경이다. 현재 전국에 14개 강소연구개발특구를 지정해 지역 주도형 혁신 클러스터로 육성하고 있다. 대덕특구를 비롯한 광역특구의 성과와 노하우를 확산하고, 지역이 보유한 역량과 자원을 활용해 지역별 특성화 육성 전략을 확립해가는 중이다.

원천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화는 어떻게 이뤄지나.

특구 출범 초기에는 출연연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원천 연구에 집중하며 성장했다. 이후 2000년을 기점으로 축적된 우수한 R&D 성과를 산업 및 기업과 연결하는 공공기술 사업화가 활성화됐다. 2021년 말 기준으로 특구의 공공기술 이전은 5만9000건, 공공기술료 수입은 2002억원에 달한다. 전국 대비 약 50%에 달하는 수치다. 코스닥 등록 기업은 115개, 기업 매출액은 60조8954억원으로, 입주 기업도 성공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특구 내 기술 기반 혁신기업 발굴과 육성을 위해 도입한 ‘연구소기업’과 ‘첨단기술기업’ 제도를 적극 활용했다. 연구소기업은 공공 연구기관의 기술을 직접 사업화할 목적으로, 출연연과 대학 같은 국가 연구기관의 기술력을 기업의 자본·경영 노하우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기업 모델이다. 2006년 제도 도입 후 지금까지 총 1603개가 등록됐다. 일반적인 기업과 달리 공공 연구기관의 기술이 기업의 기반이 되므로 높은 수준의 기술력으로 차별화된 품질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국내 창업기업 5년 차 생존률의 경우 일반 창업기업보다 약 2.5배 이상 높다.

연구소기업의 실제 성공 사례가 궁금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2006년 한국원자력연구원의 기술을 출자받아 제1호 연구소기업으로 등록된 콜마비앤에이치가 있다. 2015년 코스닥 상장 당시 시가총액이 1조원이 넘었다. 최근 코로나19 신속 진단키트 개발로 화제가 된 수젠텍, 120억원 투자 유치에 성공한 알지노믹스 등도 있다.

첨단기술기업에 대한 설명도 부탁한다.

연구개발특구에 입주한 기업 가운데 정보통신기술·생명공학기술·나노기술 등 기술집약도가 높고 혁신 속도가 빠른 분야의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기업이다. 2007년 제도 도입 이후 지금까지 총 236개가 지정됐다. 제1호 첨단기술기업은 국내 최초 우주 스타트업인 쎄트렉아이다. 대덕특구 최초로 1000억 클럽 가입 벤처기업이자 현재 스크린골프 업계 1위인 골프존,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연구원 창업 1호이자 바이오벤처 1호 기업으로 2021년 제58회 무역의 날 수출의 탑 ‘1억불탑’을 수상한 글로벌기업 바이오니아 등도 있다.

특구재단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들을 돕고 있나.

연구개발특구에서 기업의 가장 큰 메리트는 다른 기업과 차별화할 수 있는 수많은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다. 특구재단은 이러한 공공기술의 사업화를 위해 특구 내 산학연 협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수행한다. 첫째, 특구 내 공공 연구 성과의 사업화 및 창업 지원을 통해 ‘기술-창업-성장’이 선순환하는 혁신클러스터 육성을 위해 ‘연구개발특구 육성사업’을 이끌고 있다. 공공 연구 성과의 조기 사업화를 위해 우수 기술을 발굴하고 기술 수요자-공급자 간 연계, 기술이전·출자를 통한 사업화 전 주기를 지원한다. 둘째,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자생력을 강화하는 ‘지역혁신 R&D 지원사업’이 있다. 지역이 자체적으로 R&D 발굴·기획·추진에 나설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지역 과학기술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중대형 과학기술 현안을 해결할 원천기술 개발과 신기술 창출을 지원한다. 셋째, 특구 내 신기술 실증과 테스트베드를 적기에 지원하는 ‘신기술 실증특례 제도’도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규제에 막혀 기술개발이 어려웠던 유망 신기술이 빠르게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신속확인, 실증특례, 임시허가 제도 등을 운영한다. 마지막으로 지역 기술금융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기 위한 ‘특구펀드’를 조성·운영한다. 지역의 투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2006년 과학기술진흥기금을 활용해 대덕특구에 본사를 두고, 투자자 책임하에 모험투자를 할 수 있도록 제1호 특구펀드를 800억원 규모로 조성했다. 이후 2021년까지 8개 특구펀드를 조성해, 특구 등 지역 기술기업 220개사를 대상으로 총 3554억원을 투자했다.

2021년 이사장 취임 후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무엇인가.

임기 내 이루고자 목표를 삼았던 것은 크게 네 가지다. 먼저 사업화 성공률을 높이고 역량별로 특화된 지원을 위해 지식재산권(IP) 중심의 R&BD 기획 체계를 도입했다. 기존 R&BD를 통한 매출액, 고용 증가 등의 효과에 그치지 않고, 해외 진출 등 신규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기술 권리화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해외기술동향 조사, 기술공백 설계, IP 전략 수립을 지원하고 있다. 다음으론 특구의 플랫폼 역할을 강화했다. 특구 지역의 통계 DB, 기술수요 DB, 행사 캘린더 등을 특구 구성원 모두가 원활하게 교류·소통할 수 있도록 정보 접근성을 향상한 게 대표적이다. 셋째, 직원 전문성 강화다. 직원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국내 유일의 과학기술 인재개발 전문기관인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과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직무 전문자격 연계 프로그램을 적극 도입했다. 마지막은 ESG 경영 확대다. ESG 경영위원회 신설 및 선포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ESG 경영을 위한 전략 및 추진체계를 마련했다. 월간 ESG 캠페인, 탄소중립 기술 대상 과제 지원 등과 함께 지역사회 공헌 활동 등을 지속 추진 중이다.

앞으로의 중점 사업 계획도 궁금하다.

연구조합을 발전시키고 싶다. 사업화 수요가 견인하는 R&D를 추진하고, 동종·연관 업계가 협업하면 복잡하고 어려운 시스템 수준의 과업을 달성할 수 있다. 현재 대덕특구에 물산업연구조합이 만들어져 대형 사업과 여러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을 준비 중이다. 인천강소특구에서는 바이오플라스틱연구조합이 조성돼 바이오플라스틱 순환체계의 실증, 추가 R&D, 규제 개선안 등을 연구 중이다. 이 외에도 사업화가 궁극의 목표인 정부의 많은 연구개발사업단이 연구조합 형태로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R&D 단계부터 사업화 주체들과 협의해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 밖에 심오한 과학기술 연구와 발견에 기반을 둔, 영향력이 큰 기술 사업화를 진행하고 싶다. 이른바 딥사이언스 창업 지원이다. 우리나라는 의미 있는 과학기술적 발견과 발명을 사업적으로 인지하고 키우는 능력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 R&D 투자 못지않게 앞으로 정부 주도 R&D 후 실증, 스케일업, 세컨더리펀드 같은 여러 지원 장치가 필요하다.

※ 최영찬 - 선박과 플랜트 분야 제조업을 영위하는 선보공업의 차세대 경영인이다. 제조업체들이 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와 어떻게 공존하고 미래 사업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선보엔젤파트너스와 기업 연합형 CVC인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했다. 2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와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공동경영 형태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창업한 2개 법인과 별도로 3개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 사진 최재승 객원기자

202308호 (2023.07.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