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강호의 생각여행(50) 존경받는 나라의 조건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2018년 동계올림픽은 선진국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동계 스포츠 문화를 우리 안방에서 치러낸 쾌거였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K’의 힘을 지속가능하게 이어가야 한다.

▎발왕산 정상에 올라 강원도의 눈 덮인 산맥을 내려다보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운다.
하얀 눈 덮인 강원도 평창을 향해 달린다. 우리나라 산은 굽이굽이 참 잘도 생겼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하얗게 덮인 눈 사이로 잘생긴 모습을 뽐내는 산을 바라본다. 신선하고 힘찬 정기를 받는 것 같다. 사계절 신선한 공기와 건강을 선물하는 강원도 평창은 국내에서는 아마도 가장 자주, 계절마다 찾는 곳이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 계절 찾는 평창은 평생 동안, 사계절 내내 건강함을 통째로 내어주는 듯하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찾는 곳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스키를 타기 위해 발왕산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강원도의 눈 덮인 산맥을 내려다보며 호연지기(浩然之氣: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원기, 거침없이 넓고 큰 기개)를 키운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올겨울은 여느 해보다 훨씬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발왕산 정상 주변에서 눈옷을 입고 선 주목을 보노라면, 오랜 세월 비바람과 눈보라에 시달리면서도 천년 세월을 지켜간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어 색다른 감상에 빠지곤 한다.

곤돌라나 리프트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 스키 슬로프를 질주할 때면 스키복과 헬멧, 고글 덕분에 나이가 든 사람인지 젊은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젊은이들 속에서 슬로프를 달리다 보면 청춘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다. 고속도로도 제대로 없었던 20대부터 용평 스키장을 다닌 이래 수십 년이 지났다. 이제는 스키장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 축에 속한다. 산천은 유구한데 인걸은 변해가나 보다.

세계인의 축제 된 평창 동계올림픽


▎감동적이었던 2018년 제23회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대회의 폐회식 장면.
해마다 찾는 평창에 가면 인생 기록에 남을 만한 이벤트가 떠오른다. 지난 2018년에 개최된 제23회 동계올림픽 경기대회(Olympic Winter Games PyeongChang 2018, XXIII Olympic Winter Games)’다. 내게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알프스산맥을 끼고 있는 많은 유럽 국가와 로키산맥을 갖고 있는 미국이나 캐나다를 뒤로하고 우리나라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된 것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동계·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 대회를 모두 유치하면서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자랑스러운 나라가 됐다. 하계·동계 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에 참석하고, 각종 경기장을 돌며 응원한 경험은 정말 행운의 세대에게 허락된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우리나라 평창에 와서 올림픽 경기에 참여하는 모습을 겨울에 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실내에서 하는 빙상 스포츠 중에선 롱 트랙 스피드스케이팅과 아이스하키 경기를 관람했다. 찰나의 속도를 다투는 스피드스케이팅 경기를 관람할 때는 선수들의 속도감 있는 질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마다 나라의 명예를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달리는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특히 박진감 넘치는 아이스하키 경기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정말 멋진 스포츠 경기였다. 캐나다와 체코의 시합이었는데 바람처럼 빙판을 달리는 두 팀 선수들의 움직임은 몸속 세포 하나하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마치 체육관 안에서 전쟁을 치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이스하키 경기장 안은 응원 열기와 두 팀이 뿜어내는 에너지로 폭발했다. 번개같이 빠른 선수들의 움직임 자체도 흥분의 도가니였다.

바깥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평소 항상 스키를 타던 레인보우 슬로프 하단으로 향했다. 무척이나 큰 전광판 아래서 알파인스키 대회를 관람했다. 항상 스키를 즐기던 친근한 슬로프에서 올림픽 경기를 보는 즐거움은 참으로 벅찬 감동이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멀리 한국까지 온 응원객들은 자기 나라 선수가 경기에 나설 때, 각양각색 깃발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응원전을 펼쳤다.


▎스키 슬로프와 어우러진 모나용평리조트 앞의 낭만적인 야경.
다시 장소를 옮겨 평소 보기 힘든 스키점프 경기를 관람하면서 겨울 스포츠 문화가 얼마나 멋진지 실감할 수 있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응원하러 온 사람들이 각국 전통의상을 입고 추운 날씨에도 야외에 설치된 스키점프대 아래에서 선수들을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은 무척 멋있었다. 털북숭이 같은 옷을 입은 이들, 양쪽에 뿔이 달린 모자 의상을 입은 이들이 함성을 지르고, 제 나라 깃발로 만든 옷을 입은 이들도 보였다.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자기 나라 고유의 악기를 연주하면서 특이한 민속춤을 즐기기도 했다. 다음 동계올림픽 경기에는 우리 민속의상을 입고 원정 응원을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정말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즐긴 세계인의 축제였다. 사람이 새처럼 나는 스키점프 경기는 색다른 흥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경기장의 중요한 장소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슬로건인 ‘하나 된 열정: Passion. Connected’이 여기저기 적혀 있었다. 이 슬로건에는 동계 스포츠에 대한 전 세계인의 공감을 연결하고, 언제 어디서나 모든 세대가 참여할 수 있으며, 동계 스포츠의 지속적인 확산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슬로건 단어의 첫 글자 P와 C는 다름 아닌 ‘PyeongChang’의 이니셜이기도 하다. 전 세계인을 연결해준 평창 동계올림픽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평창이 전 세계인이 와서 봐도 부러워할 만큼 더 아름다운 마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유럽에 가서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를 방문해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이나 자연을 정말 아름답게 가꾸어 놓았다. 그림처럼 펼쳐진 자연환경을 갖추고 동화 속에 나올 듯한 창들마다 예쁜 꽃이 피어 있다. 그야말로 눈부신 신선함과 아름다움 그 자체다. 우리나라도 건물 디자인이나 마을 환경을 정비해서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보다 아름다운 환경을 조성하면 좋겠다. 집집마다 창가에는 꽃이 피어 있고 아름다움과 낭만이 흐르는 마을. 우리도 조금씩 바꿔가면서 장기 계획을 세워 세계적인 눈꽃 마을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세계인이 스스로 찾는 나라, 한국


▎동계올림픽 경기장 주변에 설치된 멋진 조형물.
최근 덴마크 대사를 만나 즐겁고도 소중한 대화를 나누었다. 덴마크와 인연을 맺은 지 30년이 넘다 보니 덴마크를 찾은 횟수도 과장되게 이야기하면 100번은 되는 것 같다. 역대 주한 덴마크 대사들과의 교류도 지난 30년 넘는 시간 동안 공적으로 또 사적으로 꾸준히 이어왔다. 여러 인연 중 가장 소중한 경험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국빈 방문을 한 덴마크 여왕으로부터 직접 왕실훈장을 받은 경험이었다.

최근에도 덴마크 대사가 한국에 부임했기에 첫인사를 나누기 위해서 대사관을 찾아 단둘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덴마크와 한국에 관해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가운데 정말 즐거운 말을 들었다. 10년 전만 해도 덴마크에서 현대자동차 TV 광고를 볼 때 ‘10년의 보증기간, 그리고 여러 가지 기술적으로 앞선 내용’들이 설명되곤 했단다. 그런데 덴마크 대사가 최근 자국에서 광고되는 현대자동차 광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아주 멋진 스타일의 자동차가 화면 속에서 지나간 후 말 한마디도 없이 마지막에 단 한 줄의 광고 카피가 나온다고 한다. ‘Made in Korea(한국산)’란다. 10년 전, 20년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장면이다.

그때는 한국을 소개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여가며 한참을 이야기하고 설명해야 했다. 글로벌기업에서 한국 CEO로 일할 때 이사회나 그룹 경영진 또는 핵심 매니저들과 회의를 할 때면 그들 중 많은 사람이 한국을 거의 방문해보지 않았거나 잘 몰랐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관해서 많은 설명을 해야만 했다. “한국은 조선업이 세계 1위이고 자동차산업, 철강산업, 전자와 반도체 산업도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고층 건물들의 구조물도 한국 건설사들이 세웠다. 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언어인 한글을 갖고 있어 휴대폰의 글자판을 가장 단순하고 편리하게 사용한다. 그래서 휴대폰도 세계 1위를 다투고 있다.” 이같이 지난 30년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목소리에 힘을 주어가며 설명해야만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 옆에서 외국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덴마크 대사의 이야기가 계속 흥미를 끌어냈다. 지금은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슈퍼마켓에서 김치와 소주를 누구나 알고 있고 자연스럽게 살 수 있다고 한다. 10년 전만 해도 김치와 소주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놀라운 반전이다. 나아가 한국 문화와 음식에 대해서 더 알려고 노력하는 이가 많다고 한다. 지난 시절 동안 K팝, K드라마, K푸드, K화장품, K컬처 등 수많은 분야에서 한국은 엄청난 결과를 이뤄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가 글로벌기업의 자본을 투자(Inward Foreign Direct Investment )받기 위해서 세계 무대에서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글로벌 본부의 경영진은 베트남이나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공장 부지 가격과 유연하지 못한 노동환경, 북한 문제 등을 이유로 우리나라에 투자하기를 꺼렸다. 우리나라에 3개 회사와 3개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한국이란 나라를 소개하기 위해서 열을 올려가며 설명해야 했다. 또 우리나라 시장의 가치나 규모, 지리적·전략적 소중함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정성을 들여야만 했다.

이제는 외국인들이 스스로 한국을 찾아온다. 덴마크 대사의 아들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맞아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단다. 며칠 후 다시 전화가 왔는데 아들이 한국을 방문한다고 하니 친구 중 한 명이 함께 한국에 오고 싶다고 했단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또 전화를 받았고 한 명이 추가됐다고 한다. 며칠 뒤에는 또 다른 한 명이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덴마크 대사의 아들과 친구 세 명이 함께 한국을 찾기로 했다는 말이었다. 유럽 사람과 미국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나라, 궁금해하는 나라, 꿈의 나라가 이제는 한국이다. 옛날에는 우리에게 꿈의 나라가 미국과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이었고, 유럽 프랑스·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한국을 꿈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찾아온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정말 더 잘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훌륭한 경제적·문화적 위상을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켜야 한다. 덴마크 대사관저에서 성탄절 만찬을 하던 중 한 외교관이 내게 질문했다. “지금의 대한민국 위상을 한국이 미래에도 오랫동안 지속가능하게 유지해갈 수 있을 것 같은가?” 나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수천 년 역사를 통한 바탕, 즉 펀더멘털(fundamental)을 갖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 ‘한글’도 갖고 있다. 그런 오랜 기간의 역사와 전통, 문화의 깊이와 길이로 인해서 지금의 K문화가 형성되었고,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 앞으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이 자리를 이어갈 것이다.”

우리끼리, 한국 사람끼리는 그렇게 되도록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 된다고 말하고 싶다. 또 노력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 우리끼리 하는 솔직한 이야기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국가의 100년 대계를 바라보고 준비하는 노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부족한 부분도 많다. 노력하자! 우리 문화가, 우리 후손들이 전 세계인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살도록 지금의 우리부터 유산을 물려주자!


▎찰나의 속도를 다투는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 이강호 -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세계 최대 펌프 제조기업인 덴마크 그런포스그룹의 한국 법인 창립 CEO 등 33년간 글로벌 기업 및 한국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고, 2014년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협회(KCMC) 회장 및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와 2세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을 컨설팅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402호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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