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강호의 생각 여행(53) 하네다공항이 들려준 미래 이야기 

 

오랜만에 찾은 일본은 여전히 활기 넘치는 메가시티였다. ‘잃어버린 30년’ 같은 쇠락한 도시의 이미지를 찾기는 어려웠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아는 온고이지신의 자세로 미래를 보는 통찰을 얻을 때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랜드마크 타워이자 인기 있는 명소로 떠오른 ‘아자부다이 힐스’와 메가시티 도쿄의 마천루들.
2024년 봄, 종종 방문하던 일본의 수도 도쿄를 찾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많은 사람이 도쿄를 후퇴하는 경제, 늙어가는 도시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도쿄와 일본은 오히려 여전히 활기 넘치는 도시와 나라라는 걸 느꼈다. 유명한 장소와 거리에는 사람이 많아 인파에 밀려 다닐 정도였다. 세간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이런 풍경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자문해보았다.

이번 여행의 주요 목적은 장기적인 계획과 실행으로 선진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도쿄의 재개발 현장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몇 달 전 완공돼 핫 플레이스가 된 아자부다이 힐스와 도쿄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방문했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몇 년 동안 찾지 못했던 미술관과 주요 관광지도 다시 둘러보았다. 아울러 일본에 주재하며 오래 근무한 일본의 글로벌 제약기업인 한국다이이찌산쿄 김대중 전 사장의 도움을 받아서 평소에 가보기 힘든 일본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는 음식점도 경험해보았다.

미래를 여는 도쿄의 재개발 현장


▎롯폰기 힐스 모리 타워 전망대에 연예인들의 대형 사진이 배너처럼 걸려 있다.
#1. 아자부다이 힐스(麻布台ヒルズ: Azabudai Hills)는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에 있는 고층 건물이다. 지상 64층, 지하 5층, 높이 325.19m 규모의 복합 건물로, 송전탑인 도쿄 스카이트리를 제외하고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랜드마크 타워이자 인기 있는 명소로 떠올랐다. 이 프로젝트는 1989년에 처음 시작됐다. 마을 만들기 협의회를 설립해 30여 년간 논의를 거쳤고, 2017년 도시계획이 결정됐다. 2018년 재개발 조합 설립 인가를 거쳐 2019년 8월 5일 착공했다. ‘토라노몬·아자부다이 프로젝트’라고도 불리며 2023년 6월 30일에 준공, 11월 24일에 개장했다. 준공 6개월 전인 2022년 12월 14일에 정식 명칭이 ‘아자부다이 힐스‘로 결정됐다. 저층부에는 사무실과 상업 시설, 병원 예방의료 센터, 사무실이 있고 고층부에는 럭셔리한 호텔로 유명한 아만의 레지던스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복합 시설 모두는 모리빌딩컴퍼니가 운영한다.

33층에 자리한 전망대에 올라가자마자 깜짝 놀랐다. 방문객이 너무 많아서다. 무척이나 넓은 전망대 창가에 수많은 사람이 도쿄시 경관을 보려고 겹겹이 서 있었다. 아자부다이 힐스가 도쿄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차례를 기다려 창가에서 가까이 보이는 도쿄타워의 모습을 잘 촬영할 수 있었다.

다시 저층부로 내려와서 숍들을 구경하고 가든 방향으로 향했다. 화창한 봄 날씨 덕에 정문 앞 입구 근처에 많은 구경꾼이 몰려 있었다. 그 앞에선『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로봇 같은 모습으로 재미있는 공연이 펼쳐졌다.

#2. 아자부다이 힐스 빌딩 전체를 조망하려고 ‘롯폰기 힐스 모리 타워(Roppongi Hills Mori Tower)’를 찾았다. 지난 2003년 모리빌딩컴퍼니가 개장해 많은 관심을 받은 이 건물은 최상층부에 전망대와 모리미술관을 갖추었다. 지상 54층, 지하 6층 규모의 건물 입구에 있는 넓은 정원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높이 9m인 거대한 거미 오브제인 ‘마망(MAMAN)’ 조각이다. 특별한 느낌을 주는 거미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 배를 쳐다보면 거미 알을 형상화한 대리석 20여 개가 보인다. 마망은 롯폰기 힐스를 찾는 일본인들의 약속 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롯폰기 힐스 모리 타워는 롯폰기 힐스의 상징이다. 7층에서 48층까지 사무실이고, 모리미술관(Mori Art Museum)과 도쿄 뷰(Tokyo City View) 전망대를 갖추었다. 모리미술관은 최상층인 53층에 있다.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패션, 건축, 디자인,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전람회를 개최한다.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우리의 생태계: 지구적 삶을 향하여(Our Ecology: Toward a Planetary Living)’라는 주제 아래 ‘현대미술은 환경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라는 부제로 많은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작품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파괴돼가는 지구 환경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전시였다.

에스컬레이터로 한 층을 내려와서 52층에 있는 전망대로 이동했다. 무척이나 높은 유리창 윗부분에는 인기 있는 연예인들의 대형 사진들이 배너처럼 걸려 있었다. 넓은 창을 통해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도쿄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아자부다이 힐스 빌딩과 도쿄 타워, 그 주변에 꽉 들어찬 마천루들이 메가시티 도쿄의 위용을 보여주는 듯했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내려다보며 일본은 결코 노화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더욱 커졌다.

원형 통로를 따라서 도쿄의 유명 장소들을 내려다본 후, 같은 층에서 전망을 즐기며 휴식할 수 있는 ‘문 카페(MOON Cafe)’에 들렀다.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그 분위기를 즐겼다.

#3. 유명한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Ando Tadao)와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의 협력으로 설계된 ‘21_21 디자인 사이트(DESIGN SIGHT)‘는 디자인을 위한 전문 리서치센터다. 1년에 두 번 열리는 기획전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뒤에 가지런히 서 있는 삼나무를 배경으로 종이비행기처럼 납작하게 설계된 건물은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이뤄진 저층 구조다. 거대한 철판으로 만든 지붕이 완만하게 땅에 닿은 독특한 형태를 지닌 건물의 공간은 대부분 지하에 묻혀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상점 공간을 지나 전시 공간이 열린다. 이번 방문 기간에 열린 전시 주제는 ‘미래의 조각(未来のかけら)’이고, 부제는 ‘과학과 디자인의 실험실(Prototyping in Science and Design)’이었다. 과학도들과 디자이너들이 출품한 특이한 모형과 아이디어들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로 전시돼 있었다. 창의성을 고취하는 공간에서 과학도와 디자이너가 함께 시제품화한 노력은 인류의 미래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2007년 개관한 21_21 디자인 사이트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자연광을 활용한 안도 타다오의 설계로 유명하다. 도쿄 시내 중심부인데도 주변에 나무와 넓은 녹지 공간이 있어서 아주 여유로운 느낌이다. 푸른 녹지에는 야외 커피숍이 있어서 도심 속 느긋함을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짧은 거리를 걸어 내려가면 도쿄의 또 다른 복합 상업단지 명소인 롯폰기 미드타운으로 연결된다.

다시 준비해야 할 50년 후의 미래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협력으로 설계된 ‘21_21 디자인 사이트’.
#4. 2007년 3월, 롯폰기에 개장한 도쿄 미드타운 타워(Tokyo Midtown Tower)는 복합 건물 자체가 하나의 도시 같은 공간이다. 도쿄 시내에 자리하지만 병원, 공원, 고급 호텔이 모두 있다. 몇 년 전 방문했을 때는 리츠칼튼 호텔 도쿄(45~53층)에서 숙박하며 편리하게 많은 시설을 방문했었다. 도쿄 출장이나 여행을 가려는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장소다. 이번에 가보니 야외 가든에 서서 생맥주를 마시는 코너가 있어, 피로를 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든을 산책하며 21_21 디자인 사이트를 방문하는 것도 유익한 시간이 될 듯하다.

#5. 도쿄 중심지인 긴자 거리, 메이지 신궁, 오모테 산도, 아사쿠사, 시부야와 맛집 등의 일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김포공항에서 이륙해 하네다공항까지 비행했다. 하네다공항에 내리니 옛 추억이 생각났다. 1978년 5월, 뉴욕 주재원으로 부임하기 위해서 김포공항에서 난생처음 국제선을 타고 출발해 하네다공항에 도착했다. 즉, 내가 발을 디딘 일생 첫 번째 외국 국제공항이 일본 하네다공항이었다.

며칠간 도쿄에서 일본을 경험하고 하네다공항에서 다시 미국 하와이의 호놀룰루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하는 중이었다. 밤 비행기를 타려는데 많은 언론사 기자가 나와 플래시를 터뜨려가며 취재에 열을 올렸다. 의아해서 물어보니 우연히도 그 비행기가 하네다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국제선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도쿄도 도심에서 동북쪽으로 약 62㎞ 떨어져 있는 나리타 국제공항(成田国際空港: Narita International Airport)이 새로 개항하고, 하네다공항은 국내선 중심 공항으로 전환하는 순간이었다. 역사적 순간에 마지막 국제선을 이용했다는 특별한 추억이 담긴 곳이 바로 하네다공항이다.

그때 첫 해외 출장을 시작으로 매년 한두 달, 많으면 서너 달씩 평생 해외로 출장 다니고 있다. 얼마 전에는 대한항공에서 200만 마일 탑승을 축하하면서 왕복 1등 편 비행기표를 제공해주었다. 대한항공에서 마일리지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부터 다닌 출장과 아시아나를 비롯해 다른 해외 항공사들의 마일리지까지 모두 모아보면 아마도 몇백만 마일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롯폰기 힐스 모리 타워와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미 오브제인 ‘마망(MAMAN)’ 조각.
일본을 종종 방문하면서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도쿄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가려고 공항버스로 이동할 때, 공항 이전을 반대하는 농민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위를 하던 모습이다. 이제는 많은 세월이 지나서 하네다공항에서도 국제선을 운항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천국제공항이 새로 생기면서 김포공항은 국내선 위주로 운영하다가, 요즘은 다시 국제선 일부를 운항 중이다.

첫 해외 출장 이후 46년 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경험한 공항과 주변의 변화는 재미있는 생각으로 이어지곤 한다. 1990년대 중반 덴마크 그런포스 펌프 그룹의 브랜딩 담당 이사가 내게 그림 한 장을 보여주었다. 1950년대 미국인들이 2000년대의 미래를 상상하며 그린 내용이었다. 우리나라 공상과학 만화가인 이정문 화백이 1965년에 그린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 그림도 생각났다. 미국인들이 상상한 50년 후의 미래, 이정문 화백이 그린 35년 후(2000년)는 이미 지금 시점에서는 24년 전의 과거가 돼버렸다. 흑백 텔레비전도 드물고 컴퓨터는 구경도 못 했던 시절에 이 화백이 상상으로 그린 태양열 집, 움직이는 도로, 컴퓨터, 전파 신문, 청소하는 로봇, 소형 휴대용 TV와 전화기, 원격진료 등은 이미 우리 삶에 현실화되고 일상이 됐다. 달나라로 떠나는 수학여행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민간이 우주여행을 시도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과거 50년 동안의 변화를 보자. 국제전화 한 통을 걸려면 전화국에 따로 신청하고 한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다이얼 전화기가 있는 집도 많지 않았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동전을 넣고 전화하던 장면이 이제는 낭만 속 추억이 되었다. 무역할 때 줄줄 나오는 텔렉스가 팩스로 이어지고, 삐삐, 카폰, 모뎀, 이메일을 지나 이제는 스마트한 휴대폰 덕분에 모든 것이 손바닥 안에서 해결된다. 나아가 인공지능(AI)이 웬만한 궁금증을 다 해결해준다.


▎아사히맥주 본사 빌딩과 도쿄 스카이트리, 센소지가 있는 아사쿠사에 관광객들 물결치듯 모여 있다.
이렇게 지난 50년 동안의 과거는 명확히 기억된다. 반대로 30년이나 50년 후의 미래는 또다시 상상의 세계일 뿐이다. 굳이 과거 ‘라떼(나 때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지난 일들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시간은 다시금 쏜살같이 지나가서 또다시 과거가 될 30년 내지 50년 후의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하자는 뜻이다.

‘과거에서 본 미래’와 ‘미래에서 본 과거’로 요약할 수 있는 레트로퓨처리즘(Retrofuturism)의 관점이나, 옛 것을 연구해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안목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과거의 경험으로 오늘을 깊이 이해하고, 그렇게 얻은 통찰력으로 미래를 설계해보자.

※ 이강호 -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세계 최대 펌프 제조기업인 덴마크 그런포스그룹의 한국 법인 창립 CEO 등 33년간 글로벌 기업 및 한국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고, 2014년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협회(KCMC) 회장 및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와 2세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을 컨설팅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405호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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