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끌려갈 것인가, 이끌어갈 것인가 

 

우리에게는 자동차나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압도적으로 지배한 기업을 보유한 저력이 있다. 한국 로봇산업을 하나의 거대한 로봇 기업으로 만들 수 있는 파괴적 혁신과 정책을 꿈꿔본다.
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매년 선정하는 ‘35세 이하 뛰어난 업적을 이룬 동문상’을 받으러 졸업한 지 10년 만에 모교를 방문했다. 수상식 후 은사님뿐만 아니라 펜스테이트대 산하 자율주행 연구그룹 등 로봇공학 관련 다양한 분야의 엔지니어들을 만나 연구실까지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사업 초기부터 글로벌 유명 자동차 제조사와 협업한 덕분에 우리 회사가 선보인 산업용 자율주행 관련 소프트웨어 기술에 대해 미국 내 로봇 엔지니어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음을 실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로봇 테크에 대한 관심은 매우 낮았다. 국내 로봇 관련 기업과 제품들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듯했다. 그곳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로봇팔들이 전부 유럽, 일본, 중국산이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로봇 기업인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엔지니어들이 사족보행 로봇 제어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완성하기까지 40년 넘게 투자했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글로벌 로봇공학 분야의 제왕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 세계 로봇 분야에선 보스턴다이내믹스와 경쟁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중국의 군소 로봇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챗GPT를 능가하는 생성형 AI 기술이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 기술이 로봇공학 분야에 활용되고 있고, 이를 중국 기업들이 로봇 제어 기술에 적극 도입하는 중이다. 또 상상 이상으로 많은 중국 로봇 엔지니어가 불철주야로 연구개발에 매진했기 때문이라 본다.

이렇듯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로봇공학 기술을 선도해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나라가 이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갈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지 짧은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반추해봤다.

최근 한국 로봇산업도 대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대기업들이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로봇을 택해 중소 로봇 기업들을 인수하거나 투자에 나서는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국가적으로도 규제를 풀고 다양한 지원을 하려는 만큼, 미국과 중국 로봇 기업들이 아직 진출하지 않았거나 영향력이 적은 나라들을 공략하는 사업 전략을 펼치면 어떨까. 혹은 거대 글로벌기업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틈새시장으로 서둘러 진입하는 피버팅(pivoting)도 하나의 방안이 될 듯하다.

우리에게는 자동차나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압도적으로 지배한 기업을 보유한 저력이 있다. 국가적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로봇산업을 하나의 거대한 로봇 기업으로 만들 수 있는 파괴적 혁신과 정책을 꿈꿔본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함께하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Alone we can do so little; together we can do so much)”라는 헬렌 켈러의 명언을 국내 로봇산업 관계자들이 한 번쯤 깊이 생각해봤으면 한다.

- 이한빈 서울로보틱스 대표

202405호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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