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47) 탈세계화 시대의 관세전쟁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가 한 인터뷰에서 “중국에는 기존 25%에서 60~100%의 관세를, 다른 나라에는 일률적으로 10~2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이야기하며 관세 폭탄을 예고했다. 그는 “다양한 공급망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미국 기업이 바가지를 쓰고 있다”고 지적하며 “중국과 다른 나라에서 공급망을 되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세전쟁이 시작된 것일까.

▎Copilot으로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자유무역지대로 만들었던 팍스 몽골리카의 이미지를 생성했다.
중국에서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서 미국이 대중 관세를 60%로 올릴 경우, 그다음 해에는 중국 GDP 성장률이 2.5%포인트 깎일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중국 성장률 절반이 날아가는 셈이다. 중국의 대미 수출 규모가 수입보다 3배나 크니 대미 보복조치도 사실상 어렵다.

미국이 선포한 관세전쟁 덕분에 동남아와 인도가 어부리지를 얻고 있다. 몇 달 전 동남아 반도체 2024(Semicon Southeast Asia 2024) 전시회에 참가하려 말레이시아에 가서 반도체 업계 기업들과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투자 열기가 후끈했다. 말레이시아 반도체산업의 중심 페낭 주정부는 지난해에 10년 치에 가까운 외국인 직접투자를 받았다. 중국에서 생산 거점을 옮기려는 서구 기업들과 미국 우회 수출을 노리는 중국 기업들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로 몰려들고 있었다.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의 기업들도 생산 거점의 탈중국화를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9월에는 처음으로 세미콘 인디아(Secmicon India) 전시회가 델리에서 개최된다. 첫 인도 전시회인데도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대거 참여해 규모가 만만치 않다. 요즘은 한국 기업들에도 인도의 신생 반도체 기업들의 사업 제안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 입장에서도 관세전쟁이 결코 녹록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역사를 돌이켜보면 영국과의 무역역조로 공산품 관세를 올렸다가 남부와의 갈등이 심해져 남북전쟁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남북전쟁 전 미국 북부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제조업이 발달했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를 원했다. 반면, 남부는 농업 중심 경제였고, 수출에서 수익을 얻었기 때문에 낮은 관세를 선호했다. 높은 관세는 남부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고, 남부는 북부의 제조업 제품을 더 비싼 가격에 구매해야 했다. 이는 남북 간 경제적 갈등을 심화했고, 결국 높은 관세는 남북전쟁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자 미국은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제정해서 농업과 제조업을 보호하려고 관세를 올렸다. 다른 국가들도 보복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 무역량이 65%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제무역이 감소하면서 세계경제는 구렁텅이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 결과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2차대전 이후에 미국은 자유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국제무역 체제를 재편했다. 미국이 설계하고 만든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과 세계무역기구(WTO)가 지난 80년간 세계를 지탱해온 자유무역의 축이었는데, 이제 미국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이 자유무역 시스템을 폐기하려는 것 같다.

실크로드의 역사도 세계화와 탈세계화의 반복이다. 기원전 2세기 한나라는 서역과의 무역을 장려하기 위해 실크로드를 개척했지만, 서역의 여러 소국이 통행세를 요구하며 갈등이 발생했다. 결국 한나라는 군사력을 동원해 서역의 소국들을 제압하고, 통행세를 낮추거나 없애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중국에서 로마까지 실크로드의 무역은 한 단계 더 발전했다. 로마가 쇠퇴하자 경제적·군사적으로 실크로드의 서쪽 끝이 불안정해졌다. 이 시기 실크로드 동쪽의 중국도 한나라가 망하면서 위촉오 삼국시대에 들어서고 극도의 혼란기에 들어섰다. 로마제국의 쇠퇴와 중국의 혼란은 유라시아를 탈세계화의 시대로 들어서게 했다. 7세기 중국 대륙이 수나라와 당나라로 통일되고, 중동에서는 이슬람 제국이 등장하면서 실크로드는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후 13세기 몽골제국이 유라시아 대제국을 건설하자 유라시아는 다시 세계화의 시대를 맞이했다. 팍스 몽골리카에서는 실크로드의 안전이 보장되었고, 통행세와 관세는 일관된 정책으로 관리되었다. 14세기 흑사병이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면서 인구가 감소하고, 무역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14세기 후반 몽골제국이 붕괴되자 육상 실크로드는 더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다. 이후 상인들은 해상으로 나아갔다. 1453년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실크로드를 봉쇄하면서 유럽과 아시아 간 육로 무역이 크게 축소됐다.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해상 무역로를 찾기 시작했고, 대항해시대를 열게 되었다. 콜롬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했고, 바스코 다 가마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 항로를 개척해서 후추를 들여왔다.

세계화·탈세계화 속의 우리 역사


▎5월 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에서 열렸던 Semicon Southeast에 방문했다.
한반도 역사도 실크로드의 세계화·탈세계화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백두산의 흑요석,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 청동기 시대의 비파형 동검, 신라 고분의 북방계 유물, 로마·페르시아·인도계 문물, 소그드 상인과 아랍 상인의 발자취에서 한반도는 유라시아 동쪽 끝의 고립된 작은 땅덩어리가 아니라 유라시아의 세계화·탈세계화와 같이 호흡하며 살아왔다.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가 유라시아 전역을 연결했던 8세기, 장보고와 신라 상인들은 동아시아의 해상권과 무역을 주도했다. 고려의 제지는 우수한 품질로 중국에서도 유명했고, 널리 유라시아 곳곳으로 확산되었을 것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예성강의 상업 세력을 바탕으로 성장했고 고려는 해상강국이라 할 수 있었다. 한반도의 해상 세력은 고려 말 삼별초 세력의 몰락으로 쇠퇴하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에는 섬에 사람을 살지 못하게 하는 공도정책(空島政策)과 해양 활동을 전면적으로 금지한 해금정책(海禁政策)으로 바다를 멀리하고 천시하는 풍조까지 생겨났다.

조선 후기 청나라는 이미 성리학을 버리고 실용을 중시하는 양명학으로 바뀌었을 때 조선은 성리학을 끝까지 지키며 ‘소중화’를 자처했다. 청나라 정크선들이 영국 상선의 대포 앞에서 무참하게 침몰 당하던 1840년대, 1850년대 아편전쟁을 보고도 조선 사대부들은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을 읽지 못했다. 그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공자왈 맹자왈 하며 2500년 전의 유교 경전을 읊어대고 있었다. 세계 정세에 밝았던 일본은 세계화 시대의 흐름을 바로 읽고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이 최신 증기선 전함을 이끌고 오자 바로 개항했다. 그 개항은 메이지유신으로 이어졌고, 운둔의 나라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해서 해방되고, 민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에 냉전시대와 신자유주의 시대, 옆 나라 일본과 중국의 부상은 천재일우의 기회가 되었다. 세계화 시대에 가장 큰 혜택을 본 나라가 되었는데 이제 운 좋았던 시절이 끝나가는 것 같다.

탈세계화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다. 수출로 먹고살았던 나라에서 해외시장과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 무역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정된 영토 내에서의 산물로 만족하지 않고 자국의 한계를 벗어나 다른 나라와 서로 교역하여 살아갔을 때가 더 부강했던 것을 보여준다. 신라 경주의 황룡사, 고려의 금속활자, 조선 초의 한글이 그러하다. 특히 영토 내 인구와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외국과의 무역은 곧 생존을 의미한다.

미국의 관세 폭탄은 도미노 현상을 일으켰고, 앞으로 점점 더 폭발력이 거세질 것이다. 그렇지만 관세전쟁이 세계화를 무너뜨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핵심 광물뿐만 아니라 핵심 기술에도 관세 폭탄을 투하할 수 없다. 전 세계 공급망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탈세계화의 양상도 일정 수준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지정학 이슈는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어 불확실성이 크지만 상황에 잘 대처하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2019년 일본의 무역 제재는 결과적으로 한국의 소부장 생태계의 체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작은 회사들도 지정학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변화의 물결에 빨리 올라타야 살길을 찾을 수 있고 시대를 선도할 수 있다. 탈세계화 시대에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고래 사이에서 새우가 아닌 돌고래가 되는 한국을 보고 싶다.

※ 김정웅 -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이자 연세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겸임교수. 30여 년간 5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이다.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의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2000년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기업 간 전자상거래 사업을 하다가 폐업 위기를 겪었지만 반도체 산업에 집중해 전화위복을 이뤄냈다. 지금까지 반도체 업계의 레거시 장비를 전 세계에 5만 대 넘게 판매하며 서플러스글로벌을 세계적인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5년 무역의 날 대통령상과 2021년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2012년에는 발달장애인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Autism Expo를 개최하는 등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2409호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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