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찾았다. 동로마제국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스탄불은 서로 다른 문명과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역사의 무대다. 오랜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미래를 준비할 때다.
▎이스탄불 유럽 지구 신시가지의 중심지인 탁심 광장 옆 아름다운 모스크의 야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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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태양빛이 바닷물에 반사돼 눈이 부시다. 멀리 해협 건너로 모스크 전경이 보이는 이색적인 풍경의 이스탄불(Istanbul)에 있으니 영화 <007> 시리즈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가 된 듯한 느낌이다. 벤치에 누워서 보니 보스포루스(Bosporus)해협의 반짝이는 바닷물 위로 거대한 화물선들이 흑해를 향해 항해하고 있다. 러시아를 향해 가는 걸까? 아니면 우크라이나로?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상상해본다. 화물선 옆으론 크고 작은 유람선들이 분주하게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이스탄불은 지리적으로 매우 특별한 곳이다. 튀르키예(Türkiye) 서부에 위치한 이곳은 마르마라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해협을 가운데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에 걸쳐 있다. 동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옛 수도이자 유럽의 동남쪽과 아시아의 서쪽 끝에 위치한 튀르키예의 최대 도시다. 역사와 상업의 중심지는 유럽 지구에 있고, 인구의 3분의 1은 아시아 지구에 거주한다. 따라서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자리하면서 동서양 문화교류의 거점 역할을 해왔다. 엄청난 역사와 신비로운 스토리를 지닌 이스탄불은 항상 동경해왔던 도시다. 최근 본 CNN의 광고가 재미있다. “이스탄불은 새롭고 멋진 곳입니다. 지금 예약하세요: ISTANBUL IS THE NEW COOL, BOOK NOW.”그런포스 그룹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회장과 중동·아프리카 지역 회장을 두루 역임한 튀르키예 친구가 딸의 결혼식에 나를 초대했다. 글로벌기업에서 오랜 기간 함께 경영에 참여한 친구의 초대로 오랜만에 다시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결혼식은 옛 궁전을 호텔로 개조한 시라간 팰리스 켐핀스키 이스탄불(Çırağan Palace Kempinski Istanbul) 호텔에서 열렸다. 드레스 코드인 턱시도를 차려 입고 밤 12시까지 진행되기에 편의상 같은 장소를 숙소로 정해 묵었다.보스포루스해협의 바닷물을 따라 조성된 시라간 팰리스 켐핀스키 호텔은 해협의 유럽 지구 해안에 자리한다. 반대쪽으로는 아시아 지구가 보이고, 멀리는 유럽과 아시아 양 대륙을 연결하는 다리인 보스포루스교가 보이는 아주 좋은 위치다. 보스포루스해협에 바로 접해 있기에 크고 작은 배들이 수없이 왕래하는 모습이 건너편 멀리 아시아 지구의 모스크, 또 보스포루스교와 어울려 참 운치 있는 풍광을 연출한다. 멋들어진 관광선이 앞을 지나기에 선명(船名)인 ‘DENTUR AVRASYA’를 촬영해두었다.이튿날 호텔에서 10~15분쯤 걸어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베식타시(Beşiktaş) 부두로 향했다. 전날 본 것과 똑같은 이름의 관광선을 타고 보스포루스해협을 돌아봤다. 이 해협에는 수많은 종류의 관광선 서비스가 있다. 예전에 출장 왔을 때는 튀르키예 자회사에서 요트를 빌려서 세계 여러 곳에서 온 경영자들과 선상 파티를 즐겼다. 이번에는 보스포루스해협의 물살이 조금 거칠다고 들어서 소형 보트보다는 많은 사람이 타는 관광선을 택했다.
1600년을 이어온 문명의 수도
▎보스포루스해협에 위치한 시라간 궁전의 멋진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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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루스해협은 길이 30㎞, 폭이 가장 좁은 곳은 750m로, 오랫동안 군사적 요충지로 알려져왔다. 또 해협 주변에는 톱카프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 시라간 궁전 등 오스만제국 시절의 궁전들이 들어서 있다. 유럽지구 쪽으로 궁전과 모스크를 보며 흑해 방향으로 항해하자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보스포루스교가 점점 가까워진다. 주탑 두 개가 지지하는 현수교가 양쪽 대륙을 연결하는데 1973년에 완공됐다. 너무나 멋진 모습이다. 다리 길이는 1560m이고 폭은 33.4m이다. 주탑 간 거리는 1074m, 높이는 165m다. 선상 갑판에서 유럽 대륙-보스포루스교-아시아 대륙이 연결된 경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의 권유로 인증사진을 남겼다. 제1보스포루스교 밑을 지나니 멀리 제2 보스포루스교가 보이고 왼쪽으로 유럽 지구의 가장 높은 언덕 꼭대기에는 엄청나게 큰 튀르키예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흑해 방향으로 제2보스포루스교에 가까이 가니 유럽 지구 쪽으로 역사 유적지가 보인다.배는 제2보스포루스교에서 유턴해 아시아 지구 쪽으로 따라 내려오며 다시 베식타시 부두를 향했다. 아시아 지구 쪽에는 물길을 따라 멋진 식당들이 보인다. 보스포루스해협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이 만나는 지점이기에 특이한 군사·역사·문화적 궤적들이 있지 않겠나 생각이 들었다.이스탄불은 워낙 역사가 장구하고 복잡해 정확히 이해하려고 역사 자료들을 요약, 정리해보았다. 기원전 667년경에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된 이래로, 이스탄불은 전 세계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고, 거의 1600년 동안 여러 국가의 수도였다. 오랫동안 동로마제국(330~1204년, 1261~1453년)의 수도였고, 당시엔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불렀다. 동로마제국의 역사 중 잠시 라틴제국(1204~1261년)의 수도이기도 했고,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이후에는 오스만제국(1453~1922년)의 수도가 됐다. 1923년 튀르키예공화국이 세워지고 앙카라가 수도가 되면서 콘스탄티노폴리스는 1600년 만에 수도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그 후 1924년에 이스탄불로 개칭되었고, 튀르키예 최대 인구의 상업도시가 됐다. 특이한 점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한 오스만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하고, 정교회의 아야 소피아를 포함한 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이슬람교의 모스크로 개조한 것이다.
이스탄불에선 이슬람교도에 의한 차별과 억압은 있었지만, 기독교인 교회와 유대인 회당도 어느 정도 유지됐다. 따라서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서유럽 각국에서 온 상인과 사절 등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다문화 도시이자 동서 교역의 중심지가 됐다. 1985년 들어 이스탄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오스만제국의 군주가 거주했던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에 있는 두 번째 문. 경의의 문이라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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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에는 글로벌기업에서 함께 경영에 참여했던 덴마크, 이탈리아, 튀르키예, 말레이시아, 두바이 등지에서 온 동료들과 함께 역사 관광에 나섰다. 튀르키예 동료들이 현지 가이드를 준비해줬다. 첫 관광은 술탄아흐메트 광장(Sultanahmet Meydanı)에서 시작했다. 이곳은 옛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던 키르쿠스 콘스탄티노폴리스 경마장이었다. 고대 경마장이었던 히포드롬(hippodrome)에서는 경마와 전차 경주가 개최됐다. 지금은 옛날 모습은 사라지고 광장에는 고대 이집트의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청동뱀 기둥, 콘스탄틴 오벨리스크 등의 기념물만 남아 있다.특히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490년 이집트의 룩소르 카르나크 신전에 세워진 것을 테오도시우스 1세가 390년에 들여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경마장의 트랙 안쪽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 오벨리스크는 세 개로 분할해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운반했는데 상단 부분만 현존하고, 아래 대리석 받침대는 테오도시우스 1세가 만들게 한 것이다. 3500년 전에 만들어진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도 대단하고, 엄청난 무게와 크기의 오벨리스크를 그 옛날 이스탄불로 옮겼다는 사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어 블루 모스크(Blue Mosque)를 방문했다. 가운데 커다란 돔에 수많은 작은 돔을 얹은 형태의 디자인이 너무 멋지고 규모도 대단했다. 블루 모스크는 공식적으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Sultan Ahmet Camii)로 불린다. 아흐메트 1세의 통치 기간인 1609년에서 1617년 사이에 건설됐다. 오스만 건축의 가장 상징적이고 인기 있는 기념물 중 하나라서 수많은 방문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내부의 벽면이 푸른빛을 띠는 도자기 타일로 장식되어 블루 모스크라고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라는 평가를 받는다. 모스크에는 건물을 둘러싼 첨탑을 통상 네 개까지 설치하는데, 이 모스크에는 여섯 개를 세웠다. 이스탄불이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성지 메카에 있는 모스크보다 더 많은 첨탑을 세운 것이다. 모스크 내부를 밝혀주는 조명등은 아름답고 특이한 느낌을 주고, 외부의 넓은 뜰도 인상적이다. 블루 모스크는 1985년 ‘이스탄불 역사 지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고, 2006년 11월 30일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 교훈에서 얻는 미래의 변화
▎이스탄불 블루 모스크의 아름다운 내부 돔 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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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모스크에 가까이 있으면서 엄청난 역사와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대성당이자 이슬람 사원인 아야 소피아도 찾았다. 아야 소피아 또는 하기아 소피아의 정식 명칭은 하기아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The Hagia Sophia Grand Mosque)다. 장구한 역사만큼이나 많은 변화가 역사적 교훈을 주는 곳이다. 처음엔 동방 정교회 대성당으로 세워졌는데 현재는 이슬람 모스크와 정교회 성당으로 사용 중이다. 537년에서 1453년까지는 그리스 정교회 성당이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총본산이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라틴제국에 의해 점령된 1204년부터 1261년까지는 로마 가톨릭교회 성당으로 개조됐다가 이후 다시 정교회 성당으로 복귀했다.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1453년부터 1931년까지는 모스크로 사용됐고, 1935년에는 다시 박물관으로 바뀌어 개장했다. 그 후 2020년 에르도안 현 대통령이 박물관에서 모스크·정교회 성당의 혼합으로 바꾸었고, 현재는 ‘하기아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로 사용된다. 아야 소피아에서는 두 가지 종교의 유산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데 중요한 부분이 모자이크이다. 초기 모자이크는 유스티누스 2세 때 완성되었고, 지금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모자이크는 비잔틴 성상 파괴 운동이 끝난 10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그려졌다. 그 후 모스크로 바뀌면서 모자이크들은 회칠로 덮였는데, 193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발굴되고 복원됐다.
모자이크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건 황금색 바탕에 성모 마리아, 예수, 세례자 요한이 그려진 데이시스 모자이크다. 이를 비롯해 조이 여제의 모자이크, 콤네누스 모자이크,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가 의자에 앉아 있고 성모 오른쪽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상징하는 도시의 모형을 바치고, 왼쪽에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하기아 소피아를 상징하는 모형을 성모에게 바치고 있는, 남서쪽 입구 위의 팀파눔에 위치한 모자이크 등이 유명하다. 오래된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야 소피아는 기독교 문화유산인 동시에 이슬람 문화유산이기도 하니 그 역사가 참으로 변화무쌍해 인류사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톱카프 궁전의 하렘과 술탄의 보석, 시내의 그랜드 바자르 등 이스탄불은 이야깃거리가 너무나 많아 다음 기회에 더 소개하고 싶다.
▎아야 소피아의 모자이크.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의 오른쪽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도시 모형을, 왼쪽에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하기아 소피아 모형을 성모에게 바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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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과 아야 소피아의 역사를 돌아보며 이 세상은 항상 변화해왔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으니 영원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남는다. 다만 그 변화의 기록과 유적이 남아 현세의 우리와 후세의 자손들에게 교훈을 전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는 경제나 인구 문제가 정점을 지나고 있지 않느냐는 우려가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현재와 미래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리더십을 절실하게 발휘할 때다.
독자 여러분, 2024년 연말 즐거운 성탄절 맞으시고 풍요한 결실이 있는 연말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이강호 -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세계 최대 펌프 제조기업인 덴마크 그런포스그룹의 한국 법인 창립 CEO 등 33년간 글로벌 기업 및 한국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고, 2014년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협회(KCMC) 회장 및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와 2세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을 컨설팅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