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수백 개에 이르는 중국 장비 기업이 치열한 경쟁 속에 소수의 지배적 사업자 중심으로 개편될 것으로 보고 있고, 베이팡화창의 공격적 가격전략은 성과를 내고 있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중국산 제품들의 무서운 가격경쟁력을 AI가 그린 그림. |
|
얼마 전 중국에서 상장을 준비하는 반도체 장비업체의 대표와 만났다. 그 회사는 십여 년간 빠르게 성장해왔으나 이익이 나기 쉽지 않을 정도로 공격적인 가격에 장비를 수주해오고 있었다. 그에게 왜 그렇게 장비를 저렴하게 판매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중국에서는 덩치를 키우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대답했다. 중국 내수시장의 치열한 경쟁과 생존 방법을 보여주는 그의 간단명료한 답변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중국 최대의 반도체 장비기업인 베이팡화창(나우라테크놀로지)이 중국 시장에서 반도체 장비를 판매하는 가격을 보면 한국 기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반도체 장비 산업을 떠받치는 중국의 소재, 기계가공, 전장, 소프트웨어 등의 탁월한 가격경쟁력에 중국 정부의 과감한 보조금 정책까지 감안하더라도 깜짝 놀랄 수준의 낮은 가격으로 장비를 판매하고 있다. 중국 경쟁사들조차 베이팡화창의 공격적인 가격전략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현재 수백 개에 이르는 중국 장비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 소수의 지배적 사업자 중심으로 개편될 것으로 보고 있고, 베이팡화창의 공격적 가격전략은 성과를 내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출이 1조원 미만이었는데,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제재에 수혜를 받으며 매출과 이익 모두 폭풍 성장했다. 베이팡화창은 올해 4조원 이상의 매출이 예상되며 세계 10대 반도체 장비 기업의 반열에 올라섰다.중국산 태양광 모듈의 생산원가는 외국 경쟁사에 비해 30~50%가량 낮다. 이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중국의 태양광 기업들은 전 세계 시장의 80%를 장악했다. 중국 태양광 산업의 가격경쟁력은 이제 낮은 인건비와 정부 보조금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밸류 체인별 생산효율을 최적화했다. 잉곳, 웨이퍼, 셀은 태양광·풍력·수력발전으로 전기료가 85% 싼 신장 위구르, 내몽골, 운남성에서 생산해서 원가를 40% 가까이 줄였다. 싸게 생산된 태양광 셀을 중국 동부 해안가로 실어와 최첨단 로봇으로 자동화된 생산라인에서 대량생산해 전 세계에 판매한다. 중국 회사들의 태양광 모듈 생산 규모도 한국, 미국, 유럽의 경쟁사들과 비교하면 대여섯 배 정도다.전자업계에서 몇십 년 일하면서 중국 기업들의 무서운 성장과 이에 역풍을 맞은 한국과 외국 기업들의 쇠락을 지켜봤다. 태양광, LED, LCD에서 중국 기업들은 가공할 만한 가격경쟁력으로 글로벌기업들을 무너뜨렸고, 이제 휴대폰, 배터리, 반도체, 전기차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을 제치면서 올라오고 있다. 전자업계뿐만 아니라 철강, 화학, 조선 등 한국의 거의 모든 산업 분야의 리더들을 만나보면 가격경쟁력과 최첨단 기술력으로 무장한 중국 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이야기한다.
요즘 한국 쇼핑몰들을 위협하는 중국 쇼핑몰 알리와 테무의 공세가 거세다. 도대체 어떤 물건을 어떤 가격에 파는지 경험해보려고 몇 번 물건을 구매해봤다. 필요한 물건은 아니지만 상상 이상으로 가격이 싼 물건 수십 개를 사봤다. 대부분 한국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싸게 팔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중국에서 텐트 제조 공장을 운영하는 오랜 친구에게 중국에서 어떻게 가격경쟁을 하는지 물어봤다. 그 친구의 회사도 중국 쇼핑몰에서 요구하는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 공장의 오래된 재고들을 이용해서 일반적인 판매 가격의 60% 수준에 맞추어 생산해낸다고 한다. 규모의 경제와 치열한 가격 압박으로 제조사들의 공급망을 쥐어짜서 무서운 가격경쟁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상하이 박물관이 소장 중인 기원전 11~13세기 상나라 시대의 청동기 술잔. 중국은 3000년 전에 고도로 정교한 청동기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과 경제 인프라를 가진 나라였다. |
|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는 설계, 장비, 부품, 소재, 반도체 생산 등 공급망 전 분야에 걸쳐서 수백조원대에 달하는 중국 정부 보조금이 뿌려지고 있다. 중국 기업인들에게 중국 정부는 왜 이렇게 비즈니스 측면에서 무모해 보이는 정책을 쓰는지 물어봤다. 미중 패권 경쟁의 최전선이 반도체 산업이 된 이유도 있지만, 중국 정부가 태양열, 전기차, LED, LCD, 배터리 등 여러 산업에서 만들어낸 성공 경험을 반도체에도 적용한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산업의 초기에는 해외에서 기술을 가져오고, 보조금을 뿌려 수많은 회사가 시장에 참여하게 하고, 피비린내 나는 생존경쟁으로 내몰고, 그 과정에 산업의 인프라가 깔리고, 이를 기반으로 최후까지 살아남은 승자들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경험이 많다. 나는 지난 30여 년 동안 중국의 이러한 산업 굴기에 따라 수많은 한국 기업이 부침하는 것을 동시에 목격했다.중국 역사에서 거대한 내수시장과 대량생산의 전통은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넓은 평야, 다양한 기후대, 큰 강들이 흐르는 환경을 가지고 있어 농업과 생산 활동을 펼치기에 유리한 조건이다. 특히 황하와 양쯔강 등 주요 강은 풍부한 물을 공급했으며, 이러한 강을 따라 대규모 농업이 발달했다. 중국의 대운하(그랜드 커낼)는 베이징에서 남쪽의 항저우까지 약 1700㎞를 연결한다. 이 운하의 건설은 기원전 3세기 진시황 때 시작되었다. 수나라는 이 운하의 건설과 고구려 침공에 실패해 멸망했다. 이 대운하는 수나라 시대부터 황하 유역과 양쯔강 유역을 연결하여 전국적인 규모의 상업 네트워크를 형성해 중국 대륙의 핏줄이 되었다. 중국은 이렇게 고대부터 발달된 운하 수상 운송을 바탕으로 제국 질서를 탄탄히 정립하고 운영해왔기 때문에 지속적인 통합을 유지해올 수 있었다.기원전 3세기에 만들어진 진시황의 병마용 7000여 개는 얼굴은 모두 다르지만 몸통은 조립식으로 대량생산된 것이다. 병마용의 무기 체계에서도 표준화와 대량생산 기술이 보인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있기 전에 11세기 송나라의 산업혁명이 있었다. 11세기의 송나라 철강 생산은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초기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19세기 중반에 아편전쟁이 일어난 이유도 영국이 중국의 차, 비단, 도자기의 생산 경쟁력을 산업혁명으로도 이길 수 없어서 무역역조가 커졌기 때문이다.
가격경쟁력 못지않은 중국의 기술경쟁력
▎1888년 양쯔강 유역의 우시 곡물시장. |
|
한국의 리더들은 미국은 잘 알지만 중국에 대해 너무 모르고 관심도 별로 없다. 연구소에서 펴낸 보고서나 언론 보도 내용들도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어떻게 중국 기업들과 경쟁하고 협력해야 할지에 대한 내용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 반도체업계의 최고 경영자들은 미국 출장은 자주 가지만 중국 출장은 그리 자주 가지 않는다. 이제는 중국을 제대로 공부해야 할 때다.우리 민족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중국 대륙의 바로 옆에서 협력하고 경쟁해왔다. 앞으로의 수천 년도 같을 것이다. 나아가 이제는 새롭게 판이 짜이는 중국과의 협력과 경쟁에 대비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는 중국에 중간재와 자본재를 수출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지금까지 수출했던 상품들을 중국도 잘 만들어낸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세계시장을 두고 중국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얼마 전 중국에서 열린 반도체 전시회에 갔다가 중국 기업들의 가격경쟁력과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기술력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트럼프가 대중국 관세율을 60%까지 올리겠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강력하다는 반증이다. 게다가 최근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에 중국산 부품과 원자재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 제재가 더 가속화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트럼프 집권으로 대중국 제재가 더 강화될 때 가장 타격을 받을 나라로 한국을 지목했다. 한국에 중국은 최대 수출 시장이면서 중국 원자재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시장에서 가격경쟁력과 996(오전 9시~오후 9시, 주 6일 근무)으로 무장한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도 한층 더 격화될 것이다.
※ 김정웅 -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이자 연세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겸임교수. 30여 년간 5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이다.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의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2000년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기업 간 전자상거래 사업을 하다가 폐업 위기를 겪었지만 반도체 산업에 집중해 전화위복을 이뤄냈다. 지금까지 반도체 업계의 레거시 장비를 전 세계에 5만 대 넘게 판매하며 서플러스글로벌을 세계적인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5년 무역의 날 대통령상과 2021년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2012년에는 발달장애인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Autism Expo를 개최하는 등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