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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60) 눈: 차가움 속 따스한 울림 

 

눈 덮인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을 마주한다. 추위를 견디며 길을 찾아가야 하는 여정 속에서, 그 길 위에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덮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눈 덮인 풍경 너머로 새롭게 드러나는 빛을 발견하기도 한다. 겨울의 차가움 속에서 눈은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고요한 거울이 된다.

▎클로드 모네 <까치> 1869
첫눈이 내릴 때, 세상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다. 바람에 실려 흩날리는 눈송이들은 마치 하늘이 땅에 내리는 편지처럼 조용히 내려앉는다. 눈이 덮인 풍경은 순백의 캔버스가 되어, 잊힌 기억과 감춰진 감정을 그 위에 그려낸다. 새하얀 설경은 시작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어딘가 차갑고 아득한 거리감을 느끼게도 한다. 그 아래 감춰진 땅처럼, 우리의 마음속에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깊은 층이 존재한다.

눈은 우리 삶의 흔적을 덮어버리며 과거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한다. 하지만 눈 덮인 아래에는 여전히 자국들이 남아 있다. 눈은 우리의 발자국을 감추면서도 그 흔적을 잊지 않는다. 그렇게 눈은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모호함을 동시에 품는다.

어떤 눈은 따뜻한 위로를 전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눈과 함께한 추억은 포근함과 설렘으로 남아 있다. 반면에, 끝없이 내리는 눈이 주는 고독감은 어른이 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와 닮아 있다. 예술가들은 이런 눈의 양면성을 작품에 담으며, 눈의 차가움과 따스함, 투명함과 무게감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그려내곤 했다.

이제 하얗게 물든 풍경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할 시간이다. 눈이 전하는 메시지는 늘 단순하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는다. 눈송이 하나하나가 전하는 겨울 이야기가 당신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 떠올려보자.

순백의 순수함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 클로드 모네의 <까치>는 눈 덮인 겨울 풍경의 정수를 담아낸 작품이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들판 위에는 작고 단정한 울타리가 자리하고, 그 너머로 적막한 풍경이 펼쳐진다. 까치 한 마리가 나무 울타리에 앉아 있고,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눈 위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림 속 모든 요소는 고요와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생명력이 숨어 있다. 눈의 차가운 표면은 모네의 섬세한 붓질 덕분에 따뜻한 빛을 머금은 채 살아 숨 쉰다.

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리는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눈 속에서 순수한 추억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의 감정을 되살린다. 첫눈이 주는 설렘,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걸으며 느끼는 소유의 기쁨, 혹은 흰 눈이 덮인 세상을 보며 정화와 새로운 시작을 꿈꾸기도 한다. 반대로, 눈은 때때로 차갑고 고독한 감정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감춰진 듯한 겨울 풍경은 잊고 싶었던 기억이나 숨기고 싶었던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눈은 본래 그 자체로 어떤 색도, 감정도 담지 않은 순수한 존재다. 눈 덮인 풍경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흰 캔버스 같은 눈 위에 어떤 색을 칠할지는 온전히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림 속 까치처럼 세상과 거리를 두고 고요히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 우리는 마음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

순수함은 완벽하거나 흠 없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본연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겨울 풍경 속에서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다시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눈처럼 고요하게 내려앉는 그 순간들 속에서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하고, 삶의 또 다른 결을 느낄 수 있다.

고독을 담은 하얀 숨결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 <겨울 풍경> 1811
독일 낭만주의 작가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겨울 풍경>은 차갑고도 묵직한 정서를 품은 장면이다. 눈 덮인 언덕 위에 서 있는 작은 소나무들, 그 사이에 자리잡은 십자가, 멀리 안개 속으로 희미하게 드러난 교회의 모습은 고요하면서도 깊은 고독을 전한다. 저 멀리 보이는 교회의 실루엣은 인간의 손길이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감을 형성하며, 차갑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눈 위에 남겨진 작은 흔적들은 삶의 여정을 암시하듯, 그림 속 이야기를 보는 이에게 속삭인다.

<겨울 풍경>은 겨울의 차가움을 통해 고독의 본질을 드러낸다. 눈은 모든 소음을 삼키며 절대적인 침묵을 만들어낸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에서 고독은 단순히 외로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성찰과 명상의 시간을 제공하며, 자신과 마주하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차가운 풍경 속에서 우리는 자연 앞에 홀로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때로는 그 고요가 두렵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귀중한 순간이 된다.

그러나 고독 속에서도 희망은 존재한다.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한없이 차갑고 암울해 보이지만, 희미하게 드러난 교회의 모습은 믿음과 위로를 상징한다. 그림 속 십자가도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품는 인간의 끈질긴 의지를 떠올리게 한다. 눈은 모든 것을 덮지만, 그 아래에는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가능성을 숨기고 있다. 고독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이 고요한 겨울 풍경 속에서, 우리는 고독이 단순히 삶의 빈 곳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숨결임을 깨닫게 된다. 눈 덮인 차가운 언덕은 멀리서 빛을 품고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고 있다. 고독은 결국 우리를 더 강하게,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하늘에서 떨어진 하얀 놀이터


▎칼 라르손 <마당에서> 1895
스웨덴 작가 칼 라르손의 작품 <마당에서>는 눈 덮인 마당에서 한 아이가 썰매를 밀고 있는 모습을 따뜻하게 담아낸다. 뒤편에는 눈 위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는 또 다른 사람의 모습과, 나뭇가지 위에서 뛰노는 새들이 보인다. 눈 덮인 풍경은 하얀 순수함을 그대로 보여주며, 그림 속 붉은 집과 대비되어 더욱 따스한 감정을 자아낸다. 그림 한가운데에는 눈사람처럼 보이는 형태가 자리해 겨울 놀이의 흔적을 암시한다.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는 겨울날이지만, 장면 속 아이의 모습은 따스한 활기와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눈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동심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존재다. 눈사람을 만들며 얼음처럼 차가운 눈 속에서도 따뜻한 웃음을 나눴던 기억, 눈싸움을 하며 서로의 얼굴에 눈 뭉치를 던지고 깔깔대던 순간들, 썰매를 타고 언덕을 질주하던 아찔한 즐거움. 이러한 추억들은 눈이라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우리 마음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기는지를 보여준다. 눈은 단순히 차가움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순수하고 자유로웠던 시절을 상징한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눈은 종종 귀찮은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출근길을 방해하는 눈길, 치워야 할 눈 더미, 차갑고 축축한 옷 자락. 하지만 어렸을 때 우리는 이런 불편함을 몰랐다. 눈은 그저 하얗고 부드러운 놀이터였고, 모든 것은 놀이와 웃음으로 가득했다.

가끔 그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눈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눈은 아직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리의 시선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이 눈에서 즐거움을 찾았듯이, 어른이 된 우리는 눈 속에서 잠시라도 순수함과 따뜻함을 되찾을 수 있다. 하얗게 펼쳐진 겨울 풍경을 보며 마음속에 남아 있는 동심을 꺼내보는 것, 그것이 눈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고요가 전하는 이야기


▎알프레드 시슬레 <루브시엔의 눈 효과> 1876
풍경화를 주로 그린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 알프레드 시슬레의 겨울 풍경은 차분함과 고요함으로 가득하다. 그의 작품 <루브시엔의 눈 효과>는 눈 덮인 시골 마을의 평범한 일상을 그려냈다. 집 지붕 위에 소복이 쌓인 눈, 가지마다 흰 옷을 입은 나무들, 먼 배경으로 이어지는 숲의 부드러운 윤곽이 하나의 조화로운 장면을 만들어 낸다. 그림 속의 빛은 강렬하지 않지만, 은은한 색감으로 풍경 전체를 감싸며 따뜻한 평온함을 전달한다.

이 그림은 우리가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평온함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눈으로 덮인 겨울 풍경은 그 자체로 고요를 의미한다. 그것은 차갑고 단조로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움직임과 생명이 숨 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고요함 속에서 사람은 외부의 소음에서 벗어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심리적으로 평온함은 불안과 혼란 속에서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요소다. 겨울의 차분한 풍경은 우리에게 멈추고 깊이 숨을 고를 기회를 준다. 일상에서 평온을 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집중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이 순간들은 때로 삶의 방향성을 재정비하거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귀중한 시간이 된다.

시슬레의 그림처럼 차분한 겨울 풍경은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멈추는 것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한다. 눈은 모든 것을 덮어버리지만, 그 아래에는 여전히 살아가는 흔적과 가능성이 남아 있다. 차분함 속에서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하고, 삶을 다시 아름답게 바라보게 한다. 겨울의 고요 속에서 내면의 평화를 찾는 것,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눈 속에 담긴 계절의 선물

눈은 단순한 계절의 풍경을 넘어, 우리 삶의 다양한 면을 비춰준다. 차가움 속에서도 따스함을 품고, 고요 속에서도 생명을 숨기고 있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놀이터, 고독 속에서의 성찰, 평온함 속에서의 내면의 발견까지. 눈은 우리에게 순간마다 다른 이야기를 전하며,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마주한다.

겨울날 눈 덮인 풍경은 일상에서 잊고 살았던 것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흰 눈이 세상을 덮어 모든 것을 정리하듯, 우리는 삶의 복잡한 무늬 속에서 한 번쯤 멈춰 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하얀 캔버스 위에 새로운 색을 칠하며,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겨울은 차갑지만, 그 차가움 속에는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고요한 숨결이 담겨 있다. 눈이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순간, 세상은 잠시 멈추고, 그 속에서 우리는 지나온 흔적과 남겨질 길을 조용히 바라본다. 흰 눈 위에 그려진 풍경처럼, 삶은 늘 고요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겨울의 차가움과 눈의 부드러움이 공존하듯, 우리의 마음도 그 안에서 또 다른 빛을 품는다.

※ 김소울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다. 『치유미술관』 외 19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502호 (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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