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경성대 HK+ 한자문명연구사업단·월간중앙 공동기획 - ‘한자어 진검승부’(6)] 교통(交通)-현대인의 이동과 소통 

꿈이 현실로 다가온 지는 오래… 고립감 커지고 자존감은 엷어져 

이동·소통 막힌 상황에서 인간 존엄 지키는 건 어려운 일
전염병 대유행 이전 주고받았던 것들의 본질 반추해봐야


▎옛날에는 뗏목이 중요한 교통수단 중 하나였다. 강원도 영월 동강에서 열리는 뗏목 축제의 한 장면.
고도로 집적화(集積化)하고 분업화한 현대 사회의 우리는 생존을 위해 과거 선조들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을 정도로 광범위한 이동을 일상적으로 반복하며 살고 있다.

신도시에서 서울 도심 사이 대중교통으로 왕복 세 시간이 소요되는 출퇴근을 선조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해외 직구(直購)를 통해 이역만리 타국에 있는 판매자로부터 일주일 만에 내 집으로 물건을 배송받는 일은 또 어떻단 말인가?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한 자유로운 이동, 개개인의 신체 능력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크나큰 성취를 우리는 오늘도 이뤄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바로 교통(交通)이다.

인류사적 대격변, 인간 가동성 향상에서 촉발


▎KTX 개통 이후 서울~부산 간의 이동 시간이 2시간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 사진:연합뉴스
교통은 좁은 의미로 사람과 물자를 탈것에 실어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인다. 그러나 넓게는 사람과 물자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식과 정보가 오고 가는 것, 즉 통신이나 소통이라는 뜻까지 아우르기도 한다. 교통이라는 단어 속에 함의된 이동과 소통은 인간의 존엄 및 생존과 맞닿아 있는 것들이다. 이동과 소통이 가로막힌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과 생존을 지킨다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인간은 나의 삶을 위해, 지금 이 공간에서 조달할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이동한다. 또한 내 삶의 영위를 위해 필요한 것을 다른 누군가의 이동을 통해 확보하기도 한다. 우리는 직접적인 생존과는 무관하게 그저 누군가를 만나 소통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로부터 떠나 홀로 있기 위해 이동한다. 만나고 떠나는 행위를 통해 서로의 높은 존엄을 지키고 확인하기도 한다.

이전 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범위와 규모로 우리는 이동하고 소통한다. 그래서 현대인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이 자유가 제약받게 됐을 때의 고통을 상상하기 어렵다. 아니 어려웠었다.

예기치 못하게 들이닥친 전 지구적 전염병(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이 크게 뒤틀린 지 어언 1년 하고도 수개월. 가고 싶은 곳에 선뜻 가지 못하고, 만나고픈 이와의 만남을 망설일 수밖에 없게 된 세상. 오랜만에 용기 내어 친구와 밥 한 끼 함께했을 뿐인데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2주 동안 꼼짝없이 내 집 안에 갇히게 됐다는 사연이 남 일 같지 않은 요즘.

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부산에서 배 타고 당일치기로도 다녀올 수 있다고 들은 이국의 섬을 가끔 바닷가 전망대에서 멀찍이 바라볼 뿐이다. 자유로운 이동과 소통의 값어치를 그 어느 때보다도 절절히 느끼며 뒤바뀐 일상을 헤쳐나간다.

이동을 인간만의 능력이나 본능이라 할 수는 없다. 수많은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이동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더러는 다른 생명체에 붙어서나 대자연의 힘을 빌려 이동하기도 한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이동하며 그것을 통해 공간적 한계를 극복한다.

이동은 그것의 동력이 무엇이냐에 따라 나눠볼 수 있다. 가장 원초적이라 할 수 있는 걷기를 통한 이동은 인간의 신체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이다. 자전거나 노 젓는 배와 같은 탈것을 이용한 이동은 장치나 도구를 통해 추진력을 증폭시키기는 하지만 인간의 신체 능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한정적인 인간의 신체 능력을 동력으로 삼는 이동 방식은 가동성(可動性, mobility)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류는 그러한 가동성의 한계를 육상에서는 말·낙타·코끼리 등과 같은 인간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춘 동물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수상에서는 돛을 단 범선이 등장해 해류나 바람과 같은 자연의 힘을 추진력으로 삼아 고속 이동을 실현했다.

15세기 이후 포르투갈·스페인을 필두로 한 유럽 각국은 조선술과 항해술 발전을 통해 장거리 고속 이동의 가능 범위를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하는 안정적인 항로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대항해시대로 불리는 인류사적 대격변은 교통수단의 성능과 운용 기술의 향상을 통한 인간의 가동성 향상과 그에 따른 이동 가능 범위 확장 때문에 촉발된 것이었다.

이후 19세기 중반 내연기관의 발명과 그것을 적용한 증기선·기차·자동차 등의 교통수단이 등장하면서 교통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문명적 파장을 일으켰다. 뒤이어 수에즈 운하(1869년)와 파나마 운하(1914년)가 개통해 지리적 단절 요소 극복을 통해 이동 거리 자체를 대폭 단축함으로써 인간의 가동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20세기에 들어 이뤄진 항공 교통의 등장은 하늘이라는 새로운 교통 공간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사건이었다.

이렇듯 인류 문명은 교통수단의 발달과 함께 변화해 왔고, 그러한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예컨대 우리는 서울에서 부산을 2시간 남짓 주파하는 KTX가 등장하면서 일어난 일상의 변화를 기억한다. 4시간 넘게 걸리던 새마을호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면 그 곤혹스러움을 뭐라 형언해야 할까? 서울과 부산을 16분 만에 주파한다는 교통수단의 등장이 미래에 현실로 이뤄진다면 그것이 가져올 파급력을 가늠하기 힘들다.

땅이 사람 몸이라면 교통망은 혈관


▎3월 27일 수에즈 운하를 막고 있는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 위성 사진. 수에즈운하관리청(SCA)이 3월 29일 만조에 배를 예인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 사진:AP 연합뉴스
하지만 기술적 진보가 곧장 일상의 변화로 이어지지만은 않는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3시간 반 만에 대서양을 횡단하는 초음속 여객기가 등장했지만, 우리의 일상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고, 결국 2003년에 운항을 종료하고 사라졌다. 초음속 여객기가 아니더라도 대중적 항공교통이 등장한 지 이미 수십 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일상적 교통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저가항공사의 등장으로 전반적인 항공료가 하락한 이후의 일이었다.

올 3월에 발생한 수에즈 운하 봉쇄 사태로 인해 바스쿠 다가마가 개척한 희망봉 항로가 난데없는 북새통을 이루는 등 여간 난리가 아니었다. 그로 인해 벌어진 세계적인 물류 대란의 여파로 주유소에서 울상을 짓게 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내 일상이 전 지구적인 교통망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새삼 실감한다.

오늘날 우리는 촘촘한 교통망으로 이어진 공간을 살고 있다. 땅을 사람의 몸에 비유한다면 교통망은 혈관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인류 문명의 발전은 교통의 발달과 함께했다. 인류는 자급자족에서 벗어나 다른 집단과의 교역(交易)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람과 물품이 오가는 도로와 교통망을 형성했다. 국가가 형성되고 영토를 확장함에 따라 도로는 경제적 기능뿐만 아니라 통치 수단으로서 정치적인 기능을 갖게 된다.

태평성대에는 각지를 촘촘히 연결하는 길이 열리고 소홀함 없이 유지, 관리된다. 또한 그 길 위에는 사람과 수레가 재화를 싣고 쉼 없이 오고 갈 것이다. 고대 로마제국의 번영은 위아로마나(Via Romana)라는 도로 교통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몽골 제국이나 잉카 제국과 같은 광대한 영토를 경영한 대제국은 잠치(Jamchi, 站赤) 제도와 카팍냔(Qhapaq Ñan)과 같은 효율적인 교통·통신 인프라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잉카에서는 제국의 대동맥으로 기능하던 도로가 도리어 외부 침략자에게 이용됐고, 로마에서는 도로와 역참을 유지하기 위해 민중의 고통을 가중하는 등 제국을 쇠락과 멸망으로 내몰기도 했다. 잘 갖춰진 교통망 그 자체가 안정과 번영의 본질적 요건은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근대 이전 공적 교통·통신 체계는 안보와 직결


▎5월 3일 전남 고흥군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재학생이 전수 검사에 참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고대 중국의 전국(戰國)시대에는 서로 각축을 벌이던 나라들이 타국의 전차가 자신들의 영토에서 제대로 달리지 못하게끔 수레의 바퀴 너비를 각기 다르게 했다. 이후 진시황이 중앙집권적인 통일 왕조를 세운 후 중심 도로를 정비하는 한편 제각각이던 수레의 바퀴 폭을 통일함으로써 교통망을 정상화하고 사회 안정을 도모했다.

페르시아·로마·잉카 등과 같은 근대 이전의 여러 국가는 영토의 주요 거점을 잇는 도로를 닦고 일정한 간격마다 운송자가 휴식하고 운송 수단을 교체할 수 있는 역참(驛站)을 설치했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비교하면 한 번에 이동 가능한 거리가 짧았던 만큼, 한정적인 가동력을 역참을 통해 보완했다.

또한 역참은 국가 행정뿐만 아니라 군사 안보의 거점으로서 기능했다. 역참을 비롯한 근대 이전 공적 교통·통신 체계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것이었던 만큼 원칙적으로 공문서와 공무를 위한 여행자만을 취급하며 국가에 의해 독점적이고 폐쇄적으로 운영됐다. 사회적 혼란기에는 시스템 전반이 유명무실해지거나 민간 교통망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고대 중국에서는 주나라 때부터 공적인 교통·통신을 위한 제도와 시설이 존재했다. 이후 들어선 강력한 통일 왕조들은 저마다 국가적인 교통망을 정비해 운영했고 통치력이 유지되는 시기에는 그것이 안정적으로 기능했다.

제도와 시설의 명칭은 운송 수단과 방식에 따른 구별이 있었다. 郵(우)는 사람이 걸어서 릴레이식으로 공문서를 전달하는 것이었고, 傳(전)은 관리와 사신을 마차로 이송해 공무상 여행을 지원하던 제도였다.

驛(역)은 사람이 말을 타고 긴급한 문서를 빠르게 전달하는 교통·통신 제도를 의미했으나, 제도 운용을 위해 말을 상비한 운송 거점을 나타내게 됐다. 站(참)은 몽골제국의 교통·통신 제도의 거점 시설을 의미하는 몽골어 잠(jam)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몽골제국의 교통 체계 덕분에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할 수 있었고 동방견문록에서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교통 체계를 높이 평가했다.

당나라가 융성하던 시기 중국의 교통·통신 시스템은 율령과 함께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로서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 주변 민족에 전파됐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에 이미 중국식 교통 통신 체계가 도입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 실린 487년에 신라 각지의 도로를 정비하고 우역(郵驛)을 설치했다(始置四方郵驛, 命所司修理官道)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후 전통적 교통·통신 제도는 고려와 조선을 거쳐 갑오개혁 전까지 제도적으로 존속했다.

일본에서는 11세기에 율령 체제가 붕괴하면서 중국의 제도를 수용한 역전(驛傳) 또한 쇠퇴했다. 이후 근대 우편제도 도입 전까지 宿(슈쿠, しゅく)를 거점으로 해 발달한 교통망을 이용해 관민의 통신 및 교통이 이뤄졌다. 도쿄의 신주쿠(新宿)·하라주쿠(原宿) 등의 지명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이 언어라는 소통 수단을 얻은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소리로만 맴돌던 언어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옮겨 적을 수 있게 된 것, 문자의 발명은 그에 못지않은 혁명이었다 할 수 있다. 전화나 녹음기가 발명돼 인류가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음성언어를 주고받거나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백 년 남짓 사이의 일이다.

장거리 이동, 근대적 우편·대중교통 이후 보편화


▎출퇴근 시간대 서울 시내 상습 정체구간 중 하나인 남부순환도로 까치고개 일대. / 사진:김상선 기자
찰나의 순간에 허공으로 흩어지고 마는 말소리로 소통하는 것은 상대와 공간 및 시간을 공유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누군가의 입을 빌려 말을 전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한들 소통이 제대로 된다는 보장이 없건만, 하물며 남의 입을 빌려 전하는 내용에 왜곡이나 누락이 없을 수 있을까? 이렇듯 음성 언어는 보존성과 재현성의 측면에서 자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문자로 적은 편지나 문서는 물리적인 특성상 음성 언어보다 보존과 전달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므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소통이 가능하다. 문자로 적었다고 해서 오해나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보다 안정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갖춰졌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문자 언어를 통한 원격 소통은 보내는 이로부터 받는 이에게로 문서를 운송하는 과정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통신과 교통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교통·통신 체계는 국가에 의해 독점적 혹은 폐쇄적으로 관리됐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에서 편지를 부치려면, 가령 부산에서 서울로 보낸다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을 수소문하는 일부터 해야 했고, 그나마도 너무 긴 시간이 소요되거나 도중에 분실되는 일마저 왕왕 있었다.

민간인이 사적인 여행을 위해 역마를 빌려 탄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된 일이었다.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으면 누구든 편지로 원격 소통을 할 수 있고, 운임을 지불하면 누구든 교통수단을 타고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근대적 우편 제도와 대중교통이 도입된 이후에 보편화한 일이다.

오늘날 한국어 교통, 일본어 고쓰(こうつう), 중국어 자오퉁(jiāotōng), 베트남어 자오통(giao thông)은 교통법규·교통수단 등처럼 영어의 traffic, transport에 대응하는 의미로 쓰인다.

우선 교통을 구성하는 글자의 유래를 살펴보자. 交(사귈교)는 사람이 다리를 꼬고 서 있는 모습을 본뜬 글자로서 사물이 뒤엉긴 상태(交錯, 교착), 사람과 사람 간의 사귐(交際, 교제), 상호 행위(交易, 교역) 등의 단어를 파생했다. 通(통할 통)은 소리와 뜻을 함께 나타내는 甬(대롱 동)과 의미를 나타내는 辵(쉬엄쉬엄 갈 착)으로 구성된 글자로, 속이 빈 대롱을 관통하듯 막힘 없이 닿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구성 글자의 의미를 종합하면 交通(교통)은 ‘서로 막힘 없이 닿음’이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으며 현대 사회의 사회 인프라로서 교통의 역할과도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交通(교통)은 [사기(史記)]를 비롯한 근대 이전 동아시아 문헌에서 ‘교제하다’ ‘소식을 주고받다’ ‘마음이 서로 통하다’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 불교 경전에서는 ‘남녀의 육체적 교합’이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비대면 방식의 소통이 주는 허전함


▎일본 신주쿠의 지하고속도로. 신주쿠란 지명은 ‘새로운 역촌(驛村)’이라는 뜻에서 비롯됐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에 한국·일본·중국 등지에서 편찬된 대역 사전들을 보면 交通(교통)은 通信(통신)과 함께 ‘communication·correspondence’의 번역어로 등장한다. 오늘날과 달리 교통이라는 단어는 상호 소통의 의미가 더 우세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891년에 출판된 [영한자전](英韓字典, 제임스 스코트 지음)에는 traffic을 ‘장사·무역·흥정’과 같이 번역했으나 1925년 언더우드가 편찬한 [영선자전(英鮮字典)]에 이르러서야 ‘교통’이 번역어로 등장한다.

그러나 1931년에 나온 [영한대자전](韓英大字典, 제임스 게일 지음)에는 교통은 여전히 소통에 대응하는 경우가 많지만 교통 순사(Traffic Policeman)와 같이 교통 제도와 관련한 의미로 쓰인 단어도 드물게 보인다. 오늘날과 같이 ‘traffic·transport’에 대응하는 의미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20세기에 communication에 대응하는 단어로 通信(통신)이 우위를 점하게 된 이후에 일어난 변화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도신경]의 ‘the communion of saints’는 개신교 여러 교파에서는 예스러운 문체와 함께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으로 번역돼 읽히고 있다. 이것은 20세기 초반까지 교통이라는 단어가 상호 소통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였던 것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사도신경의 이 부분은 가톨릭에서는 통공(通功), 성공회에서는 상통(相通), 개신교 일부 교파에서는 교제(交際) 등으로 번역한다.

중국 5대 은행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교통은행(交通銀行)은 1908년 설립 당시 교통과 우편 전신 산업의 자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은행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영문명 ‘Bank of Communications’는 20세기 초 당시 중국어의 交通이 오늘날과 같은 좁은 의미로서의 교통뿐 아니라 우편과 전신을 비롯한 통신까지 아우르는 넓은 의미로 통용됐음을 보여준다.

2021년 현재 오랜 세월 인류의 소통과 이동을 제약해온 시간과 공간이라는 장애 요소는 정보통신 기술을 통해 상당부분 극복할 수 있게 됐다. 불과 십수 년 전에는 실현 불가능할 것 같았던 꿈이 현실로 다가온 지 오래다.

그렇지만 무슨 영문인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고립감은 커져만 가고 자존감은 더욱 옅어져 가는 듯하다. 교통, 즉 이동과 소통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도구적 수요다. 내가 이동과 소통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충족하고자 하는지를 알아차려야 한다. 그런 알아차림 없이는 이동도 소통도 그저 공허한 수단에 지나지 않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인해 소통하고 이동하는 것이 더 어렵고 부담스러운 세상이 됐다. 사회 각 방면에서 이제는 비대면 방식의 소통이 익숙하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허전함이 이따금 찾아온다. 그 허전함은 아마도 교통과 통신이라는 사회적 인프라만으로는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전염병 대유행 이전 우리가 서로 교통하면서 주고받았던 것들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곰곰이 반추해볼 따름이다.

- 신웅철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연구교수 shin.wngchl@gmail.com

/images/sph164x220.jpg
202106호 (2021.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