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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혼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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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음(心)의 발견그러면 인간의 ‘혼’ 또는 정신은 과연 어느 곳에 머물며 활동하고 있을까? 인간의 정신이 고도화돼 갈수록 이 점이 궁금해졌을 것이며, 정신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이 의문을 해결해야 했다고 본다. 과연 혼과 같은 형상이 없는 정신체가 육체에 깃들어 존재한다고 봤다면, 그 정수가 육체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물론 오늘날이라면 당연히 정신은 인간의 뇌에서 형성되고 성장한다고 설명했겠지만!전국시대로부터 진한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음양오행론에 입각한 자연주의 의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신체에 관한 체계적인 탐구가 이뤄졌다. 자연주의 의학은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 나아가 인간 몸의 질서가 다르지 않다는 통찰력을 보여줬으니, 이를 대표하는 저서가 [황제내경(黃帝內經)]이다. 여기에 이런 설명이 있다.심장은 생명의 근본으로 신(神)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 폐는 기의 근본으로 백(魄)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 신장은 칩거를 주관하고 장기를 가두어두는 근본으로 정(精)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 간은 움직임의 근본으로 혼(魂)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 비·위·대장·소장·삼초·방광은 저장하는 곳의 근본으로 영기(營)가 거주하는 곳입니다([황제내경] ‘소문·육절장상론’).인간에게 내재하고 있는 비물질적인 실재를 신·정·백·혼 네 가지로 나눠 설정하고 있다. 이 넷의 개념과 차이에 대한 설명은 접어두고, 단지 인간의 혼·백과는 달리 정신을 별도로 설정하고 있으며, 이 정신은 심장에 있다고 여긴 점이 주목된다. 그리고 [황제내경]의 다른 글에서는 “심장은 군주와 같은 기관으로 신명(神明)이 여기에서 나옵니다.”(‘소문·영란비전론’)고 해, 인간 정신활동의 핵심 기관으로 심장을 설명했다. 심장은 인체에서 거의 중앙에 있으며, 감정의 변화에 따른 장기의 활동이 직접 느껴지는 유일한 장기인 때문이었을 것이다.[황제내경]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배경에는 전국 중기 이후 제나라 직하학궁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황로(黃老) 사상과 이를 발판으로 인간 본성과 인간의 인식에 관한 탐구에 몰두했던 당시 사상계의 영향이 있었다. 당시를 대표하는 사상가였던 장자·관자·맹자·순자가 모두 자신들의 인성론과 인식론에 ‘심’을 끌어들였고, 이 ‘심’을 인간 본성과 인식의 주체로 대상화해 사유했다.
3. 양심과 사단양심(良心)’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맹자라고 본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본래 가지고 있는 선량한 마음이라는 의미다. 맹자는 본래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론(性善論)자인데, 이 선성(善性)이 내재해 있는 ‘심’이 곧 양심이다. 이는 당시 성악설과 배치되는 논리였는데, 맹자가 자신의 성선설을 입증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 ‘사단(四端)’이다.성선설과 성악설, 논지의 출발은 달라도 지향은 같아맹자의 ‘사단’은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선성의 흔적’으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이 네 가지다. 그는 인간의 마음속에 남겨져 있는 이 네 가지 흔적은 하늘이 우리에게 인간성의 본질로서 인·의·예·지를 부여했음을 증명한다고 한다.그럼에도 사람들이 나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이유는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선한 본성이 덮여 가려진 때문이라고 봤다. 마치 녹이 슬어 탁해진 동경(銅鏡)처럼. 그래서 거울을 닦아서 광택을 내듯이 마음도 닦아 빛을 내면 선한 본성을 되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편 맹자는 본성을 상실한 이런 마음 상태를 ‘방심(放心)’이라고 불렀으며, 그래서 “방심하지 말라(求放心)”고 충고했다.맹자의 성선론은 사실 우리에게 많은 희망적 메시지를 줬다. 누구나 우리는 자신의 지난 행동과 생각을 돌아보며 후회하곤 한다. 이 후회막급한 내 생각과 행동을 과연 공부나 수양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을까? 여기에 맹자는 가능성을 제시했던 것이고, 현재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교육학은 기본적으로 성선론에 입각해 있다.그렇다고 성악설이 잘못된 주장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순자의 논리적 설명을 들어보면 그 또한 설득력이 있다. 성선설이 하늘의 본성이 인간의 마음에 그대로 투영됐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면, 성악설은 인간의 마음은 하늘의 본성으로부터 분리됐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탄생은 하늘로부터의 분리이고, 본래 ‘선’한 하늘로부터의 분리는 곧 ‘불선(不善)’함을 의미한다. ‘불선’하기 때문에 나쁜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순자의 논리는 여기에서 반전된다. 사람이 하늘로부터 분리돼 나왔지만, 마치 고향을 떠난 나그네가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사람의 마음은 항상 하늘의 선함을 그리워하며 그 선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잘 지켜 끊임없이 노력하고 수련하고 공부해야 ‘불선’한 마음을 ‘선’하게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성악설이 성선설과 논지의 출발은 달라도 지향은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4. 일체유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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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심과 도심불교 사상의 영향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 한자 문명권에는 유학을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한 신유학 사상이 등장한다. 신유학은 정통 유학 사상의 마음 철학을 계승하고, 나아가 불교 인식론의 영향을 받아 보다 정밀하고 체계적인 마음 철학을 수립하는데, 그것을 통칭 심학(心學)이라고 부른다. 남송의 주희가 집대성했다고 해서 주자학이라고도 하는데, 한(漢)대 유학의 전통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불교 인식론의 성과를 수용함으로써 한자 문명사에서 마음의 문제에 관해 가장 풍성한 성과를 이뤘다고 하겠다. 반면 그 설명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모호한 대목도 많아 후대에까지 많은 토론거리를 남겼다.우선 송대심학은 ‘심’은 신체의 장기로서 ‘심장’이라는 전통적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의 심장과 동물의 심장이 다르고, 또 사람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 것은 ‘심’이 ‘기(氣)’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심기(心氣)’는 각기 다르지만, 또 한편 모두 보편적으로 동일한 면을 지니고 있으니, 맹자가 설명한 ‘사단’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하늘 또는 자연의 ‘리(理)’에 기반을 둔 것이며, 이 ‘리’로부터 동일하게 부여받은 것으로서 이것을 ‘성(性)’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심’은 단순하게 ‘기’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고, ‘리’가 통합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심’은 본연적인 ‘성’뿐만 아니라, 기질적인 ‘정(情)’을 같이 아우르고 있다고 설명한다.그러면 마음은 어떤 원리로 어떤 작용을 하는가? 우선 마음의 본질은 허령(虛靈)하다고 한다. 이 허령의 의미를 명료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인식 과정에 어떤 삿된 개입이 없고 밝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주희는 이런 마음을 일러 ‘도심(道心)’이라고 했다. 한편 마음의 기능은 지각(知覺)이라고 한다. 지각이란 감각기관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정감을 일으키는 작용이다. 불교 인식론에서 말한 ‘6식’이 이와 유사하다. 주희는 이런 마음을 일러 ‘인심(人心)’이라고 했다.
6 서학과 영혼불교의 전래 이후 한자 문명권에 다시 한번 지대한 영향을 미친 외래 사상은 서학(西學)일 것이다. 명나라 말기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학은 철학·사상·신학·천문학·지리학·물리학·수학 등 서구 유럽 학문의 전반을 소개했다. 가장 먼저 서학을 전해 준 사람은 마테오 리치였고, 그의 뒤를 이은 후배 선교사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한역 서학서들이 저술됐다. 한역 서학서 가운데 사람의 인식 문제와 인성에 관한 서구 스콜라철학의 내용을 소개한 것은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였다.그러나 [천주실의]는 천주교의 교리를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성격의 책이었기 때문에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23년 뒤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삼비아시가 한문으로 [영언여작(靈言蠡酌)]을 지어 스콜라철학의 영혼론을 소개했는데, 곧 한자 문명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인성과 인식에 관한 주제를 다룬 것이었다.실학 역시 조선 성리학 범주에 속해 있단 주장도제목에서 ‘영언’이란 “영혼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본래 ‘혼(魂)’을 나타내는 라틴어가 ‘아니마(anima)’인데, 이것을 ‘사람의 혼’을 지칭하는 데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혼을 의미하는 ‘아니마’를 ‘영혼’이라고 번역하기에 완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때문에, 본문에서는 ‘아니마(亞尼瑪)’로 음차해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천주실의]에서는 ‘인혼(人魂)’이라고 하기도 하고, ‘영혼’이라고도 했지, ‘아니마’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독자층인 중국 지식인을 배려했던 것이라고 본다. 스콜라철학의 영혼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혼삼품설’을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혼삼품이란 식물의 생명원리를 ‘생혼(生魂, 성장혼)’이라 하고, 동물의 생명원리를 ‘각혼(覺魂, 감각적 혼)’이라 하고, 사람의 혼은 ‘영혼(靈魂, 이성적 혼)’으로 구분한 것이다.특히 [영언여작]에서는 ‘영’을 줄곧 ‘이성(ratio)’이란 의미로 사용하고 있어, 그동안 한자문화권에서 사용하던 ‘영’자의 개념과는 달라서 흥미롭다. [천주실의]와 [영언여작]의 한역에 당시 항주 출신의 학자였던 서광계가 깊이 관여했는데, ‘ratio’나 ‘anima’를 놓고 어떤 한자를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토론이 있었을 것이며, 결국 ‘영’자를 쓰기로 결정한 것은 어쩌면 송대심학에서 마음의 본질을 나타내는 ‘허령’에서 착상했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스콜라철학에서는 ‘영혼’을 심장과 같은 인체의 특정한 부위에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스철학에서는 자연주의적 관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스콜라철학은 영혼이 신의 창조물이라는 관점에서 이를 단호히 부정한다. 영혼은 그냥 인체의 전체에 또는 각 모든 부분에 있는 자립적인 실체이며, 독자적 존재로서 죽지 않는 정신(神, spiritus)의 일종이라고 한다. 불교에서와 같이 육체와 영혼의 상호관계는 중시하지 않았던 것이다.서학의 영혼론과 인식론은 당시 한자문화권의 정통 유학 또는 신유학의 사유나 논리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당시 작지 않은 충격을 줬을 것으로 보는데, 중국의 지식인들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아직 연구된 바는 없지만, 유학의 전통이 오랫동안 정신을 지배해온 그들에게 종교적 색채가 강한 스콜라철학의 논리가 쉽게 수용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
7. 조선 실학에서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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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심리학의 시대근대 이후 과학이 발달하면서 ‘심’을 두고 그 안에 영혼이 있다거나 영명하다거나 본성이 들어 있다는 등의 말은 더는 하지 않는다. 이미 생각이나 마음은 뇌의 활동으로 일어나는 것임을 상식으로 알게 돼다. 그럼에도 아직 뇌 활동의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내 생각이나 마음을 나 스스로 제어하지도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그래서 요즘 인기 학문의 하나로 ‘심리학’이 주목받고 있다. 심리학(psychology)은 정신병리학에서 시작됐지만, 차츰 그 영역이 확장돼 인간의 행동과 정신활동의 과정을 대상으로 한다. 이것이 한자 문명권에 들어오면서 ‘심리’라는 말로 번역됐다. 이 ‘심리’라는 말에서 보듯이, 아직도 우리 한자문명은 마음이 심장과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해온 자연주의 전통을 버리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쨌건 심장이든 뇌든 우리 마음은 내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영혼이든 정신이든 내 마음의 주체로서 나를 나답게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동서양의 전통을 통틀어볼 때,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어디에서 일어나고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그 본질은 무엇인가를 무척 궁금해했고, 이것을 알기 위해 수많은 고민과 대화를 나눠왔다. 마음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아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김철범 경성대 인문문화학부 교수 cbkim@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