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경성대 HK+ 한자문명연구사업단·월간중앙 공동기획 - ‘한자어 진검승부’(10)] 영혼(靈魂)-사람의 본질에 관한 성찰 

마음 바로 세우기 위해선 먼저 아는 것이 중요 

‘영’ 하늘·자연에 존재하는 신, ‘혼’ 사람에게 존재하는 정신
영혼이나 정신 둘 다 내 마음의 주체로서 나를 나답게 해줘


▎2019년 5월 틱낫한 스님의 제자들로 구성된 ‘플럼빌리지법사단’(고동색 승복)이 마가 스님(맨앞) 초청으로 방한했다. 경북 김천 직지사에서 ‘틱낫한 명상’을 재연하고 있는 참가자들.
1990년 개봉돼 크게 흥행했던 데미 무어 주연의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억울하게 죽은 남자 주인공의 영혼이 하늘로 가지 못하고, 연인의 주변을 맴돌다 결국에는 억울함을 풀고 떠나는 이야기였다. 영혼에 관한 이야기나 영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일비재하다. 대개 영혼 이야기에는 사람이 죽은 뒤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 그러므로 살아 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이런 의문과 질문들은 궁극 마음과 인간성의 문제로부터 인간의 인식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철학적 탐구로 나아가게 했다.

1. 영혼의 어원


▎영화 [사랑과 영혼]의 명장면 중 하나. 남자 주인공 패트릭 스웨이지와 여자 주인공 데미 무어가 열연을 펼치고 있다.
한자의 역사에서 ‘영(靈)’이란 문자는 춘추시대에 등장했다. 이 글자는 ‘霝(영)’과 ‘巫(무)’가 결합한 것인데, ‘霝’은 ‘떨어지다’ 또는 ‘내리다’는 의미이고, ‘巫’는 제단을 나타내는 글자다. 처음 춘추시대의 금문에 새겨진 ‘영’자에는 ‘巫’가 아닌 ‘示’로 새겨져 있었는데, ‘示’ 역시 제단을 나타내는 문자였다. 이후 전국시대에는 또 ‘示’가 아닌 ‘王(玉)’으로 썼는데, 이 모두 강신(降神)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최종 ‘巫’로 자리 잡은 것은 한나라 이후로 추정된다. 따라서 ‘영’은 신을 영접하는 제관(무당)을 뜻하는 글자로 쓰였다. 당시 문자는 지역이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됐기 때문에 영은 한편 천신이나 혼령을 표현하는 데도 쓰였다.

‘혼(魂)’이라는 문자도 전국시대에 비로소 등장한 것으로 보는데, 갑골문에 나오는 ‘귀(鬼)’자의 의미와 유사하게 사용됐으며, 사람의 몸에 깃들어 있는 정신 또는 정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혼이 몸에 깃들어 있다가 죽으면 하늘로 올라간다고 여겼다.

이처럼 ‘영’과 ‘혼’의 어원으로 볼 때, 사물이 아닌 일종의 정신을 나타내는 점에서 공통점은 있지만, 엄연히 이 둘은 서로 다른 존재였다. ‘영’은 하늘이나 자연에 존재하는 신이고, ‘혼’은 사람에게 존재하는 정신이므로, 아주 드물게 ‘영’과 ‘혼’을 병렬로 사용한 경우는 있어도, ‘혼’ 앞에 ‘영’을 관사로 붙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고대 한자 문명권에서는 영혼이라는 어휘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영혼이란 말은 당시에 그냥 ‘혼’이었다.

육체는 유한, 혼은 불멸로 인식

처음 ‘혼’이라는 글자와 개념이 생겼던 것은 사후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사람은 육체와 정신(혼) 이 둘로 구성돼 있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러므로 죽은 뒤에 인간의 육신은 사라지지만 정신은 남아 존재한다고 믿었다. 육신이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고 한다면, 혼은 비물질적 존재로서의 또 다른 ‘인간’으로서, 사람의 존재를 이원적으로 인식했다. 그러면 육체는 유한하지만, 혼은 불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라지고 말 육체보다 길이 살아 있을 혼이 더 중요하게 되고, 한편 먹고사는 문제보다 정신세계가 더 중요하게 되는 법이다. 어쩌면 ‘혼’에 관한 관념의 형성은 인류에게 사상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2. 마음(心)의 발견

그러면 인간의 ‘혼’ 또는 정신은 과연 어느 곳에 머물며 활동하고 있을까? 인간의 정신이 고도화돼 갈수록 이 점이 궁금해졌을 것이며, 정신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이 의문을 해결해야 했다고 본다. 과연 혼과 같은 형상이 없는 정신체가 육체에 깃들어 존재한다고 봤다면, 그 정수가 육체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물론 오늘날이라면 당연히 정신은 인간의 뇌에서 형성되고 성장한다고 설명했겠지만!

전국시대로부터 진한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음양오행론에 입각한 자연주의 의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신체에 관한 체계적인 탐구가 이뤄졌다. 자연주의 의학은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 나아가 인간 몸의 질서가 다르지 않다는 통찰력을 보여줬으니, 이를 대표하는 저서가 [황제내경(黃帝內經)]이다. 여기에 이런 설명이 있다.

심장은 생명의 근본으로 신(神)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 폐는 기의 근본으로 백(魄)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 신장은 칩거를 주관하고 장기를 가두어두는 근본으로 정(精)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 간은 움직임의 근본으로 혼(魂)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 비·위·대장·소장·삼초·방광은 저장하는 곳의 근본으로 영기(營)가 거주하는 곳입니다([황제내경] ‘소문·육절장상론’).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는 비물질적인 실재를 신·정·백·혼 네 가지로 나눠 설정하고 있다. 이 넷의 개념과 차이에 대한 설명은 접어두고, 단지 인간의 혼·백과는 달리 정신을 별도로 설정하고 있으며, 이 정신은 심장에 있다고 여긴 점이 주목된다. 그리고 [황제내경]의 다른 글에서는 “심장은 군주와 같은 기관으로 신명(神明)이 여기에서 나옵니다.”(‘소문·영란비전론’)고 해, 인간 정신활동의 핵심 기관으로 심장을 설명했다. 심장은 인체에서 거의 중앙에 있으며, 감정의 변화에 따른 장기의 활동이 직접 느껴지는 유일한 장기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황제내경]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배경에는 전국 중기 이후 제나라 직하학궁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황로(黃老) 사상과 이를 발판으로 인간 본성과 인간의 인식에 관한 탐구에 몰두했던 당시 사상계의 영향이 있었다. 당시를 대표하는 사상가였던 장자·관자·맹자·순자가 모두 자신들의 인성론과 인식론에 ‘심’을 끌어들였고, 이 ‘심’을 인간 본성과 인식의 주체로 대상화해 사유했다.

3. 양심과 사단

양심(良心)’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맹자라고 본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본래 가지고 있는 선량한 마음이라는 의미다. 맹자는 본래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론(性善論)자인데, 이 선성(善性)이 내재해 있는 ‘심’이 곧 양심이다. 이는 당시 성악설과 배치되는 논리였는데, 맹자가 자신의 성선설을 입증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 ‘사단(四端)’이다.

성선설과 성악설, 논지의 출발은 달라도 지향은 같아

맹자의 ‘사단’은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선성의 흔적’으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이 네 가지다. 그는 인간의 마음속에 남겨져 있는 이 네 가지 흔적은 하늘이 우리에게 인간성의 본질로서 인·의·예·지를 부여했음을 증명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나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이유는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선한 본성이 덮여 가려진 때문이라고 봤다. 마치 녹이 슬어 탁해진 동경(銅鏡)처럼. 그래서 거울을 닦아서 광택을 내듯이 마음도 닦아 빛을 내면 선한 본성을 되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편 맹자는 본성을 상실한 이런 마음 상태를 ‘방심(放心)’이라고 불렀으며, 그래서 “방심하지 말라(求放心)”고 충고했다.

맹자의 성선론은 사실 우리에게 많은 희망적 메시지를 줬다. 누구나 우리는 자신의 지난 행동과 생각을 돌아보며 후회하곤 한다. 이 후회막급한 내 생각과 행동을 과연 공부나 수양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을까? 여기에 맹자는 가능성을 제시했던 것이고, 현재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교육학은 기본적으로 성선론에 입각해 있다.

그렇다고 성악설이 잘못된 주장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순자의 논리적 설명을 들어보면 그 또한 설득력이 있다. 성선설이 하늘의 본성이 인간의 마음에 그대로 투영됐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면, 성악설은 인간의 마음은 하늘의 본성으로부터 분리됐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탄생은 하늘로부터의 분리이고, 본래 ‘선’한 하늘로부터의 분리는 곧 ‘불선(不善)’함을 의미한다. ‘불선’하기 때문에 나쁜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자의 논리는 여기에서 반전된다. 사람이 하늘로부터 분리돼 나왔지만, 마치 고향을 떠난 나그네가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사람의 마음은 항상 하늘의 선함을 그리워하며 그 선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잘 지켜 끊임없이 노력하고 수련하고 공부해야 ‘불선’한 마음을 ‘선’하게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성악설이 성선설과 논지의 출발은 달라도 지향은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4. 일체유심조


▎“삼계[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는 허위요 마음이 지은 것일 뿐”이라고 선언한 원효대사의 좌상화(坐像畵).
“만약 사람이 삼세의 일체 부처들을 알고 싶다면, 분명 법계의 본성을 모두 오직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약인욕료지삼세일체불응관법계성], [화엄경])

불교의 전래는 1000년이 넘게 마음에 관해 성찰해 온 한자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그동안 한자문명에서는 육체와 정신(영혼)의 긴밀한 상호작용 속에서 마음의 본질과 작용을 성찰해왔다. 그러나 불교사상은 마음의 인식 작용에 모든 것을 집중시키며 육체를 허상화했고, 나아가 자연과 인간뿐 아니라 불교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절대적 지위를 ‘마음’에 부여했다. ‘일심(一心)’이 바로 그 의미이다.

그러나 불교의 인식론은 마음의 작용에 관한 성찰을 보다 정밀하고 풍부하게 만들었다. 외부 사물을 인식하는 여섯 기관[6근(根): 눈·귀·코·혀·몸·생각]을 통해 여섯 가지 대상[6경(境): 사물·소리·향·맛·감촉·법]을 인식하는 작용[6식(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에 대해 설명했는데, 이 6식 가운데 ‘의식’이 중심이 돼 나머지 다섯 가지 인식 작용을 통괄한다고 해, ‘의식’을 마음의 왕 즉 “심왕(心王)”이라고 했다.

신유학, 정밀하고 체계적인 마음 철학 수립

여기서 나아가 다시 일곱 번째 ‘내면의 자의식’과 여덟 번째 ‘감춰져 있는 진리에 관한 인식’을 제시하는데, 이는 감각기관을 통해 이뤄지는 인식 외에 마음의 내면 활동으로 이뤄지는 인식까지도 관찰했다. 대체로 인간의 번뇌란 특히 자의식과 같은 마음의 내적 작용 때문에 생겨나는 것으로 파악했으며, 그러므로 마음과 인식을 올바르게 통제해야 진정한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불교의 인식론을 총정리했던 신라의 원효는 “삼계(三界)는 허위요, 마음이 지은 것일 뿐이다”([대승기신론소])는 선언적인 결론을 내렸다.

5. 인심과 도심

불교 사상의 영향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 한자 문명권에는 유학을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한 신유학 사상이 등장한다. 신유학은 정통 유학 사상의 마음 철학을 계승하고, 나아가 불교 인식론의 영향을 받아 보다 정밀하고 체계적인 마음 철학을 수립하는데, 그것을 통칭 심학(心學)이라고 부른다. 남송의 주희가 집대성했다고 해서 주자학이라고도 하는데, 한(漢)대 유학의 전통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불교 인식론의 성과를 수용함으로써 한자 문명사에서 마음의 문제에 관해 가장 풍성한 성과를 이뤘다고 하겠다. 반면 그 설명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모호한 대목도 많아 후대에까지 많은 토론거리를 남겼다.

우선 송대심학은 ‘심’은 신체의 장기로서 ‘심장’이라는 전통적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의 심장과 동물의 심장이 다르고, 또 사람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 것은 ‘심’이 ‘기(氣)’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심기(心氣)’는 각기 다르지만, 또 한편 모두 보편적으로 동일한 면을 지니고 있으니, 맹자가 설명한 ‘사단’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하늘 또는 자연의 ‘리(理)’에 기반을 둔 것이며, 이 ‘리’로부터 동일하게 부여받은 것으로서 이것을 ‘성(性)’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심’은 단순하게 ‘기’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고, ‘리’가 통합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심’은 본연적인 ‘성’뿐만 아니라, 기질적인 ‘정(情)’을 같이 아우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 마음은 어떤 원리로 어떤 작용을 하는가? 우선 마음의 본질은 허령(虛靈)하다고 한다. 이 허령의 의미를 명료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인식 과정에 어떤 삿된 개입이 없고 밝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주희는 이런 마음을 일러 ‘도심(道心)’이라고 했다. 한편 마음의 기능은 지각(知覺)이라고 한다. 지각이란 감각기관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정감을 일으키는 작용이다. 불교 인식론에서 말한 ‘6식’이 이와 유사하다. 주희는 이런 마음을 일러 ‘인심(人心)’이라고 했다.

6 서학과 영혼

불교의 전래 이후 한자 문명권에 다시 한번 지대한 영향을 미친 외래 사상은 서학(西學)일 것이다. 명나라 말기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학은 철학·사상·신학·천문학·지리학·물리학·수학 등 서구 유럽 학문의 전반을 소개했다. 가장 먼저 서학을 전해 준 사람은 마테오 리치였고, 그의 뒤를 이은 후배 선교사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한역 서학서들이 저술됐다. 한역 서학서 가운데 사람의 인식 문제와 인성에 관한 서구 스콜라철학의 내용을 소개한 것은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였다.

그러나 [천주실의]는 천주교의 교리를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성격의 책이었기 때문에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23년 뒤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삼비아시가 한문으로 [영언여작(靈言蠡酌)]을 지어 스콜라철학의 영혼론을 소개했는데, 곧 한자 문명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인성과 인식에 관한 주제를 다룬 것이었다.

실학 역시 조선 성리학 범주에 속해 있단 주장도

제목에서 ‘영언’이란 “영혼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본래 ‘혼(魂)’을 나타내는 라틴어가 ‘아니마(anima)’인데, 이것을 ‘사람의 혼’을 지칭하는 데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혼을 의미하는 ‘아니마’를 ‘영혼’이라고 번역하기에 완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때문에, 본문에서는 ‘아니마(亞尼瑪)’로 음차해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천주실의]에서는 ‘인혼(人魂)’이라고 하기도 하고, ‘영혼’이라고도 했지, ‘아니마’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독자층인 중국 지식인을 배려했던 것이라고 본다. 스콜라철학의 영혼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혼삼품설’을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혼삼품이란 식물의 생명원리를 ‘생혼(生魂, 성장혼)’이라 하고, 동물의 생명원리를 ‘각혼(覺魂, 감각적 혼)’이라 하고, 사람의 혼은 ‘영혼(靈魂, 이성적 혼)’으로 구분한 것이다.

특히 [영언여작]에서는 ‘영’을 줄곧 ‘이성(ratio)’이란 의미로 사용하고 있어, 그동안 한자문화권에서 사용하던 ‘영’자의 개념과는 달라서 흥미롭다. [천주실의]와 [영언여작]의 한역에 당시 항주 출신의 학자였던 서광계가 깊이 관여했는데, ‘ratio’나 ‘anima’를 놓고 어떤 한자를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토론이 있었을 것이며, 결국 ‘영’자를 쓰기로 결정한 것은 어쩌면 송대심학에서 마음의 본질을 나타내는 ‘허령’에서 착상했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스콜라철학에서는 ‘영혼’을 심장과 같은 인체의 특정한 부위에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스철학에서는 자연주의적 관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스콜라철학은 영혼이 신의 창조물이라는 관점에서 이를 단호히 부정한다. 영혼은 그냥 인체의 전체에 또는 각 모든 부분에 있는 자립적인 실체이며, 독자적 존재로서 죽지 않는 정신(神, spiritus)의 일종이라고 한다. 불교에서와 같이 육체와 영혼의 상호관계는 중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학의 영혼론과 인식론은 당시 한자문화권의 정통 유학 또는 신유학의 사유나 논리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당시 작지 않은 충격을 줬을 것으로 보는데, 중국의 지식인들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아직 연구된 바는 없지만, 유학의 전통이 오랫동안 정신을 지배해온 그들에게 종교적 색채가 강한 스콜라철학의 논리가 쉽게 수용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

7. 조선 실학에서의 마음


▎요즘 들어 많은 사람이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요가를 선택한다.
조선 후기 실학은 당시 조선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사회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출현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제시한 정치·사회 개혁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실학은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성리학의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했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그런데 정작 실학 사상과 성리학 사상의 차이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리는 쉽게 알기 어렵다. 사실 그것을 밝히는 작업이 쉽지 않고, 연구자 사이에도 의견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도 학계에는 실학도 결국 성리학의 한 갈래이며, 조선 성리학의 범주에 속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미 앞에서 신유학의 심학을 간략히 소개했는데, 그것이 조선 성리학계에 승계돼 이황과 기대승을 비해 수많은 학자에 의해 활발한 토론이 전개됐다는 것은 우리 사상사의 자랑이다. 대체로 이 토론은 신유학 특히 주희의 논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를 놓고 이뤄진 것이었으며, 누구도 주희의 논지를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18세기 무렵에 등장한 실학자들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여기서는 ‘마음’에 대한 생각과 논점만 살펴보고자 한다.

성호 이익은 이치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지 않고, 사물의 관찰을 통해 이치를 파악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각 사물의 관찰을 통해 속성을 파악했고, 사물들의 속성에 그는 ‘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즉 토석(土石)은 ‘무심(無心)’하고, 초목은 ‘생장지심(生長之心)’이 있어서 자라고 시드는 것이 마치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또한 금수에는 ‘생장지심’에 ‘지각지심(知覺之心)’이 있으며, 사람에게는 거기에 ‘의리지심(義理之心)’이 더 있다고 했다. 그래서 토석의 마음은 ‘공(空)’하고, 초목의 마음은 ‘활(活)’하며, 금수의 마음은 ‘각(覺)’하고, 사람의 마음은 ‘영(靈)’하기 때문에 각자 마음의 이름도 서로 다르다고 한다.

내 마음, 스스로 제어하지도 못하는 일 허다

정약용의 경우, 그도 사람의 마음은 ‘오장지심(五臟之心)’ ‘영명지심(靈明之心)’ ‘심지소발지심(心之所發之心)’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고 했다. ‘오장지심’은 오장의 하나인 심장으로서의 ‘심’을 가리키고, ‘영명지심’은 오로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생명적 실체로 파악했다. 그러므로 ‘영명지심’은 형체가 없는 것으로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심장과 결합돼 작용하다가 죽으면 육체를 떠나 영혼이 된다고 했다.

정약용이 구분한 이 두 마음은 이익이 구분한 ‘혈육지심’과 ‘신명지심’과는 이름만 다를 뿐, 거의 같은 개념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는 또 하나의 마음인 ‘심지소발지심’이 있다고 했다. 이 마음은 맹자의 ‘사단’과 같이 측은한 생각이나 부끄러운 마음 등을 의미한다고 하며, 이런 마음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고 한다. 정약용의 설명 중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바로 ‘심지소발지심’이다. 그는 이 마음을 관찰하고 종합해서 ‘성’에 대한 독자적 견해인 ‘성기호설(性嗜好說)’을 주장했다.

대개 사람이 잉태돼 육신이 형성되면 하늘은 형체가 없는 영명한 실체를 부여하는데, 이 실체의 특성이 선을 즐기고 악을 미워하며 덕을 좋아하고 더러운 것을 부끄러워하니, 이것을 일러 성이라고 한다.([중용자잠]) 이 글에서 말하는 바, 즐기고 미워하며 좋아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곧 ‘심지소발지심’인데, 정약용은 이것을 두고 “기호”라고 요약했다.

8. 심리학의 시대

근대 이후 과학이 발달하면서 ‘심’을 두고 그 안에 영혼이 있다거나 영명하다거나 본성이 들어 있다는 등의 말은 더는 하지 않는다. 이미 생각이나 마음은 뇌의 활동으로 일어나는 것임을 상식으로 알게 돼다. 그럼에도 아직 뇌 활동의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내 생각이나 마음을 나 스스로 제어하지도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요즘 인기 학문의 하나로 ‘심리학’이 주목받고 있다. 심리학(psychology)은 정신병리학에서 시작됐지만, 차츰 그 영역이 확장돼 인간의 행동과 정신활동의 과정을 대상으로 한다. 이것이 한자 문명권에 들어오면서 ‘심리’라는 말로 번역됐다. 이 ‘심리’라는 말에서 보듯이, 아직도 우리 한자문명은 마음이 심장과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해온 자연주의 전통을 버리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쨌건 심장이든 뇌든 우리 마음은 내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영혼이든 정신이든 내 마음의 주체로서 나를 나답게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동서양의 전통을 통틀어볼 때,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어디에서 일어나고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그 본질은 무엇인가를 무척 궁금해했고, 이것을 알기 위해 수많은 고민과 대화를 나눠왔다. 마음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아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 김철범 경성대 인문문화학부 교수 cbkim@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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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호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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