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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윤석열 정부 지역·인구 전략의 이면(裏面) 

길항 관계인 ‘성장’과 ‘균형’ 사이에서 중심 잡기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윤 대통령, 지역균형발전 의지 강해도 국정 철학과 상충할 수도
김병준 “수도권에 기운 운동장의 유일한 균형추는 대통령 뜻”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11월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인 세종시 밀마루 전망대를 방문해 아파트 단지 등 세종시 전경을 바라보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병준 지역균형발전특위 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전기차 메이커인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최근 일본을 일러 “결국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당연한 얘기겠지만, 출생률이 사망률을 웃도는 특별한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어차피 존재하지 못할 것”이라고 국가 소멸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기준 일본 인구가 전 년보다 64만 명 감소했다는 일본 총무성의 최근 통계 발표에 보인 머스크의 반응이다. 머스크는 지난해 9월에도 “인류 문명의 최대 위험은 급속히 감소하는 출생률”이라고 지구촌에 경고음을 날렸다.

이웃 나라인 한국에서도 인구 감소는 특별한 해결법 없이 당장은 버틸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오래는 못 가는 국가적 재앙의 1순위로 꼽힌다. 인구 감소는 결국 수도권과 지방의 공멸을 부른다는 인식이 퍼져나간다. 이에 비례해 지역균형발전은 인구 감소를 저지하거나 막는 유력한 대안으로 다뤄진다. 예컨대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5월 4일 자 [중앙일보] 칼럼에서 세종시로의 대통령실 이전을 제안했다. 그는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두 나라를 지속해서는 지방 소멸은 물론 훗날 서울 소멸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며 “서울도 지방도 함께 죽는다”고 단언했다. “이번 기회에 세종시 수도를 개창, 모두 함께 사는 시대로 승화하자”고 했다. 수도권은 확대되는데 지방은 시들면서 나라가 수축사회로 가는 현실에 대한 우려가 녹아 있다.

이처럼 국내외 유력 인사들이 지속가능한 지구, 지속가능한 나라는 적정 인구를 유지하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한다. 또 지역균형발전은 인구 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유력시된다.

윤석열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5월 1일 인구 문제와 관련해 ‘윤석열 정부의 인구정책 방향 제안’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인수위 기획위원회 산하 ‘인구와 미래전략 TF’가 만든 활동보고서다.

저출산 ‘완화’에서 ‘적응’으로 클릭 이동

이 TF는 인구 성장기에 만들어진 각종 제도와 정책이 인구 변동기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 보고서는 49년 만에 출생아 수가 거의 4분의 1로 줄어든 통계(1972년생 95만 명→ 2021년생 26만 명)를 들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출생아 감소를 경계했다. TF는 과거 정부에서 이 같은 인구 변동 여파를 흡수하는 미래 전략 수립에 미흡했다고 평가하면서 새 정부는 인구 변동을 전제로 하는 전략 수립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특히 “예견되는 미래 상황에 잘 적응하고, 저출산 고령화에도 국민 삶의 질이 향상되도록 미래를 기획하는 방향으로 인구정책의 초점을 수정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나온 게 ▷지방행정구역 개혁 ▷생활공간구조 개편 ▷공급 위주 국토개발계획 변경 ▷거주와 일터의 공간 개념 수정 ▷지방산업의 선택과 집중 등의 방법론이다. ‘인구와 미래전략 TF’의 보고서는 인구 감소를 전제로 수축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에 적응하고 대비해야 할 과제에 방점을 뒀다.

이에 앞선 4월 27일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위원장 김병준)도 ‘지역균형발전 비전 및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의 균형발전 기본 방향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권력의 수도권 일극 집중 현상을 해소하고 지방 발전을 통한 국가 경제의 재도약’을 표방했다. 김병준 위원장은 이날 “어디에 살든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공정·자율·희망의 지방 시대를 만들기 위해 진정한 지역 주도의 균형발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지역균형발전과 관련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했다.

핵심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지역균형발전 정책 추진 주체가 바뀐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역대 정부에서 지역의 산업단지나 개발특구를 만드는 일은 중앙정부가 결정하고 추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지자체는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도 별로 없고, 만들어진 계획을 따라가는 수동적인 객체에 머물렀다는 반성이다. 반면 새 정부에서는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가 지역발전 관련 종합계획을 세우게 된다. 행정·교육·주거·의료 등 생활 기반 시설에다 기업 유치까지 필요한 설계와 집행을 해당 지자체가 주도한다. 나아가 신속하고 효율적인 발전 전략을 실행에 옮기는 일도 지역사회의 몫으로 돌렸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사의 “지방은 자신의 미래를 자율적으로 설계하고, 중앙은 이를 도와야 한다”는 대목과 오버랩된다.

지역균형발전특위는 지역균형발전 제1의 국정 과제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간 기능 재조정’을 요체로 하는 지방분권 강화를 설정했다.

국가와 지자체 간 기능 재조정은 월간중앙 지역발전연구소가 지난해부터 총 13회에 걸쳐 진행한 전국 주요 광역단체장과 현지 지성인 대담(‘구루와 목민관 대화’)의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중앙정부에 집중된 행정과 재정 권한이 지자체에 이양돼야 현지 실정에 알맞은 혁신적 시도와 지원이 가능하다는 게 광역단체장들의 일치된 요청이었다. 김외철 경상북도 서울본부장은 “지금은 지방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며 “서울 강남 주민이나 경북 오지의 주민이나 모두 똑같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걸 체감케 하는 조치와 정책을 중앙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때”라고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감을 피력했다.

지역 정책 주도권, 중앙에서 지방으로 넘긴다


▎지역소멸 위기를 맞아 2020년 7월 경남 남해 고현면민 300여 명이 남해를 찾는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인구 유치 홍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지자체의 재정력 강화에도 정책의 초점을 둘 전망이다. 지역균형발전특위는 지자체의 자주 재원 확충 방안을 구체화했다. 지자체 총 재정에서 차지하는 자주 재원의 비율을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 자주 재원이란 지자체에 사용 결정권이 있는 재원을 말한다. 지방교부세 법정 비율을 높이고 용도가 정해져 주어지는 특별교부세의 일부를 보통 교부세에 통합해 지자체의 재정운용 자율성을 키우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새 정부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성패는 1차적으로 ‘기회발전특구(ODZ: Opportunity and Develop ment Zone)’의 실행 과정에서 갈릴 전망이다. 기회발전특구는 기업의 지역 이전과 지방 투자를 촉진하는 청사진으로 지역균형발전특위가 제시한 아이디어다. 지자체가 고유한 성장전략에 입각해 특화 모델과 규제 특례를 신청하면 중앙정부로 하여금 이전하는 기업과 투자하는 개인에게 각종 세제, 법령 지원을 하게 하는 제도다. 오문성 지역균형발전특위 자문위원은 “과거 정부가 지역에 특구를 할당·배분하던 틀에서 벗어나 지자체가 스스로 특구를 구상하고 중앙정부에 요청하는 보텀업(Bottom-Up) 정책”이라고 부연했다.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는 세제 혜택과 같은 당근책이 부여된다. 기업은 수도권에서 누리는 혜택 이상의 이익이 돌아올 때 지역 이전을 검토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과거 취득세 경감과 같은 조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전례 없는 특혜를 주겠다는 게 지역균형발전특위의 결의다. 그 대상이 양도세와 상속세 분야다. 상속의 경우 가업 승계 개념을 신축적으로 적용해 기업들이 사업을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융통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고 한다. 지역균형발전특위 관계자는 “가업 승계의 폭을 넓혀 웬만하면 업종을 바꾸더라도 상속세 혜택을 주는 쪽으로 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균형발전과 인구 정책 구상은 이처럼 인수위 차원에서는 큰 가닥을 잡았고 실행 책임은 행정부의 몫으로 넘어왔다. 지역균형발전특위는 5월 12일 제주 지역균형발전 대국민보고회를 끝으로 실질적인 업무를 종료하고 백서 발간 등 후속 작업만 남겨둔 상태다. 지역균형발전특위가 업무를 종료함으로써 윤석열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관련 어젠다는 당장은 기존 정부 직제에 있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치분권위원회 등으로 분산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임기 5년 동안 지역균형발전 관련 기구를 통해 이 분야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지역균형발전특위가 해산하는 마당에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할 새 컨트롤타워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이치다. 지역균형발전특위 일부 위원들은 이른바 ‘국가균형원’을 신설해 추진주체로 활용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부조직법 같은 거버넌스 분야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인수위 기조에 따라 지역균형발전특위도 새로운 추진주체에 관한 어떤 입장도 채택하지 않았다.

국가균형원 아이디어의 역사는 제법 길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자문기구 성격의 국가균형원을 공약했고, 재임 시에도 행정자치부 장관이 행정자치부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통합하는 국가균형원을 제안했으나 실현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역균형발전 컨트롤타워 공백의 아이러니


▎한때 전세 품귀 현상마저 빚은 서울 강남 잠실동 일대 아파트 단지 전경. / 사진:연합뉴스
이번 인수위 과정에서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치분권위원회 등의 기존 지방자치 관련 기구를 통합하는 단일 조직으로 모색됐었다. 마치 개발연대의 경제기획원처럼 막강한 권한과 실행력을 갖춘 중앙부처로서의 위상을 가진 국가균형발전의 종합추진 체계가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나온 대안 성격이 짙다. 국가균형원 신설은 정부조직법을 바꿔야 가능한 사안이다. 현재의 불편한 여야 관계로 볼 때 관계 법령 개정에는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2024년 총선에서 여야 의석 구도가 재편된 이후에나 가능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봤듯이 저출산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문제는 국가의 존립에 직결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현안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에서 지방, 균형, 인구, 저출산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장능인 지역균형발전특위 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는 역대 대통령처럼 국정과제를 망라하는 게 아니라 국가의 이념과 질서, 방향성을 강조하는 취임사였다”면서 “취임사에서 언급되지 않았다고 해서 국정과제로서의 의미가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취임사에 등장한 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 갈등과 같은 어젠다에 견줘 지역, 인구 현안이 밀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반응도 있다. 정치는 팩트(Fact, 사실)보다 퍼셉션(Perception, 인식)이 중요할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김병준 위원장도 “지역균형발전의 거의 유일한 수단이 대통령의 의지와 힘”이라며 다음과 같이 힘줘 말했다.

“국회의원도 비례대표까지 포함하면 수도권이 우세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대부분 수도권에 몰려 있고, 그들은 수도권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주요 관료조차 지방 출신보다는 수도권 출신이 더 많아졌다. 지방에서 태어나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관료들이 점점 줄어드는 탓이다. 그래서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의 운동장이 수도권에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다. 의사결정 메커니즘 자체가 수도권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어떤 강력한 힘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게 바로 대통령의 힘이다.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수단이 바로 대통령의 의지와 힘이다. 대통령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

국내 많은 지자체는 지역균형발전과 인구 증가의 관건적 요소로 일자리 창출을 꼽는다. 일자리가 이런 문제의 만능 키로 인식되는 현실에 함정은 없을까? 일본 수도대 도쿄도시사회학부의 야마시타 유스케 교수가 쓴 [지방회생-인구 감소와 수도권 초집중 극복의 길]은 이런 논의에 중요한 참고점을 제공한다. 그는 “어느 지역에 고용이 늘어나 젊은이들이 많아지면 그 지역의 출산율이 증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동에 따른 효과이지 출산력 자체의 회복과는 다른 문제”라고 일침을 가한다. 그는 인구 급증 지역의 출산율이 낮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들어 인구 유입이 장기적으로 지역의 존립과 지속가능성과 충돌할 수도 있다는 논지를 폈다.

지금보다 생산력을 떨어뜨려야 지방이 산다?


▎5월 9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위 부산 대국민 보고회에서 김병준 위원장, 박형준 부산시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사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일자리와 인구가 집중된 도쿄와 서울의 출산율은 극히 저조하다. 2021년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63명으로 17개 광역지자체 중 꼴찌를 기록했다. 도쿄 역시 2020년 1.13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야마시타 교수는 인구 감소 현상은 선진국의 문제이고 저개발 국가에서는 인구가 증가하기 때문에 경제성장과 출산력은 반비례 관계임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지방에 일자리를 만들면 인구 감소가 멈출 것이라는 논리가 잘못됐다”고도 했다. 이는 다분히 논쟁적인 분석이다. 야마시타 교수는 ‘지방 소멸’과 ‘인구 감소’가 별개의 사안이 아니며 궁극적으로 도시와 국가의 존립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규명했다. 그래서 지역균형발전은 지방이라는 일부를 위하는 정책이 아닌 나라 전부를 살리는 정책이라는 논리로 확장된다.

일론 머스크가 우려했듯이 야마시타 교수도 오래전에 이런 일본의 ‘멸망의 미래’를 예견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은 사회를 구성하는 인구를 정상적으로 재생산할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 만약 예측대로 수십 년간 급격하게 인구가 줄어들어 고령화가 가속화하면 확실한 재정도, 활력 있는 경제도, 강한 외교력도, 군사력도 모두 유지할 수 없다고 야마시타 교수는 단언한다. 그래서 “인구 문제야말로 지방 창생의 출발점이며, 그것을 해결하려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야마시타 교수의 성찰은 도시화와 성장을 이끌어온 기존의 가치 체계인 ▷경제지상주의 ▷국가지상주의 ▷선택과 집중의 논리는 재고돼야 한다는 귀결로 이어진다. 특히 이 문제에 진지하게 마주하자면 ‘경제보다 사회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그러자면 지금보다 생산력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다소 급진적인 결론에 이른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한국의 경우 생산력을 떨어뜨리는 등 경제 성장을 해(害)하지 않고도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구조로 갈 수 있다며, 야마시타 교수와는 결이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수도권의 밀도를 낮추고 지방을 보강하는 궤도에서 경제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전체의 편익을 줄이지 않는 선에서 중앙과 지방의 균형을 이루는 접점을 찾아야 한다. 마 교수는 “수도권 밀도가 높아지고 경쟁이 심화하면서 우리 사회가 ‘집적의 경제’를 넘어 ‘집적의 비(非)경제’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며 분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한국의 학자들이 정밀한 계산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미 수도권에는 집적의 고도화가 야기한 불경제 효과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대한민국은 지난 15~16년간 저출산과 씨름하는 데 380조원,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144조원을 쏟아부었다. 양쪽 다 받아 든 성적표는 참담하다. 출산율은 지속해서 떨어졌고, 지역 위축은 심화했다. 야마시타 유스케 교수의 [지방회생-인구 감소와 수도권 초집중 극복의 길] 번역자들이 남긴 후기는 한국의 현실을 저격하는 듯했다. “소멸될 것으로 지목되는 지자체들은 살아남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구체적 목표와 비전 없이 어떻게든 검증되지 않은 정책수단을 무분별하게 동원해 지방 소멸과 사투를 벌이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중략)지방의 문제는 지방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한국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출산과 균형발전의 파이프라인을 발굴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한국보다 앞서 동일한 시련에 직면한 일본의 다른 사례를 보자. 인구 정책 전문가인 히로이 요시노리 일본 교토대학 교수는 저서 [AI가 답하다- 일본에게 남은 시간은?]에서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에 대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붙였다.

‘그곳’ 분위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의 위험

“일본은 ‘그곳’의 분위기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곳’에서의 합의가 좀처럼 어려운 분배와 부담의 구조 같은 논의를 피하고, ‘그곳에 없는 사람’들에게 떠넘겨버리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보면 그곳에 없는 사람의 전형이 바로 미래 세대일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미래 세대에게 빚을 부담시킨 배경에는 이러한 요인이 작용한다.”

대한민국도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에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자부하지만 지방 쇠퇴, 인구 감소라는 존립 위기는 더 심화하고 있다. 한국도 대응 방식은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강래 교수는 우리 세대가 당대의 존립에 급급해 미래 세대에게 짐을 떠넘긴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많은 이가 생존을 위해서 미래 세대에 짐을 떠넘기고 있다. 미래 세대를 포기한 것이다. 당장 살아남기 위해서 너도나도 여기 수도권에 머물고 있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의 시간이다. 21세기 들어 전임자들이 예외 없이 시행착오를 겪어온 지역 소멸과 저출산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 그는 지역균형발전이 저출산 해법임을 통찰하고 있다. 당선인 시절인 3월 24일 지역균형발전특위 간담회에 참석해 “지방시대의 모토를 가지고 새 정부를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출산율과 지역균형발전의 상관관계를 확실히 했다. “저출산 문제가 단순히 일자리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지방이 균형 발전해서 수도권에서 목숨 걸고 경쟁하는 구조가 안 바뀌면 저출산 문제가 풀릴 수 없다.”

반면, 대통령 취임사 저변에 흐르는 기류는 번영과 풍요, 도약과 성장에 대한 여망으로 수렴되는 듯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서 “이 문제는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룩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성장’과 ‘균형’은 속성상 다른 방향으로 달리려는 두 마리 토끼와 같다. 그간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줄고 지역이 쇠퇴했다면 이는 경제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시대가 지났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반증일 수도 있다. 결국 답이 없는 것에서 답을 찾는 게 국가지도자의 숙명일까? 완전한 해법은 아니더라도 더 나은 해법을 찾는 시도와 용기가 필요한 때다.

-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202206호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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