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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특집] 윤석열 정부 첫 시험대 ‘나토 외교전’ 성적표는? 

숨 가쁜 세일즈 외교 ‘방문판매’의 효과는? “글쎄” 

나토 정상회의서 ‘비전문’ 발표하며 참석의 당위적 목적 설명한 일본과 대조적
국력에 부합하는 외교 협상 벌여야 세계의 자유와 번영, 평화에 기여할 수 있어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려고 스페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9일 마드리드 이페마(IFEMA) 컨벤션센터에서 아시아 태평양 파트너 4개국 정상을 비롯해 옌스 스톨텐베르그(가운데) 나토 사무총장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왼쪽 둘째) 일본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왼쪽) 호주 총리, 저신다 아던(오른쪽 둘째) 뉴질랜드 총리와 함께 나토 정상회의에 아시아 태평양 파트너 4개국 자격으로 초청됐다.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며 첫 외교 행보에 나섰다. 대통령의 첫 해외 방문이었던 만큼 그의 모든 언행은 국내외 외교계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말로만 듣던 ‘세계 자유, 번영과 평화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외교 기조가 현실정치에서 어떻게 그 의미를 구현할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이가 많았다.

이번 정상회의는 특히 세계 자유, 번영, 평화의 명운이 걸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책략을 마련하는 자리였던 만큼 한국 대통령의 입에도 관심이 쏠렸다. 우리 국민은 이번 정상회의의 취지와 목적에 부응하는 한국 대통령의 강력한 외교적 메시지를 기대했다. 대통령실은 그러나 이번 회의의 참석 목적을 ‘경제안보’와 ‘세일즈 외교’로 포장하면서 국민에게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윤석열 정부는 더욱이 한·미 동맹 강화를 이유로 미국이 마련한 외교의 장에는 무조건 참석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미·일 3국 회의에 적극적이다. 문제는 후과를 염두에 둔 행보인지 확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적어도 윤석열 정부는 한국 주변 판세의 추이를 파악하면서 전략과 대안을 갖고 외교를 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는 얘기다.

6월 29일 나토 정상회의에서 3분간 이어진 윤 대통령의 연설문에는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과 나토와의 협력에 어떻게 기여하겠다는 메시지가 부족해 보였다. 나토와 한국의 관계에 대해 “자유와 평화는 국제사회의 연대에 의해 보장되는 만큼 대한민국과 나토의 협력 관계가 자유와 민주, 법치 등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는 연대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새로운 경쟁과 갈등의 구도가 형성되는 가운데 우리가 지켜온 보편적 가치가 부정되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면서 한국이 1억 달러의 지원금을 집행한다고만 밝혔다. 안보회의였던 만큼 나토 회원국을 대상으로 북한 핵위협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 참여한 목적이었다. 대통령실은 출국 전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3일간 각국 정상과 원자력, 반도체, 청정에너지 등 미래 먹거리 확보와 경제안보 협력 체제 구축에 관한 의제를 논의한다”며 참석 취지와 의도를 설명했다. 하지만 전쟁의 화마에 빠진 유럽 정상들과 조우하는 자리에서 이른바 세일즈 외교로 한국의 경제안보를 챙기겠다는 점에서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윤석열 정부 외교력, 과거 정부 수준 못 벗어나


▎6월 29일 오후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국제회의장에서 한·미·일 정상회담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는 윤석열 대통령. / 사진:대통령실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 기간 총 16건의 외교 일정을 소화했다. 다자 정상회의 1건(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 소 다자회의 2건(한·미·일, AP4), 양자 회담은 총 10건이었다. 윤 대통령이 회담한 나라는 호주, 네덜란드, 프랑스, 폴란드, 유럽연합(EU), 튀르키예(옛 터키), 덴마크, 체코, 캐나다, 영국 등이었다. 스페인 국왕 등과도 따로 면담하면서 그야말로 세일즈 외교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만남이 ‘바람과 기대’, ‘요청과 당부’, ‘기회 모색’, ‘공감대 형성’, ‘뜻을 같이 모았다’ 등의 말미로 종결되면서, 실질적 결실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여지를 남겼다. 이른바 ‘방문판매(방판)’의 효과는 없어 보였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의 이번 세일즈 외교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가치관에 적응하지 못한 채 결국 붕괴로 치닫는 가정의 비극을 그려낸 아서 밀러 작가의 고전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상케 했다.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겠다는 슬로건의 실상이 소설의 결말처럼 허상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윤 대통령의 안보 관련 관심사는 역대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북핵문제였다. 세계의 자유와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포부에 어딘가 미치지 못하는 구석이 있어 보이는 대목이다. 역대 정부가 외교 영역에서 한국의 위상에 부합하지 못하는 퍼포먼스를 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북한 핵문제에만 함몰됐기 때문이다. 새 정부마저 과거의 과오를 재현해 안타까울 뿐이다.

여기서 우리의 라이벌인 일본의 퍼포먼스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총리실은 나토 정상회의 개최에 앞서 자신들의 목표와 목적, 취지를 담은 비전문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일본의 비전(Japan's Vision on Attending the NATO Summit)’을 발표했다. 일본은 비전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 질서의 기초를 잠식하고 세계 경제와 시민들의 삶에 고통을 주는 상황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탈냉전시대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결정적 시기에 개최된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가 불가분한 관계임이 입증된 이상, 일본이 2007년부터 추구해온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FOIP) 전략에 유럽과의 안보 관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기술했다. 비전문을 통해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대한 당위적 목적을 설명한 것이다.

한·미·중·일 간 한반도 주변 판세의 새 흐름 주시해야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6월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일 정상의 나토 참여를 비난했다. / 사진:신경진 중앙일보 기자
일본은 또한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나토와의 군사적 협력 강화의 정당성을 제시했다. 2022년 말 국가안보전략 보고서, 2023년 봄 ‘평화를 위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가칭)’를 출간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나토를 비롯해 개최국인 스페인 해군과의 관계 발전도 시사했다.

일본은 특히 러시아의 핵위협, 세계의 핵군축과 유엔의 역할 강화를 위한 노력을 부단히 경주할 것을 천명하면서 유엔 개혁에도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정상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가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고 강조했으며 “지역의 현상 유지 상황을 무력 혹은 일방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세력에 결코 인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의를 천명하기도 했다.

중국은 나토 정상회의에 앞서 한국과 일본의 회의 참여에 반대하는 발언을 연신 토해내 눈길을 끌었다. 특히 한국의 참여를 두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아태 지역은 북대서양의 지리적 범주가 아니다”라며 “아태 지역 국가와 국민이 군사집단을 끌어들여 분열과 대항을 선동하는 어떤 언행에도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 국무부 측에서 중국 측 입장에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브리핑에서 한국에 관한 질문을 받자 “중국은 한국이 무슨 회의에 참여할지에 대해 거부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국이 한국의 나토 정상회의 참여에 발끈한 이유가 뭘까? 그 이유는 자유민주 진영이 보여준 결속력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미국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은 미국 ‘노병(老兵)’의 글로벌 리더십 능력을 의심해왔다. 1990년 탈냉전 이후부터 미국의 쇄락을 운운하며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 국제질서의 지속성에 회의적이었다. 특히 2001년 9·11 테러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퇴색해감을 믿은 이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정책으로 확신을 얻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후해 자유 국제질서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미국의 호출에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이 단결하면서 미국의 리더십을 의심하던 이들이 역공을 당하는 격이 됐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하는 나라들이 권위주의 정권의 공세적인 대외 행위와 주권 원칙을 위배하는 세력에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 이번 나토 정상회담에서 10년 만에 채택된 ‘신전략개념’에서도 투사됐다. 따라서 ‘인도·태평양 전략(인태전략)’, ‘쿼드(QUAD)’, ‘오커스(AUKUS)’,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등 미국 주도의 권위주의 국가 대항마 격인 전략 구상의 현실화, 실체화가 더욱 탄력을 받을 태세다. 미국 노병의 죽지 않는 결연함에 권위주의 국가들의 전략 계산에 큰 차질이 생긴 것이다.

여기에 일본을 필두로 신흥 안보 세력이 부상하면서 세계와 한반도 주변 지역의 역학 구도가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일본은 2007년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에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안보 모토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인도·태평양 전략의 선봉에 나서 쿼드의 핵심이 됐다. 중국의 군사적 부상과 북핵 위협 현실화를 빌미로 2015년에 ‘미·일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면서 자위대의 방어 범위를 한반도, 동중국해, 대만해협 인접 지역까지 확대했다. 특히 아베 전 수상의 갑작스러운 사망 뒤 7월 10일 중간 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하면서 ‘평화헌법’을 개헌할 수 있는 의석수를 차지한 만큼 향후 일본의 외교 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 외교 행보에 공개적으로 적개심 드러낸 중국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6월 30일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국제회의장에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군사·안보 영역에서 일본의 거침없는 외교 행보는 중국은 물론 그 우방인 러시아와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 일본이 미·일 정상회담과 쿼드 정상회담에서 재차 강조했듯 자위대의 방어 대상을 대만해협까지 확장하려는 행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특히 주(駐)대만 일본대표부에 현역 자위대 장교를 올해 여름 정보관으로 파견하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일본이 그동안 대만 일본 대표부 정보관으로 퇴역 군인을 파견해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 소식을 접한 중국은 6월 2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사설 논평을 통해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 대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일본’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중국의 분노가 맹렬히 뿜어져 나왔다. 올해로 수교 50주년을 맞이한 중·일 관계가 30주년인 한·중 관계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거듭하자 미국은 역으로 한·일 관계 개선의 중재자를 다시 한번 자청하고 나섰다. 관련해 올해 들어서만 다섯 차례의 한·미·일 3국 장관급 회의 개최를 주도했다. 2월 21일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의를 시작으로, 3월 31일 합참의장 회의, 6월 11일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의 국방장관회의, 6월 29일 나토 정상회의 기간 중의 정상회담, 7월 8일 발리 G-20 외교장관회의 기간 중의 외교장관회의 등이 연속으로 열렸다.

중국은 이 가운데 한·미·일 3국의 군사 협력에 관한 논의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한국 정부의 입장과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3국의 군사 훈련 가능성을 부인했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군과 정부 간 불협화음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샹그릴라 국방장관회의에서 3국 군사 훈련에 합의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반면, 외교와 정부 당국에서는 확정된 바가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러나 나토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일본 총리가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면서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대선 기간 때부터 지금까지 지향하는 외교의 핵심 단어는 가치, 국익, 안보로 축약할 수 있다. 가치 외교를 기반으로 자유 국제 질서 수호에 기여하는 외교를 구사하고, 국익 중심 외교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외교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한·미 동맹에 기초해 ‘뜻을 같이 하는 나라(like-minded states)’와의 연대를 통해 한국의 안보 이익을 수호하겠다는 것이다.

상대방 니즈를 파악하지 못한 채 접근하면 설득 어려워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6월 28일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에서 열린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내외 주최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그러나 외교에는 항상 대상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대상의 뒷면에는 또 다른 대상이 있다. 이들 간의 관계가 늘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외교는 입체적, 복합적, 고차원 방정식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일 관계 개선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중·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거듭하는 가운데 한·일 관계의 개선이 한·중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당연히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우선,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려면 외교에 전략과 대안이 수반돼야 한다. 세계 자유와 번영, 평화에 기여하는 전략을 세우고 실행함에 있어서 한국의 특정 외교 대상국은 물론 또 다른 대상국과의 관계를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한·일 관계 개선 덕분에 이어질 한·미·일 3국 관계의 발전을 쌍수 들고 환영만 할 사안이 아님을 간파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일본과 중국의 관계가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한·중 관계도 좋지 않은데 피장파장 아니냐며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맹목적으로 중국을 무시하면서 국익을 희생하진 않는다. 고수의 전략을 구사하며 실익을 챙긴다.

중국은 한국에게 2017년 도출된 ‘3불(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참여, 한·미·일 군사 동맹을 하지 않음)’에서 이미 한·미·일 군사 관계 발전의 반대를 지적했다고 경고한다. 윤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이 3불을 폐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만큼 한·미·일 3국의 군사관계 발전을 역으로 활용해 폐기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만의 일방적인 희망에 찬 생각(wishful thinking)에 불과하다.

외교는 쌍방의 소통과 교류의 행위다. 한·미·일 3국의 군사 관계 발전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3불 폐기를 직접 선언하는 것이 정정당당한 외교의 첫걸음일 수 있다. 3불이 약속, 합의 또는 조약의 것이 아니라고 해서 무조건 무시할 수는 없다. 중국의 인식은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를 약속한 합의 사항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마찰과 갈등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복안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 상대방의 니즈(needs)를 파악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한국 외교를 우리만의 사고방식으로 전개해왔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한국이 상정한 의제를 관철하지 못한 사례가 종종 있었다. 상대방의 니즈를 파악하지 못한 접근은 설득력 부족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외교의 진리다.

경직된 안보 외교보다 유연하게 접근하는 사고 필요해

강대국이 외교를 잘하는 이유 중 하나가 상대의 니즈를 간파한 후에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 때문이다. 가령, 한·일 관계에서 ‘김대중·오부치 공동성명’의 정신에 입각한 외교 관계와 역사 문제를 구분하는 투트랙 접근법을 되살리자는 것이 국내 외교계의 모토가 됐다. 그러나 이를 일본이 수용할지에 대해서는 고민한 흔적이 없어 보인다. 일본은 당시 공동 성명으로 역사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에게 우리의 제안은 역사 문제가 또다시 쟁점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자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딜’을 할 줄 아는 외교가 필요하다. 현재 판세에서 우리의 지정학적·지경학적 전략 가치는 상종가를 달리고 있다. 모든 나라가 자국의 4차 산업의 지속적 발전을 희망하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기술과 제품을 한국이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지정학적으로는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국과 중국의 각축전에서 한국이 중국의 최후 방어선인 ‘제1도련선’의 핵심적인 지리적 위치에 있고, 군 병력 면에서는 일본의 5배, 호주의 10배에 달하는 군사적 역량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런 국력에 부합하는 외교 협상을 벌여야 세계 자유와 번영, 평화에 진정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외교가 국력에 부합하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외교적 전략 사고가 분야별로 분산·집중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분야를 넘나드는 딜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군 당국이 군사 현안을 해결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때문에 군사 현안을 경제 현안으로 해결하려는 사고는 시도조차 하지 못해왔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튀르키예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용인하는 대신, 그 나라에 있는 자국 정치범의 소환, 서방의 쿠르드 지원 금지, 미국 F-35 전투기 판매 등을 확보하면서 국익을 극대화했다. 정치, 외교, 군사적 이익을 모두 챙겼다.

한국은 세계가 갈망하는 반도체, 소형원자로(SMR), 원자력 발전소, 2차 전지, 디스플레이 등의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점했다. 그럼에도 이를 외교력에 접목시키지 못하고 있다. 세계가 이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요구할 때 우리의 국익도 챙겨야 한다. 그 국익이 이들 분야 외의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한국은 의제의 영역을 넘나들지 못하는, 경직되고 분할된 사고로 협상에 접근하는 외교적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이를 버리고 영역을 넘나들며 유연하게 접근하는 사고와 자세를 갖춰야 하는 시기가 됐다.

-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jwc@khu.ac.kr

202208호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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