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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인터뷰] ‘분열의 시대’를 건너는 법, 지식인 홍세화에게 묻다 

“불평등의 대물림에 있어서는 조국과 한동훈은 하나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정치의 팬덤화·종교화에 기대는 민주당 586, 무능한 新기득권으로 고착화”
■“尹 대통령에게 ‘정치는 전쟁의 연장’, 그가 말하는 자유도 ‘내 편의 자유’일 뿐”
■“정치는 사회적 연대 실현을 소명으로 삼고 구매력 아닌 시민의식 추구해야”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은 “진보,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홍 은행장이 규정하는 지식인은 실천을 동반한다.
우리 시대의 지식인으로 꼽히는 홍세화(76) 장발장은행장은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굳이 피하지 않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위선적이고, 윤석열 대통령은 독선적”처럼 어느 진영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엄정한 비판을 가한다. 그 균형감각은 우리 사회가 홍 은행장을 경청할만한 진보 지식인으로 받아들이는 권위로 작동한다. 홍 은행장은 “고립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시민(市民)을 신민(神民)으로 타락시키는 반(反)지성주의를 향해 비판의 칼날을 겨누는 것은 지식인의 의무라고 그는 믿는 듯했다.

12월 5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의 소박한 건물 지하 1층에 자리한 인권연대에서 홍 은행장을 만났다. 대한민국 사회가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처럼 분열돼 있는데도 그는 여전히 연대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홍 은행장의 음성은 나직하고 느리지만, 듣다 보면 단호함 같은 것이 묻어난다. 그는 2시간 반 넘게 진행된 신년 인터뷰에서 정치·경제는 물론 교육·노동·주거·복지 사안에 이르기까지, 낮지만 결코 없어져서는 안 될 화두를 펼쳤다.

나라가 극명하게 쪼개져 있다.

“분열은 현상이고, 본질은 (경제적 계급 관점의) 20:80의 사회에서 ‘20 사이의 현란한 싸움’이다. ‘80’이 완전히 분리, 소외돼 있다는 것이 나한테는 중요한 문제다. 페르낭 브로델이 ‘파도를 보지 말고 조류의 흐름을 보라’고 했다. 그들(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싸우고 있지만 실은 닮아 있다. 그들 중 ‘80’에 속한 사람은 아예 없고 ‘80’의 대변자도 찾기 어렵다.”

“20:80 사회에서 ‘80’은 철저히 소외돼”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뜻으로 들린다.

“가령 기후위기 문제 대처에 있어서 두 당이 어떤 차이가 있나? 출생률은 급전직하하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 상황에서 미셸 푸코의 말처럼 ‘사회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 과제여야 하지만, 차이가 없다. 경제정책에서 문재인 정부의 홍남기와 윤석열 정부의 추경호가 총자본의 행정기구로서 연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의 80%를 위한 정치 세력이 미약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지난 총선에서 거대 양당은) 위성정당을 통해 진보적인 제3세력의 진출을 막았다. 선거법이나 정당법을 민주 원칙에 의해 개정하지 않고 있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나는 국민의힘은 ‘하면 안 될 일을 주로 하는 정당’, 민주당은 ‘해야 할 일을 거의 하지 않는 정당’이라고 규정한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산업사회에서 부르주아들은 노동자들에게 가짜 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문화적 헤게모니 수단을 갖고 있다’고 했다. 곧 정당·교회·미디어·학교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노동자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정당도 갖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팬덤정치’가 심화하고 있다.

“정치의 팬덤화, 정치의 종교화가 현실이 되면서 진실과 허위, 옳고 그름의 구분이 실종된 탈진실 시대를 살고 있다. 나는 민주당에 더 강한 비판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본디부터 수구 기득권 정당이지만, 민주당은 민주를 표방하고 있고,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팬덤에 기대 신(新) 기득권 정치 세력으로 고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 은행장은 문재인 정부 때 민주당을 두고 ‘민주 건달’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민주당으로 들어간) 소위 586들 중에 한때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으로 30년 동안 행세하는 이가 적지 않다. 국민의힘에 비해 윤리적·지적 우월감을 갖고 있어서인지 공부를 게을리한 것 같다. 그들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는 무능하다는 점을 문 정권 5년 동안 여실히 보여줬다.”

“尹 대통령, 밀의 [자유론] 다시 읽어보시라”


▎2022년 12월 11일 민주당 의원들이 이상민 행안부 장관 해임 건의안에 투표하고 있다. 투표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석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토하는 문구가 놓여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진보 진영 지식인 중 드물게 문재인 정부를 냉정하게 비판했다.

“문 전 대통령이 이들(586)에게 국가의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준 것 말고 한 일이 무엇인가? ‘눈물 흘리는 노동자가 없게 만들겠다’는 이야기는 어디로 갔나? 촛불에 의한 사회 변화의 기대가 컸고 수구세력은 지리멸렬 상태였다. 입법권까지 몰아줬음에도 개헌도, 노동법도, 선거법도, 정당법도, 교육개혁도 어느 하나 변화가 없었다.”

문 전 대통령이나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소위 ‘양념’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런 반지성주의에 의한 두려움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이 요즘 SNS에 책을 추천하더라. 나는 문 전 대통령에게 [커밍아웃 스토리]라는 책을 꼭 읽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문 대통령 재임기였던 2018년에 성소수자부모모임이 펴낸 책이다. 최근 국회의장(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동성애자를 치유해 출생률을 높여야 한다’는 일부 기독교계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민주당 의원 절대다수의 표를 획득해 국회의장이 됐다. 이런 반지성주의 토양에서 주장되는 능력주의란 게 과연 무엇인지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다. 그만큼 기대도 안 한다는 뜻인가?

“윤 대통령은 반대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부정의 대상이자 배제, 제압의 대상인 범법자를 상대로 하는 검사의 삶을 살았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했는데, 윤 대통령은 반대로 ‘정치는 전쟁의 연장’으로, 그래서 ‘내 편이 아니면 다 적’인 피아의 관계로 보는 것 같다. MBC를 배제한다든지 도어스테핑을 중단하고 야당 대표와 만나려 하지 않는 것이나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끝까지 끌어안는 양태도 그렇다.”

이상민 장관이 이태원 참사에 책임져야 한다는 쪽인가?

“도의적 책임이라도 정부에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기본이다. 사회계약론에 의하면 국가의 구성 자체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로 성립된다. 진상규명을 철저히 해서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야 길이 생긴다. 하지만 피아 구분에 의해 (이 장관을) 꽉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런 의지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독선적이고 무책임한 정부라면 기득권을 보수하는 것 말고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윤 대통령이 생각하는 보수의 가치는 자유에 방점이 찍히는 것 같다.

“그 자유는 도대체 무슨 자유인가? 자본의 자유, 시장의 자유, 권력자의 자유뿐인가.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당~민주자유당~자유한국당에 담긴 자유에서 멀지 않은 것 같다. 그 자유에는 엄청난 역설이 있다. 왜냐하면 그 자유는 공산세계로부터 지켜야 하는 자유세계라는 상상의 공동체에 바탕을 둔 것으로, 우리 현대사에서 학살, 구속, 고문 행위로 자유권의 기본인 신체의 자유를 이루 말할 수 없이 유린한 자유이기 때문이다. 참회가 선행돼야 마땅한 자유인데, 윤 정권이 이에 대한 성찰 없이 내 자유만을 관철시키겠다면서 국가의 물리력을 동원한다면 무지막지한 폭압 정권이 될 위험이 크다. 실제로 화물연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그 전조를 보이는 게 아닌지 지극히 우려스럽다. 윤 대통령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했는데, 다시 읽기를 간곡하게 권하고 싶다. 밀은 자유론에서 이렇게 썼다. ‘어떤 문제에 대해 가능한 한 정확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상이한 의견을 가진 모든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고, 나아가 다양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그 문제를 이모저모 따져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현명한 사람치고 이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지혜를 얻는 사람은 없다’라고.”

화물연대 파업에서 나타나듯 국민 다수는 민주노총을 위시한 노조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편이다.

“십여 년 전 전교조 소속 사회과 교사들이 한국 고교생을 대상으로 노동(자)에 대한 인식조사를 했다. ‘노동은 안 할수록 좋다’가 가장 많은 답을 얻었다. ‘장래에 노동자가 될 것이다’는 단지 5%였다. 학교에서는 지배세력이 요구하는 노동관을 교육받고 미디어 환경은 반노조적이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노동자로서의 연대 의식을 갖기 어렵다.”

하지만 ‘조국 사태’에서 드러났듯 한국의 교육은 무엇을 가르치느냐보다 얼마나 공평하게 대학 입시를 치르느냐가 핵심인 듯하다.

“서열 평가를 위해 학습의 목표와 과정이 왜곡됐다. 생각하는 존재가 아닌 입력하는 존재가 됐다. 생각하지 않으니 회의할 줄 모른다. 자기 존재를 스스로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있어도 의문을 품기는커녕 그 의식을 고집한다.”

“한국엔 부동산 정책이 있을 뿐 주택 정책은 없다”


▎조국(왼쪽) 전 법무부 장관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청문회 과정에서 딸 스펙 쌓기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우리보다 생각하는 교육을 중시한다는 프랑스만 해도 극우 정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

“배경을 봐야 한다. 우선 유럽 경제의 지체 상황이 있고, 그다음에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왼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약해졌다. 또 프랑스만이 아닌 유럽 전반의 문제인데 미·소 양극 체제에서 미국 일극 체제로 가면서 세계가 요동을 쳤다. 중동과 아프리카 곳곳에서 전쟁·내전·정변이 일어나 많은 난민이 발생해 유럽으로 밀려들어왔다. 그 반작용으로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강해졌다. 장담할 순 없지만, 아직은 그들의 인문학이나 시민교육이 더는 선을 넘지 못하게 할 수 있도록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럽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성장의 지체를 꼽았다. 한국도 경제가 성장한다면 여러 사회 모순 중 상당 부분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주류의 관점이다.

“나는 오히려 기후위기와 관련해 탈성장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끝없는 생산으로 이윤을 늘리고 축적하는 식으로 성장한다면 지구는 어떻게 되겠는가?”

더 성장하고 더 가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통제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 길밖에 없다. 계속 성장하며 이미 미래세대의 몫까지 착취해왔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 나는 근래 들어 이렇게 주창하고 있다.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이러면 청년 일자리는 더 희소해진다.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 농촌에 주목해야 한다. 탈성장 문제와 관련해 농촌·농민·농업 정책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갈 수 있도록 문화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에 정부와 사회가 집중해야 한다. 지방 거점도시의 국립대학들만 제대로 자리 잡혀도 지금과 다를 수 있다.”

프랑스만 해도 파리 집중도가 굉장히 강하지 않나?

“물론 중앙집권적인 프랑스는 독일과 대비된다. 하지만 파리시 인구는 200만 명이 조금 넘고 파리 지역까지 다 합쳐야 1000만 명이다. 파리 지역은 경기도보다 훨씬 넓다. 또 리옹, 보르도, 니스, 칸, 마르세유 등 문화적 인프라가 나름 튼튼한 편이다. 대학도 튼튼하다. 물론 중앙에 집중되는 경향은 있지만, 한국처럼 거의 수도권에 몰려 있지 않고 격차도 심하지 않다.”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어느 곳에서 사느냐는 어떤 계급에 속하느냐와 동의어로 통한다. 주거지에 따라 교육과 일자리의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 삶이란 내 몸 자리의 궤적이다.’ 내 몸을 내 의지에 의해 능동적으로 놓는 것과 내 처지에 의해 수동적으로 놓이는 것 사이의 유기적 결합이 곧 내 삶이다. 우리가 진보를 이야기할 때 ‘처지에 의해 존엄하게 태어난 몸이 존엄하지 못한 곳으로 추락하지 않게끔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강남에서, 부모의 재산과 사회관계 자본에 힘입어 교육 자본까지 대물림받고 좋은 일자리를 독점하는 것, 그래서 과도하게 누리는 욕망이 관철되면서 그렇지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존엄하지 못한 몸 자리로 추락케 하는 것, 이 불평등의 대물림이야말로 내가 가장 핵심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다. 이 문제에 있어서 조국과 한동훈은 하나다.”

홍 은행장이 생각하는 민생의 본질은 불평등 해소인 것인가?

“일자리, 주택, 교육 문제가 핵심이다. 가령 한국에 주택 정책이 있나? 부동산 정책이 주다. 프랑스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25%로 법제화돼 있다. 그들의 자가 보유 비율은 53% 정도로 한국과 비슷하다. 47% 가구가 월세를 사는데 절반 이상이 공공임대주택이다.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8% 수준인데(분양조건을 빼면 5.5%), 윤석열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6000억 원을 삭감하려고 한다.”

“2030세대가 586보다 건전하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은 연대의 가치를 믿는다. 신민(神民)이 아닌 시민(市民)의 세상을 꿈꾼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취업,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부의 사다리가 끊어질수록 우리 사회의 우경화도 강해지는 것 아닐까?

“40대까지는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부모 세대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면, 지금 2030세대는 막혀 있다. 피라미드 구조는 굳건해졌지만 커질 수 없다. 인구도, 생산도 늘지 않는데 피라미드 최상층부는 자기 자식에게 넘겨주기에도 버거울 정도다. 서민 자식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피라미드 위로 가는 건 어림없다. 특히 문재인 정부를 지나며 부동산 격차는 더 심해졌다. 최근 젊은이들의 보수화를 말하는데, 586보다는 건전하다고 본다.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 586들은 말은 많이 했지만 그렇게 살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계급적으로 그런 삶을 살아나가야만 한다. 계기가 있을 때 변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지금의 정치가 젊은이들에게 빵(생존)과 장미(자아실현)를 줄 수 있을까?

“프랑스의 한 신부님은 ‘정치는 본디 고귀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회적 연대의 실현을 일차적 소명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젊은이들에게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정치의 본령인데 그런 면에서 참 안타깝고 답답하다. 이를 두고 사회 전체가 토론해도 모자랄 판인데 이렇게 극렬한 양상으로 기득권 차지 싸움을 하고 있으니 분노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홍 은행장은 공공성의 가치를 공유하는 시민의식을 강조해왔다.

“시민이 육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1990년을 전후해서 신자유주의 물결이 들어왔다. 신민에서 시민이 되지 못한 채 고객, 소비자가 됐다. 시민적 책무성·주체성·비판성·연대성 이런 것은 자리 잡지 못했다. 그래서 정치의 팬덤화, 종교화도 강하게 일어난다. 학교에서 시민의식 형성이 안 됐고, 노동자로서 정체성도 없고, 적자생존에 매몰돼 있고, 가치관의 핵심은 돈, 구매력에 머물러 있다.”

“연대성이야말로 시민적 덕목”

‘돈을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을 맡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에서 ‘유’ 자는 있을 유(有) 자 이자 유혹할 유(誘) 자다. 돈이 없으면 죄를 짓는 유혹을 받는다. 징역을 보낼 정도가 아닌 단순 범죄에 벌금형이 나오는데, 벌금 낼 돈이 없으면 교도소에서 강제노역을 해야 한다. 1년에 약 3만5000명 정도 된다. 돌봐야 할 어른이나 아이가 있어서 몸으로 때울 수도 없는 이들의 신청을 받아서 무이자 무담보로 신용조회 없이 벌금을 빌려주는 은행이 장발장은행이다. 지금까지 후원해주신 분이 1만3286명이고 14억3400만원 성금이 들어왔다. 1140명에게 20억 가까이 대출해줬고, 692명이 일부라도 상환 중에 있다. 총 6억3000만원 정도가 상환됐고, 263명은 전액 상환했다.”

앞으로 장발장은행을 어떻게 운영해나갈 생각인가?

“은행 문을 빨리 닫는 게 우리의 목표다.(웃음) 그러려면 제도가 총액벌금제에서 (수형자의 재산소득을 고려해 매기는) 일수벌금제로 바뀌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국가 차원의 연대나 관심은 취약한 반면, 1만3000여 명이나 되는 시민분들이 성금을 내줘 재원이 되고 있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따뜻한 희망의 거처가 곳곳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연대성이야말로 시민적 덕목이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정준희 기자 jeong.junhee@joongang.co.kr / 녹취 정리 최소라 월간중앙 인턴기자

202301호 (20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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