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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이슈] 전 정부와 확 달라진 尹 대통령 외교, 문제없나? 

사회적 파장만 일으킨 일본 강제징용 해법, 사전에 국민과 공유했어야 

여전히 북한 비핵화 몰두, ‘글로벌 중추국가’ 걸맞은 의제 없어
외교는 상대방의 니즈와 동태를 파악해 대국민 설득 우선돼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비전은 원대했고, 시의적절했다. 세계의 흐름과 시대적 조류도 잘 읽으면서 우리의 위상에 걸맞은 외교 정책을 취임과 함께 소개했다. 이른바 ‘글로벌 중추국가’다. 문재인 정부 외교에 실망한 국민이 윤 정부 외교에 거는 기대감은 컸다. 문 정부는 북·미 관계에 ‘조정자’로 나섰지만, 북한을 위해 미국을 일방적으로 기만한 사실이 여러 권의 회고록을 통해 밝혀졌다. 중국에는 사드 문제의 해결을 호언장담하며 과도한 친중 정책으로 중국을 회유하는 굴욕외교를 자행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죽창가’로 국민의 반일정서를 선동하며 한·일 관계를 최악으로 몰아넣었다. 대북 관계는 ‘올인’을 자처했으나, 종북 수준의 정책을 구사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문 정부는 이렇게 신뢰 대신 기만을, 국민의 자존감 대신 굴욕을, 원칙 대신 회유를 외교 전술로 동원하면서 주변국의 불신과 배신만 증대시켰고,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외교적 고립에 빠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1년 외교… 냉철한 성찰·각성 필요”


▎2019년 12월 23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를 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
따라서 윤 대통령의 외교 비전 전환을 세계 정상들도 환영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윤 대통령 취임 2주 만에 방한했다. 지난해 6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나토(NATO) 정상회의에 초대받아 첫 한·미·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자유·인권·민주주의 가치에 기반을 둔 자유 국제질서 수호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와 지원도 공표했다.

이렇듯 출발은 좋았다. 그러나 이후 참석한 지난해 9월 유엔(UN)총회 연설, 11월 G-20 정상회담과 한·중 정상회담, 올해 1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등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을 이끌지 못했다. 오히려 지난해 9월 일본 총리와의 회담 계획 조기 발표와 그를 찾아가 가진 약식회담은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역대 보수 정권이 외교로 지지율 반등과 상승효과를 본 전통과 이력에 반하는 결과였다.

지난 3월 7일에는 일본의 강제징용 소송 문제 해법으로 우리 기업과 일본 기업의 기부를 통한 해결 방식을 내놓으면서 사회적 파장만 일으켰다. 유엔인권위원회의 일본 대표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발표 당일과 9일에 각각 강제징용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게다가 하야시 외무상은 우리 정부의 해법인 제3자 변제가 일본과는 무관하다는 취지로 발언한 사실이 알려졌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로 거듭날 기회가 사라진 건 아니다. 4월 26일 미국 국빈 방문과 5월 19일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담에 주목하는 이유다. 여기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지난 1년 동안 펼친 윤 정부 외교에 대한 냉철한 성찰과 각성이 전제돼야 한다.

외교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있다. 그래서 외교의 성패는 상대방의 설득 여부와 자신의 의제 관철로 판가름난다. 그 결과에 따라 국익의 운명도 결정된다. 국익의 극대화가 가장 이상적이라면, 국익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도 현실적인 차선이다. 국익 달성에 실패했다면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책임은 외교를 추진한 자의 몫이다.

외교의 실패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원초적인 문제는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인지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목적의식이 없는 것은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니즈(Needs)도, 상대방의 니즈도 파악하지 못하면 레버리지(지렛대)가 어디에 있는지 알 리 만무하다. 더 나아가 이 문제는 신뢰와 자신감으로 직결된다. 외교는 교감을 전제한다. 교감으로 공감대가 형성되면 협상이 순조롭기 때문이다. 반면 교감이 없는 협상은 진전이 없다.

원활한 협상을 위한 충족 조건은 서로에 대한 ‘자신감(Confidence)’과 ‘신뢰(Trust)’다. 자신감은 협상을 요청하는 측과 수용하는 측이 모두 갖춰야 할 전제조건이다. 요청자의 자신감은 국민적 지지에서 나온다. 국민 설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협상 요청을 수용하는 측은 상대방에 대해 자신할 수 있을 때 협상의 당위성을 자국민에게 설득할 수 있다. 특히 상대방의 의제가 공론화와 여론 수렴이라는 투명한 경로를 통해 국민적 지지를 받았으면, 협상의 부담감도 줄어들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감을 가질 때 신뢰의 싹이 튼다.

“협상의 주체인 정부는 ‘딜(Deal)’에 능해야”


▎3월 7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강행 규탄 및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긴급 시국선언에서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김성주 할머니가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돈 안 들이고 머리와 입만으로 하는 것이 외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물리적 또는 금전적 희생 없이 국익을 획득할 수 있는 최선의 평화적 방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외교의 결과는 지도자와 정부의 능력으로 결정된다. 지도자가 나서는 ‘톱다운’ 방식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외교를 밀어붙이는 것은 외교가 아니다. 지도자는 ‘보텀업’으로 올라온 의제를 국익의 관점에서 결정하고 이의 협상이 원활해지도록 서로 신뢰하고 자신할 수 있는 분위기와 장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즉,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돼야 한다.

협상의 주체인 정부는 ‘딜(Deal)’에 능해야 한다. 그리고 외교의 딜은 현안의 영역과 범위를 넘나드는 거래로 이뤄져야 한다. 일례로 상대방의 니즈에 따라 경제 현안을 국방·군사 현안으로 거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외교에서 말하는 유연한 사고의 체현(體現)이다.

지난 1년 동안의 윤 정부 외교에서 애석한 점은 상대와 우리의 니즈 사이에 교집합이 보이지 않는 점이다. 왜냐면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 맞게 외교의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정상회담에서 우리의 핵심 의제는 한결같았다. 북핵 위협, 비핵화 또는 확대억지력 등에 집중돼왔다. 심지어 나토 정상회담과 같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민주주의 수호자들의 의기투합 자리에서도 말이다.

우리에 대한 상대방의 니즈는 이미 다 밝혀졌지만, 우리는 일관되게 ‘눈치 게임’ 중이다. 미국은 2021년(문 정부), 2022년(윤 정부) 두 차례의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문을 통해 우리에게 원하는 바를 명시했다.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소형원자로 등의 분야 외에도 대만해협 문제와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우리의 협력을 요구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2019년 왕이 전 외교부장은 4년 연속 우리 측과의 회담에서 구체적인 협력 사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호기에 우리 정부는 미국과 중국의 눈치 보기에 급급해하며 실익을 상실해왔다.

이제는 우리 정부가 응할 때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이익을 추구하고 싶은지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니즈를 고려하면 우리에게 레버리지가 있다. 우리는 이들이 요구하는 것의 생산자이자 제조자다. 이들의 무능한 부분이 우리에게는 레버리지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에서 일본의 강제징용 해법까지, 국민들의 기억 속에는 정부의 설득 시도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의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 발표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우리 입장은 러시아의 침공 지탄과 전쟁의 조속한 종결에 기여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살상용 무기 제공을 거절했고, 국제사회는 이에 대해 의아해한다.

“국민적 사전 지지 얻어야 레버리지 선점 가능”


▎참여연대 등 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6월 2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반대하며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일본 강제징용 해법도 마찬가지다. 해법 고안에 많은 고민이 있어 보이지만, 그런 고민을 혼자 한 것이 문제다. 국민과 공유했어야 한다. 국민과의 컨센서스(Consensus)로 이룬 해법을 일본에 제시했다면 일본의 반응도 조금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초석으로 삼았다는 해명은 문제의 본질을 간과한 것이다. 그 선언은 정부의 주장대로 ‘미래지향’에 방점을 찍은 것이 아니다. 당시 우리의 문화시장 개방 대가로 일본 총리의 유감을 포함하는 ‘딜’을 한 것이다.

국민적 사전 지지는 레버리지의 선점으로 이어진다. 의제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스스로 자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상대국은 우리가 제시한 의제에 대한 협상의 당위성을 자국민에게 설득할 수 있다. 그러면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반이 자연스럽게 마련된다.

우리 국민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8월에 서명한 반도체법안(Chips and Science Act)과 인플레이션감축법안(IRA)으로 뒤통수를 맞았다고 느낀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 2021년 3월에 미국의 5G 리더십 촉진법안(Promoting United States International Leadership in 5G Act of 2021)으로 미 의회에 상정됐다. 후자 역시 같은 시기에 미 의회가 ‘미국 구조 계획 법안(American Rescue Plan Act of 2021)’과 ‘더 나은 재건법(The Build Back Better Act)’을 발의했다. 두 법안의 합체본이 IRA이다.

강대국의 법안과 외교정책은 오랫동안 심도 있는 논의와 협상 끝에 나온다. 전쟁과 같은 국가급 위기상황이 아닌 이상 급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미 의회의 동향을 면밀히 관찰하고 예의주시했어야 한다. 여기에는 우리의 대통령실과 외교 당국뿐만 아니라 관련 부처, 기업과 공관까지 책임이 있다.

상기 법안이 미 의회에서 2년 동안이나 논의됐지만, 누구도 감지하지 못했다. 우리 기업은 정부를 탓한다. 이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현지법인을 두고 고액 연봉의 법무팀을 운영하는 기업은 자신의 법무팀을 탓해야 한다. 기업이 이런 동향을 감지하고 정부에 대응책을 건의해야 한다. 이 밖에 현지에서도 로비해야 한다.

미 의회가 경제안보와 관련해 지난 2년 동안 상정한 법안 대부분이 지난 회기에 입법화되지 못했다. 미·중 경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이들 법안이 보완돼 재상정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보통신에서부터 광물자원, 에너지, 식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국익과 깊은 연관이 있는 법안들이 즐비하다. 일부는 초안이 이미 완성됐다. IRA와 반도체법안은 이미 물 건너갔다. 더는 매몰되지 말고 새로운 법안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철저한 대응책 마련에 전념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우리와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때문에 우리의 지정학적·지경학적 전략가치는 ‘상종가’를 치고 있다. 우리는 4차산업의 발전에 필요한 첨단산업 제품의 최강 제조국이자 생산국 중 하나다. 미국이 중국산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소형원자로 등의 구매에 제재를 가할 경우, 서구의 유일한 공급원은 대한민국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입증됐듯이 무기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생산력을 가진 나라 중 하나도 대한민국이다.

지정학적으로도 대한민국은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협의체)와 인도-태평양 전략국가 중에서 미국과 인도 다음으로 큰 병력 규모를 갖고 있다. 지리적으로 중국의 최후 방어선인 ‘제1 도련선’의 중심부에 있다.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은 중국을 후방에서 직접 타격을 할 수 있는 근접 거리에 있다. 이들의 존재는 그야말로 중국에는 눈엣가시다. 일본이 가세할 가능성을 고려하면, 중국이 한·미·일 3국의 군사관계 강화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책임 전가는 이제 그만, 우리 전략 가치 이용해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1월 16일 4박 6일간의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런 우위를 점하는 대한민국의 외교는 이제 더욱 유연해져야 한다. 서로 다른 영역의 현안을 가지고 딜을 하는 외교를 구사해야 한다. 지난해 나토 정상회의에서 튀르키예가 보여준 현란한 외교술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결사반대했던 튀르키예가 입장을 선회하며 얻은 대가는 상당했다. 미국으로부터는 무기구매(F-16V 전투기)가 가능해졌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무기 금수 조치 해제도 뒤따랐다. 정치적으로는 이들로부터 쿠르드족 관련 정치범을 인도받기로 했다. 외교적 성과로는 이들의 쿠르드민병대 지원 중단과 단속 강화 등을 끌어냈다. 경제적으로 튀르키예의 대러 교역은 2022년에 전년 대비 45%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서구 사회는 튀르키예에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에게도 미국과 중국에 레버리지를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다. 우리는 생산자·제조업자·공급자의 입장에서 이들에 대한 레버리지를 충분히 구사할 수 있다. 이들과 상기한 전제조건만 충족할 수 있다면 말이다. 뚜렷한 문제의식과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상대방의 니즈와 동태를 파악해 대국민 설득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상대국과 교감을 나누면서 자신하고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협상을 벌여야 한다. 이렇듯 국익 중심의 당당한 외교를 해야만 윤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대한민국을 세계 평화·발전·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주재우 경희대 외국어대학 중국어학과 교수 jwc@khu.ac.kr

202304호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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