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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랜더스 연구 | 쓱 스토리(1)] 왜 신세계는 적자사업인 프로야구단을 인수했을까 

정용진과 최태원, 그 ‘생각의 차이’가 빚어낸 빅딜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이마트와 SSG닷컴의 가교 원했던 신세계, 프로야구 역대 최고액으로 SK 와이번스 인수
사회적 가치 지향하는 SK는 고점에서 ‘익절’… 신세계는 자본주의 색채 짙은 야구단 지향


▎2022시즌 SSG 랜더스는 창단 2년 만에 통합우승이라는 압축성장을 이뤄냈다. 동시에 프로야구 마케팅에서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하는 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 사진:연합뉴스
SSG 랜더스는 창단 2년 만에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 우승을 이뤄냈다. 동시에 인천 연고팀 사상 최초로 관중 1위를 기록했다. 랜더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또 한국 프로야구의 위기론 속에서 어떻게 이 팀만 역주행을 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에 관한 탐구를 시리즈로 기획했다.

"아는 지인 분이 들은 이야기인데 화요일 전후로 한국 프로야구판에 핵폭탄급이 터질 예정이라고 한다. (…) 절대 상상도 못 할 깜짝 놀랄 만한 핵폭탄이 터질 예정이다. 궁금해서 화요일까지 잠 못 잘 예정.”

프로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초대형 사건의 시작은 단 5줄의 문장이었다. 2021년 1월 23일 토요일 새벽 ‘엠팍’(야구 커뮤니티 MLB파크의 줄임말)에 출처불명의 루머가 등장했다. 글에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어떤 근거도 없었지만, 야구계 전체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정체를 숨긴 작성자가 예전에도 고급 정보를 미리 엠팍에 올린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리꾼들은 글쓴이를 ‘핵폭탄좌(坐)’라고 지칭했다. 그 내용의 진위 여부와 더불어 핵폭탄좌가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증이 증폭됐다. 김택진 NC 다이노스 구단주부터 인천 강화의 부동산업자까지, 추측만 무성했을 뿐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핵폭탄급 뉴스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스포츠부 기자들까지 달라붙었지만, 아무도 단서를 포착하지 못한 채 주말이 흘러갔다. 심지어 김성용 와이번스 홍보팀장(현 랜더스 홍보팀장)도 “남몰래 SK텔레콤 인맥을 통해 실체를 파악하려 해봤지만 별 말을 듣지 못했다”고 떠 올릴 정도로 극비리에 일은 추진됐다. 초기에 “인수설은 사실무근”이라는 오보가 속출한 배경이었다.

갈증은 뜻밖에도 산업부 유통 담당 기자들에 의해 풀렸다. 1월 25일 ‘신세계그룹이 SK 와이번스 야구단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긴급 뉴스가 뜬 것이다. 하루 뒤인 1월 26일 공식 발표가 나왔다. “신세계그룹은 SK텔레콤이 보유한 SK 와이번스 지분 100%(1000억원으로 평가)와 야구단 소유 토지·건물(352억8000만원)을 1352억8000만원에 매입하기로 했다. 이 밖에 ‘연고지는 인천으로 유지하며 코칭스태프를 비롯한 선수단과 프런트의 100% 고용승계’를 약속한다”가 골자였다. 2월 23일 본계약이 체결됐고, 3월 5일 KBO 승인을 거쳐 SSG 랜더스가 탄생했다.

‘타이밍’이 아니라 ‘타임’을 사다


▎정용진(왼쪽 사진) 신세계 부회장은 내수시장에서 최고 인기 스포츠인 야구 콘텐트의 독점성에 주목했다. 반면 최태원 SK 회장은 핸드볼처럼 비인기 종목을 후원하는 방향성을 중시했다. / 사진:연합뉴스, 중앙포토
랜더스는 태생과 동시에 그 적정 가치에 관한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다. 세상은 이 거래의 승자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인지, 최태원 SK그룹 회장인지 가리고 싶어 했다. 2군 연습장이 있는 강화도 땅과 건물 등 부동산에 해당하는 352억8000만원은 논외로 치더라도, 야구단의 무형적 가치를 1000억원으로 측정한 것이 타당했느냐가 논점이었다. 1352억8000만원은 역대 KBO 구단 인수 최고 가격에 해당한다. 종전 기록은 1995년 현대그룹의 태평양 돌핀스 인수(450억원)였다. 가장 최근의 사례론 인수가 아닌 (현대 유니콘스 해체 후) 창단의 형태였던, 2008년 히어로즈 야구단의 120억원이었다.

신세계가 고점에서 야구단을 사들인 배경에 대해 랜더스 내부 관계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2021년 KBO리그 참가를 목표로 설정하지 않고, ‘2022시즌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는 태도로 협상했다면 가격을 더 떨어뜨릴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야구단을 팔고 싶어 하는 그룹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세계는 (최저점을) 기다리지 않고, 야구단을 당장 손에 넣고 싶어 했다. 그들에게 가격은 의사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던 것 같다.” 가치투자의 대가 하워드 막스의 표현을 빌리면 ‘타이밍이 아니라 타임을 사는’ 투자 행위에 가깝다.

처음에 신세계는 서울 구단을 원했다. 유동성 위기에 처했던 두산 베어스나 모기업이 없는 히어로즈 인수를 시도했지만 결렬됐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야구단을 자신의 영혼처럼 여겼다. 두산 직원들 사이에서 “우리 회장님은 구단주를 하기 위해 그룹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장석 히어로즈 대주주 역시 배임·횡령 등의 죄목으로 구속됐고 KBO의 영구 실격 처분까지 받았음에도, 유상증자를 통해 오히려 지배력을 강화했다.

결국 신세계는 지방 구단으로 눈을 돌렸고, 실제 모 대기업과 협상 타결 임박까지 갔다. 이 타이밍에 M&A 시장의 강자인 SK가 끼어들었다. SK는 수도권(인천) 구단인 SK 와이번스를 소유하고 있었다. 한국시리즈 4회 우승에 빛나는 팀이었다. 하지만 “영업이익만이 아니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실천 여부를 측정해 임원들을 평가하겠다” “이윤만 추구하면 대기업이라도 돌연사할 수 있다”고 역설하는 최태원 SK 회장에게 프로야구단은 상업적 색채가 너무 짙었다. 2018년 외국인 감독 트레이 힐만 체제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지만, 1등이라는 성과가 사회적 가치와 뚜렷하게 연결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SK그룹의 한 인사는 사석에서 “프로야구보다 핸드볼이나 펜싱 등 비인기 종목을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방향성에 부합한다”고 털어놨다. 실제 최 회장은 2008년 12월부터 대한핸드볼협회장을 맡고 있다. 재정난으로 팀이 해체될 때마다 계열사에서 팀을 창단(여자팀 SK슈가글라이더즈·남자팀 SK호크스)하며 ‘생태계’를 유지시키고 있다. 최 회장의 핸드볼 유니폼 백넘버는 ‘22’다. 22는 행복(幸福)의 한자 획수다.

업(業)을 규정하는 철학에 있어, 최태원 SK 회장의 반대편에 좌표가 위치할 CEO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꼽을 수 있다. 정 부회장의 ‘상인 멘털리티’는 본능적으로 튀어나온다. 2021년 1월 11일 그는 전라남도 해남에 있었다. 이마트 공식 유튜브 채널 ‘이마트 LIVE’의 콘텐트인 5분 분량의 ‘YJ로그’를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소읍의 5일장에서 식재료를 고르던 그에게 어느 노점상이 불쑥 물었다. “뭐하시는 분이에요?” 정 부회장은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저요? 장사해요.”

자본주의 냄새가 나는 야구단


▎2022년 11월 이마트는 SSG 랜더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모멘텀 삼아 쓱세일을 실시하며 전국적 파급력을 발생시켰다. / 사진:연합뉴스
실제 유통업 CEO의 문법은 고스란히 SSG 랜더스에 스며들고 있다. 이마트와 SSG닷컴에서 마케팅을 전담한 이종훈 사업담당은 팀의 재무를 맡고 있다. 야구단 인수 후 신세계그룹이 내려보낸 유일한 인물이다. 이 담당은 “개인적으로 자본주의 냄새가 나는 야구단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꾸 돈 쓰러 다니고 싶고, 야구가 끝나고 나서도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야구장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신세계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포개진다.

이에 관해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신세계가 다른 기업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지점은 야구를 (사업의) 도구로 쓰겠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를 확장하면 비즈니스 모델로서 한국 프로야구를 바라보는 프레임의 차이가 SK와 신세계의 ‘거래’를 가능하게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SK는 영향력이 쇠퇴하는 만년적자 사업체인 야구단을 꼭지에서 털어냈다며 내심 흡족하게 여겼다. 반면에 신세계는 내수시장에서 프로야구 콘텐트의 해자가 꽤 깊다(10개 팀밖에 없는 희소한 자원)는 점을 중시했다. 즉, 야구라는 상품의 국제경쟁력(수출경쟁력)이나 경기력(품질) 저하는 매출(인기)과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고 본 것이다.

신세계의 SSG 랜더스 매수는 “얼마에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짜리로 키우느냐가 중요하다”는 정 부회장의 사업 지론과도 부합한다. 2021년 6월 SSG 닷컴이 고평가 논란을 감수하며 이베이코리아(현 G마켓글로벌) 지분 80.1%를 3조4404억3000만원에 사들인 것도 흡사한 맥락이다. 2022년 신년사에서 정 부회장은 “피버팅(pivoting)”이라는 화두를 꺼냈다. 농구 용어인 피벗은 방향의 전환을 일컫는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커머스로 무게중심을 이동하되, 그 밸런스를 잡아줄 수 있는 도구(tool)로 랜더스 야구단을 규정한 셈이다.

정용진의 인천상륙작전

창단 이후부터 정 부회장의 SNS는 랜더스 이슈 메이킹의 ‘본진’처럼 기능했다. 80만 명(2023년 6월 시점)에 달하는 팔로어를 보유한 그의 인스타그램은 ‘셀럽’으로서 소통 공간인 동시에 그룹 관련 홍보의 최전선에 자리한다. ‘SSG 랜더스’라는 팀명도, 창단 유니폼 바탕 컬러(레드)와 디자인에 관한 결정적 힌트도 여기서 흘러나왔다.

특히 랜더스(landers, 상륙자들)라는 팀명은 신세계에 중의적 의미로 다가온다. 2021년 3월 30일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SSG 랜더스 창단식은 1분짜리 동영상으로 시작됐다. 우주를 표류하던 미지의 비행물체가 랜더스필드에 착륙했다.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대한민국 야구의 새로운 패러다임. 야구의 시작 구도(球都) 인천에 신세계 야구단이 상륙합니다. 세상에 없던 프로야구단의 시작, SSG 랜더스’라는 글이 화면에 겹쳤다. 이어 등장한 정용진 구단주는 “그룹의 유일한 불요불굴 대상은 고객이고, SSG 랜더스에게는 단연 팬일 것”이라며 “한마음으로 고객과 팬을 위해 광적으로 집중한다면 ‘노리미츠, 어메이징 랜더스’라는 슬로건처럼 세상에 없던 야구단이 되겠다는 꿈이 현실로 이뤄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신세계 사람들은 확대해석을 경계하지만, ‘인천상륙’에는 여기서 롯데에 당했던 ‘아픔’을 되갚겠다는 결의가 담겨 있을 것이다. 2000년을 전후한 시점에 신세계는 버스터미널에 백화점을 출점하는 전략을 구사해 서울 강남, 인천, 광주 등에서 선점효과를 누렸다. 전국 매출 1위 백화점인 신세계 강남점(서초구)이 그렇게 탄생했다.

처음에 신세계는 지자체로부터 땅을 장기 임대해 백화점을 운영했다. 인천 남동구 구월동 신세계백화점이 인천 상권의 핵심처럼 성장하자, 재정난에 허덕이던 인천시는 2012년 “9000억원을 내면 시 소유인 백화점 땅과 주변 부지를 묶어서 영구 소유권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협상이 지연되자 인천시는 공개입찰로 선회했고, 롯데가 재빠르게 호응했다. 그 결과 2013년부터 신세계는 땅 주인이 된 롯데쇼핑에 매년 임차료를 지급하게 됐다. 신세계는 ‘인천시와 롯데의 계약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불사했지만 5년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2017년 11월 패소했다. 결국 2019년 1월 4일 신세계가 철수했고, 그 자리에 지금의 롯데백화점이 들어섰다.

남(南)인천 백화점을 상실한 신세계는 와신상담하며 북(北)인천 상권을 장악하려는 반격 작전에 착수했다. 랜더스 창단은 이를 위한 포석에 해당한다.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에 예정된 ‘스타필드 청라’는 정 부회장의 라이프 워크(lifework)처럼 각인된 프로젝트다. 2028년 개장 예정인 청라돔은 스타필드 청라의 랜드마크로 꼽힌다. 김인호(전 현대백화점 유통연구소장) 비즈니스인사이트 부회장은 “SSG 랜더스의 궁극적 목적지는 일본 후쿠오카의 소프트뱅크, 삿포로의 닛폰햄처럼 야구단(콘텐트)과 야구장(인프라)의 일체화일 것”이라며 “청라돔이라는 비전이 어떻게 구체화될지 주시할 가치가 있다”고 평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307호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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