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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부산 엑스포 유치 A to Z (마지막회)] 화룡점정만 남긴 부산 엑스포 유치전 대장정 

항도 부산의 스토리를 전 세계로 전파하자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1988년 서울올림픽과 같은 대역전극 기대, 리야드와 경쟁은 글로벌 영향력 대결
부산 엑스포 유치전 계기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독자적 채널 확보해야


▎2023년 10월 10일 부산시청 녹음광장에서 부산 엑스포 범시민유치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이 공동 주최한 ‘부산 엑스포 유치 다짐 시민 선포식’이 열렸다.
드디어 결승선 코앞까지 왔다. ‘2030 부산 세계박람회(World EXPO 2030 BUSAN, KOREA)’ 유치를 위한 세계박람회기구(BIE) 총회 표결이 11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이뤄진다. 부산의 경쟁 상대는 모두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와 이탈리아 로마는 그 나라의 수도이고, 부산은 한국 제2의 도시이며 6·25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다. 리야드는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현대적 대도시이고, 로마는 고대부터 중세, 근·현대 유적이 몰린 세계적인 관광지로 연중 복잡하다. 부산은 바다와 강, 산을 낀 항구 도시라는 특성이 있다. 교역의 현장이자 전쟁과 피란민의 도시였다는 역사성과 이를 극복한 현대 도시라는 스토리가 있다.

게다가 세계박람회 유치전은 단순히 개최 도시 간의 역량 대결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전면에 나선 국가 대항전 성격이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개최권을 확보하려면 BIE 179개 회원국을 상대로 하는 득표전에서 앞서야 한다. 이를 위해 그동안 중앙정부와 부산시, 부산 세계박람회는 물론 민간기업이 전 세계를 누비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최대한 가동해 헌신적으로 유치 외교를 펼쳐왔다.

Busan Is Ready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9월 초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이어 이달 18~23일 제78차 유엔총회에 참석해 세계박람회 유치 외교를 이어갔다. 9월 20일 ‘신뢰 회복과 글로벌 연대 재촉진’이라는 주제로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면서 개발·기후·디지털 등 세 가지 글로벌 격차를 지적하며 한국이 기여할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글로벌 현안 해결에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면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지지해달라는 당부에도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닷새 동안 크고 작은 41개 나라의 정상을 만나 양자회담과 오·만찬을 함께했다. ‘부산 이즈 레디(Busan Is Ready: 부산은 준비됐다)’라는 구호가 큼지막하게 붙은 뉴욕 공관에서였다. 이러한 유치 외교전을 통해 한국의 글로벌 외교 지평을 넓히는 효과도 있었다. 특히 주권국가 숫자가 많은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연안, 그리고 태평양 도서국가에 대한 적극적인 접근이 돋보였다.

일례로 윤 대통령은 뉴욕 공관에서 카리브해 연안 세인트빈센트의 랄프 에버라드 곤살브스 총리를 만나 지지를 당부했다. 앞서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선 아프리카 동부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의 프라빈드 쿠마르 저그노스 총리를 만나 지지를 요청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내년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아프리카 정상들을 집중적으로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부산 국제박람회 지지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유엔총회와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외국 정상들에게 경제·개발협력·기후변화·인적 교류 강화 방안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개도국에서 특히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한국이 그동안의 경제성장 경험을 통해 가장 잘 공유할 수 있는 항목이기도 하다. 한국이 세계박람회 유치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로 활용한 것이 외교 지평 확대와 각국의 현안 협력 강화인 셈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쳐선 곤란하다. 설혹 밀리고 있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집요하게 추격전을 벌이면서 역전의 기회를 노려야 한다. 수많은 스포츠 경기와 행사 유치전이 가르쳐준 교훈이다.

전 세계가 한국과 서울을 재평가한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전을 떠올려보자. 유치 결정은 1981년 9월 30일 독일 서부의 작은 온천 도시 바덴바덴에서 열렸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이뤄졌다.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세울”이라고 개최지를 밝히자 당시 정주영 서울 올림픽 추진위원장과 김택수 IOC 위원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얼싸안았다. 당시 서울은 막판까지 아무도 승부를 예상할 수 없었던 치열한 접전 끝에 개최권을 따냈다. 추격전의 결과 서울은 52:27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일본의 나고야를 따돌리고 88올림픽 개최 도시로 선정됐다.

세계가 분열할수록 엑스포 가치 빛나


▎한국은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를 이끌어냈고, 전 세계를 화합하는 잔치로 만들었다.
사실 1988년 올림픽은 세계 올림픽 역사에서 지극히 중요했다. 냉전 상황에서 서방과 공산권이 88올림픽 직전 두 차례의 하계 올림픽을 각각 보이콧해 반쪽올림픽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1979년 12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의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이 1980년 모스크바 하계올림픽 보이콧을 주도했다. 인권 외교를 앞세웠던 카터 대통령이 동서 냉전 상황에서 올림픽을 정치에 이용한 것이다. 그 결과 1956년 이후 가장 적은 80개국 5179명이 참가하는 데 그쳤다. 미국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 66개국이 불참했다.

이어 열린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이 보이콧에 나섰다. LA 올림픽에는 140개국 6829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지만 소련과 북한·아프가니스탄·베트남 등 14개국이 보이콧에 나섰으니 완전한 올림픽은 아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이런 분열을 극복하고 전 세계가 한자리에 모이는 역사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과 서울도 올림픽 준비와 개최를 계기로 한 단계 도약했다. 한국사는 물론 세계사적인 사건으로 만들어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국력을 소모한 소련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동유럽 공산권에 불어닥친 자유의 물결 속에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1985년 집권해 서울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개혁·개방에 나섰지만 쓰러져가는 소련을 되살릴 수 없었다. 1922년 12월 30일 건국한 소련은 결국 1991년 12월 26일 해체됐다.

지금의 국제 정세는 서울 올림픽 유치 당시 못지않게 복잡하다. 2022년 2월 27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의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이슬람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등으로 전 세계가 시끄럽다. 혼란스러운 분쟁 상황 속에서 전 세계는 사분오열돼 있다. 폭력과 증오, 인도주의적 위기는 끝이 없다.

그래도 전 세계가 다 함께 한자리에 모여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인류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 해결 방안을 찾는 자리는 언제나 필요하다. 각국의 정체성을 알리는 전시와 문화 행사를 동시에 열 수 있으니 분쟁의 시대에 세계박람회만 한 행사가 없다. 부산은 분쟁의 한복판에서 고난과 극복을 동시에 경험했다. 전 세계와 함께 공유할 만한 역사다.

표결을 앞둔 상황에서 가장 걸리는 부분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강점 중 하나인 다국어 미디어를 통한 글로벌 영향력이다. 한국이 비록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 ICT(정보통신기술)를 기반으로 하는 첨단기술문화와 한류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 등에 힘입어 글로벌 매력국가로 자리 잡고 있지만, 글로벌 미디어 영향력에서 사우디보다 우월하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

사우디 미디어의 글로벌 영향력을 살펴보자. 인구는 3400만 명에 지나지 않지만 전 세계 2억900만 명이 사용하는 아랍어의 중심국가라는 점에서 일단 유리하다. 이집트에 본부를 둔 아랍연맹 22개국은 아랍어를 모국어로 쓰거나 이슬람 보급을 통해 공용어나 국가 언어로 지정한 나라들이다. 아랍연맹 22개 회원국 전체의 인구는 2023년 현재 4억6300만 명이나 되며, 대부분 인구가 증가세인 지역이다. 사우디는 아랍 세계를 대상으로 19개의 24시간 아랍어 일반방송 채널과 1개의 영어 보도 채널, 그리고 2개의 외국어 채널을 송출한다.

사우디의 글로벌 미디어 영향력


▎세계가 분쟁에 시달릴수록 고난에서 번영을 써내려간 부산의 역사는 설득력을 얻는다. / 사진:AP연합뉴스
사우디의 대형 방송사 MBC(중동중앙텔레비전센터) 그룹은 미나(MENA·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아랍 세계를 대상으로 19개의 아랍어 위성방송 무료 채널을 운영한다. 시청자가 최소 1억6500만 명이나 된다. 이 그룹은 1991년 미디어 환경이 자유로운 영국 런던에서 시작했지만, 2002년 사우디 이웃 국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미디어시티를 옮긴데 이어 2022년부터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 터를 잡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국가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자국이 투자한 기업의 본부를 2024년까지 리야드로 옮기도록 지시해 현재 진행 중이다.

MBC는 2003년 UAE 두바이에 24시간 아랍어 보도 채널인 알아라비야를 개설했다. 1996년 이웃한 페르시아 만(아라비아 만) 국가인 카타르에 설립된 24시간 보도 채널인 알자지라가 사우디 왕족의 문제점까지 보도하자 아랍어를 쓰는 미나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아랍어 24시간 뉴스 채널인 알아라비야를 세웠다. 사우디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공영 아랍어 보도 채널을 세워 아랍 세계의 여론을 주도하며 알자지라의 공세에 맞대응하려고 한 것으로 풀이된다. 알아라비야는 지분 60%가 사우디 정부 소유이며, 40%는 MBC가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MBC도 사우디 정부가 허가권을 쥐고 있어 사실상 사우디 정부의 의견과 의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알아라비야를 통한 사우디 정부의 글로벌 미디어 영향력 확대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7년에는 알아라비야의 자회사로 24시간 영어 뉴스를 제공하는 ‘알아라비야 잉글리시’를 세웠다. 방송과 웹사이트를 모두 운영하고 있다. 사우디가 24시간 영어방송 채널을 운영한다는 것은 미국이나 유럽권에 미디어를 통해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이란어로 송출하는 ‘알아라비야 파르시’와 파키스탄·인도에서 많이 쓰는 우르두어로 방송하는 ‘알아라비야 우르두’도 함께 운영한다. 알아라비야가 파르시어로 방송을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이란은 아랍어는 쓰지 않지만 사우디와 같은 무슬림 국가로 매년 수많은 국민이 이슬람 성지인 사우디의 메카와 리야드에 순례를 간다.

이란은 이라크·시리아·레바논·바레인 등에 몰린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인 것은 물론 왕정·선거, 국제관계 등과 관련해 사우디와 라이벌이다. 사우디는 알아라비야 파르시를 운영하는 것은 이란 국민에게 직접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을 하나 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전체 인구의 50% 정도가 파슈툰족이 쓰는 파슈토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만, 전체 인구의 80%는 다리어, 즉 파르시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으로 추산된다.

리야드의 인도계 국가 공략


▎2023년 9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오른쪽) 대통령은 쿠마르 저그노스 모리셔스 총리와 만나 부산 엑스포 지지를 요청했다. / 사진:연합뉴스
알아라비야가 우르두어로 방송하는 것도 의미가 크다. 우르두어는 파키스탄에서 7000만 명이 모국어로, 1억6000만 명이 제2모국어로 사용하는 등 사용 가능자가 2억3000만 명에 이른다. 인구 2억3000만 명의 파키스탄에서 대부분이 사용 가능한 언어이며, 영어와 더불어 공용어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우르두어가 인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쓰는 힌디어와 사실상 동일해 서로 통하는 언어라는 사실이다. 힌디어는 인구 14억의 인도에서 3억2200만 명이 모국어로, 2억7000만 명이 제2국어로 사용해 이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인구가 거의 6억 명에 이른다. 표준 힌디어와 우르두어 사용자는 서로 일상회화가 가능하다.

우르드어 방송은 인구 대비 BIE 회원국 숫자가 많은 카리브해에서도 파괴력이 만만치 않다. 1972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카리브해 섬나라 트리니다드토바고는 135만 인구 중 인도계(35.4%)와 아프리카계(34.2%) 비율이 비슷하고 두 민족의 혼혈인 두글라도 7.7%나 된다. 1990년 이후 인도계와 아프리카계가 번갈아가며 총선에 승리해 총리를 맡고 있다.

영국 식민지에서 1966년 독립한 브라질 북부 가이아나는 인구 77만3000명에서 인도계(39.8%)가 아프리카계(29.3)·혼혈(19.9%)·원주민(10.5%)보다 비율이 높다. 현재 2020년 취임한 인도계 마크 필립스 총리가 국정을 주도한다. 가이아나와 접경한 수리남은 1975년 네덜란드에서 독립했다. 인구 55만8300명 중 인도계(27.4%)는 마론(도주 아프리카계 노예와 원주민 사이의 혼혈, 21.7%)·크레올(유럽계와 비유럽계 혼혈, 15.7%)·자바인(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계, 13.7%)·다인종혼혈(13.4%) 가운데 가장 비율이 높다. 2020년 대선에서 당선한 인도계 찬드리카페르사드 산토키 대통령이 국가 원수다.

인구 91만2200명의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에서는 인도계(37.5%)가 이타우케이로 불리는 피지 원주민(56.8%)보다 인구는 적지만 경제권은 쥐고 있다. 영어, 피지어와 함께 피지 힌디어가 공용어다. 아프리카 서남부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는 인구 126만2100명 중 인도계가 절반을 넘는 89만4500명이다.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며 1982년 이후 인구 조사에서 소속 민족을 묻지 않을 정도로 인도계의 입김이 강하다. 2019년 취임한 대통령 프리트비라지싱 로푼과 2017년 자리에 오른 프라빈드 쿠마르 저그노스 총리가 모두 인도계다. 저그노스 총리는 9월 초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

주목할 점은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8년 7월 25~2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렸던 브릭스(BRICs)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세네갈과 르완다를 찾은 데 이어 귀국길에 모리셔스를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가 일대일로 확대에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사실을 고려한 방문으로 보인다.

프·중·러도 자체 뉴스 채널 개국


▎카타르 도하에 자리한 알자지라 방송국 본부. BBC와 CNN을 대체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사실 사우디는 물론, 전 세계 강대국과 중추국가(또는 후보국가)들은 글로벌 뉴스 방송을 통해 치열한 영향력 확대 경쟁을 벌여왔다. 1922년 설립된 영국의 BBC나 1980년 개국한 미국의 CNN을 비롯한 전통의 영어권 글로벌 뉴스 방송이 그 중심에 있다.

여기에 24시간 영어뉴스를 제공하는, 신생 글로벌 방송을 앞세운 프랑스·러시아·중국·카타르가 영·미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프랑스는 비영어권에서 24시간 글로벌 영어뉴스 방송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 1987년 자크 시라크 당시 총리가 상원 연설에서 “국제뉴스 영향력을 독점하는 영어권 뉴스매체와 동등한 수준으로 프랑스 시각의 뉴스 방송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면서 시동을 걸었다.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2003년 2월 도미니크 드빌팽 당시 프랑스 총리가 유엔총회에서 미국 주도의 아프가니스탄전·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고 기립박수까지 받았는데도 CNN·폭스뉴스·MSNBC 등 미국 매체가 이를 보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 기폭제로 작용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입장을 반영하는 글로벌 뉴스매체의 설립이 급물살을 타면서 2006년 12월 프랑스어와 영어로 각각 방송하는 24시간 글로벌 뉴스 채널인 ‘프랑스 24’가 개국했다. 2007년 4월 아랍어, 2017년 9월 스페인어 채널을 각각 개국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국제뉴스에서 ‘G10 국가’ 한국은 변방


▎아리랑TV의 부산 엑스포 홍보 방송. 엑스포를 계기로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의 확대가 요구되고 있다. / 사진:아리랑TV
그 뒤를 따른 것이 러시아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해 소련 몰락 뒤의 혼란을 조금씩 진정시켜 가던 2005년 12월 24시간 글로벌 영어뉴스 채널인 RT(러시아의 소리)를 모스크바에 개국했다. 러시아 관영 매체 스푸트니크에 따르면 RT의 설립 목적은 “서방 언론이 모스크바 당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대응하는 것”이다. 2007년 5월 아랍어 채널인 러시아 알야움, 2009년 12월 스페인어 채널인 RT 악투알리다드를 추가하는 등 다국어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2014년 베를린에 독일어 채널을 개설해 웹사이트로 송출 중이며, 2017년 파리에 프랑스어 채널을 설립했다.

중국도 뛰어들었다.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에 따르면 1992년 설립된 CCTV-4에서 1996년부터 매일 3시간 30분간 영어뉴스를 내보낸 것이 국제뉴스의 시작이다. 2000년 9월엔 아예 24시간 글로벌 영어 뉴스 채널인 CCTV-9을 별도 개국하고 CCTV-4는 중국어 전용 국제채널로 전환했다.

CCTV-9은 2016년 CGTN(중국 글로벌 텔레비전 네트워크)으로 이름을 바꿔 본격적인 21시간 영어뉴스 방송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아랍어·러시아어·일본어·엔터테인먼트·다큐멘터리 등 10개 국제채널을 운영하며 70여 개국에 지국을 설치했다. CGTN과 CCTV는 아프리카와 중동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2012년엔 10월 CCTV-아프리카를 설립해 케냐 나이로비에서 직접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하고 있다.

인구 260만 명의 중동 산유국 카타르의 알자지라 방송은 갈수록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1996년 11월 범아랍권 아랍어 방송으로 개국했으며 1999년 1월 24시간 뉴스 방송을 시작했다. 2006년 11월 카타르의 수도 도하와 영국 런던에 각각 보도본부를 운영하는 중동 최초의 24시간 영어 뉴스 채널을 개국했다.

BBC에 따르면 알자지라는 방송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전, 2003년 이라크전을 각각 카불과 바그다드에서 현장 보도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를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보도하면서 자유 언론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평가다. 부패와 부정, 독재와 인권유린이 만연한 중동에서 성역 없는 보도로 명성을 높였다. 2017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와 그 동맹국이 카타르와 단교하고 경제적으로 봉쇄한 ‘카타르 외교 위기’에서, 비교적 카타르에 호의적인 국제 여론이 형성되는 데 알자지라의 존재가 한몫했다는 관측도 있다.

한국도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0대 대국의 위상에 걸맞게 24시간 글로벌 영어 뉴스 채널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방송 확대는 한류 전파로 문화산업 융성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경제와 외교 등 국가 운영에서도 필수적이다. 북핵을 비롯한 남북 관계, 사드 사태 등 한·중 관계,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관계, 미군 주둔비용 등 한·미 관계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의 시각과 목소리를 상대국과 전 세계에 정확히 알리고 설득해 국익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글로벌에서 중추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데도 국제뉴스 측면에선 여전히 변방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도자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사실 한 국가의 ‘글로벌 미디어 파워’는 정부의 외교력에 날개를 달아준다. 국내총생산(GDP) 같은 경제력과 문화 국력을 볼 때 한국은 글로벌 미디어에 도전하기에 충분하다. 국익을 위한 국제 여론을 형성하고 한국의 성취를 전 세계에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이제는 외신 보도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산 전기자동차 등의 공정거래를 제한하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억지 등 한국의 국익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의제를 국제사회에 직접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전 세계에 특파원을 파견해 한국의 입장을 영어로 직접 알리는 24시간 글로벌 영어뉴스 채널의 설립이다.

한국의 성취 전파가 곧 국익

현재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으로 국내 유일의 글로벌 영어 종합편성채널인 아리랑 국제방송(아리랑TV)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 1997년 개국해 26년 동안 BTS를 비롯한 한류나 한국문화를 전 세계에 소개하면서 국내외 뉴스도 영어로 전하고 있다. 영어뉴스를 하루 270분(4.5시간) 편성하고 있어 본방 비율 중 시사보도가 57.6%에 이른다.

이를 확대하면서 24시간 글로벌 영어뉴스 채널로 전환하면 그간의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노력과 설립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런데도 2024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인건비를 중심으로 예산을 30% 깎았다니 글로벌화에 역행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도저히 G10 국가에 걸맞은 예산 편성이 아니다.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전을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이 24시간 글로벌 영어뉴스 채널의 부재다. 이제는 이런 채널을 운영하면서 글로벌 사회에 한국의 목소리를 내고 영향력을 확대할 때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의 목표로 잡은 ‘글로벌 중추국가’로 가기 위한 기본적인 국가 인프라다.

-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202311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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