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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 (39) 경기도 화성 국화도에서 

 

아름다운 향기 나는 한 쌍의 원앙의 거기에 있었다

많은 산악회가 있지만 부부가 함께하는 산악회는 드문 것 같다. 부부가 취미가 같고, 시간이 맞고, 두 사람 다 체력적으로 건강하고, 뜻이 맞아야 한다. 힘든 등산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건 여간 복된 부부가 아닐 수 없다. 부럽기 짝이 없다. 특히 나에게는 말이다.

초가을 아침 9시 30분경. 경기도 화성 장고항 주변은 한가로운 바닷가 마을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꼬마 등대가 새근새근 늦잠을 자고, 뭉게구름은 저 넓은 하늘의 도화지에 수채화를 흩뿌리고, 하얗고 작은 배들은 잔잔한 파도에 시소를 타면서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갈매기들이 브런치 찬거리를 위해 저공비행을 하는 가운데, 한없이 드넓고 파란 바다양과 장렬하게 내리쬐는 용감한 태양군이 벌써 사랑의 결실을 잉태한 듯 대명천지가 평화롭고 눈부셨다.

우리 일행은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국화도(菊花島) 들어가는 배 시간에 맞춰 한참을 달려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버스로 10여분을 더 달려서 꽤나 널찍해 보이는 장고항 주차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그곳은 벌써 전국 각지에서 온 차량들로 초만원이었다.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명소라는 국화도의 인기가 실감이 났다. 별수 없이 우리는 넘쳐나는 승객들로 인하여 다음 배를 기다려야만 했다. 마침, 배도 출출해 오고 싱싱한 횟감에 막걸리도 있으니 순식간에 작은 파티가 벌어졌다.

9월의 가을하늘인데도 가림막 하나 없는 장고항 부둣가의 태양빛은 뜨거웠다. 피부가 타건 말건 로션 하나 바르지 않고, 선크림 한번 사서 발라본 적이 없는 나는 먹음직스러운 횟감을 앞에 두고 맛나게 폭풍흡입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다소곳한 모습의 한 여인, 예쁘고 고운 내 아내를 꼭 닮은 그 여인이, 본인은 한입 이쁘게 오물오물 거리면서, 내리쬐는 태양을 맞으며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남편 머리 위로 금이야 옥이야 한 톨이라도 태양빛을 맞을까 요리조리 몸을 움직이며 양산을 씌워주고 있었다. 보기 좋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 순간, 2년 전 블랙아웃처럼 잊혔던 그날이 아련하게 회상되며 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광복절 아침, 갑자기 부엌의 설거지통이 요동을 치며, 날카로운 괴성이 연휴의 아침을 깨웠다. 우리 집안 여왕 대장의 갱년기 히스테리 융단폭격이 또 시작되었다. 대장께서 무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 운동을 하고 돌아왔는데, 설거지통이 또 더럽게 방치되어 있고, 남편이란 작자는 방바닥에 뒹굴뒹굴 누워서 주제넘게 책을 붙들고 있는 그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심사가 뒤틀리고 영 꼴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순간 나도 참지 못하고 “왜, 휴일 아침부터 소리를 질러대냐?” 외마디 반격을 퍼부은 뒤 읽고 있던 책 한권과 신문, 휴대폰만 집어들고는 소나기를 피해 급히 집에서 뛰쳐나갔다. 잘못하다가는 살림살이 몇 개가 또 박살날 판이라, 생명을 조금이나마 건강하게 더 보존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쳐간 것이다.

55년 전, 종손가 부잣집 막내딸 늦둥이로 태어나 아버지가 파출소장으로 금이야 옥이야 귀엽게 자랐고, 173cm 큰 키에 탤런트 고현정을 닮아 초중고 모든 인기투표에서 1등(본인 주장)를 놓쳐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여기에 현모양처의 교양과 순수함과 도덕성을 잘 갖춘 여왕이니 당연히 세상은 자기가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위의 대부분 일상사가 본인 위주로 돌아가기를 바랐고, 이에 어긋나거나 의견의 불일치가 생기면 금세 분노를 터트리고 떼쓰는 어릴 적 습성이 표출되었다. 여왕 대장의 입장에서 보면 남편인 나는 ‘말 잘 듣고 똑똑해보이는 것’ 말고는 별 볼일 없는 머슴이었다. 가진 것 하나 없고, 대머리에 허리는 굽어 노친네 같고, 그에 반해 자신은 평생 99칸 대궐 같은 집에 하인을 수십명 부리고, 손에 물 한방울 안묻히고 사모님 소리를 듣고 콧대높은 마님으로 살 팔자인데, 여왕께서 나를 어여삐 여겨 평생 머슴으로 거두고 지지리 궁상을 떨며 살아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한번은, 초등학교 때부터 남몰래 자기를 짝사랑했던 못생긴 동창 머슴아가 몇 년 전 동창회에서 우연히 만난 후 평생소원이라며 꼭 한번만 만나달라고 간청했는데도 자기가 안 만나줬다고 했다. 자기를 짝사랑하던 그 남자가 건설 쪽 방수공사 사장으로 제법 크게 성공했는데, 불의의 암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하직하면서까지 꼭 한번만 만나달라고 소원했는데도 안 만나줬다고 했다. 자기는 오로지 그 종놈만 바라보고, 지고지순 일부종사하는 마음으로 그 죽어가는 남자를 만나주지 않은 이 시대 진정한 천연기념물이라면서, 대명천지 어디에 자기와 같은 여자가 있느냐고 했다.


그런데 겨우 그런 머슴 주제에 수십 년 간 아침밥 짓는 것은커녕 설거지도 안하고, 겨우 주말에 한번 화장실 청소나 대충대충 하면서, 퇴근 후 집에 오면 빈둥빈둥 누워서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책이나 신문 쪼가리를 읽고 있고, 한 달에 한 두 번은 어떤 작자들하고 시시덕거리며 등산만 다니고 하는, 그 꼬락서니가 싫고 샘통이 쌓였던 차에 드디어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화산이 폭발하듯, 그날 아침 자연스럽게 용암을 분출시킨 것이다.

여왕 대장께서 아침 운동을 하거나 외출할 때 보조자로 머슴을 데리고 다니고 싶어도, 본바탕이 시커먼 화산재 같고, 입 주위는 언제나 더럽게 뭔가 묻어 있고, 칠칠치 못하게 와이셔츠 옷깃이 접혀 있거나 바지가 양말에 끼어 있기 일쑤고, 90먹은 할망구처럼 허리가 굽어서 아무리 야단치고 달래어 목과 허리를 바로 세워도 곧 도루묵처럼 되돌아가 버리는, 그래서 도저히 회복하기 힘든 구제 불능의 인간으로 포기한지 오래건만....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 구석에 처박혀져서 찌그러지고 낡아빠진 그놈을 요즘은 바라만 보아도 더욱 부아가 나고 짜증이 나는 것이었다. 가끔씩은 비가 오나 눈이오나 일용할 양식을 성실히 생산하는 충성심 높은 머슴이라서 불쌍하고 ‘짠한’ 생각이 들다가도, 그날 따라 영 성이 안차고 창피하고 기분이 나쁘고 꼴보기 싫으면, 그 머슴을 교양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사랑이란 이름과 명분으로 마구 머슴에게 짜증을 퍼붓는 것이다. 그래도 신혼초에는 ‘여왕이 머슴의 가장 경쟁력이고 자랑’이라고 떠벌리고, 여왕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이제는 ‘사랑한다’ 한마디조차 들어본지 오래되고, 사업도 좀 되고 하니 자기가 제법 컸다고 본인을 등한시하고 멀리한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못난 머슴 놈이 진정한 여왕 대장의 넓은 마음과 하늘 같은 높은 사랑을 서운한 홧김에 왜곡하고 이해하지 못한 편협한 생각의 발로이겠지만, 그날 소나기를 피해 허겁지겁 뛰쳐나가면서 머슴 놈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제대로 밥을 못 먹어도 헛기침 하고 이를 쑤셔댄다는 허수아비 양반처럼, 남의 눈을 의식해 화장을 하지 않으면 가까운 슈퍼도 못 갈 정도이고, 책 한 권 신문 한 줄을 안 읽어 부잣집 예일곱살 막내딸로 머리가 박제되어 불쌍한 머슴놈의 유일한 취미마저 씨알때기 없는 헛짓거리로 경멸하는, 그 마녀가 살고 있는 집구석에는 다시는 들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집을 나왔으나 딱히 갈 데가 없었다. 친구를 불러 차마 부끄러워 속사정을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그저 껄껄껄 웃으며 술 한잔을 걸쳤다. 그리고 초연히 영종도 바닷가 한적한 곳에 숨어들었다. 저 넓은 지평선 너머 태양이 넘어가고, 수차례 밀물과 썰물이 밀려왔다 밀려갔다. 그렇게 홀로 외로이 앉아 우주의 자전과 공전, 숨소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멍때리기를 했다. 구름은 자유롭고 바다는 푸르고 넓고, 석양은 한 없이 아름다웠지만, 머슴은 배고프고 남루하고 늙고 지치고 힘 빠진, 길 잃은 한 마리 늑대에 불과했다. 급기야 깜깜한 밤 자정 12시경, 갑자기 하늘도 머슴을 버린 듯 세차게 폭풍우가 몰아치고 번개가 내리쳤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앞이 안 보일 정도의 비바람을 뚫고 차를 몰아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 화장실 문을 꼭 잠가놓고는, 땀과 바닷가 염분에 젖은 속옷과 단벌 겉옷을 빨아 사무실에 널어놓고, 고양이 세수를 하고, 사무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는 회사 유니폼을 덮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왠지 모를 서러움과 낯섦에 비몽사뭉 잠을 설치고 다음날 아침 8시가 넘어서 눈을 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한 직원이 무슨 일 있으시냐고 걱정스럽게 묻기에, 연휴에 어디를 갔다가 너무 늦고, 할 일이 있어 사무실에서 잤다고 둘러댔다.

그날부터 바로 원룸을 알아 봤더니, 나 같은 처지의 사람이 얼마나 많은 건지 마곡신도시 그 많은 원룸이 다 차 있었고, 5~7평 기준 보증금 500~1000만원에 월세 50~60만원, 관리비 10~15만원선으로, 풀옵션으로 몸만 가면 그냥 편히 살 수 있었다. 정말 돈만 있으면 아담하고 귀여운 나만의 자유스러운 보금자리를 너무나 쉽게 마련할 수 있으니 왜 1인 가구가 날마다 늘어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원룸은 포기하고 금요일 밤까지 6일을 내리 돗자리를 깔고, 사무실에서 잠을 잤다. 밥은 사 먹거나 귀찮아서 굶고, 저녁 늦게 남몰래 속옷과 양말을 빨아 널고, 더 이상 들키지 않게 새벽 일찍 일어나 회사 근처 서울식물원과 궁산에 올라 산책을 하고, 하염없이 한강을 바라보다 아침 9시에 맞춰 평상시와 같이 출근했다.

평상시 잘 거들떠보지 않던, 밤낮없이 울려대는 여왕 대장과 아들 놈들의 카드 긁는 소리, 그리고 수업료와 수리비 등 돈 빠져 나가는 소리가 귀에 거슬렀다. 지금 당장 가족 모두에게 준 그들의 생명줄 카드를 정지하고, 나 혼자 멋진 원룸을 얻어 혼자 자유롭고 편안하게 잘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혼자 있으면 나 혼자만의 천국으로,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고 글도 마음껏 쓰리라 생각 했는데....어쩐 일인지 정말 영양가 없는 동영상이나 보게 되고, 앞날이 캄캄해지고 기분이 찜찜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30년 가까이 살 비비고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나의 가장 소중한 피붙이, 영양가 있는 생과일 주스를 갈아주고, 항상 내가 건강하고 잘 되기를 기원하고, 고춧가루가 이빨에 끼고, 양말이 바지에 끼어 있는지 항상 살펴주고, 남자는 항상 씩씩하게 가슴을 열고 굽은 허리를 곱게 펴고 다녀야한다며 무던히도 이 몹쓸 몸을 어루만지며 괴롭히던 마님의 얼굴과 산산이 부서지는 보금자리의 씁쓸함이 오버랩 되며 도저히 혼자 사는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 주 토요일 아침, 집근처 병원에서 코로나 방역 주사를 맞고, 갈아입을 옷을 가져가기 위해 할 수 없이 집에 잠시 들려야 했다.

“아버지! 코로나 방역주사 부작용이 심하데요....그냥 집에서 편히 쉬세요...^^^

“이제 왔어요...” 다소곳이 말하고는 정성들여 차려준 여왕 대장의 맛있는 집 밥을 못 이긴 척, 모처럼 배불리 먹고, 또 못 이긴 척 안방에 들어가, 딱 1주일간 설친 잠을 보충하듯 늘어지게 편한 잠을 잤다. 역시나, 집 나가면 개고생이고, 사람은 고뇌와 시련 속에 성숙해지며, 가정은 이성과 수학으로는 계산하고 표현할 수 없는 ‘정’(情)이라는 무서운 괴물이 살고 있음을 알았다. 어쩌면 아내는 진정한 나의 대장으로, 머슴이 좀 더 잘 되기 위한 바람으로 약간의 잔소리를 한 것인데, 속이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머슴놈이 그것도 모르고 침소봉대 하고는 집을 나갔다가 제풀에 꺾여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그 멋진 마님은 정말 우리 집의 멋진 안주인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한동안 생각에 빠졌다가 주위를 돌아보니 어느덧 우리가 탄 배가 국화도 선착장에 도착해 있었다.


국화도는, 하얗고 여린 어느 소녀가 어느덧 고운 아낙이 되어, 어느 바닷가 해변에 님을 기다리며 다소곳이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넓지도 크지도 않고, 높지도 않지만, 수수하고 예쁘고 사랑스럽다. 아름답고 귀여운 여인같은 섬, 한 남정네만 바라보고 사는 해바라기, 내 마님의 마음을 닮은 섬이랄까....그녀의 작은 가슴에 풍덩 빠져 들었다. 일편단심 대나무와 푸른 정조를 지키겠다는 듯 너무나 맑고 고운 소나무들이 줄을 지어 독야청청 푸름을 더하고 있었다. 원앙금침의 이불을 펼쳐 놓은 듯한 아름다운 백사장에는 작은 기암괴석들이 수를 놓은 듯 펼쳐져 있었다.

국화도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소재지에서 남서부 28㎞ 지점에 위치해 있다. 동쪽은 당진군 석문면, 북쪽은 입파도와 인접된 유인도로 바지락・굴 등 어패류 채취를 주업으로 하는 도서지역 어촌의 예쁜 마을이다. 꽃이 늦게 피고 늦게 진다고 해서 늦을 ‘만(晩)’자를 써 만화도라 불렸으나 일제 강점기 국화가 많이 피는 섬이라 해서 국화도라 바꿔 부르게 되었는데, 실제로 섬 전체에 들국화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배를 타고 장고항에서 10분, 궁평항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하며, 걸어서 2시간이면 섬 전체를 돌아볼 수 있다. 장고항에서 여객선으로 10분 정도 소요되는 가까운 섬이지만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섬으로, 장고항에서 바라보는 국화도는 섬을 온통 뒤덮고 있는 소나무숲 때문에 사람이 살지 않는 섬처럼 보인다. 나들이 명소로 손색이 없는 풍광을 자랑하는 국화도는 당일치기 코스로도 좋다. 경사가 심하지 않고 물이 맑은 해수욕장에서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기고, 아이와 함께 호미를 들고 나가 고둥과 조개 등 다양한 해산물을 잡거나 어선을 타고 낚시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담소를 나누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사진을 찍고 물장구를 치고, 투망질을 하면서 국화도 섬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런데도 채 2시간이 안 걸렸다. 남에서 북으로 길게 뻗은 국화도 산 능선(해발고도 60여m)을 타고 드넓고 멋진 바닷가를 조망했다. 아득하게 공장의 굴뚝이 보이고, 육지의 산이 보이고 집들이 보였다. 멀리서 보니 지옥 같은 저곳도 참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인다. 신기하게도, 세상 만사는 조금 떨어져 보아야 잘 보이고, 아름다워 보인다. 특히 사람은 더 그렇다.

그리고 바로 눈앞, 15cm도 안 되어 보이는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하얀 꽃들이 무리지어 아름답게 피어있다. 참으로 앙증맞게 귀엽다. 아마 저 꽃들도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도 살아있는 생물로서, 저렇게나 애절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다만 모양이 다르고, 성질과 천성이 달라,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할 뿐이다.

드리어 국화도의 최고봉, 정수리에 있는 모정에 올랐다. 안 보이는 것 빼고 다 보인다. 아마도 이 섬의 누군가도 애절하고 애타게 긴 모가지를 하고 저 아득한 먼 곳을 바라보고 곱씹으며 그리워했을 것이다....그래서일까, 포근하고 따뜻한, 아낙네의 숨소리가 향기롭게 들리는 듯하다.

바닷가의 점심시간....그 여인이 남편보다 불편한 곳에 앉아서 남편의 숟가락 위에 붉은 소고기를 올려놓는다. 참! 아름답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있을까? 집에 있는 마님의 눈길이 겹쳐진다. 마님의 그 눈길은 촉촉이 젖어 있다.

우리는 도시락을 먹은 뒤 미지근한 바닷물에 들어가 멱을 감고, 궁평항 황홀한 노을 속에서 맛있게 반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행복한 국화도 여행을 모두 마쳤다. 국화도는 당일치기 코스지만, 하루 이틀 더 섬에 머무르며 이 고즈넉하고 소박한 어촌마을의 정취를 느끼고 휴식시간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오래도록 행복한 부부생활을 위하여 ‘부부백년해로 10헌장’을 부록으로 남긴다.

1. 인내. '한약'론 - 인내하며 다툼을 피하라.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2. 칭찬. 귀로 먹는 ‘보약’론 -칭찬에 인색지 말라.

3. 웃음. ‘명약’론 -웃음과 여유를 가지고 대하라

4. 기쁨 ‘신약’론- 서로 기뻐할 일을 만들라.

5. 사랑 표현. ‘만병통치약’론 - 사랑을 적극 ‘표현’하라

6. 같이 즐기는 오락이나 취미를 만들어라

7. 금연. 금주하고 건강을 지켜라. 건강한 부부는 부부 관계도 건강하다.

8. 서로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라 - 경제적, 심리적으로 적당히 독립하라

9 .매년 혼인갱신 선언을 하라 - 머쓱해질 틈을 주지 말라

10. 부부 교육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자 - 투자한 만큼 거둔다.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1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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