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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 (41) 몽골 테를지국립공원 열트산에 올라 

 

몽골 푸른 초원 소똥 밭에 굴러봤는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하늘의 풍경은 경이로웠다.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마치 자기를 잡아 보라는 듯 하얀 드레스를 입고 갖은 교태를 부리며 유혹하는 듯했다. 지상에서 무려 1만 여m 떨어진 하늘. 아마도 천국은 이처럼 깊고 깊은 새파란 호숫가에서 태양과 물방울이 서로 사랑하고, 질투하고, 눈물 뿌리는 사랑의 놀이터와 같을지도 모른다. 이 구름 밑 생명체들은 태양과 구름과 물방울의 이 시도 때도 없는 애정 싸움에 그저 울고 웃고 놀아나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우리 일행이 탄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떠난 지 3시간 만에, 넓은 대지 위에 작은 물 한 방울이 떨어지듯 몽골 칭기즈칸국제공항 활주로에 멈춰 섰다. 달나라에 처음 발을 디딘 암스트롱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내 마음 속은 낯설고 얼떨떨하면서도 뭔가 신비로운 것을 기대하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주위를 들러보니 상상으로만 꿈꾸었던 몽골의 초원이 구릉지와 야산에 푸르게 펼쳐져 있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조차 낯설지 않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몽골은 한반도의 7.4배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다.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국가들로 향하는 출발지로서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13세기 칭기즈칸에 의해 몽골제국이 성립되어 세계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국가를 건설했으며,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체제변환을 한 뒤로 성장의 길로 내달리고 있다. 평균수명 70세. 목축업과 관광업이 주요 수입원이며, 세계 10위의 자원 부국이다. 인구밀도도 ㎢당 2.10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초원에서 목축업 종사자는 전 국민의 5%에 불과하지만 몽골에서는 부유한 상류층에 속해서 자식들을 한국 등에 유학시키는 등 신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 땅을 밟은 울란바토르는 수도권 집중(인구 60만 명)에 도시 난개발, 도로 등 각종 인프라 부족으로 차량이 수도 없이 이어져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몽골에 도착한 다음 날, 중앙아시아에서 제일 큰 라마불교의 성지라는 간등사(간단 테크치늘렌 사원)를 찾았다. 해탈한 부처님의 얼굴이 아닌, 당태종의 친조카라고 알려진 문성공주(623~680)가 불상으로 장식돼 있었다. 문성공주는 티베트의 왕비가 된 당나라 여인이다. 힘이 약한 당태종이 나라를 보전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원수나 다름없는 티베트 송첸 캄포 왕에게 시집보냈다고 한다. 문성공주는 정략결혼의 희생양이었지만 미모가 뛰어나고 영리했다고 한다. 14년 동안 티베트에 있으면서 당나라와 티베트 사이의 경제와 문화 교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티베트에 불교 문물을 전해 티베트인들의 여신이 됐다. 그녀가 얼마나 영향력 있고 추앙을 받았으면 몽골에서 석가모니를 대신해 저렇게 큰 불상이 되어 영원히 사는 것일까? 어쩌면 역사란, 편안함과 안락 대신 고난과 아픔을 짊어지고 도전하는 자의 기록일 수 있다.

대통령궁과 의회가 있는 수흐바타르 광장도 둘러봤다. 칭기즈칸(1162~1227)의 거대한 동상이 눈에 확 들어왔다. 칭기즈칸 서거 800주년 기념 48m 대형 은빛 동상은 웅장하고 장엄했다. 칭기즈칸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똑같이 희생하고 똑같이 부를 나누었소. 나는 사치를 싫어하고 절제를 존중하오. 나의 소명이 중요했기에 나에게 주어진 의무도 무거웠소. 나와 나의 부하들은 늘 원칙에서 일치를 보며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굳게 결합되어 있소. 내가 사라진 뒤에도 세상에는 위대한 이름이 남게 될 것이오.” 그의 말처럼 그의 이름과 기백은 영원히 살아남아 지금도 몽골 전역에 그를 기리는 기념물이 있다. 최근에 지었다는 7층 높이의 칭기즈칸 박물관에도 칭기즈칸의 유물과 유품, 노략질한 보물과 그림 등이 넘치도록 전시돼 있다고 한다.

오후에는 한국-몽골 국제 문학인 행사에 참석했다. 몽골 국립대학 국문과 교수님들과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의 저자 강민숙 시인 등 여러 시인들의 귀한 말씀을 들었다. 부족하지만 그 분들 앞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는 기쁨도 맛봤다. 부끄럽지만, 나 같은 햇병아리 문학인이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김희범

내가 내를 좋아하는 것은

부끄럽다고 쉬이 멈추지 않고

장애물도 사뿐히 즈려밟고 넘고

새로운 것에 가슴이 뛰고

머리통을 박차고 나와 한발이라도 걸어 나가고

모든 것을 고맙고 감사하며 산다는 것이다.

흔적 없이 흔적 없이

그 어느 날 바람에 모든 것이 흩어짐을 알기에...

더불어, 순간순간을 가슴에 담아 맛보고 느끼고 쓰고 산다.

아무리 고뇌하고 아무리 몸부림 쳐봐도

미련하고 미천한 내가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

꼭 채우고 갈 숙제가 그것이라 믿기에...

그래서일까?

오늘도, 순간 순간이 참 맛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초가을 아침에)



이튿날 아침, 테를지국립공원에 있는 아리야발 사원을 찾았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벗어난 지 채 5분이 안 되어 푸른 초원의 구릉지와 야산이 끝없이 펼쳐졌다. 눈앞에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에 감탄을 연발하다 한 순간 시선이 산중턱에 멈춰 섰다. 빨갛고 노랗고 파란 색색의 야생화와 기암괴석에 마음을 빼앗기며 1㎞정도를 걸어 올라서자 부처님이 타고 다니셨다던 코끼리를 형상화해 만든 아리야발 사원이 보였다. 사원 안은 생각보다 아담하고 소박했다. 내부는 작은 불상들로 가득 차있었고 변변한 집기 하나 없이 스님들이 경전을 외우고 기도하는 마룻바닥뿐이었다. 바로 이 소박한 모습이 욕심과 번뇌를 내려놓고 자비를 실천하는 수도자들의 해탈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몽골 전통집 ‘게르’도 방문했다. 게르 안은 생각보다 넓고 푸근했다. 그릇과 식기, 침대 등 살림살이가 정말 없는 것 빼고 다 있었다. 드넓은 초원에서 몽골 여행의 최고 하이라이트라는 말 달리는 체험도 했다. 같이 온 일행들과 함께 백마에 올라타고 푸른 초원을 2차례 신나게 내달렸다. 한바탕 달리고 나니 자연과, 말과 호흡을 같이하며 가슴이 상쾌해졌다. 왜 말달리기를 몽골 여행의 백미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루가 저무는 시각, 숙소인 게르에 짐을 풀고 몇몇 분들과 함께 숙소에 있는 뒷산에 올랐다. 해는 옆산에서 뉘엿뉘엿, 뭉게구름은 나빌레라 넘실 넘실...큰 바위 얼굴과 금강산 일만이천봉과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합쳐진 듯한 기암괴석과 푸른 초원아래 우주선을 펼쳐놓은 듯한 하얀 게르와 망아지, 말과 소와 양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이루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곳이 그렇게 우리가 꿈꿔오고 그렇게 찾아 헤맸던 무릉도원이 아닐까! 그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함께 산에 올랐던 두 시인이 거의 동시에 말을 뱉었다. “이렇게 행복한 날도 많았지만 우울감에 빠질 때도 많았어....그리고 하염없이 울어도 봤지.”

시인들이 읊은 말의 뜻을 음미하며, 아마도 너무나 높은 행복감에서 떨어지는 어떤 상실감, 허전함 같은 것이 아닐까 혼자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 시인께서 언덕 아래로 굴러 보자고 한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 시인이 데굴데굴 산 아래로 먼저 굴러 내려갔다. 나도 엉겁결에 데굴데굴 굴렀다. 처음 한 두 바퀴는 재미도 있고 천천히 굴러 갔는데, 가속도가 붙으니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황홀함과 행복감은 다 어디가고 앞이 캄캄하고 어지럽고 울렁거리고 머리가 뱅뱅 돌았다. 그래도 또 30m를 더 굴러 내려갔다. 이제는 심하게 살이 떨리고 정신이 어지럽고 몸속의 모든 장기가 다 울렁거린다. 60m는 족히 굴러 내려온 것 같다. 돌아서서 굴러온 언덕을 바라보니 사방천지가 다 소똥이었다. 그 순간 ‘괴짜’로 소문난 강 시인이 소똥 밭을 구르자고 했던 마음을 알 것도 같다는 어떤 깨달음이 스쳐갔다. 어쩌면 우리 인간들은 저 넓고 아름다운 세상 속에 살면서도 그저 돈과 명예와 권력을 위해 몸부림치며 정신없이 데굴데굴 구르며 혼이 빠진 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행복과 세상맛을 모르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바쁘게 살다가 한탄과 눈물 속에 이 세상을 하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몽골 여행 4일째. 이른 아침, 테를지국립공원 앞산에서 떠오르는 장엄한 태양을 바라봤다.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고 국립공원에 있는 열트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몽골은 해발 평균 고도가 1200m나 되는 고지대에 위치한 나라여서 그런지 1920m 높이라는 열트산이 왠지 동네 앞산, 뒷산처럼 편안해 보였다. 열트산은 자작나무와 죽은 고목나무가 외롭게 서있는 캐럴나무 작은 군락 일부만 제외하고는 각종 기암괴석과 목초지로 덮여 있었고, 사방팔방이 확 트여 한국의 여느 산과는 다르게 답답하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더불어 여러 이름 모를 야생화에 취하고, 끝없이 펼쳐지는 뭉게구름과 대 자연을 만끽하느라 마음도 몸도 가뿐하고 상쾌했다. 강 시인은 정말 남다른 분이었다. 초원에서 죽어 머리뼈와 이빨만 앙상하게 남은 양의 머리를 바위에 올려놓고 정말 예쁜 꽃으로만 꽃단장해서 추념식을 올리며 극락 장생을 기원했다.

열트산에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저 멀리에서 바라볼 때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처럼 아름답게 보였는데, 그 바위의 이름이 푸른 늑대바위라고 했다. 몽골의 탄생 신화와 전설을 품은 역사적인 바위였다. 먼 옛날 바이칼 호수 근처에 살던 푸른 늑대가 이곳으로 소풍을 왔는데, 이 근처에 살던 하얗고 예쁜 사슴과 이 바위 위에서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아이가 몽골의 시조 할아버지이고, 그 23세 자손이 용맹한 칭기즈칸이란다. 그래서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에 푸른 늑대 이름을 넣어 짓고,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예쁜 사슴의 이름을 넣어 짓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길, 삼겹살과 된장찌개가 일품인 한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사흘간 매 끼니를 소고기, 양고기로 배를 채웠는데도 항상 뭔가 허전하고 2%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된장찌개를 곁들여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먹는 그 맛은 정말 꿀맛 이상이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공깃밥 2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2023년 9월 1일~5일까지 몽골을 여행했다. 푸른 초원과 그림 같은 대자연, 낮게 피어오른 뭉게구름과 파란 하늘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가장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소똥 밭을 60여 m나 데굴데굴 구른 것이다. 체면과 껍질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나를 만나야 한다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일깨워준, 잊을 수 없는 몽골여행이었다.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1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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