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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고층빌딩 외벽 청소 현장 

40년간 63스퀘어 외벽 청소해온 베테랑의 하루 

최기웅 기자
유리창만 1만3500여 장… ‘여의도 63빌딩’ 봄맞이 외벽 대청소
아차하는 순간 목숨 위협, 초긴장 상태로 보낸 열흘간의 대단원


▎서울 여의도 63스퀘어 외벽 청소팀이 겨우내 쌓인 먼지와 때를 벗기기 위해 외벽 청소를 진행하는 등 봄맞이 대청소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 도심의 풍경이 발아래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고소공포증이 없어도 이렇게 높은 곳에 두 발로 서 있다는 사실이 문득 숨을 멈추게 한다. 이곳은 서울 여의도 63스퀘어 옥상이다. 1985년 완공 때부터 수년간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고층 빌딩으로 이름을 날렸다. 해발 264m의 높이는 한강 너머 마주 보이는 남산(해발 270m)과 맞먹는다. 기자가 찾은 날, 겨울 동안 건물 외벽에 쌓인 먼지와 때를 깨끗이 닦아내기 위해 특별한 작업자들이 모였다.

6명으로 팀을 이룬 외벽 청소 전문가들은 이른 아침부터 작업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다. 봄이지만 빌딩을 타고 도는 매서운 바람을 막아 줄 두꺼운 방풍 점퍼에 안전모를 쓰고, 혹시 모를 추락에 대비해 로프도 곤돌라에 단단하게 체결했다. 하나하나가 아차 하는 순간 생명을 지켜줄 안전 장비이기 때문에 어느 것도 허투루 할 수 없다. 사소하고 단순한 실수라도 생명을 앗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이들 작업의 첫째 규칙은 안전, 둘째 규칙도 안전, 마지막 규칙도 안전이다. 팀의 리더격인 이동옥(41)씨에게 “무섭지 않으냐”고 물으니, “항상 두렵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걸 받아들이고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것”이라는 야무진 대답이 돌아왔다.

작업장이 특별한 만큼 청소하는 방법 또한 특별하다. 일반적인 청소의 필요충분조건인 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조개껍데기를 갈아 만든 규조토 파우더를 외벽에 문질러 바른다. 표면을 미끄럽게 만들어 먼지가 쉽게 달라붙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빌딩을 ‘드라이클리닝’하는 것처럼. 10일에 걸친 청소 작업 중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유리창 총 1만3500여 장 중 이제 남은 1500여 장을 닦으면 이번 봄청소가 마무리된다.

작업은 옥상에 설치된 대형 곤돌라를 타고 한다. 곤돌라는 빌딩 유리창 사이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서만 움직인다. “63스퀘어가 처음 지어질 때부터 청소를 염두에 두고 설치한 곤돌라용 레일입니다. 일단 연결되면 엘리베이터처럼 안정적이죠”라고 고층빌딩 외벽 전문 청소업체 수아디오 이경준 대표가 설명한다. 그는 1985년 완공 때부터 지금까지 40여년 동안 63스퀘어의 외벽을 청소해온 베테랑이다.

곤돌라에는 최대 4명이 탑승한다. 한 사람이 유리창 한 줄씩을 맡아 청소하며 아득한 지상까지 수직으로 내려오는 데 대략 90분이 걸린다. 곤돌라가 레일에 아무리 단단하게 고정돼 있어도 위험은 항상 그들 발밑에 도사리고 있다. 특히 갑자기 불어오는 돌풍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옥상에서 곤돌라 키를 쥐고 있는 이경준 대표는 무전기를 이용해 작업자와 끊임없이 교신한다. 곤돌라 안의 작업자들은 눈빛과 몸짓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할 만큼 호흡을 맞춰온 숙련된 베테랑이지만, 이동옥씨는 “돌풍으로 곤돌라가 심하게 흔들리거나 줄이 꼬이는 등 아찔한 순간들도 많았다.”며 “아무리 장비가 좋다 해도 방심은 금물”이라고 전했다. 지상까지 도착해 한 줄 작업이 끝나도 곤돌라에서 내리지 않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 다음 작업 위치로 이동한다.

이날은 빌딩의 옥상에서 지상까지 총 4번을 오르내린 끝에 길었던 청소 작업이 마무리됐다. 팀원들은 땀에 젖은 얼굴을 마주 보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밝은 미소를 교환했다. 이경준 대표는 “오늘로 봄청소는 모두 끝났으니, 올해는 이제 여름과 가을 청소 두 번만 남았네요”라며 활짝 웃었다.


▎오늘 작업은 유리창 총 1만3500여 장 중 1500여 장으로 빌딩의 세로 4줄이다. 10여 일간 진행된 이번 봄청소는 오늘 마무리됐다.



▎곤돌라에는 최대 4명이 탑승해 청소를 진행한다.



▎청소 시작 전 외벽 청소 전문가들이 청소 도구를 점검하며 준비하고 있다.



▎곤돌라는 빌딩 유리창 사이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서만 움직인다.



▎표면을 미끄럽게 만들어 먼지가 쉽게 달라붙지 못하도록 조개껍데기를 갈아 만든 규조토 파우더로 외벽을 청소한다.


- 사진·글 최기웅 기자 choi.giung@joongang.co.kr

202405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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