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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일본 직설(直説), 요설(妖説) 그리고 곡설(曲説)(10)] 화장실조차도 관광 명소로 만드는 일본 

인류 문명사 초유의 발상, 시부야 화장실 투어 

화장실을 예술 작품으로… 테크놀로지 첨부한 혁명적 세계관
신선한 발상 통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힘이 일본의 매력


▎도쿄 요요기 후카마치공원 화장실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로 유명해졌다. 평소에는 보라색, 붉은색, 주황색이 칠해진 투명 화장실이지만, 안에 들어가서 열쇠를 채우는 순간 불투명 유리로 변한다. 화장실 밖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어린이의 웃음소리가 화장실 안까지 밀려든다. / 사진:유민호
'전부 3개 코스 17개 투어, 1인당 9900엔’

지난 3월 2일부터 시작된 도쿄 시부야구(渋谷区) 관광 이벤트 메뉴다.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두 차례에 걸친 현장 투어로, 2개 코스 8개 투어로 한정할 경우 1인당 4950엔이다. 관련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 지역 내 골프 투어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벤트 내용은 화장실 방문 투어다. 필자가 아는 한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관광 상품이 도쿄에서 시작된 것이다. 화장실이 관광 상품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실 고대 로마 목욕탕 안의 집단 화장실, 프랑스혁명 이전 존재했던 베르사유 궁전 화장실과 같은 곳을 찾는 관광객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같은 화장실 관광은 수많은 유물 유적 중 하나로서, 스쳐 지나가는 볼거리에 불과하다. 아예 작정을 하고 화장실 하나에 초점을 맞춘 관광 상품은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없었다.

시부야 화장실 투어는 인류 문명사 초유의 발상으로 여겨진다. 하나가 아닌 무려 17개의 화장실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미증유의 관광 상품이 2024년 일본에 등장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참가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21세기에 나타나는 문화 현상의 대부분은 ‘포스트(Post)’라는 접두어에서 시작한다. 아무리 포스트세상에 잘 적응한다고 해도 외국까지 가서 화장실 투어에 나서는 관광객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포스트 하나만이 아닌, 포스트가 두 번, 세 번 연거푸 나열될 황당무계한 9900엔 관광 상품이 도쿄 한복판에서 시작됐다.

병에 걸릴 경우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2월 말 서울에 머물면서 접한 한국 내부의 각종 진단과 평가를 보면 해외에서 이뤄지는 기준과 너무도 다르다. 예를 들어 관광에 관련된 내부 진단을 보자.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100만 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일본을 찾은 관광객은 2500만 명이다. 양국 모두 외국인 관광객이 폭증하고 있지만, 일본을 찾는 사람들의 규모나 방문 속도는 한국을 압도한다. ‘왜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보다 일본에 더 많이 가는가’에 대한 진단이 여기저기서 이뤄지고 있다. 결론이 흥미롭다.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한류 콘텐트 확산 부족’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좁게 보자면 K팝 확산이 제대로 된다면 관광대국으로 재부상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결론은 그 같은 분석에 기초한 정부 지원이나 환경 조성에 대한 요구와 요청이다.

2030세대 중국인 관광객이라면 K엔터테인먼트 활성화에 민감할 듯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년 외국인 관광객은 다르다. 일단 질적·양적으로 풍부한 문화 볼거리, 저렴한 현지 물가가 우선일 것이다. 중국제 수입품으로 도배를 한 인사동, 핫도그 하나에 5000원 하는 나라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가 없다. 한번은 통하겠지만, 리피터 관광객도 없고 실상을 들은 사람이라면 발길을 돌린다. 간과하기 쉬운데, 우리 모두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다. 굿 뉴스보다도 비난·비방·욕설이 더 빨리 퍼져나간다. 그러나 한국 관광 정책 관계자 대부분의 생각은 다르다. 아이돌 몇 명이 나와 K팝을 외칠 경우 외국인 관광객도 폭증한다고 믿는 듯하다.

한국 신문에는 안 나오지만 J팝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도 대단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서울에서 이뤄지는 방한 J팝 콘서트는 일찍부터 매진이다. 그러나 지난해 700만 명에 달했다는 방일 한국인의 주된 관심사는 J엔터테인먼트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단 물가가 싸고 볼거리도 많고 사람들도 친절하며 새로운 것도 많은 곳이 일본이다. 한국인만이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 모으려는 일본인의 노력은 특별하고도 남다르다. 기억에 남을 관광 상품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면서 개발·진화하고 있다. 1년 전 아카데미 수상 영화도 한순간 잊히는 시대다. 이미 10년도 지난 빌보드 차트 노래를 틀고 또 트는 ‘꼰대 관광’은 발붙일 수가 없다.

외국인 관광객 끌어 모으려는 일본인의 노력

일본적인 관광 상품, 아니 방일 관광객 수가 급증하는 이유라고 할까? 이미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일본 풍경으로 정착된 관광 명소가 하나 있다. 한국인을 포함해 일본을 찾는 2030세대 대부분이 들르는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점(渋谷スクランブル交差点)’이다. 사상 초유 화장실 투어가 탄생한 시부야 지역 관문에 해당될 공간으로, 필자에게는 도쿄의 카오스로 느껴지는 곳이다. 스크램블은 영어의 Scramble, 즉 ‘엉키고 섞이다’란 의미다. 서로 방향이 다른 5개 도로의 횡단 신호등이 한순간에 전부 푸른색으로 변한다. 곧 이어 5차선 횡단도로 전체가 인파로 뒤덮인다. 평균해서 한꺼번에 4000명 정도가 일시에 건넌다.

시부야 스크램블은 한국은 물론 아시아 어디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인해(人海) 카오스의 무대다. 그러나 일본은 그 같은 평범한 세상을 도쿄 최고 관광 명소로 만든다. 건널 때 수천 명이 동시에 빠른 속도로 걸으면서도 절대 안 부딪힌다는 일본의 횡단보도 문화가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뜬 것이다. 인해 카오스 그 자체도 있지만, 빠른 속도와 더불어 보행자끼리의 충돌이나 사고가 없다는, ‘스피드와 배려’가 어울린 땅으로서의 시부야 스크램블인 셈이다. CNN을 비롯한 외신 방송이 시부야 스크램블을 일본 관련 뉴스 뒷배경으로 활용하는 이유도 바로 그 같은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문화는 자연스러운 존재다. 반짝형 세계 1위를 자랑하면서 이뤄지는, 정부 지원에 기초한 국책(国策)문화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온실이 아닌 비바람 속에서 자란 꽃이 오래 간다. 시부야는 스크램블 탄생 이전에 시부야 충견(忠犬)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미 30여 년 전이지만, 필자 역시 도쿄에 처음 들렀을 때 달려간 곳이 시부야역 바로 앞에 세워진 충견 하치코(ハチ公) 동상이다. 저세상으로 간 주인을 잊지 못하고 역 주변을 서성인 충견에 관한 애틋한 얘기가 100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하치코에서 시작된, 일본인은 물론 외국인의 관심이 시부야 스크램블을 도쿄 명소로 만든 가장 큰 동인(動因)이라고 볼 수 있다.

4000명이 일시에… ‘스크램블 교차점’ 장관


▎후카마치 화장실은 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넓다. 일본을 생각하면 ‘안심, 안정, 평화’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일본은 그 어디에든 화장실이 있다. 청결은 물론 최신 비데로 장식된 첨단 공간이다. / 사진:유민호
지난 3월 1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영화 팬이라면 알겠지만, 일본이 상을 2개나 받았다.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시각효과상이 주인공이다.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시각효과상은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일본 제작진이 받았다. 필자의 지론이지만, 일본은 번트 4개로 점수를 올려가는 야구에 주목한다. 4번 타자라도 포볼이나 기습번트를 통해 일단 1루에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장타형, 홈런형 야구에 익숙하다. 4번 타자라면 홈런이나 장타로 승부를 내야 한다. 포볼로 1루에 나가는 것보다 홈런을 노리다가 스트라이크 아웃 당하는 ‘장렬한’ 길을 택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감독상, 최고영화상, 주연상에 집착한다. 애니메이션이나 시각효과상 같은 것은 눈에 차지도 않는다. 반면 일본은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중시한다. 감독이나 연기자만이 아닌 음향, 특수 효과, 소품 하나에도 주목하는 곳이 일본영화계다. 찰리 채플린 소품이라고 하면 사방팔방 흔들고 다니는 나무 지팡이부터 떠올릴 듯하다. 바로 일본 장인들이 만든 가늘고 가벼운 대나무 지팡이다. 일본인은 이미 100여 년 전부터 할리우드에 진출해 채플린을 비롯한 배우들의 소품 제작을 담당해 왔다.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필자가 가장 주목한 일본 영화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배출한 작품으로, 올해 아카데미 외국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최종 수상 작품은 독일 감독이 만든 아우슈비츠 관련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에 돌아갔지만, 영화인 대부분이 아쉽게 생각한 작품이 ‘야쿠쇼 고지(役所広司)’ 주연의 퍼펙트 데이즈였다.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이 본격화하고, 일본이 아카데미상을 두 개나 받는 과정에서 수상작에서 멀어졌을 것으로 분석된다. 퍼펙트 데이즈는 아직 한국에서는 상영 미정인 영화다. 그러나 필자는 주변 친구들 모두에게 반드시 찾아보도록 추천하고 있다. [범죄도시] 스타일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무시하겠지만,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작은 변화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흥미를 가질 만한 깊고도 잔잔한 작품이다. 기승전결, 눈에 번쩍 띌 만한 클라이맥스나 격정적 러브스토리는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소설 스타일의 회색빛 영화라고나 할까? 시작부터 끝까지 조용하고 침착하다.

영화의 주된 스토리는 도쿄 화장실 청소부의 일상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도쿄 주변 화장실을 돌아다니면서 청소를 하는 50대 독신 남성의 똑같은, 그러나 조금씩 다른 일상이 규칙적으로 펼쳐진다. 야쿠쇼 고지가 맡은 50대 화장실 청소부의 과거가 무엇인지, 가족과 같은 주변 환경은 어떤지, 사랑하는 사람이나 애착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얘기가 전부 생략돼 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남는 이미지라고 한다면 화장실 청소부가 쳐다보던 나무와 하늘, 청소를 기다리는 공원 내 수많은 화장실, 퇴근 이후 펼쳐지는 자전거 산책과 목욕탕에서의 휴식 장면이 전부다. 구체적 대화나 스토리가 아닌, 장면과 영상으로 이어진 ‘무언의 메시지’인 셈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19세기 파리 고전파 화풍에 맞서는, 인상파 그림에 준하는 이미지로서의 영화라고나 할까?

야쿠쇼 고지는 ‘다카쿠라 겐(高倉健)’ 이래 21세기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다. 예외도 있지만, 야쿠쇼 고지가 나오는 영화라면 관람객 수 1위는 아니더라도 베스트 필름 대열에는 들어갈 수 있다. 지난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뉴스를 접한 즉시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찾아내 감상했다. 우연치고는 기묘하게 느껴졌지만, 필자가 도쿄 여행 중 항상 머무는 지역이나 방문지와 거의 일치했다. 도쿄의 새로운 명물인 스카이 트리 주변에서 아사쿠사(浅草) 절 동북쪽에 펼쳐진 동네로, 이른바 시타마치(下町)로 불리는 서민 거주 지역이 영화 속 주된 무대다. 항상 강조하지만, 도쿄 여행 진수는 자전거에 있다. 네덜란드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평평한 지형을 가진 도시 중 하나가 도쿄다. 차도와 인도를 가르는 장벽이 낮고, 자전거 전용도로도 곳곳에 펼쳐져 있다. 퍼펙트 데이즈에서 청소부 주인공의 자유와 평화는 ‘마마차리’로 불리는 일본식 자전거를 통해 펼쳐진다.

투어 자극하는 일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


▎신선한 발상을 통해 재미있고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힘. 바로 시부야 스크램블과 도쿄 화장실조차도 관광 명소로 만든 일본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시부야의 명소이자 대형 건널목인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황색 테이프를 든 경찰관이 일렬로 서서 인파가 차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야쿠쇼 고지의 영화는 3월부터 시작된 시부야 화장실 투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도쿄 화장실이 시부야 프로젝트의 메뉴가 된 셈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청소부가 스쳐 지나간 화장실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더불어 도쿄 화장실을 표현하는 수식어로 ‘아름다운, 평화로운, 조용한, 깨끗한, 밝은…’과 같은 단어도 머릿속에 맴돌 듯하다. 일상적 얘기지만, 화장실은 가능하면 멀리하고 입에 오르내리기 어려운 공간에 포함된다. 영화감독으로서 일상생활에 근거한 작품을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보통 주인공의 무대로 꽃집, 빵집, 식당, 자전거집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아무리 지나쳐도 화장실을 일상 무대로 삼는 경우는 극히 드물 듯하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영화 한 편이 사람들의 기존 이미지를 바꾸는 데 120% 활용될 수 있다. 필자의 경우지만 1993년 개봉된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L’Odeur De La Papaye Verte)] 한 편을 통해 베트남에 대한 생각을 180도 바꿀 수 있었다. 야쿠쇼 고지의 영화를 본다면 화장실, 나아가 청소부에 대한 기존 이미지도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일본 문화인류학의 테마 ‘하레, 케’


▎도쿄 아키하바라는 재미와 흥미에 주목하는 일본인의 발상을 확인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 사진:유민호
‘하레(ハレ), 케(ケ)’는 일본 민속학과 문화인류학의 핵심 테마 중 하나다. 일본 문화의 배경이자 기반으로, 일상을 ‘하레, 케’ 둘로 나눠 살아가는 세계관이다. 하레는 비일상, 케는 일상이다. 하레의 구체적 본보기로는 결혼식. 생일. 신년 같은 것들이 있다. 비일상으로서 특별한 날을 의미한다. 케는 비일상으로서의 하레를 제외한 날을 의미한다. 비일상으로서의 하레가 극히 드물고, 일상으로서의 케가 삶의 대부분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은 하레가 되면 ‘음식, 옷, 언어’도 특별히 선택한다. 당연하지만, 소중한 날에 맞춰진 특별한 예법이 발달한다. 하레의 대표주자는 결혼식이다. 필자가 본 일본 전통 결혼식은 축하의 장이라기보다는 종교 의식 실습장으로 느껴진다. 결혼식에 활용되는 음식, 옷, 언어가 하나에서 열까지 규격화·구체화돼 있다. 21세기 세계관으로 본다면 1년 365일이 하레에 해당될 듯하다. 행복은 인생의 최대 목표이자 목적이다. 매일 특별한 날만 만나면서 삶의 즐거움을 한층 더 키워나가려고 한다. 21세기 일본인들도 그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 유전자는 변하지 않는다. 일본인 대부분의 생각이지만, 일상은 별로 빛도 안 나고 심지어 차갑고 척박한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불평불만은 없다. 반대로 하레와 같은 특별한 날이 있기에 무덤덤한 일상의 케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레, 케’ 개념은 동양 전체에 퍼진 음양사상(陰陽思想)과 비슷하다. 그러나 주의·주장이나 이념이 아닌 구체적 일상생활 속에서 구현하고 실천한다는 점에서 ‘하레, 케’와 구별된다. 머리가 아닌 손과 발로서의 세계관이다. 일본인의 화장실관은 독특하다. 더러워서 피할 대상이 아니라 더럽기 때문에 깨끗이 하고 가까이해야 할 존재로 받아들인다. 일상으로서의 화장실이지만. 비일상 공간으로 승격시킨 듯하다. 하레와 케를 넘나드는 생활 현장이라고 할까? 필자의 30여 년 전 기억이지만, 일본에서 처음 공부할 당시 맡겨진 첫 과제가 화장실 청소였다. 과장하자면 화장실 청소를 혀로 핥는 기분으로 임했다. 필자 주변 다른 일본인들도 숨을 죽인 채 도자기 다루듯 화장실을 닦고 또 닦았다. 돌이켜 보면 당시 화장실은 케를 하레로 받아들인 ‘엄숙한’ 교육 현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농담 반 진담 반 얘기지만,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창의적 아이디어가 없는 민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3개의 독자적 발명품이 일본에서 나왔다고 자랑한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환영받는 가라오케, 소니 워크맨, 비데가 주인공이다. 민속학이나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볼 때 비데가 ’하레, 케‘의 나라에서 발명됐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로 유명해진 후카마치공원 화장실

올해 초 도쿄에 머물던 중 요요기 후카마치공원(代々木深町公園)에 들렀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로 인해 유명해진 화장실이다. 영화 속에는 일본인 14명을 포함해 16명의 건축가가 만든 화장실이 등장한다. 후카마치 화장실은 종이건축으로 유명한 ‘반 시게루(坂茂)’의 작품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휴식을 취하거나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는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 화장실이 눈앞에 펼쳐진다. 평소에는 보라색, 붉은색, 주황색이 칠해진 투명 화장실이지만, 안에 들어가서 열쇠를 채우는 순간 불투명 유리로 변한다. 투명 화장실 개념은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투명 주방에 비유될 수 있을 듯하다. 청결도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사용할 수 있다. 후카마치 공원 화장실은 밤이 되면 방범용 등대 역할도 한다. 건물 전체가 환하게 빛나면서 바로 건너편 요요기 공원 속으로 퍼져 나간다. 화장실 내부를 살피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열쇠를 잠그는 순간 밖이 안보인다. 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넓다. 비데를 비롯해 세면대가 일렬로 들어서 있다. 일본 공공 화장실 대부분은 어린이 놀이터를 겸한 공원 안에 들어서 있다. 방범용인 동시에 지진 대피소 부속 시설이기도 하다. 화장실 밖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어린이의 웃음소리가 화장실 안까지 밀려든다.

필자는 1990년대 초반 이후 지금까지 30여 년간 세계를 떠돌고 있다. 나라와 지역에 따라 즐기고 배울 것도 많지만, 일본을 생각하면 ‘안심, 안정, 평화’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이유가 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여러 각도에서 살펴 볼 수 있지만, 화장실이라는 존재가 배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본은 그 어디에든 화장실이 있다. 그냥 화장실이 아닌, 청결은 물론 최신 비데로 장식된 첨단 공간이다. 지난해 말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경험이지만, 오페라 극장 바로 앞 공공 화장실 사용료가 2유로에 달했다. 유럽 대도시의 상황이지만, 공공 화장실을 한 번 이용하는 데 1유로부터 시작된다. 한국처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극히 드물다. 시내 관광에 나서더라도 어디에 화장실이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일본은 무료에다 수적으로도 많고 청결하며, 게다가 변기용 위생 종이까지 갖춘 비데 화장실이다. 아무리 급한 상황을 만나더라도 근처 어딘가에서 화장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본=안심, 안정, 평화’로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다.

일본 화장실 투어 참가자를 화장실 프로파간다 영화에 넘어간 얼치기 바보 정도로 대할지 모르겠다. 필자에 대해서도 그 같은 영역 속 인물로 규정하면서 ‘화장실조차도 일본에 빠졌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듯하다. 그 어떤 주의나 주장도 자유다. 그러나 필자가 기대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와 신선한 발상으로 연결될 생각이다. 주의와 주장은 넘치지만, 화장실을 예술 작품으로 대하면서 항상 깨끗하고 테크놀로지까지 첨부하는 식의 ‘혁명적’ 세계관은 극히 드물다. 일방적 주의나 주장만이 아닌, 신선한 발상을 통해 재미있고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힘. 바로 시부야 스크램블과 도쿄 화장실조차도 관광 명소로 만든 일본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405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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