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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연재소설] ‘디지털 감성작가’ 김동식 단편소설(2) 

라이프 리플레이 


▎메타버스 가상세계의 모습.
'라이프 리플레이’가 베타 테스트를 끝내고 드디어 정식 출시했다. 라이프 리플레이는 하루 종일 몸에 장착하고 다녀야 하는 불편한 장치였지만, 정말 불티나게 팔렸다. 베타 때부터 입소문이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나의 모든 하루를 녹화했다가 퇴근 후 집에 가서 다시 시작해보세요.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행동과 말의 결과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가장 먼저 직장인들이 많이 샀다. 직장에서 울컥할 때가 얼마나 많던가?

“김 대리 너는 도대체 머리를 왜 달고 다니냐? 생각을 좀 하고 살아라!”

“죄송합니다.”

모욕당하고도 ‘죄송합니다’밖에 할 수 없었던 김 대리였지만, 퇴근 후 집에서 리플레이할 때는 달랐다.

“김 대리 너는 도대체 머리를 왜 달고 다니냐? 생각을 좀 하고 살아라!”

“너만 하겠냐?”

“뭐, 뭐라고?”

김 대리는 직장 상사의 당황하는 얼굴을 보고 정말 속이 다 시원했다. 진심으로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라이프 리플레이의 사실감이 완벽했기 때문이다. 장치의 최첨단 AI는 직장 상사의 외적인 모습만 녹화하는 게 아니라, 평소 성격과 행동 패턴 등을 수집하고 분석했다. 그걸 적용한 상대의 리액션은 정말 현실과 거의 흡사했던 거다. 이것은 오래 착용하여 많은 데이터를 얻으면 얻을수록 점점 더 완벽해지니, 사용자들은 매일 착용하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처음 만나서 데이터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인간 그 자체를 분석한 데이터가 서버에 넘쳐 흘렸기에 충분히 리얼했다.

이 장치가 단지 직장 상사에게 분풀이하기 위해서만 사용되는 건 아니었다. 스포츠도 이전 경기를 분석하면서 성적을 올리지 않던가? 사람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으 이때 인사를 먼저 했었어야 했구나.”

“아~ 여기서 손님의 표정을 제대로 분석을 못 했네. 서비스 줬어야 하는 건데.”

“윽 걔가 이래서 화가 났었던 거네.”

소개팅 애프터에 실패했을 때도 집에서 소개팅을 다시 해보곤 했는데, 결과적으로 애프터에 성공하면 좀 씁쓸하긴 했다.

“아니 난 당연히 군대 얘기에 별로 관심이 없는 줄 알았지! 이때가 가장 호응이 좋았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아으 아쉬워.”

아주 개인적이고 자극적인 욕망의 분출

일상탈출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머릿속 망상으로만 눌러왔던 충동을 터트리는 일말이다. 길을 걷다가 마주쳤던 이상형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일이나, 지하철역 안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열창해 본다거나, 출근길에 봤던 람보르기니 차량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춰 본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또한 노숙자에게 현금 수백만 원을 주면 어떻게 반응하나 보는 일처럼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쓰였다.

하지만 사실, 가장 큰 활용법은 따로 있었다. 아주 개인적이고 자극적인 욕망의 분출들, 대표적으로 ‘폭력’과 ‘성’이다. 현실에서는 머릿속 상상으로도 잘 안 했던 일들이지만, 녹화해 둔 하루에서는 달랐다. 식당에서 의자를 들고 내려찍기라든가.

“네가 뭔데 날 무시해 이 새끼야! 나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이야!”

운전 중에 갑자기 내려서 트렁크의 야구방망이로 다른 차를 마구 내려친다거나.

“깜빡이는! 장식이냐! 깜빡이! 좀! 켜! 새끼야!”

사회적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강아지를 발로 걷어차는 행위라든가.

“이 개새끼! 집 앞에 개똥 좀 그만 싸라고! 이 개새끼! 이 개새끼!”

정말 미친 척 가게로 차를 돌진시키는 일까지도. 어차피 수습할 필요도 없고 경찰에 잡혀갈 일도 없으니 자유롭게 폭력을 분출할 수 있었다. 성적으로도 그랬다. 차마 검열할 수밖에 없는 내용의 일들을 얼마든지 저질렀다. 이게 흔한 포르노와 비교가 안되었던 것은 역시, 내가 주인공인 바로 오늘의 진짜 현실이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던 일들을 해버리는 그 쾌감 말이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신조어가 탄생했다. ‘가상 불륜’이다. 놀랍게도 라이프 리플레이의 탄생 이후 현실의 불륜이 크게 줄었다. 실제로 불륜을 저지르는 대신, 불륜이 일어날 것 같은 은근한 분위기를 만들기만 해도 되었던 거다.

“이렇게 단 둘이서 야근하는 거면 사무실 불은 꺼도 되겠어요.”

“그러게요. 오늘 밤은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누구도 찾아오지 않겠네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죠. 이런 밤에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이니까요.”

“이건 명백한 불륜입니다"

서로 눈을 맞추며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김새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저지르는 순간 그것은 사회적 사망에 가까운 일이 될 테니까. 진짜는 퇴근 후 집에서 따로 이루어졌다. 리플레이 중에는 마음껏 선을 넘어도 어떠한 페널티가 없으니 말이다. 이 가상 불륜은 억압된 성의 해방이라고까지 여겨지며 크게 유행했다. 일단 신호를 보내서 상대가 수락하는 순간, 선을 넘기 직전까지의 장면을 만들어내는 거다. 가게에서, 식당에서, 공원에서, 회사에서, 술집에서, 그 상대가 처음 만난 사람일수록 더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우스꽝스럽지만, 주말 하루에 날 잡고 여러 명과 장면을 연출해두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현상들은 논란을 일으켰다. 가상 불륜도 불륜인가? 가상 폭력도 폭력인가? 부하직원이 리플레이를 통해 내게 폭력을 행사한 걸 알게 된다면? 배우자가 리플레이를 통해 불륜을 저지른 걸 알게 된다면?

“육체적 불륜보다 정신적 불륜이 더 나쁜 거 모릅니까? 이건 명백한 불륜입니다!”

“아니지! 그냥 3D 성인영화 한 편 본 거랑 마찬가지지. 마음을 준 적이 없는데, 무슨 불륜? 몸도 안 줘 마음도 안 줘, 그게 무슨 불륜이야?”

찬반 여론이 부딪혔지만, 국내 정서상 비판이 훨씬 더 많았다. 아예 피켓을 들고나와 시위를 하기까지 했는데, 그게 라이프 리플레이를 향한 제재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아니 저 회사는 도대체 로비를 얼마나 한 거야? 이게 아무것도 안 걸린다고?”

“그러니까. 19금 딱지를 달고 파는 것도 아니잖아? 애들도 쓸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진짜.”

사실 제재는커녕, 정부와 여론이 밀어주는 느낌까지도 있었다. 라이프 리플레이는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승승장구했다. 성능에 비해 가격도 적당했기에, 어느새 이걸 안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더 힘들어졌다. 하루를 보내고 라이프 리플레이로 마무리하는 게 일반 사람들의 루틴이 됐고, 어떤 이들은 라이프 리플레이를 하기 위해서 하루를 보내는 거라고 까지도 말했다. 과거 핸드폰이 처음 나왔을 때처럼, 이제 라이프 리플레이는 상식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것이 이 사회를 바꿔버렸다. 사람들이 눈치챘을 때는 너무 늦은 뒤였다.

“라이프 리플레이가 우리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 아십니까? 우리에게서 발산을 앗아갔습니다. 표출과 저항, 그리고 어떠한 ‘썸띵’을 앗아갔습니다. 화를 참고, 욕망을 참고, 부조리를 참죠. 집에 가서 리플레이로 해소하면 되니까. 이게 정상입니까? 역사상 인류가 이보다 더 거세당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녹화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에 공감했다. 사람들의 기본 스탠스가 ‘참는다’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래서 누군가는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소름 끼치게 무서운 일이다. 라이프 리플레이를 개발할 때 이렇게 될 걸 눈치채지 못했을까? 라이프 리플레이의 탄생부터 푸시까지, 모든 게 다 기득권이 계획한 일이다. 고도화된 대중 우매화 정책이다. 그동안 이보다 더 고분고분한 시민들이 있었던가?”

이런 음모론이 사실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시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운동은 SNS 태그를 타고 들불처럼 번졌고, 무려 수백만 명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라이프 리플레이 사용을 제한하라!”

“일상 속 내 모습도 내 개인정보다! 녹화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분석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시뮬레이션 폭력과 성범죄도 범죄다!”

평일 저녁이었음에도 사람들은 피곤을 모르는 것처럼 밤새 소리를 내질렀고, 자정이 다가왔을 때에야 머리에 쓴 기계장치를 벗었다. 집 침대에 누워서 펼친 시위를 끝내면서 말이다. 혹자는 이걸 비꼬았다. 라이프 리플레이 제재 시위를 라이프 리플레이로 해도 되는 거냐고. 그러면 사람들은 말했다.

“라이프 리플레이의 AI는 빅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행동을 완벽하게 구현하지 않습니까? 그럼 내가 퇴근길 리플레이로 돌아간 광화문 광장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는 것도 사실에 기반한 가정이라는 거죠. 분석 결과 리플레이로 시위를 할 사람이 수백만 명이라고 판단했다면, 실제로 수백만 명이 참여했겠죠.”

과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김동식 - 1985년 성남 출생. 부산 영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06년부터 서울 성수동 주물 공장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다. 2016년부터 인터넷에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고, 2017년 12월 27일 초단편 소설집 [회색인간]을 내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2018년 제13회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사회 분야)을 수상했고, 강연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02405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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