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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경기] 배낭 메고 북미로 떠난 ‘투자유목민’ 김동연 경기도지사 

‘돈 버는 도지사’ 취임 2년 만에 50조 벌었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경제부총리 경험 토대로 투자·협력 비즈니스에 해외 인맥 총동원
‘기후’·‘테크’·‘청년’ 키워드 앞세워 북미 유력 도시들과 협력 확대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경제지도를 북미지역으로 확장했다. 김 지사는 5월 6일부터 11박 13일 일정으로 투자유치와 해외 교류 확대를 위해 북미 서부지역 4개 주 7개 도시를 방문했다. 출장 9일 차인 16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유전체 분석기업 일루미나 본사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 사진:경기도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전 세계 자매우호 지역들과의 관계를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고, 특히 경기도는 더 중요한 곳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파트너십에 관심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의지가 있으니, 기대하세요.”

지난 5월 6일 개빈 뉴섬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김동연 경기도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김 지사의 초청을 흔쾌히 수락하며 건넨 말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무역·투자, 기후변화, 인적 교류 분야에 대한 우호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경기도지사와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만난 건 2009년 로스앤젤레스와 2010년 수원에서 김문수 전 지사와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주지사의 만남 이후 14년 만이다. 당시 양측은 우호협력 MOU를 체결했으나 이후 별다른 교류가 없어 유효기간(2년) 만료에 따라 해지됐다.

이번 MOU 체결로 경기도와 캘리포니아주는 12년 만에 협력 관계를 재개하게 됐다. 캘리포니아주는 지난해 GDP가 3조9000억 달러로 세계 5위에 이를 만큼 거대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다. 산호세 등을 중심으로 북부 베이 지역의 실리콘밸리는 IT산업의 허브다.

김 지사는 뉴섬 주지사를 만나 한·중, 미·중 관계, 이스라엘·하마스 문제 등 국제 정세에 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기후테크 협력, 판교·광교 테크노밸리와 실리콘밸리가 있는 지역으로서 스타트업 협력, 캘리포니아 내 대학으로의 청년사다리 사업 확대 등에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실무 워킹그룹을 가동하기로 했다.

뉴섬 주지사는 50대의 젊은 나이와 신선한 이미지 등으로 민주당의 잠재적 대권 후보로 꼽힌다. 경기도 관계자는 “이번 MOU가 외형적으로는 지방정부 간 협력 차원이지만, 두 지역과 단체장들의 비중을 고려하면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경제영토 확장 키워드는 ‘기후’와 ‘테크’


▎김동연 경기도지사(오른쪽 가운데)가 6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 천연자원청에서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왼쪽 가운데)와 교류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경기도와 캘리포니아는 12년 만에 우호 협력 관계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 사진:경기도
캘리포니아주와 우호협력 관계를 복원한 것은 국제 교류 협력 강화와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한 김 지사의 첫 성과다. 김 지사는 5월 6일부터 18일까지 11박13일간 미국과 캐나다를 방문해 투자유치 활동을 벌였다. 북미 서부지역 4개 주(워싱턴·애리조나·캘리포니아·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7개 주요 도시를 찾아 주정부 관계자들과 기업인들을 만났다.

북미 순방의 키워드는 ‘기후’와 ‘테크(tech)’다. 이번에 방문하는 서부지역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의 심장으로 불린다.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와 애리조나의 실리콘 데저트가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된 글로벌 기업과 명문 대학교도 몰려 있다. AI 분야의 세계 50대 기업 중 35개가 캘리포니아에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 부가가치의 83%, 바이오산업의 50%를 생산하는 경기도와 접점이 많다.

방문지역 단체장들도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이란 공통점이 있다. 친 바이든 지역으로 꼽히는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연방정부의 기후정책을 이끄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와 함께 북미 와인산업 선두주자인 워싱턴주도 대형산불과 기후변화로 인한 와인 맛 변화가 지역에서 초미의 관심사일 만큼 기후 문제에 관심이 크다. 제이 인즐리 워싱턴 주지사는 기후약속법(Climate commitment act)을 시행하며 미국 내 기후변화 관련 정책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5월 9일 인즐리 주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김동연 지사는 “워싱턴주의 기후변화 관련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싶다”며 워킹그룹 구성을 제안했다.

이어 방문한 애리조나주에선 반도체산업 투자 유치활동을 펼쳤다. 김 지사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서 케이티 홉스 주지사를 만나 우호협력 협약(MOU)을 체결했다. 애리조나주는 텍사스, 미시간, 캘리포니아에 이어 네 번째로 경기도와 우호협력 관계를 맺게 됐다. 이번 협약에 따라 두 지역은 기업 교류, 스타트업, IT, 첨단산업(전기차·배터리·반도체), 청년, 문화·체육, 기후위기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특히 애리조나주는 기후 대응에 적극적인 주지사들의 모임인 ‘미국 기후동맹(U.S. Climate Alliance)’에 소속돼 있다.

순방 중 기업의 경기도 투자 유치 독려에도 적극 나섰다. 김 지사는 세계 2위 전력반도체 기업인 온세미 본사를 방문해 하산 엘 코우리 회장 등 경영진에게 경기도 중소기업과의 상호협력과 추가 투자를 당부했다. 온세미는 지난 2022년 7월 부천에 반도체 연구개발·제조시설을 조성하기로 하고 1년 4개월 만에 차세대 비메모리 전력반도체 연구소와 제조시설을 준공했다.

15일에는 샌디에이고에 있는 미국 최대 바이오협회인 바이오콤 캘리포니아(CA)를 찾아 파트너십 구축 방안을 논의했다. 김 지사는 이날 조 파네타 바이오콤 CA 회장을 만나 ‘경기도-바이오콤 CA 간 파트너십 증진 의향서(LOI)’를 전달했다. 바이오콤 CA 한국지부를 광교에 유치하는 제안을 의향서에 담았다. 김 지사는 파네타 회장에게 경기도 바이오 관련 기업 교육과 인력 양성, 스타트업 육성과 해외진출 지원 등에 바이오콤의 협력을 요청했다.

김 지사는 이와 함께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엔비디아(NVIDIA)와 구글 본사를 찾아가 AI데이터센터 구축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밖에 신소재 배터리 기업인 코스모이엔지로부터 610억원 규모의 투자협약을 맺은 데 이어 신세계사이먼 프리미엄아울렛으로부터 여주 375아울렛 활성화를 위한 마케팅 등 운영지원 협력을 이끌어낸 것도 이번 순방 중 성과다.

‘인사치레’를 교류 계기로 활용하는 남다른 ‘추진력’


▎해외 투자 유치와 교류 협력 확대를 위해 북미 출장 중인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5월 1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교에서 한인 학생들을 만나 격려했다. / 사진:경기도
이번 순방에서 성과를 이끌어낸 데는 김 지사가 그동안 해외 인사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친분을 다져온 것도 동력이 됐다. 김 지사는 순방을 떠나기 하루 전날(5일) X(옛 트위터)를 통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데이비드 이비 총리에게 영상 편지를 띄웠다. 영상에서 김 지사는 “지난번 오셔서 제가 한 약속을 지킵니다. 경기도에 팀홀튼 도넛이 들어와 부지사들과 더블더블(커피)과 팀빗(도넛)을 맛보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이비 주 총리는 직접 답글을 달아 “팀빗을 드셨군요. 다음 미팅에 보스톤크림도넛을 준비할 테니 기다려주세요”라고 화답했다.

두 사람의 SNS 소통은 지난해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캐나다 수교 60주년, 경기도-BC주 자매결연 15주년을 맞아 이비 주 총리가 방문하자 김 지사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라며 “다음에는 캐나다에서 만나 도넛에 더블더블 커피를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두 사람의 약속은 1년 만에 지켜졌다. 김 지사는 5월 13일 BC주를 방문했다. 자매결연 16주년(5월 19일)을 맞아 양 지역의 협력 확대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BC주는 김 지사 일행을 국빈급 예우로 맞이했다. 자그럽 브라르 무역부 장관이 빅토리아 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직접 김 지사를 영접했다. 또 BC주 총독 관저로 초청해 조찬을 함께한 것도 이례적인 환대였다. 김 지사가 받은 예우는 몇 달 전 BC주를 방문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때와 같은 수준으로 전해졌다.

이는 일회에 그칠 수 있는 만남을 기회로 활용하는 김 지사의 실천력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이번 순방에서 캘리포니아 주지사와의 만남도 지난해 10월 29일 뉴섬 주지사로부터 서한을 받은 뒤 방문하겠다는 약속에 따라 이뤄졌다. 또 지난해 10월 샌디에이고 경제사절단의 경기도 방문을 계기로 이번 순방에서 토드 글로리아 시장을 다시 만나 유대 강화와 협력의 폭을 넓히는 성과로 이어졌다.

김 지사는 북미 출장 9일 차인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 바이오산업의 메카 샌디에이고는 한국바이오산업 중심지인 경기도와의 협업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며 “시흥과 수원, 고양을 잇는 경기도 ‘바이오산업벨트’가 태평양을 넘어 샌디에이고까지 확장된다. 협업할 일이 많아질 것 같다”고 했다. 이날 김 지사는 바이오콤 본사와 유전체 분석기업 일루미나 본사를 찾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임기 내 투자유치 ‘100조’” 이미 절반 달성

이처럼 김 지사의 왕성한 추진력에 힘입어 경기도의 투자 유치 목표인 ‘100조+’도 순항하고 있다. 김 지사는 임기 중 100조원 이상 투자 유치를 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취임한 지 채 2년이 되기 전에 이미 목표액의 절반인 50조원을 달성한 것으로 집계됐다.

분야별로는 ▷글로벌 기업 투자 유치액 14조3000억원 ▷산업단지·테크노밸리 조성 등 11조6000억원 ▷반도체·모빌리티 분야 23조원 ▷벤처창업·국가R&D 유치 6000억원 등이다. 여기에 이번 북미 출장을 통해 기존에 진행 중인 56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 협상을 마무리하고 나아가 5000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이끌어내는 등 1조원가량의 투자 유치 성과가 기대된다.

김 지사는 한국-인도 수교 50주년인 지난해 10월 인도 카르나타카주의 주도(州都) 벵갈루루에 경기 비즈니스센터를 설립하고 경기도와 인도 협력 강화의 원년으로 삼았다. 뱅갈루루는 자동차·바이오·항공우주 등 산업 기반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투자 유치 실적과 함께 김 지사가 글로벌 인맥을 통해 관심을 갖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청년’이다. 해외 출장을 청년에게 기회의 판을 깔아주는 계기로 톡톡히 활용한다. 이번 북미 출장에서도 김 지사는 방문하는 곳마다 청년 교류 확대를 필수 의제로 삼았다.

경기도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해외대학 연수프로그램인 ‘경기청년 사다리’ 프로그램에 따라 지난해 선발된 200명이 미국(미시간대·버팔로대·워싱턴대), 호주(시드니대), 중국(푸단대) 등 해외 유수 대학에서 연수 기회를 가졌다. 올해 7월에 진행되는 2기 프로그램에는 샌디에이고대, 퀸즐랜드대, 에든버러대, 싱가포르국립대, 베이징대가 추가됐다.

경기도 관계자는 “김 지사의 오랜 경제관료 경험으로 쌓은 인맥과 국제 감각이 투자 유치는 물론 청년들의 패기와 도전의 판을 깔아주는 디딤돌이 되고 있다”며 “경기도가 청년들에게 깔아주는 ‘기회의 판’이 경기도와 대한민국의 글로벌 경쟁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406호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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