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이색취재] 교도소에서 셀럽들이 사는 법 

팬들이 보내준 영치금 나눠주며 ‘범털’ 노릇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재력 있는 유명인, 들어올 때부터 독방 차지… 직원실 가서 쉬기도
연예인 재소자 중에 진상 비모범수도 많아… 조폭들도 깍듯이 인사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는 가수 김호중 씨가 5월 21일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이후 김씨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구치소가 또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5월 31일 가수 김호중 씨가 음주 뺑소니 혐의 사건으로 수감되면서다. 당초 서울구치소는 굵직한 사건을 다루는 서울중앙지법의 관할인 탓에 연예인은 물론 정·재계 거물급 인사들이 회전문처럼 드나드는 곳이어서 취재진이 장을 선 모습에는 단련이 돼 있다. 그럼에도 김씨 수감 이후 닭갈비·불고기·장조림 등이 담긴 식단표를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에 비공개로 전환했다. 담장 안은 철통 보안이다. 들려오는 건 “김씨가 하는 거 없이 독방에서 잠만 잘 잔다”는 얘기뿐이다.

지난 3월 19일 목포교도소에서 출소한 정준영 씨는 이와 대비된다.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고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유포한 혐의로 실형을 산 그는 검은색 벙거지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아직 사위가 어두운 이른 아침에 조용히 나왔다. 사전에 그의 출소일을 인지하고 현장에 있던 소수의 취재진만이 출소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을 뿐이다. 4년 전쯤, 미결수(未決囚) 신분의 정씨와 서울구치소 접견장 대기실에 있었다는 전과자 A씨는 “원래 연예인은 대기실을 거치지 않고 프리패스로 접견장에 간다. 특혜라면 특혜다. 그래서 대기실 안의 누구도 정씨가 같이 있을 거라 예상 못 했다. 근처에 있던 나만 겨우 알아봤을 뿐”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정씨는 구치소에서 머리를 산발하고 고개를 떨군 채 생활했다고 한다. 더 이상 국내에서 살길이 없는 정씨는 이민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높은 인지도로 일반인들에게 주목 받는 연예인들은 일반 재소자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A씨는 서울 강남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을 때 마약 투약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온 유명 래퍼에 대해 회상했다. “구속 심사를 받고 나면 머릿속에선 구속이냐, 불구속이냐 그 생각만 가득하다. 판사 앞에서 본인이 한 말을 끝없이 복기하면서 희망을 품었다가 체념하길 반복한다. 그 래퍼도 그랬다. 주변 미결수 눈치 보느라 아무렇지 않은 듯 굴었지만 밥 먹을 때 보니 숟가락을 떨더라.” 구속을 직감하는 때는 담당 형사의 손을 보면 안다고 했다. “흰 종이(구속영장 발부서)를 들고 있으면 구속 확정이다. 심사를 받고 온 미결수들은 복도에서 구둣발 소리만 나도 몸을 움츠린다. 흰 종이를 들고 오는데, 본인의 담당 형사가 아니면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 반대의 경우 한탄한다. 그 래퍼는 흰 종이였다.” 구속이 확정되더라도 유치장에서 10일 구류를 다 채울 때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때는 자포자기해 차라리 무슨 사고든 터져주길 바라지만 결국 낮밤을 보내고 법무부 버스에 올라탄다는 것이다.

물론 구치소라는 곳이 애초에 음습한 분위기라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지만 소란을 부리는 부류도 존재한다. 이른바 ‘구속 패션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황하나 씨 얘기다. 마약 투약과 유통 등 혐의로 모 병원에서 긴급체포될 당시 황씨는 환자복 바지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이후 경기남부경찰청으로 압송될 때는 붉은색 후드티에 주름치마로 언론에 노출됐고, 법원의 구속 심사에 참석할 때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같은 유치장에 있었다는 B씨는 “유치장은 남녀 미결수가 서로를 볼 수 없도록 반달형 구조로 돼 있다. 그런데 두 시간마다 황씨가 옷 가져오라며 소리를 질러대며 난리를 피웠다”고 했다.

구속이 확정되면 연예인들은 통상 독방으로 간다. 물론 독방 입소에 대해선 특혜냐, 아니냐 논란이 많다. 이에 대해 교정 당국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유명인인 만큼 다른 재소자들이 괴롭힐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하지만 교정 당국의 민낯을 목격한 전과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매스컴을 타고 오면 연예인이든 누구든 일단 독방에서 스타트하긴 한다. 하지만 그것도 밖에서 돈과 입지가 있는 사람에 한해서지, 일반 재소자는 심신미약이 있어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B씨는 “교도소마다 수용인원이 다르긴 해도 범죄자끼리 갇혀 있으면 갈등이며 몸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연예인이라고 해도 어차피 범죄자 처지인데 사회에서의 대접을 똑같이 받겠다고 설치다간 사고 크게 난다”고 했다.

구치소에서도 ‘인싸’ 기질 발휘하는 연예인


▎가수 정준영 씨는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으로 촬영·유포한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지난 3월 19일 목포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 사진:연합뉴스
자신의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 입장에서도 집단생활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는 전과자도 있었다. C씨는 “교도소 일과를 따르는 건 걔들도 어려울 게 없다. 문제는 사람이다. 전과자들이야 교도소도 사람 사는 데라고 하지만 연예인 입장에서 같은 사람으로 보이겠나”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그는 혼거실에 배정된 연예인에게 영치금 좀 나눠달라며 손 빌리는 개털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라고 했다. “지켜야 할 질서라는 게 있다. 생필품도 다 각자 사는 건데 영치금 모아서 공동 구매를 한다거나,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운다고 설거지나 청소를 도맡아 하거나. 그런데 꼭 엇나가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애들이 동정팔이하면서 연예인에게 들러붙는다.”

연예인이 교도소에 간다고 다들 바닥만 보고 지내는 건 아니다. 2000년대 후반 유명 아이돌그룹 출신인 모 가수는 마약 투약 혐의로 2019년경 수원구치소에 두 달가량 수감된 바 있다. 그 기간을 모두 지켜본 C씨의 목격담이다. “법원 포토라인에서 인생 다 산 얼굴이길래 쟤도 똑같구나 싶었다. 그런데 구치소 수감 직후 소장에게 제발로 ‘독방은 싫다. 혼거실에서 사람들과 지내겠다’고 하더라.” 공교롭게도 당시 점심시간에 방송된 교정본부 라디오의 사연 읽어주는 코너는 해당 가수에 대한 회상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라디오 아나운서 목소리도 낭랑하고, 사연나오고, 명곡도 흘러나오는데 누가 해당 가수를 학창시절에 좋아했다면서 신청곡으로 그의 히트곡을 요청해 그 노래가 구치소에 흘러나왔다.” 다만 이 가수가 생활한 곳은 마약 사건 재소자들을 모아둔 ‘약방’이어서 환경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데서도 잘 지내더라. 소지(사동에 출역 나온 재소자·심부름꾼)가 점심 배식할 때는 그날 메뉴 보고 소시지를 더 달라고 소리친다거나, 굉장히 활달했다.”

모 가수, 의외로 성실… 물 배달 심부름 자청


▎전 빅뱅 멤버 승리 (본명 이승현)는 상습도박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성매매 알선 등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받고 복역했다. 그는 지난해 2월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해외에서 사업 확장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 사진:연합뉴스
전국 각지의 팬들이 보낸 영치금이 한도를 초과한 탓에 그의 영치금 계좌만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고 한다. 그런 위세에 수원지역 폭력조직인 남문·북문파 조폭들도 그 가수한테 인사하거나 운동시간마다 양옆을 경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가수가 복도나 운동장을 지나가면 마치 한산도 대첩 학익진이라도 펼친 것 같다고 재소자들끼리 수군거렸다.”

이와 유사한 인물로는 강용석 변호사가 있다. 앞서 강 변호사는 2018년 사문서위조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6개월간 수감된 바 있다. 그 역시 처음부터 독방을 거부하고 혼거방으로 향했다. 그와 함께 있었던 한 재소자는 “강 변호사의 활동 무대는 변호사 접견 대기실이었다. 워낙 많은 재소자가 우글거리는 탓에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1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다들 책 들고 가서 보는 둥 마는 둥 하는데 강 변호사는 대기실에서 재소자들에게 무료 상담해준다면서 대가로 초코바나 몽쉘을 아주 쓸어갔다”고 회상했다.

성범죄로 방송계 출연정지를 받은 보이그룹 출신 모 가수는 예상외로 성실한 모범수였다고 한다. 미성년자 시절부터 흡연과 음주를 일삼거나 연예계 데뷔 후에는 음주운전 사건을 일으키는 등 행실 논란이 불거진 가수였다. 남부교도소에서 그를 지켜봤다는 D씨는 그가 소지를 자처하며 꽤 활동적이었다고 한다. “모아둔 돈도 있을 거고 영치금도 상당할텐데 소지하는 걸 보고 놀랐다. 공장은 조폭들이 줄 세우는 문화가 있어서 무서워서 못하겠다며 소지를 한 것 같지만…. 그래도 사동에 더러운 거 있으면 닦고 물 배달도 하고 배식도 도맡았다.” 하지만 재소자 신분 이상의 월권을 행사하는 연예인도 존재한다. 교도소 안에서의 행실이 나중에 추문으로 번질 것을 우려하는 여타 연예인과 달리, 정·재계와 일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모 중견 연예인은 오히려 강짜를 부리며 직원 위에서 군림했다고 한다.

“해당 배우는 주로 독방에 있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얘기가 걸핏하면 ‘박 주임, 김 주임’ 하고 직원을 불러대면서 답답하다며 문을 따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소지한테 들어보니 혼자 복도를 거닐거나 관구실(직원실) 가서 커피 한잔하고 담배를 태우거나 했다. 어차피 조폭 원로급이 오면 직원들이 와서 인사하는 곳이 교도소다.”

이제 연예인이 사고 치면 기획사 폐업 수순

2014년 10월 인천구치소에 들어간 E씨는 유명인을 대하는 교정 당국의 민낯을 봤다고 기자에게 털어놨다. 당시 인천구치소에는 세월호 사고 관계자 다수가 수감된 상태였다. “방을 배정받기 전 대기실에 신입 재소자들이 모이는데 구치소장이 와서는 웬걸, 사고 관계자에게 악수를 청하며 깍듯이 인사하더라. 그러고는 직원들에게 ‘독방에 보내고 편하게 해 드려라’고 했다. 나라가 온통 추모 분위기 아니었나? 하지만 그 안은 다른 세상이었다.” B씨는 해당 관계자가 매일같이 뻘통(호출벨)을 눌러대고 특식을 가져오라며 소리 지르는 등 왕처럼 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상식적으로 범죄자 신분으로 온 건데 걔네 편의를 봐준다고 해서 교정 당국에 이득 되는 게 뭐가 있겠나? 당연히 뒤에서 자기들끼리 무슨 그림을 그리지 않았겠나”라고 추측했다.

이제 연예인들이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가는 일은 연례행사가 돼버렸다.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대중들이 연예인의 범죄에 관대하지 않으며 엄격한 책임을 묻는다는 점이다. 예전엔 자숙하다가 대중의 관심사가 다른 데로 쏠릴 때쯤 방송에 얼굴을 비치면서 활동 범위를 늘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범죄로 물의를 빚은 연예인의 경우 방송 복귀를 반대하는 국민 정서가 형성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요즘엔 본업 복귀가 정말 어렵다. 아무리 파급력 있는 스타라고 해도 방송 출연이 어려워 유튜브로 빠지는 게 고작”이라고 했다.

연예인의 소속 기획사가 입는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장 김호중 씨 소속사만 보더라도 폐업 수순에 봉착했다. 이 관계자는 “신인도 3~4년간 들어간 돈이 몇 억은 된다. 그 정도는 감수한다 해도 인지도 있는 연예인의 사고는 감당이 안 된다. 연예인 개인이 물어야 하는 위약금은 물론 소속사가 연예인을 간판으로 투자받은 돈도 다 토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202407호 (2024.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