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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추적] 명동 조폭의 대명사 ‘명동식구파’ 생존 몸부림 

사채업으로는 미래 없다… MZ 조폭 따라 코인 사기로 눈 돌려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주먹으로 이름 떨쳤던 ‘신상사파’ 후예 자처하지만 고리 대금업자로 전락해 민폐
최근 MZ조폭 ‘MT5’ 소속 조직원 영입해 코인 사기 시작했지만 아직 ‘떴다방’ 수준


▎최근 코인 다단계 사기를 벌이는 명동식구파에 자금을 대주는 40대 남성 전주(錢主)의 모습. 그의 뒤에 조직 실세 황모 씨가 있었다. / 사진:안덕관 기자
명동 사채시장은 우리나라 ‘지하경제’의 코어다. 천문학적 금액으로 추정되는 시중 유동자금의 흐름을 주도하면서도 그 실체를 한 번도 제대로 드러낸 적 없다. 명동은 ‘조폭’의 역사에서도 최고 요충지로 지목된다. 일찍이 일제강점기에 ‘종로의 황제’로 불렸던 김두한이 명동을 주름잡았고 1960년대 이름을 떨쳤던 ‘신상사파’도 명동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서울 조폭계 패권을 잡았다. 1975년 상경한 ‘호남파’가 신상사파를 무너뜨리고 중앙 무대의 주역이 된 역사적 현장도 명동의 사보이호텔이었다. 호남파에서 갈라져 나온 스타급 보스가 바로 김태촌, 조양은이다. 당시 지하경제의 중심 명동을 차지하는 주먹이 조폭계의 주역이 됐다.

하지만 다 과거지사다. 명동 조폭의 대명사였던 ‘명동식구파’는 이제 20명 안팎의 군소조직이 됐다. 눈에 띄는 행동도 없어 경찰의 관리대상 조폭 리스트에서도 지워졌다. 경찰 관계자는 “명동식구파는 소위 말하는 정통 조직은 못 된다”고 잘라 말했다. 혹여 범죄단체조직죄로 묶여 10여 년의 감옥 신세를 지게 될 것을 경계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취재 결과 명동식구파는 주 종목인 사채업을 영위하며 아직 ‘조직’의 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세는 황모(46) 씨다. 황씨 위에 명목상 보스인 60대 원로가 있지만 실권은 없다고 한다. 서을 조폭계의 한 조직원은 “조폭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면서 40대면 원로 대우를 받는다. 50대가 조직에 남아 형님 대접 받으려 하면 솔직히 민폐”라고 전했다. 취재 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된 송모(36) 씨도 또 다른 실세로 파악된다. 나머지 조직원은 돈세탁이나 돈배달 등 아르바이트 수준에 불과한 업무를 처리하는 하청업자들로 채워져 있다. 최근에 실세 조직원 황씨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정식 조직원보다 하청업자가 더 많았다는 후문이다.

‘신상사파’ 영광은 사라지고… 너도나도 ‘보스’ 행세


▎서울 중구의 한 홀덤펍은 명동식구파 황모(46) 씨가 속칭 ‘햇살론’을 대주는 곳으로 지목됐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계 없음. / 사진:충북경찰청
“명동식구파는 본인들이 과거 명동에서 이름을 떨친 신상사파 계보를 이어받은 조직이라고 떠들고 다닌다. 하지만 허풍인 걸 누구나 다 안다. 들어가는데 제한이 없고 나가도 누구 하나 말리지 않는 조직으로 몰락했다.” 서울 조폭계 한 조직원의 말이다. 최근에는 명동식구파를 중심으로 명동의 여타 군소 조직까지 연합해 범(汎)명동파로 확대됐다는 말도 나온다. 너도나도 자기가 ‘보스’라고 주장하고 다니는 이유다.

명동식구파의 주 소득 창구인 사채업은 황씨가 전담하고 있다. 그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모 대부업체를 차려 사업가 행세를 하고 있다. 그의 대부업체는 원금의 20%로 법정이자를 지키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채무자에게 온갖 단서를 달아 돈을 쥐어짜낸다고 한다. 명동식구파 사정에 밝은 인사에 따르면, 채권 담보로는 시장가 최소 5000만원 이상의 외제차를 받는다. 여기다 차량 관리비, 주차비 등 별도의 이자를 붙여 채무자에게 변제를 요구한다. 채무자가 원금을 갚을 여력이 되지 않으면 담보물인 외제차를 보증금 3000여만원에 사설 렌터카로 돌려버린다. 이 과정에서 차량에 위치추적기(GPS)를 달아놓고 차량이 주차된 장소를 찾아가 차량을 몰래 빼돌린 뒤 다른 사람에게 외제차를 빌려주는 사기 행각을 벌인다는 의혹도 있다. 한 피해자는 기자에게 “렌터카로 받은 차량을 조회해보니 운행이 불가한 대포차였다. 이 문제로 경찰 조사도 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명동식구파가 불법도박을 벌이는 홀덤펍(카드게임을 할 수 있는 성인용 카지노 바)에서 사채를 운용하는 것도 확인 됐다. 취재 결과 이들은 명동 부근과 회현역 일대 홀덤펍과 일종의 MOU(양해각서)를 맺은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홀덤펍들은 하나같이 출입구에 CCTV를 달고 출입 인원을 제한하고 있었다. 기자가 도박업계에 사정이 밝은 인사의 주선으로 서울 중구 모 홀덤펍에 들어가자 홀덤펍 손님들이 현금으로 불법도박을 벌이는 모습이 보였다. 테이블 옆에는 돈 잃은 손님에게 바로 현금을 빌려주는 일수꾼이 있었다. 기자를 안내한 그 인사는 “일수꾼이 명동식구파 소속이다. 저런 사채놀이를 ‘햇살론’이라고 부른다. 5시간당 이자율 20%로 사채를 빌려준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 인사는 “도박을 한 판만 하고 접는 사람은 없으니 하루에 수천만원을 뜯어내는 건 일도 아니다. 여기 있는 딜러나 손님들이 명동식구파에 빚을 깔고 가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명동식구파는 홀덤펍의 손님들한테도 돈을 빌려주는 대신 담보물로 외제차를 받고 있었다. 채무자 차량을 끌고 가는 명동식구파의 일수꾼을 추적해보니 경기 남부지역에 소재한 자동차 매매 상사였다. 거기에 명동식구파 실세 황씨가 있었다.

기자가 찾아간 자동차 매매 상사 단지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지난 1월 중순 황씨의 추심에 견디다 못한 30대 남성 김모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취재에 따르면 황씨는 현재 ‘선(先)재고’라는 개념의 신종 사채를 하고 있다. “상사에서 차량을 매입하려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야 한다. 다만 선행조건이 있다. 차량에 설정된 근저당권을 해제하는 것이다. 그런 근저당권을 해제하기 위해 빌리는 돈을 선(先)재고라고 하고, 차량 구매를 위해 금융권에서 빌리는 돈을 후(後)재고라고 한다.” 모 캐피털 직원의 설명이다.

자동차 매매 상사 근거지 삼아 신종 사채 사업


▎‘MZ 조폭’ 야유회 단체사진. / 사진:서울경찰청
캐피털 직원에 따르면 황씨는 근저당권 해제가 시급한 중고차 매매 상사들을 대상으로 2박 3일에 1.5% 이자를 받아내는 방식의 선재고 사채를 하고 있었다. 매매 상사 수십 곳을 상대로 매일같이 사채를 놓는 만큼 하루 수익도 상당하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단기간에 갚지 않으면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원금 80억원을 빌린 30대 남성 김씨는 2년간 약 100억원을 갚았지만, 이들은 원금이 여전히 상환되지 않았다며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김씨에게 압력을 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황씨는 자녀 출산을 앞둔 김씨에게 욕설을 섞어가며 “니 태어날 아들 안 보고 싶냐? 불운하게 키울 거야”라며 협박했다고 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유족은 김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명동식구파 조직원 모씨를 만났다고 했다. 그 후 김씨는 급격한 심경 변화를 겪었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던 그날 밤에 돈을 빌렸던 지인들한테 전화를 돌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취재 결과 이 신종 사채업에서 황씨는 자금을 대주는 ‘전주(錢主)’였고, 실제 사채업은 황씨 부하인 김모(46) 씨가 실무를 진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황씨는 자본을 늘리고자 “고리의 이자를 받아내는 만큼 수익은 확실하다”며 주변에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의 죽음과 관련한 경찰 조사에서 황씨는 “나도 (명동식구파) 김씨에게 속았다. 김씨가 운영하는 대부업체에 투자한 것뿐”이라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명동식구파가 사채업으로 벌어들인 돈 일부가 최근 고 이선균 씨 사건으로 세간의 관심을 끈 모 유흥업소에 투자 명목으로 흘러 들어간 것도 확인됐다. 명동식구파는 이와 관련해 주변에 “우리는 일반 투자자일 뿐 아무런 내막도 모른다”며 호소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서울 모 조직원은 기자에게 “아직까지 조폭계에서 (유흥)업소 관리는 주먹에 의해 좌우된다. 몇 년 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고급 유흥업소를 서울의 군소 조직이 관리했는데, 지방의 기성 조직과 시비가 붙었다가 완전히 빼앗긴 사례가 있다. 룸살롱 업주라면 최소한 조폭계 동향은 파악할 텐데, 명동식구파의 (몰락한) 현실을 안다면 관리를 맡기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MZ조폭 신사업 흉내 내려 코인 사기 시도하기도

최근 명동식구파가 코인을 이용한 다단계 사기를 벌이고 있는 것도 파악됐다. 취재 결과 이들은 서울 청담동에 있는 대부업체 사무실을 개조해 사기 조직을 위한 거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조직 재건을 위한다는 거창한 목적의 이 프로젝트 총책은 황씨이며, 전반적인 구상은 황씨 부하 김씨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명동식구파 사정에 밝은 인사에 따르면, 더 이상 2세대 조폭의 전유물인 사채업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보고 조직 차원에서 새 사업으로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명동식구파는 지난해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롤스로이스를 몰다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신모(30)씨 사건에서 돈 냄새를 맡았다고 한다. 신씨는 신세대 조폭을 일컫는 MZ 조폭 모임 ‘MT5’ 소속인데, 이들이 코인 사기로 수백억원을 벌어들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명동식구파 사정을 잘 안다는 모 인사는 기자에게 “MT5가 세간에 화제가 됐을 무렵 ‘계보도 없는 애들’이라며 비웃더니 막상 그들이 벌어들인 범죄자금 액수 얘기를 듣고는 눈이 돌아가더라”고 전했다.

명동식구파는 이후 신씨와 친한 MT5 소속 이모(32) 씨를 영입했다고 한다. 투자자들을 모집하기 위한 텔레마케팅(TM)팀과 MM(마켓메이킹·시세조작팀)을 어떻게 운영하는지를 파악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MT5 조직원 이씨는 롤스로이스남 신씨와 함께 프로포폴 등의 ‘마약 쇼핑’을 함께 할 만큼 친분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씨는 신씨가 검거된 뒤 마약 투약 혐의와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들이 코인 다단계 사기에 착수한 지는 한 달가량으로, 아직 큰 수익은 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미국 달러와 동일한 가치를 지닌 테더(USTD) 코인을 다량으로 확보하기 위해 1000억원 상당의 테더 코인을 보유한 브로커와 P2P거래(중고거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코인업계 사정에 밝은 인사에 따르면 “명동식구파 자신들이 원짱(코인 제공자)이 돼서 코인 총책한테 값을 올려 판매하고, 그 총책이 투자자들한테 또 프리미엄을 붙여 팔아치운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명동식구파가 코인 사기 사업을 위해 끌어모은 투자자가 20명 안팎에 불과한 데다, 이들에게 신뢰를 얻어야 더 많은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기에 아직은 투자비로 나가는 돈만 많다는 후문이다. 모 인사는 기자에게 “코인 투자를 계속 권하기에 분위기나 볼 겸 사무실에 들렀더니 50대 중년 여성과 노인들만 모여 있더라.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좋은 건수가 있다’며 투자 유치들 하던데 그냥 ‘떴다방’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202403호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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