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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연재소설(5)] ‘디지털 감성작가’ 김동식 단편소설 

드론 쇼 드라마 


▎지난해 열렸던 한강 불빛 공연 ‘드론 라이트 쇼’의 모습.
드라마 작가 김영지는 각 방송국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난리인 작가였다. 결말에서 약간의 호불호가 있을지언정, 시청률은 무조건 보장되는 작가. 그런 김영지 작가의 다음 작품은 어느 방송국에서 할지 초유의 관심이 쏟아졌는데,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결과가 발표되었다. 김영지 작가가 선택한 곳은 ‘서울시’였다. 그것도 서울시 ‘한강’ 말이다.

“와 말도 안 돼! ‘드론 쇼’로 16부작 드라마를 하겠다고?”

그동안에도 밤하늘에 띄운 수백 대의 드론들로 그림 그리기 같은 건 해왔지만, 드라마를 방영하겠다고? 그게 가능한가? 사람들의 의문은 당연했다. 하지만 ‘드론 쇼 드라마’ 제작사는 자신만만했다.

“드론 AI 기술의 발전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살면서 본 스크린 중에 가장 큰 스크린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과연 될까 싶었지만, 드론 쇼 드라마 첫 방영 날이 찾아왔다. 인류 최초로 시도된 ‘드론 쇼드라마’는 서울시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고, 해외에도 벌써 화제 사례로 취급되고 있었다. 많은 시민들이 이 신기한 이벤트를 체험하기 위해 한강 변으로 찾아왔다. 이윽고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수천 대의 드론이 한강의 밤하늘을 수놓으며 드라마 로고와 출연진과 감독, ‘대본 김영지’ 따위를 띄웠다. 어찌나 간격이 빽빽했던지, 화질이 조금 떨어지는 TV에 비견될 정도였다. 이윽고 첫 장면이 펼쳐졌을 때 한강 변에는 ‘우오오!’ 함성이 절로 울려 퍼졌다.

“대박! 이건 진짜 완전 동영상인데? 배경 좀 봐!”

“주인공 표정이 보여! 말도 안 돼!”

배경, 캐릭터, 사건, 사소한 장면의 전환까지도 완벽하게 드라마였다. 심지어 프레임 제약이 없는 광활한 하늘이라 그런지, 일반적인 드라마의 문법으로는 불가능한 연출까지도 가능했다. 그리고 특히 시민들이 감탄했던 것은 바로 ‘자막’이다.

“이야 소리를 어떻게 처리할까 했더니, 드론으로 자막까지 띄웠네. 그리고 혹시 이어폰 있는 사람들은 실시간 음성 접속도 가능하다네?”

처음에는 단순히 감탄만 하던 시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드라마의 내용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유명한 김영지 작가의 작품이지 않은가? 1화의 흡입력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눈을 뗄 수 없는 전개 끝에 충격적인 1화의 마지막 장면이 끝난 순간, 한강 변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대성공이라고 봐야 했다. 사실은, 애초에 흥행 요소가 많았다. AI 드론 기술력이 주는 신기함, 광활한 프레임이 주는 시원함, 흡입력 있는 대본 퀄리티, 서울시의 적극적인 홍보. 그 중에서도 특히 가장 큰 흥행 원인은 바로 ‘낭만’이었다. 많은 시민이 날 좋은 밤의 한강 변에 모여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보는 풍경이란, 낭만이라고밖에 붙일 말이 없다. 꽉 막힌 영화관에 모여 앉아 똑같은 자세로 침묵하는 것과 달랐다. 선선한 공기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웃고, 먹고, 마시고, 대화하며 추억을 쌓는, 새로운 문화의 탄생이었다.

다음 날 2화가 방영될 때는 더 많은 인원이 한강변으로 모여들었다. 근처 높은 건물 옥상에도, 아파트 베란다로도, 가게 창가에도 드론이 보이는 모든 곳에 사람들이 모여앉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국 가정의 TV로도 시청할 수 있었다. 방송국에서 한강 변 밤하늘을 찍어서 동시 생방송을 했던 거다. 편리한 TV 프레임으로 굳이 드론 드라마를 방영한다는 것도 아이러니했지만, 시청률은 아이러니하지 않았다. 2화 만에 동 시간대 모든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제쳐버렸다. 이건 단지 신기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김영지 작가의 대본이 주는 파괴력이 엄청났다.

“김영지 작가가 또 ‘김영지’ 하는 거 아니야?”

“미친 연출이다 진짜. 김영지가 천재는 천재네. 드론이니까 몸이 저런 각도로 꺾이는 연출이 가능하잖아? 감정 표현을 과장되게 할 수 있는 거, 이걸 다 계산했다는 거잖아.”

“현수막 드론을 이용하는 건 또 어떻고? 처음 시도하는 방식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네.”

전 국민이 이 드라마 이야기를 했다. 그때 최고는 역시 ‘한강 직관’ 경험을 말하는 일이었다. 하필 또 드라마 방영일이 ‘금, 토’이다 보니, 주말만 되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강변은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는데, 서울시에서 철저하게 대비하고 관리하지 않았다면 여러 번 사고가 났을 규모였다. 각 잡은 서울시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푸드트럭과 플리마켓 등의 이벤트로 축제 분위기를 열었다. 정말 많은 행복을 창출했지만, 당연하게도 호평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저 망할 드론 쇼 때문에 교통이 완전 마비잖아! 왜 한가한 곳 다 놔두고 하필 한강이냐고!”

교통, 소음 공해, 주변 가게들의 성수기보다도 더한 요금 인상, 자리싸움, 불법 잡상인들 등등. 드라마 방영 날에 경찰차가 안 뜬 날이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문제를 압도하는 호평 때문에 드라마는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럴까?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어어? 저 드론은 드라마 드론이 아니지 않아?”

외부 유입 드론들이 드라마를 망치기 위해 침투한 거다. 다만, 사람들이 우려할 일은 없었다. 순식간에 출동한 수호 드론들이 ‘그물’을 통해 모조리 제압해버렸다. 제작사는 자신 있게 공언했다.

“이미 저희는 모든 공격에 대한 대비를 끝내놓았습니다. 시에서도 적극 협조해주시고, 무엇보다 AI 드론 기술 최고 권위자인 공 박사님이 늘 현장을 총괄하고 계십니다.”

실제로 이후 펼쳐진 모든 공격을 사전 차단 수준으로 막아냈다. 풍선이나 연을 이용한 기발한 공격부터, 해킹이나 전파방해 등의 물밑 공격까지, 공 박사의 방벽을 뚫는 건 없었다. 유일하게 날씨로 인한 취소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덕분에 시민들은 편안하게 15화까지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사람들은 불안해졌다.

“김영지 작가가 또 ‘김영지’ 하는 거 아니야?”

최고 드라마 작가인 김영지 작가의 유일한 호불호 요소는 바로 결말이었다.

“드라마면 그냥 드라마답게 평범한 해피엔딩 안돼? 왜 드라마에서 현실성을 찾냐고! 왜 대중 매체에서 작가의 예술을 하느냐는 거지.”

과격한 사람들은 그런 말까지 했다.

“만약 마지막 화에서 또 그 지랄하면, 내가 어망총을 다 가져가 쏴서 떨궈버릴 거야 진짜!”

단순히 웃고 넘길 말이 아닌 게, 드론 쇼 드라마의 치명적인 약점이 그것이었다. 누구나 테러를 할 수 있는 실시간 현장 드라마라는 점 말이다. 그동안에야 공 박사가 잘 막았지만, 대부분 사소한 공격에 불과했었다. 만약 각 잡고 제대로 테러를 가한다면? 실제로 이 드론 쇼 드라마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지 않길 바라는 이들은 많았다. 단지 꼴 보기 싫어서, 주가 조작을 목적으로, 정치적인 이유, 그 무엇이든 말이다.

“절대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이윽고 대망의 마지막 화가 방영되는 날, 사람들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저, 저게 뭐야?”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사람들의 경악성이 파도처럼 퍼져나갔다. 커다란 군사용 드론 십여 대가 한강을 따라 날아오고 있는 게 아닌가? 공 박사의 수호 드론들이 얼른 출동했지만, 접근하지도 못하고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한강 변에 모인 수십만 명의 얼굴이 사색이 됐을 때, 지상에서 폭음이 울렸다. 드론용 지대공 미사일이 일제히 발사된 거다. 군사용 드론 열 대가 순식간에 강 위로 추락해버렸다. 놀라 두 눈을 부릅뜬 시민들은 곧 상공에 펼쳐진 드론들의 문구를 보고 환호했다. 드라마 제작사가 육군을 리스펙한 거다.

[대한민국 육군 감사합니다 ♥]

“와 설마 이런 일을 대비해서 군사용 터렛을 설치한 거야? 서울시 진짜 대단하다 야.”

충격적인 테러도 하나의 이벤트로 만들어진 지금, 대망의 마지막 화가 방영되었다. 그 내용은 울고 웃게 만드는 완벽한 마무리였다. 한강 변에 모여든 수십만 명의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진짜 최고다. 드론 쇼 드라마도 최고고, 김영지 작가도 최고다.”

“최근 내 인생 최고의 추억이야 정말.”

전국적인 찬사가 쏟아졌다. 그렇지만 제작사는 당황했다. 오늘 방영된 마지막 화의 내용이 원래 내용이 아니었던 거다. 이 테러의 범인은 의외로 쉽게 붙잡혔다. 보안 총책임자인 공 박사였는데, 그는 한치의 후회도 없는 얼굴이었다.

“김영지 그 양반 드라마 본 사람들은 다 알 거요. 잘 나가다가 마지막 화만 되면 꼭 명작병이 도지는 거! 뻔한 해피엔딩을 절대 안 하려고 들잖아! 그래서 내가 바꿨소. 절대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제작사는 공식적으로 이 일을 발표하는 것보다 김영지 작가를 설득하는 일이 더 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무척 어려운 일일 테지만 말이다.

※ 김동식 - 1985년 성남 출생. 부산 영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06년부터 서울 성수동 주물 공장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다. 2016년부터 인터넷에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고, 2017년 12월 27일 초단편 소설집 [회색인간]을 내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2018년 제13회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사회 분야)을 수상했고, 강연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02408호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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