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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화제] 박현준 ‘어게인 2024 투란도트’ 예술총감독을 만나다 

20년만의 귀환, 블록버스터 오페라 투란도트 새 역사 만든다 

박세나 월간중앙 기자
2003년 상암 월드컵경기장서 펼친 장이머우 연출의 ‘투란도트’ 제작 총괄 경험
20년 지나 한국적 투란도트 들고 세계적 문화 콘텐트 ‘K-오페라’의 원년 준비


▎박현준 ‘어게인 2024 투란도트’ 예술총감독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 촬영을 위해 투란도트의 남주인공 칼라프의 아리아를 부르고 있다.
푸치니 서거 100주년이자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맞아 블록버스터급 규모의 오페라 ‘어게인 2024 투란도트’(이하 ‘투란도트’)가 12월에 한국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다. 남성 혐오증이 있는 중국의 얼음공주 투란도트와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왕자 칼라프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는 내용이 담겼다. 투란도트의 백미는 칼라프가 부르는 아리아 ‘네순 도르마(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말라)’다.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번역으로, 또 마지막 노랫말 ‘빈체로, 빈체로(Vincero·승리하리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가 됐다. 그로부터 약 100년이 흐른 지금, 한국의 코엑스에서 새로운 투란도트의 탄생이 예고됐다. 그 중심에 박현준(62) 투란도트 예술총감독이 있다.

현재 한국오페라협회 회장이자 한강오페라단 단장인 박현준 총감독은 20여 년 전인 2003년,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야외 오페라 ‘투란도트’의 총괄 책임자였다. 그의 섭외로 중국의 거장 감독 장이머우(張藝謀)가 연출을 맡았던 투란도트는 지금까지도 한국 오페라사에 한 획을 그은 공연으로 기록됐다. 박 단장은 다시 투란도트를 제작 중에 있다. 12월 22일부터 31일까지 약 열흘간 서울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그는 “20년 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다. 정말 소중하고, 갈망하던 것을 다시 무대에 올리게 돼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했다.

“세계에서 1등인 사람들만 모았다”


▎12월 코엑스에서 열릴 ‘어게인 2024 투란도트’의 무대 배경이 될 황금의 성 3D 장면. / 사진:2024투란도트문화산업전문회사
출연진이 쟁쟁하다. 현재 세계 오페라 무대를 장악한 거장부터 차세대 오페라 여왕·황태자로 불리는 소프라노와 테너까지 20여 명의 오페라 스타 가수들이 총출동한다. 박 단장은 “제가 직접 가수와 만나거나 에이전시에 연락해서 출연 여부를 확인했다”면서 “현재 세계에서 1등인 사람들만 모았는데, 스케줄이 맞지 않아 딱 두 명이 빠져서 아쉽다”고 했다. 이미 누구도 해내지 못할 일을 저질러(?) 놓고서는 아쉬움이 있다니… 그 두 사람은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과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다. 재미있게도 안나 네트렙코의 남편인 테너 겸 지휘자 호세 쿠라는 이번 공연의 지휘자로 이미 내정된 상태다.

연출은 현재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에서 ‘투란도트’의 새로운 프로덕션을 이끌고 있는 다비데 리베모어가 맡는다. 지휘는 이탈리아 오페라 지휘자 파올로 카리냐니와 아르헨티나 출신 테너 겸 지휘자 호세 쿠라가 공동으로 나선다. 여기에 최근 지휘자로도 활약하고 있는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합류를 결정하면서 총 3명의 스타 지휘자를 만날 수 있게 됐다. 타이틀롤이자 주인공인 투란도트 역에는 최근 오페라의 여왕으로 등극한 리투아니아의 소프라노 아스믹 그리고리안을 비롯해 류드밀라 모나스티스카, 에바 플론카, 아나스타샤 볼디레바가 맡는다. 스타 소프라노 아스믹 그리고리안의 첫 내한이기도 해 음악 팬들의 기대가 크다.

칼라프 역에는 현 시대 최고의 칼라프라 불리는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 오페라의 황태자 스타 테너 브라이언 제이드 외에도 세계적인 테너 알렉산더 안토넨코, 이라클리 카히제가 맡았다. 그리고 칼라프를 사랑한 비극적 캐릭터 리우 역에는 차세대 오페라 스타 줄리아나 그리고리안과 푸치니의 오페라에 특화됐다는 평을 듣는 소프라노 도나타 롬바르디를 비롯해 유일한 한국인 소프라노로 박미혜 서울대 음대 교수 등이 캐스팅됐다. 당대 오페라 스타들이 한꺼번에 한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상황이다 보니, 세계 음악계에서도 의아해할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박 단장이 예술총감독으로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마음껏 욕심을 부린 결과다. 지휘자부터 가수까지, 섭외 과정에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처음엔 주빈 메타를 지휘자로 섭외했어요. 지난 봄에 만나고 왔는데, 휠체어를 타고 무대까지 가서 일어나 지휘를 하시더라고요. 다음 날 오페라 돈 조반니를 지휘하는 걸 봤는데, 뒤로 갈수록 템포가 점점 느려지는 거예요. 그걸 보니까 아,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정말 모시고 싶었지만 결국 제가 놓았습니다. 지휘자 다니엘 오렌도 섭외 중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가 10월에 하는 또 다른 ‘투란도트’에 캐스팅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날 바로 ‘다니엘 너시월에 여기 오니?’ 확인했어요. 온다는 거예요. 2개의 투란도트를 다 하겠다는 거죠. 순간 한국을 뭘로 보고, 이중계약을 하는 거지 싶어서 제가 전화로 ‘너 오지 마’ 했어요(웃음).”

과거 투란도트의 무대는 원작인 중국 배경을 충실히 따른 붉은 색 자금성이었다. 높이가 55m에 길이가 150m에 달하는 대규모 세트였지만, 이번엔 다르다. 규모도 규모지만, 디테일에 더욱 집중했다. 무대 뒤 전체에 황금색 LED 조명을 설치하고 3D 기술을 활용해 입체적이면서도 화려한 3층짜리 황금 궁전을 배경으로 한다. 박 단장은 “황금의 성은 신의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신이 사는 신계와 백성이 사는 공간으로 나뉜다”면서 “중국도, 이탈리아도 아닌 한국적인, 한국만의 버전으로 만들 예정이다”라고 했다. 지금까지 투란도트 연출은 프랑코 제피렐리 버전을 최고로 여겼다. 실제로 라 스칼라 극장과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40년간 그의 무대를 이어왔다. 그러다 최근 인식이 점차 변화되고 있다. 지난 6월, 제노바 국립극장 예술감독인 다비데 리베모어가라 스칼라 극장에서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투란도트를 연출해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그 연출자가 이번 한국 투란도트의 연출을 맡게 됐다. 새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한국 오페라 기록 경신할 ‘2024 투란도트’


▎2003년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투란도트’ 프레스 리허설 장면.
“한국 투란도트는 같은 연출자지만 다른 버전으로, 한국만의 버전으로 제작될 겁니다. 그래서 전 세계 오페라계에서 굉장히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어요. 과연 어떤 작품이 어떻게 나올까 하고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만드는 오페라 작품이 이처럼 세계적인 관심과 주목을 받는 일이 없었어요.”

20년 전의 투란도트와 다른 점은 또 있다. 당시 야외에서 펼쳐진 투란도트는 실험적인 무대였기에 우려 반 기대 반 속에서 진행됐다. 그래도 결과는 대성공. 그래서 다시 투란도트를 공연하게 된다면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하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측의 일정이 맞지 않아 아쉽게도 불발됐다. 이후 코엑스 측과 연락이 닿았다. 일정도 딱 맞고 객석도 약 7000석을 놓을 수 있어 공연 장소를 실내인 코엑스로 변경했고, 일정도 크리스마스를 낀 연말 공연으로 결정했다.

“겨울에는 유럽의 어느 곳에서도 오페라 페스티벌을 열지 않아요. 그렇다면 한국이 윈터 페스티벌의 중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매년 겨울, 코엑스에서 오페라 페스티벌을 열자! 그래서 매년 겨울 세계가 코엑스를 찾게 만들자!”

박 단장의 큰 그림은 강남의 코엑스가 세계적인 극장 라 스칼라가 되고 메트로폴리탄이 되는 거다. 그는 “코엑스에서 우리 하드웨어로, 전 세계 최고 예술가들이 모이는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오페라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면서 “한국이 세계 오페라의 중요한 지분을 갖는 계기가 될 거다. 원년이 되는 거다. 이게 ‘K-오페라’다. 수입이 아니라, 한국에서 만드는 한국적 오페라 문화 콘텐트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 공연이라고 생각… 영혼 바쳐 제작”


▎20년 전 펼쳐진 야외 오페라 ‘투란도트’에 제작된 의상 스케치들. / 사진:2024투란도트문화산업전문회사
박 단장은 ‘어게인 2024 투란도트’를 계기로 오페라가 고급스러운 대중문화로 자리잡기를 원했다. 대형 오페라인 투란도트는 대중적으로 즐길 거리가 더 많기 때문이다. 최소 100명에 달하는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그 소리를 뚫고 나오는 가수들의 파워풀한 노래 선율, 무대 장치, 의상, 합창단의 하모니, 무엇보다 세 개의 수수께끼를 풀고 사랑을 이룬다는 서사 등이 인기 뮤지컬과 견줘도 빠지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대중적인 오페라 중에 대형으로 작곡된 게 푸치니의 투란도트와 베르디의 아이다예요. 그런데 아이다는 조금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데 반해 투란도트는 그렇지 않거든요. 또 베르디는 중기, 푸치니는 후기 작곡가이다 보니 작곡의 형태가 좀 달라요. 베르디를 트로트라고 한다면 푸치니는 발라드인 거죠. 그래서 푸치니의 곡은 더 현대적이고 선율적입니다. 유명한 아리아인 ‘공주는 잠 못 이루고’나 ‘별은 빛나건만’ 등이 대표적이죠. 투란도트가 특히 사랑받는 이유는 세 개의 수수께기를 풀어가는 과정과 귀에 익숙한 아리아,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음악이 어우러져 관객들이 굉장히 흥미롭고 스펙터클하게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K-오페라가 세계를 집어삼키는 날이 오길 바라는 박 단장이 현재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부분도 있다. 오페라 환경이 예전보다 훨씬 더 안 좋아졌다는 점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문화예술계가 타격을 받았고, 그중 오페라 문화는 더욱 축소됐다. 박 단장이 20년 만에 투란도트를 제작하려고 보니 오페라 무대 의상부터 마케팅과 홍보 등 오페라 관련 환경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 분야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투란도트를 계기로 변화가 시작되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오페라 공연에 최적화된 전용 극장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제가 이 필드에 있는 이상 도전해야 할 과제죠. 그러고 나면 떠날 겁니다. 하하. 현재 오페라단 단장직과 교수직을 맡고 있는데, 간간이 공연 초청이 들어와서 공연도 하긴 합니다. 참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곧 모두 내려놓을 생각이에요. 성가대 찬양만 하겠다고, 선교활동에만 전념하겠다고 하나님께 이미 기도로 약속했습니다(웃음).”

박 단장은 이번 투란도트가 “내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면서 “내 생명을 걸고 영혼을 바쳐서 마지막으로 만드는 작품이다.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하겠다”라는 말로 진심을 전했다.

- 글 박세나 월간중앙 기자 park.sena@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202409호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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