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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감성 작가’ 김동식 단편소설] 여섯 번째 이야기 | ‘범죄 전염병’ 

“범죄도 전염이 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마지막 남은 약병 하나. 현중기는 처음엔 상상도 못 했던 범죄를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오! 개나이스! 삼겹살 8인분이었는데 7개만 계산됐네요! 대박!”

식당 앞 도로, 법인카드와 영수증을 든 남자 현중기가 웃는 얼굴로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기쁨의 전염을 노렸겠지만, 실패했다. 남자 김재석이 불쑥 튀어나와 현중기의 손에 든 법인카드와 영수증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계산 실수가 있었어요? 제가 말하고 올게요.”

“어? 아니 그걸 굳이?”

“금방 갔다 오겠습니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김재석의 뒷모습으로 여자 동료들의 시선이 꽂혔다.

“역시 재석 씨네.”

“그러니까요. 얼굴값 하지 않아요? 행동도 얼굴처럼 바르잖아요 참.”

현중기의 얼굴이 구겨졌다. 너무 비교되는 상황이 아닌가? 김재석이 바로 나서지 않았다면 이득 봤다며 좋아해 줄 동료가 분명 나왔을 텐데, 덕분에 현중기 혼자만 추잡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올바른 사람의 정석으로 유명한 김재석 때문에 비교당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필 동기라 더 그랬다. 현중기는 김재석에 대한 미움이 한계까지 차버렸다. 바로 그때 그 ‘전단’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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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는 길에 웬 사내가 건네준 전단을 본 현중기는 홀린 듯 편의점 2층으로 찾아갔고, 그곳에서 이상한 사내를 만났다. 검은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사내는 반달 눈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악마일 수도, 초능력자일 수도, 외계인일 수도, 그 무엇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이 신비한 힘이 진짜라는 게 중요하지요.”

현중기는 사내에게서 작고 투명한 유리병 3개를 받았다. 유리병 안에는 곰팡이 같은 작은 털 뭉치가 떠다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범죄 병균’이었다.

“범죄도 전염이 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당신이 이병균의 숙주가 되어 범죄를 저지른 뒤, 김재석에게 전염시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당신이 저지른 그 범죄를 김재석이 똑같이 저지르게 됩니다.”

“예?”

“포인트는 그겁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끌어내리기 위해서 얼만큼이나 범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까? 내 도덕성의 선이 어느 정도일지 테스트해보시는 겁니다.”

망설이는 현중기에게 사내는 속삭였다.

“당신이 유리해요. 당신의 범죄는 안 들킬 수도 있겠지만, 김재석의 범죄는 안 들킬 수가 없을 테니까요.”

그 말에 현중기는 3개의 유리병을 챙겨서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 건널목 앞에 선 현중기는 긴장한 얼굴로 유리병을 꺼냈다. 범죄 전염병 따위 믿거나 말거나지만, 한 번은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병뚜껑을 연 현중기는 입구에 코를 대고 흡입했고, 털 뭉치가 콧속으로 쏙 들어갔다. 현중기는 머리가 뜨거워지는 감각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정신을 차리고 무단횡단을 해버렸다. 지나가던 차량이 클랙슨을 ‘빵’ 울렸지만 ‘알 게 뭐야‘였다. 그는 그대로 회사로 출근했다. 이윽고 점심시간, 단체로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 현중기는 눈치를 보며 김재석의 등 뒤로 갔다. 이윽고 길을 건너야 할 위치에 왔을 때, 몰래 김재석에게 ‘첫 기침’을 ‘콜록’ 뱉었다. 그러자 순간, 김재석이 빨간불을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해버렸다.

“당신은 얼만큼 범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까”

“어머, 재석 씨?”

놀란 동료들이 김재석을 불렀지만, 김재석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건널목 끝까지 건너버렸다. 그가 그럴 사람이 아닌 걸 알고 있던 동료들은 웅성거렸고, 현중기는 희열을 느꼈다. 건너편에서 이곳을 바라보는 김재석이 당황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이야~ 재석이 쟤는 저번에 나한테 무단횡단하지 말라고 그렇게 잔소리하더니, 자기가 하네.”

현중기는 비아냥거리며 속이 다 시원했다. 곧이어 파란불이 되어 모두가 건너고, 여자 직원이 김재석에게 물었다.

“아니 재석씨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빨간불에 뛰어가요?”

현중기는 김재석이 당황할 모습을 기대했지만, 김재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아고,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파란불인 줄 착각했나 봐요.”

“아이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했길래~ 오후에 그 일이 힘들어서 그래요? 도와줘요?”

“하하 아닙니다.”

생각보다 별것 아닌 걸로 지나가는 상황에 현중기의 얼굴이 구겨졌다. 인정해야 했다. 평소 이미지가 있으니, 무단횡단 따위는 정말 ‘따위’일 뿐이란 것을. 김재석을 나락으로 보내려면 정말 제대로 된 범죄가 필요했다. 현중기는 생각에 잠긴 채 주머니 속 유리병을 만지작거렸다.

‘당신은 누군가를 끌어내리기 위해서 얼만큼이나 범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까?’

질투. 현중기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사실 김재석을 향한 질투가 컸다. 여자 직원들과 화기애애한 김재석을 바라보는 현중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며칠 동안 현중기는 고민했다. 한 방에 나락 보낼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밖에 없었다. 성추행범이 되는 일 말이다. 그렇지만 내 범죄는 들키지 않고, 김재석의 범죄는 모두의 앞에서 이루어져야겠지. 망설이던 현중기는 그냥 과감히 저지르기로 했다. 현중기는 늦은 밤 유흥가를 돌아다니며 만취한 여자를 찾아다녔다. 한 클럽에서 거의 기절한 듯한 여인을 발견한 그는 빠르게 다가가 엉덩이를 움켜쥐고 재빠르게 도망쳤다.

다음 날 회사에 도착한 현중기는 가장 적절한 기회를 노렸다. 이윽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였을 때 김재석에게 기침을 뱉었다. 그러자 김재석은 몰래 한 여자 직원의 뒤로 다가가더니 엉덩이를 움켜잡았다. 현중기는 ‘됐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한데?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깜짝 놀란 여자 직원이 뒤를 돌아보더니, 배시시 웃는 게 아닌가? 정신이 돌아온 김재석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크게 사과했고, 여자 직원은 웃으며 김재석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고는 김재석의 팔뚝을 장난스레 툭 치고는 웃으며 가 버렸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현중기의 굳은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사실 현중기가 내내 짝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저게 뭔가? 왜 자신을 성추행한 김재석에게 눈웃음을 날리는가? 귓속말은 뭐라고 한 건가?

곧 부장님이 김재석에게 하는 말로 알 수 있었다.

“뭐야? 둘이 귓속말하는 사이야?”

“아니요 그게 아니고, 그냥 음… 저녁에 밥 사기로 했습니다.”

“뭐야? 분위기 묘한데~”

“하하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 김재석을 보며 웃던 그 얼굴”

현중기는 이를 악물었다. 반대로 만약 나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분명 그녀는 비명을 질렀을 것이고, 그대로 사회적 사망을 겪게 되지 않았을까? 부들부들 떨던 현중기의 눈에 핏발이 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김재석의 인생을 지옥에 처넣어야 했다. 마지막 남은 약병 하나. 현중기는 처음엔 상상도 못했던 범죄를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새벽. 우비와 마스크로 온몸을 가린 현중기는 봐두었던 굴다리 밑으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접근한 굴다리 밑에는 얇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잠든 노숙자가 있었다. 그를 살핀 현중기는 숨이 가빠왔다. 손에 들린 야구방망이를 꽉 잡고 멈춰 서서 망설였지만, 머릿속으로 김재석을 떠올린 순간 유리병을 꺼내 들었다. 범죄균을 흡입한 그는 잠든 노숙자를 향해 무차별 폭행을 시작했다.

비명을 지른 노숙자는 곧 피범벅이 되었고, 어느순간 마네킹처럼 이리저리 조용히 흔들리기만 했다. 죽은 건가? 현중기는 미친 듯이 현장을 벗어나 도망쳤다. 한참 뒤 집에 도착해서 온몸을 씻어낸 현중기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회사로 출근했다. 이윽고 점심시간, 탕비실로 사람들을 불러낸 현중기는 ‘그녀’에게 야구방망이를 건네주었다. 야구 선수 사인이 누구인지 알겠느냐면서. 그녀는 신기해하며 야구방망이를 살폈고, 자연스럽게 김재석을 불렀다.

“이거 봐요. 누구 사인인지 알아보겠어요?”

무척 가까워 보이는 두 사람이 붙었을 때, 현중기는 김재석의 뒤로 가 내내 참았던 기침을 내뱉고 물러났다. 그러고는 두 남녀를 차가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움찔 경직된 김재석은 그녀의 손에서 방망이를 뺏어 들었다. 한데? 순식간에 뒤를 돌아본 그가 방망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어?”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현중기의 눈앞으로 야구방망이가 떨어져 내렸다. ‘빠악!’ 머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무차별 폭행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난리가 났지만, 김재석은 현중기를 죽이려는 듯 끝없이 폭행했다. 처음엔 방어하려던 현중기의 온몸에 힘이 점점 빠지고, 무저항으로 모든 공격을 허용했다. 김재석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현중기의 숨은 끊어진 상태였다. 탕비실의 사람들은 겁에 질려 움직이질 못했다. 그들은 미친 사람이 된 김재석이 무서웠고, 그의 손에 들린 피 묻은 방망이가 무서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공포를 자아내는 것은 김재석을 올려다보는 현중기의 얼굴이다. 마지막 순간 김재석을 보며 웃던 그 얼굴 말이다.

※ 김동식 - 1985년 성남 출생. 부산 영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06년부터 서울 성수동 주물 공장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다. 2016년부터 인터넷에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고, 2017년 12월 27일 초단편 소설집 [회색인간]을 내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2018년 제13회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사회 분야)을 수상했고, 강연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02409호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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