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아랍의 대표적인 상인은 레바논인이었다. 고대인들은 이미 6000년 전 이곳에 도시를 만들었다. 지중해 무역을 장악해 번창했고, 당시 창안한 표음문자는 영어 알파벳의 뿌리가 됐다. 상대적으로 넉넉한 강우량에 해발 3000m가 넘는 산악지대를 등진 자연환경 덕분에 백향목 등 각종 특산품으로 상업이 발달했다. 1970년대 중동에서 ‘컨설턴트’라는 명함을 들고 다닌 사람도 바로 레바논인들이다. 당시 중동의 허브는 누가 뭐래도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였다. 베이루트는 1975년 레바논이 내전에 휩싸이기 전까지만 해도 서아시아 금융·상업·관광의 중심지였다. 또한 서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이 활발했고 문화적으로도 번영하여 중동의 파리라는 찬사를 받았다.
내전으로 폐허가 된 베이루트의 대를 이은 건 바로 바레인. 아랍의 소국인 바레인은 한정된 인구와 석유 매장량을 일찌감치 깨닫고 아랍의 교역 중심지로 자처했다. 특히 바레인은 중동의 금융허브 전략을 폈다. 지금도 국제이슬람은행 본부 등이 바레인에 있어 여전히 중동의 금융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워낙 나라 규모가 작은 데다 2002년 바레인 금융위기로 국제금융기관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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