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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창업의 저력 - 성공한 ‘사모님 CEO’ 세심함이 남다르다 

엄마 마음으로 제품 만들고 여성의 감수성으로 조직 보듬어 


주부에서 사장님으로 변신하는 중년 여성이 늘고 있다. 이들은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현장을 누비고, 주부의 꼼꼼함으로 틈새시장을 개척한다. 엄마 같은 감수성을 발휘해 휘하의 조직원을 보듬기도 한다. 성공 사례도 여럿 있다. 외식업계의 거물이 된 김순진 놀부NBG 대표는 지분을 팔아 거액 자산가 반열에 올랐다. 여성이라 더 강한 CEO중 한 명이었다. 사업 전선에 뛰어든 중년 여성의 저력을 살펴봤다.

홍옥주 아이에코 대표는 연말인 요즘 내년을 기대하는 맛으로 산다. 친환경 면 생리대를 만드는 이 회사의 매출이 1년 사이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본과 호주, 미국 등 해외에도 샘플을 보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환경보호에 적극 동참하는 사회 분위기, 몸에 더 좋은 걸 찾는 웰빙 트렌드가 매출 증가에 도움이 됐다.

홍 대표가 면 생리대를 사업 아이템으로 떠올린 건 2003년에 쓰레기 줄이기의 일환으로 여성들에게 면 생리대를 권유하는 활동에 동참하면서다. 같은 해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홀로 남은 홍 대표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사업에는 문외한이지만 면 생리대라면 팔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친구를 붙잡고 무작정 제품 개발에 나섰다. 상품을 사용하는 여성이자 딸 아이의 엄마로서 가장 편리한 형태를 고심했다. 서울산업통상진흥원의 창업스쿨을 다니며 창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배웠다. 난관은 유통망이 없다는 것이다. 마트와 백화점 등을 쉴새 없이 돌아다니며 구매담당자를 설득하기를 수십 차례. 바늘구멍 같아 보이던 판로가 조금씩 열렸다. 처음에는 관심을 갖는 소비자가 적어 판매도 저조했지만 언론에 면 생리대의 장점이 자주 등장하며 여성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요즘 아이에코의 제품은 백화점, 할인마트, 인터넷 쇼핑몰에서 팔고 있다. 올해 홍 대표는 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내년에는 매출이 배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술 없고 재취업 힘든 여성의 돌파구

최근 여성의 경제활동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감소했던 여성 취업자 수가 지난해부터 증가세를 보이더니 올해 2분기에는 1013만 명을 기록해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이면에는 씁쓸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0월에 내놓은 분석 보고서에서 “여성 취업자가 급증한 건 50대 이상의 저임금 노동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보건복지와 사업시설 서비스업종에서 요양보호사와 같은 일을 하는 50대 이상의 여성이 늘었다는 것이다. 생계를 위해 취업시장에 나와 저임금 비정규직 근로자가 된 중년의 주부가 여성 취업률 증가의 배경이었다.


▎서울 신수동 여성창업교육반에서 50대 여성이 플라워디자인반 수업을 듣고 있다.

이렇게 중년이 지난 여성은 특별한 기술이 없다면 저임금 단순 노동 시장 말고는 별다른 취업 대안이 없다. 직장생활 경험이 있다고 해도 육아와 가사 노동을 하며 전업주부로 지낸 시간 동안의 경력 단절로 동종업계에서 다시 일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돈을 벌거나 사회생활을 하려는 여성들이 대안으로 찾는 게 창업이다. 밑천이 작으면 작은 대로 창업을 꿈꾸는 중년 여성이 늘어난 이유다.

이런 현상은 숫자로도 볼 수 있다. 지난해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개인 창업자 96만 2000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7.2%가 여성이었다. 특히 이들 대부분이 중년 여성이었다. 중소기업청이 조사한 ‘2009년 여성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이 기업을 창업하는 평균 연령은 42.97세였다. 40대에 세운 여성 기업 비율이 42.8%였다.

재계에는 맨손으로 시작해 꽤 이름 난 기업을 일군 강한 ‘아줌마 CEO’가 적지 않다. 외식업계의 대모로 불리는 김순진 놀부NBG 대표는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여성 경영인이다. 최근 놀부NBG와 자회사의 지분을 사모투자 회사 모건스탠리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어 화제가 됐다.

정확한 매각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1200억원 대의 거래가 이뤄졌을 것이라 보고 있다. 서울 신림동의 5평짜리 허름한 보쌈집에서 시작해 20여년 만에 11개 외식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가진 연 매출 1100억 원의 회사로 키워낸 김 대표의 성공담은 그야말로 신화적이다.

국내외 경기 침체로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제 2의 김순진 대표’를 꿈꾸는 여성들의 늦깎이 창업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특히 본인이 가진 특장점을 살려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리는 ‘사모님 창업가’가 적지 않다. ‘FC천상’의 박순임 대표는 외식업계에서 화제를 모은 여성 창업자다. 박 대표가 운영하는 이자카야 ‘천상’은 주변 지역에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현재 직영점이 8개로 늘었다. 손님이 많은 점포는 월평균 1억 원의 매출을 안정적으로 올리고 있다.

박 대표는 기계 수출 업체에 근무하며 일본 출장을 자주 다닌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 그가 30대 중반인 1999년 돌연 사표를 내고 외식업에 뛰어들었다. 일본에서 맛본 일식 돈까스 맛을 한국에서 재현하겠다는 목표였다. 여기에 단품 안주를 하나 둘 더 내놓기 시작한 게 지금의 이자카야 형태로 발전했다. 그때만 해도 일본식 이자카야의 요리가 지금처럼 대중화 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박 대표는 주부가 가진 음식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100% 살렸다. 자칫 생소할 수 있는 일식 요리를 내놓으며 “튀김은 소금에 찍어 먹는 게 더 담백하다”는 식으로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박 대표는 조미료라면 질색을 한다. “내가 먹는 음식을 직접 만드는 주부로서 돈 받고 파는 음식에 조미료를 넣을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아예 천상에 납품하는 식자재 공장을 따로 차렸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음식점을 경영할 때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늘어난 직원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특히 주방 직원들은 대개 고집이 강한 편이어서 갑자기 일을 그만두는 등 돌발 행동을 하기 일쑤였다. 박 대표는 매끼 식사를 살뜰하게 챙기며 푸근한 모습으로 직원들을 다독였다. 때로는 채찍을 들고 때로는 중재자의 역할을 하며 협력하는 가게 분위기를 조성했다.

박 대표는 창업을 앞둔 여성들에게 “해당 업종을 공부하고 전문가에게 조언을 듣는 등 사전 조사를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직영점 운영을 원하는 여성들을 만나면 편하게 돈 벌 생각을 많이 하는데 큰 오산”이라고 말한다. 정말 일을 좋아해서 가게를 열었다 해도 힘든 일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도록 꼭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을 것을 덧붙여 당부했다.

지금은 성공한 여성 CEO 반열에 오른 대표들도 사업 초창기에는 여성이라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에게 여성 창업자가 가진 저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기업체 전문 여행사 BT&I의 송경애 대표는 여행업계에서 20년 동안 회사를 경영해온 여걸이다. 거래액만 2600억 원에 이르는 코스닥 상장사로 회사를 키웠다. 송 대표가 말하는 여성 창업자의 강점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이다. “디테일, 스토레텔링에 강한 게 여성 경영인의 강점”이라고 말한다. 임직원의 70%가 여성인 송 대표의 회사에서도 이런 강점을 100% 활용하고 있다.

다만 여성 창업자가 유의해야 할 취약점도 덧붙였다. “좌절을 맛본 여성이 포기하는 사례를 여러 번 목격했다”며 “인내심이 부족한 게 약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경험이 적은 여성일수록 사업을 하는 도중 실패할 확률도 높은데 이것이 아예 사업을 접는 포기 단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2년째 광고업계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J&S이룸커뮤니케이션의’ 정명심 대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업 초창기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광고주를 비롯한 관계자들과 만남이 잦은 비즈니스다 보니 근거 없는 구설에 올랐던 것이다. 그러려니 했지만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다행히 노력과 실력으로 차근차근 업계에서 신뢰를 쌓다 보니 그런 소문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정 대표는 ‘감성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거창한 건 아니고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감동을 주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목표를 달성하면 모든 임직원이 해외여행을 떠난다. 여성 직원의 시어머니 선물까지 직접 챙길 정도로 가족적인 분위기다. 이직도, 창업도 많은 광고업계지만 정 대표 회사에는 10년째 근무하는 직원이 많다. “직원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간 것이 조직원간 관계에서 강점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이런 결속력이 업계 선두업체로 올라선 원동력이었다.

세계경영연구원(IGM)의 조미나 교수는 여성 기업인의 특징을 “정리정돈에 능하고 원칙주의적이고 주변을 의식하는 성향”이라고 꼽는다. 원칙을 지키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비리나 부정부패가 남성 경영자보다 적은 편이지만 상대적으로 융통성이 적다는 단점이 있다. 또 주변을 정리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한 우물을 파는 여성 기업인이 많지만 이것 역시 사업 확장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는 경향은 분위기와 감정을 읽는 데는 장점이 되지만 좀 더 자신감 있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걸 막기도 한다. 조 교수는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는 여성성을 적절히 발현하고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이 대다수

여성 또는 주부라는 강점을 살려 창업에서 성공한 사례가 많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창업 과정에서 더 큰 장벽을 만나기도 한다. 홍옥주 아이에코 대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업 자금 대출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여성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이 자금 조달이라고 답한 비율이 44.7%였다.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의 김상식 팀장은 “여성 창업자가 금융권에서 사업 자금을 조달하기가 예전보다는 쉬워졌지만 여전히 남성보다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을 경험한 여성은 남성보다 인맥 등의 네트워크가 약하게 마련이다. 특히 영업을 하는 과정에서 남성 위주의 접대문화에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여성 창업자가 많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김상식 팀장은 “거꾸로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성품이 영업에 도움이 된다는 창업자도 더러 있었다”고 말했다.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여성이 최근 늘어나고는 있지만 대부분 아직 시작단계에 머물러 있어 나라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2009년 여성기업 조사 결과 종업원이 5인 미만인 사업장이 64.1%로 나타났다. 여성 창업자가 경영하는 회사가 대부분 영세한 규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창업 전문가들은 그러나 앞으로 주부의 경제활동 욕구가 더욱 커지면 자신만의 가게나 회사를 차리는 방식으로 경제활동에 나서는 ‘사모님 창업’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현상에 발맞춰 정부는 다양한 여성 기업인 지원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중소기업청과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는 여성들의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경진대회를 해마다 열고 있다. 우수 창업 아이템으로 선정된 이들에게는 상금을 준다.

특히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여성 창업인 지원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창업 강좌와 전문가 컨설팅을 운영할 뿐만 아니라 전국 각 지역에 여성비즈니스지원센터를 설립해 여성 기업이 입주할 공간을 제공한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는 여성 기업인의 온라인이나 해외 시장 진출을 돕는 판로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창업과 회사 설립을 비롯한 각종 절차에 익숙지 않은 여성 창업 희망자는 적절한 교육을 먼저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미소 이코노미스트 기자 smile83@joongang.co.kr

1117호 (201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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