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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지는 머니 무브(Money move) - 세계경제에 봄바람 위험자산에 돈이 몰린다 

 

이윤찬·박상주·김성희 이코노미스트 기자 sangjoo@joongang.co.kr

돈이 움직이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2011년 유럽 재정위기까지 터지면서 ‘돈은 안전한 데 묶어놔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경제 상황이 달라지면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세계 각국이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돈을 풀고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우려도 한풀 꺾였다. 글로벌 경제에 봄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세계 각국의 돈이 예금·채권 같은 안전자산을 떠나 주식을 비롯한 위험자산으로 몰렸다. 선진국에서 신흥시장으로도 돈이 이동했다. 이른바 ‘머니 무브(Money move)’다. 이미 세계적으로 위험자산의 가격이 적지 않게 올랐지만 머니 무브 현상이 좀 더 지속된다면 오름세가 이어질 수 있다. 돈을 벌려면 돈의 흐름을 잘 따라가야 한다. 글로벌 머니의 투자 방향이 바뀐 배경과 흐름을 짚었다. 아울러 머니 무브 시대에 적합한 투자법을 살펴봤다.

# 안전자산의 대명사인 미국 국채와 일본 엔화에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2월 초까지 1.8%대에 머문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3월 19일 2.38%로 올라 지난해 8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채 금리가 오른다는 건 국채 가격이 내려가고 있다는 뜻이다. 투자자들이 세계 제1의 안전자산이라는 미국 국채를 팔고 있다는 것이다. ‘안전하기만 하다면 연 2% 수익률이라도 좋다’며 국채를 보유하던 투자자들이 안전 못지 않게 수익을 따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재만 동양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안정세를 보이자 미 국채 가격이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어 위험자산인 주식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 실물 가운데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손꼽히는 금의 가격은 지난해 8월 고점(온스 당 1895.6달러·뉴욕상품거래소)을 찍은 뒤 올 3월 21일 1650.3달러까지 떨어졌다. 반대로 미국 달러화 가치는 같은 기간 3%가량 상승했다. ‘강(强)달러 시대’가 열리면 달러를 쥔 투자자는 해외 투자에 나설 기회를 얻는다. 고수익을 올릴 수 있어서다. 실제로 최근 들어 신흥시장에 달러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돈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역(逆) 머니 무브 끝났나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 돈이 몰리기 시작했다. 선진국에서 신흥시장으로도 돈이 흐르고 있다. 올 3월 이후 이런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이른바 ‘머니 무브(Money move)’다. 머니 무브는 투자금이 은행예금 등 안전자산에서 증시·부동산 같은 고위험·고수익 자산으로 쏠리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대표적 안전자산인 국내외 채권시장에는 냉기가 감돌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를 기록 중이던 미국·독일에선 금리가 급반등하면서 채권값이 연일 떨어지고 있다. 반대로 상대적 위험자산인 주식시장에는 봄바람이 불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3월 19일 4년3개월 만에 1만3000선을 돌파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수준을 회복한 것이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도 비슷한 시기 3000선을 돌파했다. 2000년 12월 이후 11년 만이다. 이런 현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와 판이하다. 당시 시중자금은 증시를 포함한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 쏠렸다. ‘역(逆)머니 무브’ 현상이었다.


머니 무브는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 자주 나타나는데 현재 주식가격으로만 보면 세계 경제위기는 옛 말로 들린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먼삭스는 3월 21일 보고서에서 “지금은 생애 최고의 주식매수 기회이고 주식은 향후 몇 년간 상승 흐름이 기대된다”고 진단했다. 짐 오닐 골드먼삭스자산운용 회장은 3월 19일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뷰 포인트’에서 “(현재의 주가 움직임을 볼 때) 미국경제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징후가 보인다”고 평했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2월 말까지 증권사 고객예탁금과 환매조건부채권(RP), 자산운용사의 펀드, 투자일임자산,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의 ‘금융투자 상품’의 잔액은 656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3조원 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연평균 유입규모(22조6000억원)의 50%를 넘어섰다. 반면 2월 말 현재 은행권에 예금·신탁 형태로 맡겨진 돈은 모두 1040조2000억원으로 2조3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연평균 유입규모(79조6000억원)를 감안하면 올 들어 대폭 줄었다. 이에 따라 은행권 대비 금융투자 상품의 수신 비중은 지난해 말 61.9%에서 2월 말 63.1%로 커졌다. 이 비중이 커진 건 4년 만이다. 두 업계의 수신 격차도 4년 만에 줄기 시작했다. 700조원으로 추산되는 시중의 부동자금이 위험자산인 금융투자 상품으로 몰리기 시작됐다는 의미다.

국내 시중자금이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오현석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증시에서 개인자금이 계속 빠져나가는 추세였지만 올 들어 2조원이 넘는 자금이 다시 유입됐다”며 “이는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머니 무브가 빨라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 경제에 봄바람이 불고 있어서다. 특히 유럽 재정위기 우려가 한풀 꺾이고 있다. 3월 20일 그리스 정부가 13억 유로어치 3개월 만기 국채를 4.25%라는 비교적 낮은 금리에 매각한 게 국면전환의 분기점이 됐다. 유럽중앙은행은 이번 재정위기가 그리스 외 다른 유럽국가로 번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3월 21일 미 하원 감독·정부개혁위원회 청문회에서 “유럽 재정위기가 지난 몇 달 사이 현저히 완화됐다”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은 “유럽 재정위기가 완화된 덕분에 세계 금융시장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유럽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출구전략을 가동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앙은행은 3월 22일 “자세한 내용이나 시행시기를 논의하는 단계는 아니다”는 전제를 깔긴 했지만 “유로존 출구전략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 역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40만 이하로 떨어지는 등 고용이 늘어나는 추세다. 신규 주택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올 들어 2월까지 기존주택 판매는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지표도 아직까진 좋다.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은 3%(추정치)로 1년 반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미국 기업의 실적도 순항 중이다. 애플 등 미국의 주요 기업이 예상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하면서 증시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미 경제에 부는 훈풍, 언제까지…

미국·유럽의 경기회복과 이에 따른 금리인상 가능성을 볼 때 머니 무브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증권사는 시중자금이 증시·부동산 등 위험자산 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센터장은 “IT업종의 실적이 괜찮은 만큼 2100선 돌파가 조만간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학균 대우증권의 투자전략팀장은 “이제는 금리에 의존해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자산포트폴리오에서 위험자산 비중이 작다면 적립식으로 위험자산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투자전문가의 의견도 비슷하다.

마크 모비우스 프랭클린 템플턴 이머징마켓그룹 대표는 3월 20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주식 투자 수익률이 채권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미국 국채를 판 자금이 주식시장으로의 유입될 것”이라며 “이 중 3분의 1은 신흥시장 증시로 향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론도 있다. 최근의 머니 무브 현상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세계 경기가 아직 바닥을 탈출한 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4분기 3% 가량 성장했다. 그러나 연평균 성장률은 1.7%에 그쳤다. 올 1분기에도 약 2.0%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많은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연말로 갈수록 성장이 둔화할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인 글러스킨쉐프의 데이비드 로젠버그 이코노미스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년 동안 양적완화와 저금리 정책을 폈음에도 성장의 폭은 크지 않았다”며 “지금의 성장은 역사적으로 가장 약한 성장”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정책적 뒷받침이 잇따르지 않는다면 성장은 더 약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중론의 배경은 또 있다. 금 가격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 추세가 뚜렷하지 않다. 실물경기지표는 오락가락하고 있다. 가령 3월 초 미국 주택시장과 고용 통계가 좋아 세계 금융시장이 들썩였다. 하지만 3월 20일 발표된 2월 주택착공건수는 부진하게 나왔다. 머니 무브 현싱이 뚜렷하긴 하지만 투자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1131호 (201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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