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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시너지, 현대重 자금력 우위 

11월 중 본입찰 예정…가격이 인수전 변수 

이창균 이코노미스트 기자



KAI(한국항공우주산업) 인수를 놓고 대한항공과 현대중공업이 맞붙게 됐다. 대한항공은 8월에 KAI 지분 41.75% 인수하기 위해 1차 입찰에 참여했다. 그러나 대한항공 단독 참여로 유효 경쟁이 성립되지 않아 유찰됐다. 인수 경쟁자는 없어 보였다. 이에 따라 2차 입찰에서도 유찰돼 수의계약(경쟁 또는 입찰에 의하지 않고 상대를 선택해 체결하는 계약)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상황은 달라졌다. 한국정책금융공사는 9월 27일 KAI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서 접수 마감 결과 대한항공과 함께 현대중공업이 참여해 유효 경쟁이 성립됐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의 전격 참여는 올 초 증권가 소문으로 떠돌았지만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관측됐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조선업과 건설업 같은 기존 사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KAI를 인수해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게 회사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은 10월 4일 경남 사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중공업의 인수전 참여를 예상치 못해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경쟁자 없이 수의계약으로 인수전에 뛰어들면 돈을 좀 덜 들이고도 KAI를 인수할 수 있을거라고 여겼지만 현대중공업이라는 막강한 경쟁자가 나타나 가격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정책금융공사는 10월 5일에 현대차와 두산, 삼성테크윈 등 4개 회사가 주주협의회를 열어 대한항공과 현대중공업 두 회사 모두 결격 사유가 없음을 확인하고 본입찰 적격자로 선정했다. 이로써 KAI 매각은 대한항공의 독무대가 될 것이라던 기존 전망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게 됐다. 대한항공과 현대중공업은 10월 중 각각 예비실사를 한다. 11월 본입찰 결과에 따라 연내 최종 인수자가 결정될 예정이다.

KAI는 전투훈련용 항공기인 T50을 생산하는 국내 유일의 항공기 제작사다. 지난해 1조2861억원의 매출과 105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10월 현재 시가총액은 2조 7400억원대다. 매각 대상 지분인 41.75%로 계산하면 수치상으로 1조1400억원이란 금액이 나온다. IB(투자은행)업계는 여기에다 경영권 프리미엄 30~50%가 더해진 1조 4000억원선이 최종적인 KAI 인수 금액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 부채비율 104%

대한항공은 이 금액이 고평가돼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KAI가 국제 기준에 비해 너무 고평가돼 있다”면서 “현재의 주가 수준에서 인수 금액이 정해지면 인수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곽민정 BS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한항공은 자금 여력상 1조원 안팎을 원할 텐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목이 대한항공이 현대중공업의 등장에 긴장하는 이유다. 현대중공업은 막강한 자금조달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이 53조7117억원으로 공기업을 제외한 재계 7위의 기업이다.

대한항공은 같은 해 12조267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현대중공업은 덩치뿐만 아니라 내실도 탄탄하다. 올해 6월 말 기준 부채비율이 104.2%, 차입금 의존도는 17.8%로 국내에서 재무구조가 가장 탄탄한 기업 중 하나다. 대한항공은 부채비율이 990%이며 차입금 의존도도 68.4%로 높다. 순차입금 규모도 현대중공업이 4조원, 대한항공이 13조원 내외로 차이가 있다. 표면적인 현금성 자산은 두 회사 모두 올해 6월 말 기준 1조1000억원 정도를 보유해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추가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다. 이 경우 현대중공업은 대한항공보다 우위에 있다.

현대중공업은 부채가 적을 뿐더러 그룹 전체가 가진 현금이 많다.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오일 뱅크, 현대종합상사 등을 합해 2조원이 넘는다. 또 현대차를 비롯해 보유한 지분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이상화 현대증권 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은 7월에 현대차 지분 1.45%를 매각한 현금 7463억원이 유입된다”며 “현대차와 기아차 등에 보유한 타법인 주식가치도 7800억원으로 KAI 인수대금이 넉넉하다”고 말했다. 반면 대한항공은 자금조달 능력 외에 2009년 이후 채권단과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맺고 있어 채권단의 승인을 얼마만큼 받을 수 있을지도 변수다.

현대중공업이 자금력에서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면 대한항공은 인수 명분에서 한발 앞서 있다. 애초 현대중공업이 KAI 인수전에 뛰어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업계나 증권가에서는 현대중공업이 KAI 인수에 진정성을 갖고 있느냐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1차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던 현대중공업이 단지 유효경쟁 성사를 위해 들러리를 자처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이 2003년부터 “KAI를 인수해 그간의 노하우를 살려 항공우주 산업을 육성하고 아시아 최강으로 키우겠다”고 여러차례 밝힐 만큼 강한 인수 의지를 보여 왔다. 올해로 4번째 도전이다.

대한항공 항공산업 노하우 탁월

현대중공업은 제조업이라는 큰 틀에서의 노하우 외에 대한항공처럼 항공기 개발이나 판매, 사후관리 등에 경험이 없다. 현대중공업이 KAI를 인수해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KAI의 주력인 항공우주 사업은 에어버스, 보잉 등 세계 유수의 항공 업체들과의 협업 없이는 이끌어가기 어려운 전문 분야”라며 “이렇다 할 노하우가 없는 현대중공업이 KAI를 인수하더라도 잘 해낼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삼성이나 현대, 대우 등의 기업들이 자금력을 앞세워 항공산업 진출을 노렸지만 노하우가 없어 고생했던 전례가 있는 만큼 현대중공업도 상황을 장담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은 이 같은 의혹을 일축하면서 조선·기계 분야에서 쌓은 토대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인수전에 참여한 것은 KAI를 사업 다각화의 축으로 삼기 위해서이며 들러리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선박 엔지니어링 기술 등 우리가 보유한 조선·기계 분야 노하우가 항공기 설계와 기술력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석원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이나 가와사키 중공업도 주력인 조선업에 더해 고부가가치의 항공 산업 비중을 늘리고 있다”며 “현대중공업의 KAI 인수 추진도 이런 관점에서 전혀 무리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은 그린에너지사업부가 태양광과 풍력 사업을 전개하는 등 조선업 외에도 다각도로 신성장 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남은 것은 11월 본입찰에서 두 회사가 얼마만큼의 인수 금액을 써내느냐다. 보통 M&A에선 입찰가격이 60~70%, 고용이나 비전 등 나머지 비가격 요소가 30~40% 비중으로 평가된다. 더 높은 금액을 써내면 사실상 인수자로 선정된다는 얘기다. 더구나 이번 매각 주체인 정부는 KAI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자금력의 회사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면에서 현대중공업이 대한항공보다 우위에 있지만 두 회사가 어느 정도의 인수 의지를 갖고 있느냐가 최종 변수다. 인수 의지가 강한 만큼 높은 금액을 써낼 수 있기 때문이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우고도 인수에 소극적인 들러리 역할을 자처할 경우 조양호 회장이 얼마나 강한 인수 의지를 갖고 입찰하느냐가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크게 무리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1조원 내외의 가격이 적당하다는 게 우리 입장이며 인수 경쟁에서 너무 높은 가격이 붙으면 포기할 수도 있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1159호 (201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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