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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 풀 죽은 내수 살리려면 의료산업부터 키워라 

경제심리 북돋울 단기 부양책 필요 일자리 늘리려면 성장 잠재력 높여야 


“지금은 최경환 경제팀에 힘을 실어줄 때다.” 윤증현(69)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재 경제 상황이 무척 어렵다”며 “단기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정 지출 확대, 부동산 규제 완화, 세제 개편 등으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 방향이 어긋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8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소장 윤증현)에서 만난 윤전 장관은 “경제는 정답이 없는 선택의 문제여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들어

최경환 경제팀 출범 전까지 1년 6개월여 동안 허송세월 했는데 이번에는 방향을 잡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은데 비판하긴 쉽지만 직접 운용하긴 어렵다”며 “지금은 한 방향으로 가도 될까 말까인데 분열되면 곤란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 자유인이 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윤 전 장관은 개인 연구소를 열고 한국 경제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주말이면 경기도 양평에 마련한 텃밭에 내려가 세상사를 잠시나마 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가 한창이던 시기에 기획재정부 장관(2009년 2월~2011년 6월)을 지낸 탓에 5가지 크고 작은 병을 얻었다는 그는 요즘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얼굴이 좋아졌다”고 말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가 장관인 시절에도 경제가 어려웠지만 지금도 그 때 못지 않게 힘든 시기인데 혼자 편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다.

말씀대로 경제가 무척 어렵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7년여가 지났다. 당시 초기 대응은 잘 했다고 본다. 세계 대공황에 버금가는 세기의 위기였다. 우리가 당장 10억 달러도 빌리기 어려운 때였다. 다행히 행정력을 강력하게 발휘했고 국회도 적극 협조해 단기에 회복했다. 다만, 그걸 바탕으로 구조조정 작업도 벌였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지금껏 그대로다.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를 꼽는다면.

“고용 문제, 특히 청년 실업이 골칫거리다. 정부 수립 후 가장 심각하다. 최대의 복지는 일자리다. 고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자산과 소득을 축적한 세대가 있어 그들의 자녀 등이 아직 버티고 있지만 그게 오래 가긴 어렵다. 그래서 일자리가 중요하다. 정부가 발표하는 낮은 실업률은 통계상 허구일 뿐이다. 7, 9급 공무원 시험에 구름처럼 몰려드는 고학력 젊은이들을 봐라. 삼성의 채용 시험날은 또 어떤가. 고용 없는 성장은 세계적 문제이지만 자원조차 없는 한국으로선 더욱 뼈아픈 문제다.”

일자리 감소가 꼭 경기 탓만은 아니지 않나?

“다른 나라도 일자리 문제가 화두이긴 마찬가지다.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는 건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의 진전 탓이 크다.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기술·자본 집약적으로 바뀌고 있다. 또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노동력 이동이 자유로워졌다. 문제는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기술 발전과 세계화도 우리가 놓칠 수 없는 화두라는 것이다. 그래서 딜레마다.”

윤증현 전 장관은 일자리를 늘릴 방안으로 ‘성장’을 꼽았다. 그는 “성장은 놓칠 수 없는 화두이며 성장 잠재력을 어떻게 키우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 경제 성장률을 넘 어서는 성장을 해야 하고,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넘도록 해야 하며, 나아가 잠재성장률 자체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실업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4~5%는 성장해야 한다”며 “노동과 자본 같은 요소 투입만으로는 그러기 어려운 만큼 과학기술 발전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특히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며 내수에서 시동을 걸어 내수와 외수(수출)의 확대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경제의 구조를 바꿀 만한 내수산업으로 서비스업을 꼽았다. 서비스업은 내수·노동 친화적이며 특히 이걸 수출 산업으로 키우면 금상첨화라고 말했다. 의료산업은 한국 경제를 이끌 신성장 동력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왜 의료산업인가?

“한국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100%를 넘는 상황에서 국제 환경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좌우되기 십상이다. 대외적으로 경제가 어려울 때 내수산업으로 지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수산업은 일자리 창출에도 유리하다. 내수산업의 핵심은 서비스산업이며, 의료·관광·교육·금융·소프트웨어가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특히 의료산업이 유망하다. 지난 10년 간 우수한 인재가 가장 많이 몰린 분야다. 우수한 인재가 많은 분야에서 산업화 기회를 엿봐야 한다. 예전에 공과대학에 뛰어난 사람이 많이 모였고 거기에 투자해서 공업화를 이루지 않았나? 의료 분야는 쉽게 망하지 않을 산업이다. 다들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으니까. 우리나라 의사·간호사들 정말 잘 한다. 의료는 수출 산업으로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한국의 유명한 병원을 해외에 수출하면 성공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의료산업을 키우려면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

“투자할 수 있는 곳은 죄다 규제로 묶여 있다. 약사들만 약국을 할 수 있고 원격진료도 안 된다. 이런 걸 개혁해야 한다. 단, 웬만한 각오론 어렵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전쟁을 치른다는 각오로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행정부만으론 역부족이고 국회의 벽도 넘어야 한다. 한국 경제가 한 단계 성숙하려면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곤란하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난하지만 제왕적 국회의 부작용이 더 심각한 것 같다. 이러니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자란다’는 말이 나온것 아니겠나.”

차분히 인터뷰를 이어가던 윤 전 장관은 규제 완화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다소 커졌다. 그는 “박카스를 수퍼에서 파느냐 마느냐를 놓고 (장관 재직 때) 얼마나 많이 싸운 줄 아느냐”며 “얼마든지 환경친화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데 한라산 백록담 케이블카 설치 문제를 놓고도 10년 넘게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규제 완화가 어려운 이유를 자유민주주의의 딜레마에서 찾는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선거가 중요하기 때문에 특정 이해관계자에게 유리한 포퓰리즘 정책이 불가피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어쩌면 경제원리보다 국민의 의식과 인식, 사회적 분위기가 더욱 중요하다”며 “그리스·스페인·아르헨티나의 사례에서 보듯 국민도 인이 박혀 포퓰리즘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정치인과 성숙하지 않은 국민의식도 문제지만 공무원도 곧잘 비판의 대상이 된다. 특히 ‘관피아’ 논란도 심한데.

“아까 말했듯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자란다’고 하지만 ‘경제는 공무원이 체육대회 하는 날 자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웃음).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피아’는 물론 ‘해피아’ ‘산피아’ ‘국피아’ 등의 말이 회자되는데 참 가슴 아픈 얘기다. 모든 일이 그렇듯 양면성이 있다. 공무원들은 개혁이나 혁신의 대상이지만, 장관과 함께 경제정책을 펼치면서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체이기도 하다. 특히 박봉에 사기로 먹고 사는데 요즘 같으면 집어치우고 싶은 공무원도 많을 것 같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의 사람도 전문성과 도덕성이 중요하다. 그런 게 없는데 산하기관의 요직에 이른바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건 철저히 막아야 한다. 그러나 전문성이나 도덕성을 따지지 않고 어떤 사람이 특정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배척하는건 경계해야 한다. 그건 헌법이 보장한 직업 선택의 자유와도 배치되며 억지로 막으면 더 이상한 곳에서 자리를 차지하게 마련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한·중 관계가 어느 정부 때보다 돈독하다. 두 나라가 자유무역협정(FTA)도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 실무 협상단 주변에선 ‘연내 타결’이란 시한에 쫓겨 졸속 협정을 맺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FTA는 한국 경제에 꼭 필요하다. 한·중 FTA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있을 때 서둘러야 한다. 농업 분야가 좀 걸리지만 농업도 의료산업처럼 농업도 수출산업으로 키울 여지가 있다. 다만, 시한은 못 박지 말아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재임 중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려다 무리수를 두지 않았나.”



윤증현은 누구인가?

1946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10회 행정고시로 관가에 입문해 1997년 외환위기 때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 2004년 카드대란 때 금융감독원장,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한복판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아 6%대의 성장률을 기록해 외신으로부터 ‘교과서적인 회복’이란 호평을 받았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역학관계에 정통하며 강력한 리더십과 소신으로 관가에서 존경 받고 있다. 현재 개인 연구소인 ‘윤경제연구소’에서 한국 경제의 발전 방향과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1252호 (201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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