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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 억지로 돈 풀다간 두고두고 후회한다 

내수 부진은 양극화·고령화 따른 구조적 문제 중장기 체질 개선이 더욱 급해 


“진단부터 틀렸다.” 김종인(75)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최경환 경제팀의 경제 상황 인식에 오류가 있다고 비판했다. 제대로 진단해야 제대로 처방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 엉뚱한 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말한 것처럼) 지도에 없는 길을 가다간 헤매기만 할 수 있다” 고도 했다. 더 이상 세속의 자리에 미련이 없다는 김 전 수석은 “경제 정책은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요~”라고 고개를 가로 저으며 긴 한숨을 쉬기도 했다. 8월 13일 오전 서울 광화

문 대한발전전략연구원(이사장 김종인)에서 만난 김 전 수석은 1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동안 “경제는 참으로 복잡다기해서 정말 어렵다”는 말을 반복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말일까. 8월 16일로 취임 한 달을 맞은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최 부총리는 ‘개인소득↑→내수↑→기업 투자↑→일자리↑→개인 소득↑’의 소득 주도형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고 한다. 이를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리고 각종 규제를 풀고 있다. 서비스업 강화 대책도 내놨다. 8월 14일에는 한국은행도 1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 부양 분위기를 띄웠다. 최 부총리의 한달은 대체로 성공적이란 평가다. 박스권에서 헤매던 증시와 침체에 빠진 부동산 시장이 꿈틀대고 있어서다. 일본의 ‘아베노믹스’에 빗댄 ‘초이노믹스’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김 전 수석은 “최경환 경제팀에 대한 평가가 좋은 편”이라는 질문에 “일본이 왜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는지 아느냐”고 반문했다. 저성장·저물가·고령화…. 한국과 일본 경제는 한국이 경상수지 흑자 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정도를 빼곤 여러 모로 닮은 듯 보인다. 김 전 수석은 그러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병의 증세는 비슷하지만 진단은 모두 틀렸다고 말한다.

뭐가 틀렸다는 건가?

“일본 경제는 1993년 더 어려워졌다. 일본 경제는 이미 구조적인 문제로 침체 터널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그걸 일시적인 경기후퇴로 보고 재정 지출을 늘리고 금리를 내리는 전통적인 방식에 매달렸다. 정부에서 아무리 돈을 뿌려대도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정부의 빚만 늘었다. 이것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자초한 경제 진단의 오류와 정책 처방의 결과다. 아베노믹스도 잃어버린 20년 시절에 행한 경제 정책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반짝 살아나는 듯 보이지만 기업의 경쟁력이 회복되고 소비가 살아나지 않으면 중장기적으론 부작용만 겪을 수 있다.”

최경환 경제팀도 그런가?

“일본과 비슷한 오류다. 현재 한국 경제의 내수 부진은 지나친 양극화 현상에 따른 대다수 계층의 소비 여력 상실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다. 고령화라는 인구구조적인 문제까지 겹쳤다. 당장 돈 몇 푼 더 푼다고 쉽게 고칠 수 있는 증상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지금껏 정권의 성향을 떠나 임기 초기 펼친 경제 정책이나 대응 방식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대부분 압축성장 시절의 향수에 취해있다. 기껏 깜짝 부양할 생각이나 하고. 예컨대 부동산 시장을 띄우려고 할 경우 투기가 일어날 때쯤 돼야 활황을 체감하게 마련이다. 그 때는 어떻게 할 건가?”

김 전 수석은 특히 “지금은 저성장 시대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전에야 두 자릿수 성장률이 예사였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성숙 단계에 접어든 만큼 성장률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가 3.7% 성장할 걸로 예상했다가 3.4%로 하향 조정했는데 한국 경제는 3.5~3.9%의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라며 “결코 저성장이라고 부를 만큼 낮은 수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또 “한국 경제는 결국 수출로 먹고 산다”라고도 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이며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우리만 발버둥쳐봐야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내수가 부진한 가운데 세계 주요국의 성장률도 낮아 한국 경제만 독야청청하긴 어렵다는 분석이다.

저성장 시대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3%대 성장률은 낮지 않은가?

“우리가 3%대로 성장하면 크게 나쁘다고 볼 수 없다. 이명박 정부 때 이른바 ‘747 정책(성장률 7%, 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을’ 펼쳤는데 성장률이 연 평균 3%를 넘은 적이 없다. 정부에서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추면 경기가 어느 정도 반응하긴 한다. 그렇다고 밤낮 경기 부양한다고 억지로 돈을 뿌려대면 중장기적으로 두고두고 부담이 된다. 참을 때는 좀 참아야 한다. 현재 경기 활성화 정책은 정부가 내세운 경제 혁신에 역행할 수도 있다.

참을 때는 좀 참아야 한다는 뜻은?

“예전에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노태우 대통령을 모실 때 ‘경제가 어렵다’고 보고하면 화를 내셨다. 그때마다 내가 하던 말이 있다. 광화문 네 거리에 가 보시라. 차가 막힐 때는 아무리 속력을 내려고 해도 시속 10㎞ 이상 못 낸다. 교통순경이 있어도 그때는 차들이 차선과 신호를 지키게 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그렇게 참으면서 펀더멘털(경제의 기초체력)을 정비해야 한다. 중장기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장기 구조개혁이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인데.

“그래서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한국 경제는 압축성장 이후 처음으로 구조조정을 거쳤다. 많은 기업이 쓰러지고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지만 고통을 이겨내고 한국 경제가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2001년 9·11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등을 겪었지만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없었다. 중국 기업의 거센 추격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종·기업이 많은데 말이다.”

김 전 수석은 경쟁력 이야기를 꺼내면서 “독일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그는 국내 대표적인 ‘독일통’이다. 그는 지난 3월에 출국해 새정치聯 워크숍 특강새정치聯 워크숍 특강새정치聯 워크숍 특강3개월 간 독일에 머물렀다. 그는 훔볼트 재단 초청으로 독일 6대 싱크 탱크중 하나인 에센 RWI (Rheinisch-Westfalisches Institut furWirtschaftsforschung)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독일의 지식인· 정치인을 두루 만났다고 한다. 통일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이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탄탄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비결을 찾으려고 연구에 몰두했다.

독일의 경쟁력이 뭐라고 보나?

“미국·일본·유럽연합 등은 모두 빚으로 위기를 탈출하려고 하고 있다. 양적완화라는 그럴 듯한 포장으로 말이다. 결말이 어떨지 미지수지만 글쎄…. 선진국에서 유일한 예외는 독일이다. 독일은 빚을 줄이면서 성장을 이뤘다. 독일의 힘이 뭔지 궁금하지 않나? 기본적으로 경제의 바탕은 제조업이다. 일본이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도 제조업의 뿌리가 튼튼해서다. 독일은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런 바탕 위에 대기업과 ‘히든 챔피언’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톱니바퀴처럼 협력하며 돌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갑을 관계처럼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재무제표까지 가져다가 납품가의 3% 이상 이윤을 취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경제 민주화를 주창한 것도 그래서인가?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만 말한 걸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는 시장 경제의 효율과 안정을 위해 두 개의 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나는 보이지 않는 손이고, 다른 하나는 ‘보이는 손’이다. 보이는 손은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정부가 강력히 개입해 시장을 보완하는 것이다. 독일인들은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 질서’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자본주의를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다. 여기서 ‘사회적’이라는 말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뜻이다. 공정한 거래 확립, 세금, 사회안전망 같은 거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탐욕은 끝이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결국 파생상품 규제를 너무 풀어서 생긴 것 아닌가?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때려 잡자는 게 아니다. 정부가 공생의 원리가 작동하는 새로운 틀을 짜주어야 새로운 성장동력이 된다.”



김종인은 누구인가?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 박사로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한 국내 대표적인 ‘독일통’이다. 노태우 정부에서 보건사회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11·12·14·17대의 4선 의원으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으며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설계했다. 헌법 제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들고 의료보험제도를 관철시킨 점을 높이 평가 받는다. 현재 가천대 석좌교수와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고 있으며, 독일의 경쟁력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1252호 (201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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