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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한약 처방에도 밸런스·타이밍이 중요 

 

윤영석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한약재 무게 재는 약저울, 내장기의 균형 잡아 치료하는 목적도

▎춘원당한방박물관 제공
저에게는 한의학 스승이 두 분 있습니다. 한 분은 제 할아버지이고 다른 한 분은 창덕궁 앞에서 ‘성제원 한의원’을 개원했던 운계 김정제(雲溪 金定濟)님입니다. 김정제님은 동의보감을 통째로 외우신 것으로 유명합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우리나라 최고의 한방 명의로 꼽힌 분입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경희대 한의과대학 학장으로 재직하며 후학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한의사 면허를 받고 난 즈음, 인사차 김정제님 댁으로 방문한 김에 불쑥 물어봤습니다.

“선생님, 처방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증상을 한꺼번에 고치려고 욕심내지 말거라. 처방을 하고 나서 바란스(balance)와 타이밍(timing)도 따져 봐야 해.”

한의학 용어로 이야기할 줄 알았고 있던 저는 영어 단어로 조언한 것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밸런스와 타이밍은 모든 일에서 중요합니다.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 때나 기업인이 투자를 할 때, 음악가가 연주를 할 때에도 균형을 잡고 시점을 조절하는 일을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듯싶습니다.

대나무에 정밀하게 눈금 만들어

사실 환자의 처방을 낼 때에도 약재의 효능, 분량, 주약(主藥)과 보조약 사이의 균형을 잘 잡고 병의 진행에 맞추어 적기에 약을 쓰는 것이 빠른 치료의 관건입니다. 이때 치료의 주체가 되는 약재는 양을 많이 넣고 보조제로 쓰이는 약재는 적게 넣게 됩니다. 이때 쓰는 저울은 단순히 무게를 재는 도구를 넘어 내장기의 균형을 잡아 병을 치료한다는 한의학적인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천칭형 저울을 쓰는 반면 동양에서는 대저울을 많이 써왔습니다. 약령시처럼 약재를 많이 취급하는 곳에서는 큰 저울을 썼겠지만 약저울은 일반 저울보다 작고 정교하게 만듭니다. 저울대의 재질은 일반적으로 대추나무·대나무·피나무 등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좀 더 견고하게 만들려면 녹이 안 쓰는 상아나, 은, 동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추는 금속으로는 정교한 무게를 재기 어렵기 때문에 옥이나 돌을 천이나 노끈 등으로 감싸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선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약저울의 저울추는 무게와 모양이 통일이 되지 않고 제각각입니다. 사진에서 보는 약저울은 1800년대 중반의 제품입니다. 일견 허술하게 보이나 대나무에 정밀하게 눈금을 매기고 옻칠을 해서 섬세하게 제작한 겁니다. 이 저울이 만들어진 시대의 사람들이 요즘 사람들을 본다면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저울 눈금에 너무 민감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에 TV 프로그램에서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소개된 이후 고지방식 열풍이 불어 대형마트에서 버터와 삼겹살이 품귀인 곳이 있고 가격도 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조만간 지나갈 것이고 새로운 다이어트 방법이 또 나올 겁니다. 그러나 비만 치료의 변함없는 진리는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기’입니다. 다이어트에서도 앞서 말한 밸런스와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음식은 골고루 균형 있게 섭취하고 제시간에 맞추어 먹는 게 다이어트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한약은 과다하게 항진된 식욕을 진정시키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서 지방 분해와 노폐물 배출이 잘 되게 해줍니다. 배뇨와 대사를 촉진해서 살이 빨리 빠지게 하는 약재들도 있습니다. 이들 약재는 체질과 개개인의 병증에 따라 투여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반드시 한의사와 상의 후 복용해야 합니다. 어차피 살은 본인 스스로 적게 먹고 땀이 날 정도로 꾸준히 운동해서 빼야 합니다. 한약은 직접적으로 체중을 줄일 뿐만 아니라 적게 먹어도 허기지지 않고 운동을 많이 해도 기운이 빠지지 않도록 돕습니다. 요요현상도 방지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요요현상은 단기간에 살을 빼려하다 생긴 탈수현상이 원상대로 회복되는 상태이거나 다이어트 기간 중 줄인 식사량을 다시 늘렸을 때 생깁니다.

음식은 균형 있게 제시간에 먹어야 다이어트에 효과

살찐 사람은 습(濕)이 많은 체질입니다. 태음인(太陰人)중에 비만인 사람이 많은데 살이 가장 잘 안 빠지는 체질입니다. 몸에 염증이 잘 생기고 땀도 많습니다. 조금만 먹어도,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는 것은 비위(脾胃)의 기능이 약해서 그런 것인데 대개가 소음인(少陰人)입니다. 하체 비만인 체질인데 피부에 탄력이 없고 물살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따뜻한 물을 마셔야 살을 뺄 수 있습니다. 찬물을 마시면 그대로 살이 되기 십상입니다. 배가 부른데도 입맛은 계속 당기고 살이 찐다는 사람은 소양인(少陽人)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제일 억울한 경우이지요. 몸은 말랐는데 배만 볼록 나온 복부비만인 사람이 대개 이런 체질입니다. 이러한 체질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비만이 되면 염증이 잘 생기고 혈관에도 문제가 생겨 고혈압·중풍·심장질환의 원인이 됩니다. 당뇨·관절염·치질 등의 질환도 생기기 시작합니다. 비만은 난임(難妊)도 유발합니다.

한의학에서의 비만 치료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비장과 위장을 보해서 체내의 대사활동을 촉진시키고 적게 먹어도 기운이 빠지지 않게 합니다. 그래야 식욕이 억제되고 공복감이 덜해지며 무기력감, 구역, 어지러움, 변비가 나아집니다. 이때 쓰는 대표적인 약재가 산사(山査)입니다. 산사는 이미 1000여 년 전부터 지방을 분해하고 소화를 촉진하는 약재로 쓰여 왔습니다. 끓이면 맛이 텁텁하고 시큼하기 때문에 꿀을 조금 넣어 차로 달여 마시면 비만 치료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신장 기능을 돋우어서 흡수와 배설의 균형을 유지하고 수분대사를 촉진시키는 방법입니다. 한약재 외에 율무나 메밀, 결명자에도 이러한 효능이 있습니다. 옥수수 수염차는 비만에 도움이 되지만 일주일 이상 계속 마시면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다른 차와 번갈아 드시는 편이 좋습니다.

한의학적인 치료법 외에 춘원당에서는 비만으로 고민하는 환자들에게 열 가지의 해야 할 일과 열 가지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이지만 매일 한번 씩이라도 리마인드 하면 비만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은 세 숫가락 덜 먹기, 천천히 먹기, 식사 제때 하기, 매일 대변 보기, 잡곡 먹기, 하루에 1시간 이상 걷기, 반신욕 하기, 아침식사 꼭 하기, 식후 바로 이 닦기, 야채 많이 먹기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짜게 먹지 않기, 아깝다고 남은 음식 먹지 않기, 설탕 덜 먹기, 과음하지 말기, 외식 피하기, 간식하지 말기, 과일주스나 청량음료 마시지 말기, 탄수화물 적게 먹기, 인스턴트 음식 피하기, 야식하지 말기입니다. 이런 사항도 따지고 보면 결국 일상의 생활 속에서 밸런스와 타이밍을 조절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윤영석 -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7대째 가업을 계승해 춘원당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학 관련 유물 4500여점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도 세웠다. 저서로는 [갑상선 질환, 이렇게 고친다] [축농증·비염이 골치라고요?] 등이 있다.

1357호 (201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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