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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메시지 기술] 사회적 관심(Social interest) 명확한 철학(Obvious philosophy) 구체적 비전(Specific vision) 전달하라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공감대 형성은 메시지 전달의 첫걸음... 추상적이고 장황한 메시지 피하고 쉬운 언어로 정확하게

소통 능력은 좋은 리더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다. 소통 능력을 키우기 위해 소통 수단인 말하기와 글쓰기를 배우려는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말과 글에서 중요한 건 현란한 기술이 아니다. 안에 뭘 담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베스트셀러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 전북대 교수는 “말과 글에서 중요한 건 전하려는 ‘메시지’다. 그 메시지는 당신 안에 확실히 있다. 그것부터 찾으라”고 조언한다. 때론 무언의 행동 하나가 열 마디 말보다 효과적일 수도 있다. 무엇이 CEO의 메시지를 빛나게 하는지, 다양한 국내 외 사례와 전문가 분석으로 짚어봤다.


▎좋은 CEO는 강연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데 능하다. 사진은 마크 톰슨(59) 뉴욕타임스 CEO가 2015년 서울 동대문플라자에서 열린 ‘중앙미디어콘퍼런스’에 참석해 강연하는 모습.
일론 머스크(46)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수년간 글로벌 산업계에서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그가 설립한 우주개발 업체 스페이스X(엑스)는 유인 화성 탐사 프로젝트로, 공동 설립한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테슬라는 미래형 자율주행차 개발로 각각 주목받는다. 이들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머스크는 ‘혁신가’라는 호칭과 현실판 ‘아이언맨’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런 머스크의 강연을 한 번이라도 귀담아들은 사람이라면 처음엔 의아해 했을지 모른다. 발 빠른 혁신가·아이언맨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의 말투는 여간 어눌한 게 아니다. 없던 둔재 이미지마저 생길 정도다. 하지만 그의 회사 임직원들은 물론, 개인적으로 그를 모르는 상당수 대중도 그에게 매료돼 호기심을 보이거나 열렬한 지지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머스크를 30시간 이상 독점 인터뷰한 내용 등을 토대로 그의 첫 공식 전기(傳記)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를 펴낸 애슐리 반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머스크의 명쾌하고 간결한 글은 논리성이 뛰어나 핵심을 정확하게 한 가지씩 짚고 넘어간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해하기 힘든 물리학 개념을 실질적인 사업계획으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실제 그의 어눌한 강연 곳곳은 어려운 연구개발(R&D) 용어를 쉽게 풀어내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매년 투자자들이 그가 가진 계획의 실현 가능성과 사업성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결국은 천문학적 자금을 투자하는 이유다. 머스크의 사례는 CEO의 말과 글에서 화려한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메시지’, 즉 언중에 담긴 뜻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좋은 메시지는 스스로 호소력이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대통령의 글쓰기] [대통령의 말하기]를 펴낸 강원국 전북대 기초교양교육원 초빙교수는 “말과 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며 “무슨 내용을 주로 풀어내고자 하는지 그것부터 생각해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 발굴 노하우는 비교적 간단하면서도 쉽지 않다. “멀리서 찾으려 할 필요가 없다. 가까이에서 찾아라. 메시지는 당신 안에 분명하게 있다. 내 관심사가 뭔지 유심히 자신을 관찰하라. 예컨대 내 책장에 어떤 책들이 꽂혀있는지부터 살펴보라. 내가 나를 잘 아는 것 같아도 잘 모른다.” 강 교수는 8년간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은 바 있다.

협업과 공유가 과거보다 중요한 조직 가치로 발돋움한 현시점에서 소통 능력은 유능한 CEO가 갖춰야 하는 필수 덕목 중 첫째다. 좁게는 해당 기업 임직원들에게, 넓게는 사회·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CEO들은 보다 전략적으로 소통 수단인 말과 글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메시지부터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능한 CEO들은 메시지에 세 가지 요소를 공통으로 담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회적 관심(Social interest), 명확한 철학(Obvious philosophy), 그리고 구체적 비전(Specific vision). 약어로 ‘S.O.S.’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오른쪽)은 1998년 직접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거쳐 북한으로 향해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일각에선 이를 한국 역사상 최고였던 ‘CEO의 메시지’로 꼽는다.
사회적 관심(Social interest) | 공감대 형성의 필수 조건


▎리처드 브랜슨 영국 버진그룹 회장은 사회적 관심을 메시지에 담아 표출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실천하는 CEO이기도 한 그는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많은 소비자들의 호감을 얻고 있다.
소통 능력이 뛰어난 CEO일수록 메시지 안에 사회적 관심사를 담는 데 능하다.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교감하려면 공통된 이야깃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이때 CEO의 품격을 튀지 않게 보이면서도 듣는(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주제가 사회적 이슈다. 너무 개인적인 관심사는 그것에 별 흥미가 없는 타인이 많을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지만, 만인이 관심을 갖는 사회적 이슈는 그런 리스크가 매우 작다. 공감대 형성이 소통에 있어 왜 중요한 첫걸음이 되는지는 젊은 시절의 연애 경험을 떠올리면 쉽다. 처음 만난 남녀는 공통된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데 몰두한다. 그래야 빨리 친밀해질 수 있어서다. 이때 상대방의 자랑이나 내내 듣고 있어야 한다면 더 만나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따분한 자화자찬이나 관심 가질 수 없는 얘기만 늘어놓는 CEO여서는 첫 만남에서부터 퇴짜를 맞을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회에 대해 단순히 비판적인 시각이 아니다.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 인간 사회에 대한 애정, 조금씩 개선하려는 의지다. 무조건적인 비판, 대안 없는 불만의 표출은 꺼리는 사람도 많다. 이런 면에서 리처드 브랜슨(66) 영국 버진그룹 회장은 모범 사례라 할 만한 사업가다. 그는 선천성 난독증을 앓아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17세 때 그룹의 모태인 ‘버진 레코드’라는 작은 레코드 가게를 차려 처음 사업에 뛰어들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그는 사업에 두각을 보였다. 항공업과 호텔업 등 다양한 업종에서 사업을 키우면서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비결은 네트워크 구축. 그는 어떤 부류의 사람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소통 무기는 왕성하게 갖고 있는 사회적 관심과 그것의 표출이다. 브랜슨은 언제나 사회적 관심사를 메시지에 담는다. “돈은 뭔가를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그가 세운 ‘버진그린펀드’는 환경 문제 해결, ‘버진유나이트’는 자선 사업을 목표로 한다. 좋은 뜻은 늘 사람들의 호감을 산다.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 코피 아난 전 UN 사무총장 같은 세계적 명사까지 브랜슨의 아군이 돼 같이 활동했다. 최근 그는 퇴임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휴가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더 나은 지구를 만드는 기업인이 되겠다”는 그의 메시지는 버진그룹과 그에게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안겨주고 있다.

순다르 피차이(45) 구글 CEO도 사회적 관심사를 메시지 안에 풀어내는 데 능하다. 지난해 열린 ‘구글개발자콘퍼런스’에서 그는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소개한 뒤 “슈퍼컴퓨터와 머신 러닝(AI의 기계학습)이 기후 변화와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신기술 홍보도 자연스럽게 하면서 더 많은 청중과의 공감대 형성을 유도했다. 메시지 안의 이런 사회적 관심 요소는 CEO의 권위적인 면모를 희석시키는 효과도 있다.

명확한 철학(Obvious philosophy) | 하나만 제대로 담아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메시지로 ‘신(新)경영 시대’를 열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이건희(75) 삼성전자 회장의 이 일성(一聲)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내 산업계에 회자된다. 이 회장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주요 계열사 CEO 등 임직원 200여 명을 모아놓고 ‘신(新) 경영 선언’을 했다. 지금처럼 해서는 영원히 2류 기업이 되니, 위기감을 갖고 모든 것을 개선해나가자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였다. 당시 이 회장은 세탁기 조립 과정에서 직원들이 규격에 안 맞는 덮개를 즉석에서 칼로 깎는 장면이 담긴 사내방송용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제품의 질적 개선보다 양적 목표 달성을 우선시하는 사내 분위기를 감지, 이를 바꿔야 한다고 봤다.

이 회장은 복잡한 주문을 하지 않았다. 단 하나만 강조했다. 양보다 질, 이제 품질에 집중하자는 얘기였다. 전문가들은 이때 이 회장이 여러 말로 에둘러 지적했다거나, 두 가지 이상의 메시지를 담았다면 효과가 급감했을 것으로 본다. 청중의 주의가 분산될수록 메시지 전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누라’ ‘자식’ 같은 친숙하되 날카로운, 상징적인 단어 두 개만으로 간명하게 메시지를 전한 것도 주효했다. 신호창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이 회장은 파괴적인 메시지 하나로 삼성은 물론 90년대 한국 사회 전반에서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도록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한국이라고 해서 이 회장 같은 재벌 총수(오너 CEO)만 이런 명확한 경영관을 강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경영인인 존 리(58) 메리츠자산운용 CEO는 고유의 메시지로 주식 투자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 극복에 힘쓴다. “대부분이 생각하는 주식 투자는 요행을 바라는 투기나 도박입니다. 많이 공부하면 됩니다. 특정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거시경제 상황도, 각종 산업도 전부요. 그러면 투기나 도박이 안 됩니다. 그렇게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만큼 자산을 늘리기 쉬운 방법도 없습니다.” 그는 한결같이 ‘주식은 좋은 재테크 수단’임을 강조한다. 위기론에도 “때론 위험할 수 있다”며 초점을 분산시키지 않는다. 그러면서 “메리츠 펀드에 맡겨볼 것”도 슬쩍 홍보한다.

구체적 비전(Specific vision) | 모든 계획은 세세할수록 좋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인류를 화성에 이주시키겠다”는, 조금은 허황되어 보이는 계획을 밝혔지만 투자자와 소비자들은 구체성이 있는 그의 말에 곧 긍정적으로 호응했다.
머스크는 자신의 계획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담아 전달한다. 지난해 9월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우주비행회의에 참석해 스페이스X의 화성 개척 계획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르면 2022년부터 인류를 화성으로 보내게 될 것이다. 100년 안에 100만 명을 이주시키겠다. 개발 중인 화성행 우주선의 탑승료는 1인당 50만 달러(약 5억5000만원), 탑승인원은 100명, 발사주기는 26개월, 탑승기간은 편도로 80일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이 기간을 30일로 단축, 탑승료도 20만 달러로 줄일 수 있다.”

인류를 화성으로 보내겠다는 그의 원대한 계획은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비현실적이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머스크는 항목별로 숫자를 써서 상세히 제시해, 메시지를 받는 청중들이 꽤 현실적인 계획으로 느끼게끔 이끌었다. 우주선 탑승료, 탑승인원, 발사주기, 탑승기간까지 구체적이다. 이 모든 건 그저 대충 던진 숫자가 아니다. 개발 중인 재활용(발사 로켓의 회수와 재사용) 우주선의 성능과 소재(알루미늄 대신 탄소섬유를 이용), 절감되는 연료비(메탄 연료), 2022년 무렵까지 갖추게 될 것으로 예측되는 기술력의 향상 추이, 화성까지의 거리 등을 면밀히 분석해 나온 숫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스페이스X는 기존 미국 항공우주국(NASA) 로켓 대비 10분의 1 수준의 비용에 우주를 오가게 할 전망”이라며 “NASA의 화성행 프로젝트는 값비싼 계획으로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고 보도했다. NASA 계획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한 머스크의 힘은 구체성에서 나왔다.

유능한 CEO들은 메시지 안에서 이처럼 자신 또는 자기 기업에 주목해달라는 구원 요청(S.O.S.)을 보낸다. 그러면서 소통한다. 신호창 교수는 이런 PR(Public Relations)에 가장 능했던 국내 기업가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꼽는다. 정 회장은 이미 고령이던 1998년 직접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거쳐 북한으로 향해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신 교수는 “기업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PR 사례”라고 평가했다. 실향민 출신인 정 회장은 개인사(실향의 아픔)를 사회적 관심사와 결부시켜 사회적 공감대부터 형성했고(S), 다음으로 대북 사업을 키워야 한다는 하나의 명확한 경영철학 전파로 국가적 호응을 얻었으며(O), ‘타당성 검토’ 같은 추상적인 계획이 아닌 구체적 접근으로 대북 사업을 성사시켰다(S). 소떼라는 감성적 장치도 주효했다. 정 회장의 최고수 면모는 평소 말하기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해봤어? 해보기나 했어?”라는 말은 기업인의 도전·개척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어떤 말과 글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아쉽게도 모든 CEO들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의 경우가 많다. 국내 한 대기업 전직 CEO는 “연초마다 나오는 재계 신년사만 봐도 한국의 CEO들이 메시지 전달과 소통에 얼마나 서툰지를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용이 천편일률적이라 식상해서 와 닿지가 않습니다. 예컨대 ‘헬조선’ 같은 사회적 담론을 녹여내서 오래 일하기보다 짧고 굵게 일하자며 교감한다거나, 미래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임직원 또는 사회와 소통할 의지가 없으며, 새해에 대한 준비가 덜 됐다는 거죠. 고민의 흔적, 뚜렷한 경영철학 없이 단순히 ‘위기다’ ‘혁신해야 한다’는 메시지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니 감흥이 덜할 수밖에요.” 실제 중앙일보가 올해 국내 재계 신년사를 분석했지만 ‘변화’ ‘책임경영’의 필요성에 대해서만 도돌이표처럼 반복됐을 뿐, 특이점은 없었다(중앙일보 1월 3일자 B4면). ‘S.O.S.’가 필요하다.

지나치게 많이 쓰는 전문용어도 메시지의 전달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필 사이먼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WP캐리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전문적인 내용을 담았더라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론 어떤 말과 글보다 무언의 메시지가 효과적이다. 정주영 회장은 매년 신입사원들과 만나 씨름을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직원들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는 전언이다. 진심을 담아 용기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는 짧더라도 굵게 통한다. 한 직장인은 “얼마 전 신년사에서 CEO가 ‘여러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테니 마음 놓고 일에 전념해 달라’고 했는데, 사소한 말 같아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 든든한 말이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진심 어린 행동과 화법, CEO의 메시지를 한층 빛나게 하는 조연(助演)들이다.

[박스기사] 직원들을 사로잡은 허브 켈러허의 메시지 - 즐거움을 강요하지 않는다 → 같이 즐거워한다 → 즐거운 직장이 된다


▎허브 켈러허 전 사우스웨스트항공 CEO.
허브 켈러허(85) 전 사우스웨스트항공 CEO는 은퇴(2001년)한 지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직원 친화 경영의 대표 사례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그는 괴짜다. 백발이 성성한데도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몰며 가죽 재킷을 입는다. 사진을 찍자고 하면 혀로 ‘메롱’ 표시를 하거나 어깨동무를 하며 최대한 익살스럽게 포즈를 취해준다. 이런 모습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CEO’라는 별명이 붙었다. 자신이 창업한 이 항공사의 CEO였을 때 켈러허의 메시지는 파격적이었다. “회사 수익 걱정은 하지 마라. 고객 서비스만 생각하자.” 때론 한술 더 떴다. “내게는 고객보다 직원이 최우선 순위다.” “첫째가 직원, 고객은 두 번째, 주주는 세 번째다.” 그저 빈말일까. 아니다. 그의 논리 구조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직원이 행복해야→고객 서비스가 잘되고→회사의 수익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수익에 너무 연연하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일이 잘 풀렸을 때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보너스 정도라고 생각했다. 직원과 고객의 행복이 우선이라는 메시지였다.

실제로 그는 언제나 직원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을 들였다. 재임 기간 고객관리 팀에 계속 항의만 하는 ‘블랙 컨슈머’가 나타나자 “고객님이 그립겠지만, 잘 가시라”고 잘라 말했다. 팀원들이 감동한 것은 당연했다. 또한 직원들에게 ‘회사 경쟁력 강화’ ‘업계 1위 달성’같은 추상적인 거창한 말들로 성과 달성을 독촉하지 않았다. 그건 CEO의 입장에만 치우친 언어이며, 그렇게 말해봤자 직원들은 뭘 해야 좋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대신 직원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손에 잡히는 구체적 과제를 던지면서 소통하려 했다. 부서별로 핵심 과제만 딱 짚어줬다.

예컨대 사내 지상운영팀에는 “지상 대기 시간을 45분에서 15분으로 줄이자”고만 지시했다. 당시 그의 항공사는 비행기가 지상에서 머무는 시간이 너무 길어 운항 횟수가 하루 평균 10회에 불과했다. 대기 시간을 줄이면 이 횟수가 14회로 늘어나 더 많은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각 부서 상황에 맞게 개별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직원들이 즐겁게 회사에 다니는 모습에서 자신도 즐거움을 얻었다. 양쪽 다 ‘강요되지 않은 즐거움’이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비교적 짠 급여 조건에도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세계 최초 저비용항공(LCC) 개념의 도입과 미국 국내선 1위 등 성과를 냈다. 괴짜 CEO의 탁월한 소통 능력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한 가지 더. 그는 퇴임 인사를 할 때 모든 직원의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박스기사] ‘CEO다운 언어’만 쓰려는 강박관념 버려야 - ‘교장님 훈화 말씀 ’식 메시지 많아 … 추상적 수치 나열도 마이너스

‘공감할 수 있는 얘기가 별로 없고 눈과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국내 CEO 대부분의 메시지에서 드러나는 공통된 문제점이다. 올 초 국내 주요 CEO 인터뷰 내용을 짚어보면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신성장동력을 육성하겠다(S사 대표)” “글로벌 시장 진출에 도전할 것(T사 대표)” “안정적인 사업 모델 구축이 과제다(P사 대표)” 등, 굳이 그 사람이 아닌 다른 기업의 다른 CEO가 말했어도 어색하지 않았을 내용들이다. 그만의 경영철학을 고민한 흔적,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얘기는 거의 보이질 않는다. 구체성도 떨어진다. ‘2020년까지 매출 1조원, 영업이익률 10%를 달성할 것(K사 대표)’ 같은,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수치만 나열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CEO다운 언어’를 쓰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이우창 HSG휴먼솔루션그룹 경영전략연구소장은 “소통을 잘하는 CEO는 자신보다는 얘기를 듣는 사람, 읽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안다”고 말했다. 듣는(읽는) 이가 같은 CEO라면 통할 얘기더라도, 다른 일반 소비자나 직원들을 대상으로 했을 땐 지루한 내용이기 쉽다는 것이다. 계획의 구체성이 없는 신성장동력 육성, 글로벌 시장 진출 같은 얘기는 전형적인 CEO의 언어다. CEO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사업 기밀 유지 관계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기가 어렵다면, 차라리 자기만의 특별한 개인사나 사회 구성원들과 교감할 수 있는 얘기를 곁들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낫다.

경영관의 차별화 노력도 더해야 할 부분이다. “스티브 잡스의 ‘혁신’ 메시지가 통한 것은 그 스스로 신제품 발표회 때 옷차림부터 달리하고 독창적인 디자인과 감성 전달에 주력했기 때문이죠. 양복 입고 책상머리에 앉아서 ‘카피캣(모방 제품)’으로 혁신을 얘기한들 누가 혁신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자신조차 감당이 안 되는 얘기를 너무 쉽게들 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교수의 말이다.

각 기업 신년사에서도 이런 아쉬움이 노출된다. 물론 대부분의 신년사는 홍보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에서 먼저 써서 CEO에게 결제를 받는 식으로 나오지만, 그 과정에서 CEO 자신의 생각을 담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다른 CEO와 다르게 말하고 써야 ‘메시지의 홍수’ 속에 고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CEO들의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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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2호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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