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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폐배터리 처리는] 버리면 유독물질인데… 정부는 방관 

 

5~6년 수명 친환경차 폐배터리 쏟아질 전망… 재사용·재활용 분류 기준도 없어

▎사진:© gettyimagesbank
급증할 친환경차 폐배터리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고 있다. 친환경차 보급을 독려하고 있는 정부가 정작 폐배터리의 사후 관리에는 소홀해서다. 정부는 아직 폐배터리 배출량이 적다는 이유로 법령이나 제도 마련에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차 배터리는 보통 5∼6년이 지나면 교체해야 한다. 길어야 10년 정도 쓸 수 있다. 정부가 2011년부터 하이브리드·전기차 등 친환경차 보급에 나섰고,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관련 차량이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올해 이후 폐배터리가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환경부가 지난해 한국자동차자원순환협회에 의뢰한 연구에 따르면 친환경차 폐배터리는 지난해까지 100여 개가 나왔다. 내년에는 1000개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친환경차 보급이 궤도에 오르는 2022년 이후 급격히 늘어 2024년에만 약 1만개의 폐배터리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폐배터리 1만개는 약 150만~200만킬로와트시(kWh) 용량으로 22만 가구(4인 가족 기준)가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기에너지와 동일한 분량이다. 2040년 폐배터리 총 누적 발생량은 약 245만개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지난해 초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2030년까지 전기차 누적 보급대수 300만대 목표”가 달성되면 2040년 폐배터리 총 누적 발생량은 약 576만개로 급증할 전망이다.

폐배터리 2018년 338개→2040년 576만개


정부는 지난해 말 친환경차 보급 목표를 다시 세웠다. 2020년까지 전기차 43만대(기존 13만대), 수소차 6만5000대(기존 2000대)로 늘려 잡았다. 이와 달리 친환경차 폐배터리 사후 관리체계는 만들지 않고 있다. 현행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폐차동차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과 기준에 따라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친환경차의 폐배터리를 처리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없다.

문제는 리튬이온 2차전지인 폐배터리가 ‘유독물질’이라는 데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제2018-28호 ‘유독물질의 지정고시’에서 친환경차 폐배터리를 산화코발트·리튬·망간·니켈 등을 1% 이상 함유한 유독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조동욱 한국자동차자원순환협회 연구원은 “친환경차 배터리는 외부 노출 때 화재와 폭발, 급성독성 및 수생 환경에 유해한 환경적 위해성을 내포하고 있다”면서 “전기차 보급이 급증하면서 폐배터리 배출량도 곧 급격히 늘 텐데 폐배터리 사후관리 방법과 기준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독물질인 친환경차 폐배터리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방치돼 있다.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보조금을 지원받은 전기차 폐차 때 폐배터리를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반납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환경보전법 하위 법령에는 회수·관리에 대한 가이드라인만 있을 뿐 처리 방법에 대한 법령과 제도가 없다. 지자체가 폐배터리를 방치하고 있는 배경이다. 지난해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환경부 장관이 폐배터리를 재사용·재활용하기 위한 자원화 센터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냈지만, 상임위원회 통과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휘발유와 배터리를 동시에 동력원으로 쓰는 하이브리드차에 들어간 폐배터리는 회수·관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폐배터리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친환경차 보급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하이브리드차의 폐배터리는 회수·관리 가이드라인조차 적용하지 않고 있어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하이브리드차에도 리튬이온 2차전지가 들어간다”며 “판매 규모를 따지면 하이브리드차 폐배터리가 더 많은데 정부는 당장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이브리드차 폐배터리 관리 체계 구축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6월 국토교통부 자동차 누적 등록대수 기준 하이브리드차는 45만5288대로 전기차 7만2814대보다 6배 수준으로 많다. 하이브리드차의 본격적인 판매가 전기차(2014년)보다 훨씬 앞선 2010년부터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하이브리드 차의 폐배터리 문제는 이미 시작됐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이호근 교수는 “하이브리드차 폐배터리는 대부분 자동차 제조업체와 폐기물처리(전지재활용업체)가 연계하여 처리하고 있는 실정으로 재사용과 재활용을 위한 전지팩 해체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처리된 하이브리드차 폐배터리가 어디에 어떻게 쌓여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폐배터리를 어떤 경우에 재사용하고, 어떤 경우에 재활용할 것인지를 정하는 ‘분류 기준’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재사용은 배터리 자체를 다른 용도로 다시 쓰는 것이고, 재활용은 방전된 배터리를 녹여 코발트·니켈 등을 걸러내 배터리 원료로 쓰는 것이지만 현재 기준이 없다. 정부의 방치·방관 속에서 배터리 업체는 재활용을, 완성차 업체는 가정용 에너지저장장치(ESS)로의 재사용 여부를 고려하고 있는 게 전부다.

LG화학 관계자는 “호주의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인 엔바이로스트림과 손잡고 호주에서 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아직은 테스트 단계”라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 6월부터 완성차 업계, 배터리 생산 업체, 재활용 업계와 협의체를 운영하며 재활용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아직 구체적 계획은 세우지 못했다”고 밝혔다.

EU는 폐배터리 관리 지침 세우고 재활용 고민

해외에선 이미 유해물질인 폐배터리 관리에 대한 지침을 제정한 데 더해 폐배터리 재활용 방안도 고심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특정 유해물질을 함유하는 배터리에 관한 지침’이 대표적이다. EU는 배터리 성능이 70% 미만으로 떨어져 자동차 용으로 수명이 다한 폐배터리를 전기 자전거, 전동 휠체어, 발광다이오드(LED) 가로등 등은 물론 전기차 충전소에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EU는 폐배터리 회수·처리·재활용에 관련된 비용을 생산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을 리튬이온 2차전지에 확대 적용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주도해 온 일본은 2010년에 이미 자동차용 리튬이온 2차전지 재사용·재판매·재제조를 통한 ESS 상용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스위스 전기회사 ABB와 공동으로 쉐보레 전기차 ‘볼트’의 폐배터리를 거둬 가정용 ESS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 규모가 큰 중국은 각 지방정부가 지역별 기반산업을 고려해 비즈니스모델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필수 전기차학회장은 “폐배터리를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면 친환경차 보급의 의미가 없다”며 “정부는 폐배터리를 안전하게 회수하고 활용하는 체계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01호 (201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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