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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자연이 빚은 담대한 기술  

세계 100대 명코스(끝) - 아시아·오세아니아 편
LEPORTs 

글 남화영 <골프 다이제스트> 기자·사진 <골프 다이제스트> 제공
미국의 골프 인구는 2000년을 정점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명코스의 비중도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나라에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유럽의 코스는 바다를 끼고 도는 링크스 스타일을, 미국의 코스는 도전 정신과 모험성을 가미한 코스의 전형을 보여줬다. 이와 달리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코스는 천혜의 자연 환경에 첨단 기술을 적용한 현대 골프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한국 골프의 세계화를 이끌고 있는 클럽 나인브릿지의 11번 홀

세계적인 명코스는 골프 산업이 성장하는 지역이나 나라에서 많이 나오게 마련이다. 한국만 해도 1996년에 100여 개이던 코스가 2005년 224곳, 지난해 말에는 319곳으로 급증했다.

84년 중산온천골프장이 개장한 이래 중국은 25년이 지난 현재 코스 수만 400여 개가 넘는다. 인도, 뉴질랜드, 중동 등에서도 최신 설계 기법을 반영한 짱짱한 거리의 도전적인 코스가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고 있다.

장비가 발달하고 골퍼의 평균 비거리가 늘면서 예전의 명성을 자랑하던 명코스도 거리를 늘리거나 전면 재단장했다. 그 결과 2007년 <골프 다이제스트>에서 발표한 리스트에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도 ‘미국을 제외한 세계 100대 코스’에 25개나 이름을 올렸다.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코스 설계자들도 ‘골프 신대륙’에서 재능을 뽐내고 있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와 피트 다이 등 미국 코스의 전성기를 이끌어온 거장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와 달리 40대의 신진 설계가인 데이비드 맥레이 키드나 톰 도크 등이 아시아 곳곳을 누비고 있다.


전통이라는 가치를 존중하는 올드 클럽 일본 히로노의 18번 홀
로열 멜버른 콤퍼짓 코스(파71, 6934야드) = 20세기 초 스코틀랜드 출신의 호주 이민자들은 고향을 연상시키는 히스(황무지에 자생하는 관목) 숲과 고사리가 우거진 멜버른 인근 블랙록 모래언덕에 최고의 코스를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촉망받는 스코틀랜드인 설계가 앨리스터 매킨지(몇 년 뒤 오거스타 내셔널과 사이프레스 포인트를 설계했다)를 초청해 26년에 웨스트 코스를 만들었다.

2년 전인 24년에는 호주오픈 챔피언이었던 알렉스 러셀이 이스트 코스를 설계했다. 이웃한 이 두 코스는 59년에 합쳐지면서 현재의 콤퍼짓 코스로 탄생했다. 원래는 도로를 따라 코스가 동서로 나뉘어 있었으나 러셀의 6개 홀과 매킨지의 12개 홀이 합쳐지면서 새롭게 변모한 것이다.

이 코스는 워터 해저드가 하나도 없지만 볼을 보내려는 곳이면 어김없이 벙커가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어 긴장을 풀 수 없다. 마지막 18번 홀(파4, 395m)은 그린 주변에 6개의 커다란 벙커가 에워싸고 있는 웅장한 피니시 홀로 유명하다.

특히 매끄러우면서도 빠른 그린은 로열 멜버른의 특징으로 ‘미국을 제외한 세계 100대 코스’ 가운데 6위에 꼽힌다. 설계가인 매킨지 박사가 오거스타 내셔널의 유리판처럼 빠른 그린을 이 코스의 경험에서 재활용한 건 아닐까.

케이프 키드내퍼스(파71, 7119야드) = 뉴질랜드 호크스베이에 있는 케이프 키드내퍼스는 명코스 세계 랭킹 10위에 올라 있다. 40대의 신진 설계가를 대표하는 톰 도크가 디자인했으며 2004년 개장했다. 100년을 넘긴 고색창연한 올드 코스들을 모두 제치고 개장 5년도 안 된 코스가 꼽힌 데엔 천혜의 자연환경과 입지 여건이 작용했다.

바다를 향해 손가락처럼 뻗은 다섯 곳의 갑(岬)을 휘돌아 나가며 깊은 협곡이 홀과 홀 사이를 가른다. 페어웨이에서 122m 아래의 태평양을 내려다보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코스의 이름을 골퍼의 마음을 낚아챈다고 납치자(키드내퍼스)라 짓지 않았을까? 도크는 12번 홀을 시그너처(대표) 홀로 꼽았다.

벙커 하나 없는 이 홀은 그린 뒤로는 창공이다. 그린 앞쪽으로는 태평양에 면한 절벽으로 급강하한다. 자연이라는 웅장한 무대의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코스 소유주는 올해 76세의 미국인 억만장자 줄리언 로버트슨으로 그가 설립한 타이거 펀드는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와 더불어 세계의 대표적 헤지 펀드다.


손가락을 모두 펼친 듯 5개의 갑으로 페어웨이가 조성된 뉴질랜드의 케이프 키드내퍼스

그는 이 코스와 함께 뉴질랜드에서 둘째이면서 세계 100대 코스에 30위로 꼽히는 카우리 클리프스도 소유하고 있다. 그는 늘 ‘가치 투자’를 강조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이 골프장들을 염두에 두고 했던 말 같다.

히로노(파72, 7055야드) = 일본 효고(兵庫)현 고베(神戶)에 있는 히로노(廣野) 골프장은 31년 고베의 경제인들이 해리 콜트와 더불어 초창기 코스 설계의 대부 격인 찰스 알리슨에게 의뢰해 만들었다. 알리슨은 일필휘지로 일주일 만에 설계를 끝냈고, 이듬해 6월에 공사를 마무리해 개장했다.

그는 ‘미국을 제외한 세계 100대 코스’에서 19위에 오른 히로노 외에도 100위 안에 오른 일본의 네 코스(나루오, 도쿄, 가쓰미가세키)를 설계했다. 히로노는 울창한 숲과 풍부한 물로 둘러싸인 코스다. 평평한 아웃 코스와 톱 다운의 경사가 심한 인 코스로 나뉜다. 특히 마지막 네 개 홀은 난이도가 높은 홀로 정평이 나 있다.

홀마다 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각 홀이 송림으로 완전히 나뉘어져 있어 풍취가 남다르다. 전동 카트 없이 걸어서 라운드를 하고 연 회원제로 운영된다. 알리슨이 만든 벙커에 빠지면 파 세이브가 지극히 어려워지므로 아예 피하는 편이 낫다. 히로노의 벙커는 일본의 여느 골프장 벙커와는 달리 넓고 깊고 커서 플레이어에게는 분명한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일본에서만 불리는 ‘알리슨 벙커’란 단어가 여기서 유래했다. 골프장에 부속된 골프 박물관은 일본 골프 역사에 관한 진귀한 물품이 전시돼 있어서 라운드 후에 들러볼 만하다.

클럽 나인브릿지(파72, 7190야드) = 세계 65개국에 160여 개 코스를 디자인 한 로널드 프림이 설계를 맡아 2001년 개장한 클럽 나인브릿지에는 돌다리(브릿지)가 모두 8개 있다. 그런데 왜 나인브릿지라고 했을까? 골프장의 설명인즉 ‘나머지 하나는 골프장과 멤버를 이어주는 마음의 다리’라 그렇단다.

이 골프장의 회원이 되려면 각종 심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미국의 오거스타 내셔널 회원 되기만큼 어렵다. 하지만 회원이 되면 각종 음악회와 문화 모임을 통해 그들의 유대를 강화한다. 그 역할을 골프장이 다리가 돼 맡아준다. 게다가 회원에게는 종전 국내 코스에서 누리지 못했던 혜택이 주어진다.

세계 명코스에서 라운드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그건 클럽 나인브릿지가 2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월드클럽챔피언십(WCC) 때문에 가능해졌다. 해발 660m 고지에 한라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나인브릿지의 전반 크리크 코스는 건천과 호수를 이용해 전략적이고 도전적이다.

후반 하일랜드 코스는 전통적인 스코틀랜드 스타일의 넓은 페어웨이와 깊은 벙커로 이뤄진 시원한 코스다. 클럽 나인브릿지는 2007년 ‘미국을 제외한 세계 100대 코스’ 45위에 올랐다.

도전과 긴장, 살아 숨쉬는 전통
김운용 세계 100대 코스 선정위원의 체험기
로열 멜버른 = 로열 멜버른과 아울러 100대 코스 중 15위에 오른 킹스턴 히스 두 군데에서 6번씩 클럽 챔피언을 지낸 100대 코스 선정위원 톰 크로우 씨. 그분의 초청으로 다녀왔습니다. 모든 벙커의 에지가 다듬어진 게 아니고 푹 파인 그대로였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장한 지 90여 년이 됐지만 여전히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코스였습니다.

케이프 키드내퍼스 = 홀들이 협곡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 페어웨이 옆으로는 러프가 아니라 계곡인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홀을 마치고 다리를 건너 협곡을 지나 다른 홀 티잉 그라운드로 건너가곤 했습니다. 어느 홀에선가 그린 너머 벙커에 볼이 빠졌습니다. 그 뒤로는 절벽이라 벙커가 꺼지지 않을까 두려움 때문에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천혜의 지형에 스릴이 넘치는 코스였습니다. 골프장 진입로에는 양떼가 풀을 뜯는 평화로운 곳이지만, 일단 페어웨이에 오르면 온몸이 긴장되는 코스였습니다.

히로노 = 주말에 라운드 할 수 있는 비회원의 수를 21명으로 한정하는 등 극히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골프장입니다. 따라서 회원 한 명이 비회원을 세 명 초청해 라운드 하기조차 쉽지 않은 곳이죠. 회원 평균 연령이 70세 이상으로 골프장이 전통이라는 걸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또 보존하는가를 알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200903호 (200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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