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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잘 하면 소송도 막는다 

경제적 가치
MANAGEMENT|정재승 ?김호의 ‘사과의 기술 ’2 

일러스트 강일구
사과하면 손해를 볼까. 미국 대학병원 사례를 보면 결과는 정반대다. 의료 사고 발생 시 정보를 공개하는 병원의 비용 부담이 그렇지 않은 병원보다 적다. 환자가 병원을 신뢰해 소송을 줄여서다. 사과에 인색한 국내 기업이 살펴볼 만한 사례다.

종종 일의 윤리적 과정과 경제적 결과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놓고 고민한다. 비즈니스 현실에서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할 때가 많다. 윤리적으로 옳은 과정이지만 경제적 결과는 그리 좋지 못한 경우와 다소 비윤리적인 과정을 거쳐 더 나은 경제적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다.

더 나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뇌물을 고려하는 경우는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극단적인 예다. 여기서 무시 못하는 것은 비즈니스는 경제적 결과로 평가된다는 현실이다. 만약 개인이나 조직이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 위기 상황에서 윤리적이면서 동시에 경제 효과까지 담보하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과의 기술’이 바로 그 방법이다. 실수나 잘못 앞에서 사과하는 행위가 윤리적으로 바람직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윤리적인 가치만으로 사과의 기술을 논한다면 이는 학교에서 배우는 사과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리더의 언어’로 활용 가능한 사과의 기술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은 단순히 ‘사과는 윤리적으로 옳은 것’이라는 명제를 재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의 데이브 울리히 교수와 컨설턴트인 잭 젠거, 놈 스몰우드 등은 1999년 출간한 <결과 중심의 리더십>(Results-based leadership)(하버드 비즈니스 출판사)에서 ‘효과적 리더십(effective leadership)=속성(attributes)×결과(results)’라는 공식을 제시한다.

여기에서 속성이란 리더가 어떤 사람이고(가치관이나 성격), 무엇을 알며(지식과 능력), 무엇을 하는가(행위, 습관, 스타일) 등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좋은 속성만 가졌다고 해서 효과적 리더십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긍정적인 속성이 바람직한 결과와 묶일 때 비로소 리더십의 효과가 나온다.

이는 리더란 결국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정의와 들어맞는다. 필자가 리더의 언어로서 사과의 기술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하는 방식이 이와 같다. 사과하는 행위가 긍정적인 속성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이것이 리더가 지녀야 하는 속성이란 점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사과가 왜 리더의 속성인지 과학적으로 밝히려고 한다. ‘사과의 기술’이 윤리적으로만 바람직하다면 비즈니스에서는 별 매력이 없다. 사과의 기술이 매력적인 이유는 적절한 사과가 조직에 긍정적 결과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런데 모든 사과가 긍정적 결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사과의 ‘기술’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 호에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예를 들어 사과가 왜 리더의 속성인지와 리더의 사과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살펴봤다. 이번에는 좀 더 직접적으로 사과와 관련된 경제적 가치를 살핀 연구와 사례를 살펴보자.

고소득자가 사과도 잘해


미국 일리노이 대학병원의 티모시 맥도널드 리스크관리 담당자는 2006년부터 이 병원이 낸 의료 사고를 사과한 후 소송 건수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2007년 10월 미국의 비즈니스 잡지 <포춘>은 ‘연봉을 높이고 싶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라(Want a higher paycheck? Say you’re sorry)’란 기사를 실었다. 온라인 보석판매업체인 더 펄 아웃렛이 부인이나 여자 친구에게 사과할 목적으로 진주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우연히 목격하고는 조사기관에 사과에 대한 정식 연구를 의뢰했다는 내용이었다.

모두 7590명의 미국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신의 실수에 대해 기꺼이 사과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사과를 기피하거나 거부하려는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 수입이 10만 달러(약 1억5000만 원)인 사람들은 연 수입 2만5000달러(약 3000만 원) 이하의 사람들보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 앞에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의향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심지어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고소득군이 저소득군보다 사과할 의향이 훨씬 강했다. 이 결과를 두고 어떤 전문가들은 사과를 활용해 갈등을 해결하는 기술이나 실수를 인정하고 거기서 배우려는 긍정적 태도가 돈을 많이 버는 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분석한다.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이번엔 보다 심각한 사례 연구를 살펴보자. 의료진의 기술 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미국에서 매년 의료 사고로 숨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99년 미국의학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매년 9만8000명이 미국에서 의료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최악의 테러인 9?1사태에서 숨진 3000명보다 서른 배나 많은 수다.

환자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정책 연구 중 눈여겨볼 것은 오바마 미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상원의원 시절 함께 제안한 메딕(MEDiC) 법안이다. 메딕 법안은 의료 사고에 대한 공개와 보상에 대한 법률이다.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은 이 법안의 핵심을 2006년 5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JM) 사설에 기술했다.

변호사 출신인 두 사람은 의료 사고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법적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환자와 병원과 의사 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아 의료 사고 환경이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의료 사고 발생 시 의사는 법적 책임을 질까 두려워 진실을 이야기하기보다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꺼리며 변호사에게 의존하는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했다.

정보 공개는 신뢰 얻고 비용은 줄여

의료 사고 발생 상황에서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의 대표적인 예는 사과다. 미국에서 잘못을 인정하며 ‘아임 소리(I’m sorry)’라고 말하면 향후 법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적절한 사과가 환자의 소송을 뚜렷하게 줄인다고 나타났다. 하버드·스탠퍼드·버지니아 대학병원과 가톨릭 헬스케어 웨스트 등 최고의 의료기관에서는 의료 사고 대처에 이 연구 결과를 활용한다.

이 기관에서는 의료 사고 발생 시 실수나 잘못에 대해 병원 측이 환자와 가족에게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사과하며, 적절한 보상을 제시하는 정보 공개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은 <뉴잉글랜드 의학저널> 사설에서 두 가지 사례를 들었다. 미시간 대학병원이 정보 공개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전인 2001년과 후인 2005년을 비교한 결과 소송 건수가 262건에서 114건으로, 연간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이 30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로, 소송을 해결하는 시간이 20.7개월에서 9.5개월로 모두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정보 공개와 사과는 미국 켄터키주의 베테랑 어페어스 병원에서도 효과가 있었다. 87년 두 건의 의료 사고 소송으로 무려 150만 달러를 쓴 후 19년 동안 이 병원은 정보 공개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비교 대상인 다른 병원이 소송 건당 평균 9만8000달러를 쓴 데 비해 이 병원에서는 1만5000달러를 지출했다.

의료 사고 소송에 드는 평균 기간은 프로그램 도입 전 2~4년이었던 것이 놀랍게도 2~4개월로 줄었다. 메딕 법안은 정보 공개 프로그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의사가 의료 사고 발생 상황에 마음 놓고 사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실제로 미국 30개 주에서는 의사가 사과를 했다고 법정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법적으로 보호한다.

미국 소리웍스연합(SorryWorks! Coalition)에서는 정보 공개 프로그램 도입을 앞장서 주장한다. 2007년 10월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이 그룹 창립자인 워체식 더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더그는 형을 의료 사고로 잃었다. 의료진의 실수가 분명했는데도 의사들은 사과는커녕 정확한 설명 한 번 하지 않고 모든 대화를 변호사에게 일임했다.

분노한 더그는 소송을 해 많은 보상금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병원에서 사고에 대한 담당 의사의 투명한 설명과 진심 어린 사과, 향후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했더라면 고통스러운 소송까지 가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홍보 컨설턴트였던 더그는 소리웍스를 창립해 사과를 의료 사고의 핵심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그의 노력 덕인지 미국에서 정보 공개 프로그램을 채택하는 병원이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 대학병원 벤치마킹 필요

기업이 이 사례에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최고의 엘리트들로 구성된 의사 집단에서도 수많은 의료 사고가 나오듯 기업도 각종 실수와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사고 후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보다는 부정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기업과 정부의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워체식 더그의 다음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시간 대학병원이 정보 공개 프로그램을 실시한 후 한 가지 변화가 생겼어요. 이제 이 병원에서 의료 사고에 대한 발표를 하면 사람들이 믿습니다. 지금은 미시간 대학병원이 의료 사고 후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발표하는 사안에 대해서 변호사들이 소송을 꺼릴 정도가 됐습니다.” 미시간 대학병원은 결국 사과의 기술로 엄청난 소송 비용과 노력을 줄였을 뿐 아니라 소비자와 환자 측 소송 대리인에게 신뢰까지 얻었다.

선진 기업들은 위기나 사고 발생 상황에서 투명한 커뮤니케이션과 사과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미시간 대학병원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무리일까? 그들이 사과의 기술로 꿩 먹고 알 먹는 사이 한국 정부와 기업이 둘 다 잃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위기 대응책으로 사과는 조직의 손실 비용을 줄인다. 고소득 계층에는 기꺼이 사과를 하는 이가 일반 소득 계층에서보다 두 배 더 많다. 이 정도면 사과의 경제적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왼쪽)
김호 더랩에이치(thelabh.com) 대표

200904호 (200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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